[호주] 석면 피해자 투쟁의 영웅 사망
호주의 석면폐암 산재환자인 故 버니밴튼 동지는 전세계 석면피해자들의 희망을 만든 분입니다. 비록 한국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동지의 투쟁을 배워 우리나라의 석면피해자들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오도록 투쟁해야겠습니다.
글 : Karen Nader, 2007년 11월 28일(수)
어제(27일) 버니 밴튼이 맬버른에서 사망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석면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행진을 기획하였으나, 결국 다시 일어서지 못하였다. 버니 밴튼은 고통스럽고 병든 몸을 이끌고 석면 피해자들을 대표하여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위해 쉬지 않고 투쟁해왔다. 향년 61세.
우리가 보기에 버니 밴튼은 여한 없는 일생을 살았다. 그는 투쟁을 통하여 석면피해자를 위해 40억 달러(약 4조원)의 기금을 쟁취했다. 그는 사망하기 얼마 전에도 의미있는 법개정을 이끌어냈다. 중피종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의약품이 너무 비쌌는데 정부 보조금 대상목록에 올림으로써 가난한 환자들이 그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석면강조주간에 사망함으로써, 남아있는 자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다.
밴튼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 석면에 노출되었다. 그가 일한 곳은 시드니에 있는 제임스 하디 인슐레이션 공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1999년이 되어서야 석면에 노출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게되었다. 그 때 이미 그는 석면폐증이 진행된 상태였다. 올해 8월 그는 석면에 의한 중피종 진단을 받았다. 중피종은 불치의 병이다.
가족들은 사회장으로 치루자는 뉴사우스웨일즈 주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였고, 다음 주 수요일 시드니 올림픽 공원에서 장례가 치러질 예정이다. 우리는 밴튼의 부인 카렌과 5 자녀, 그리고 11명의 손주들이 외로이 슬퍼하도록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 호주 수상에 선출된 노동당의 케빈 루드는 버니 밴튼이야 말로 사회정의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토요일 수상 당선소감 발표를 밴튼에게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밴튼의 사망 소식을 듣고 수상 선출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 여러분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노동자는 경제를 위한 소모품이 아닙니다. 노동자 대중은 인간이며, 노동자 대중은 마땅히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어디에서 일하건 말입니다.”
그렉 콤벳은 지난 2004년에 석면피해자 보상투쟁을 펼치면서 버니 밴튼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둘은 가까운 동지가 되었다.
“밴튼은 정말로 밝고 사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한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발생된 일에 대해서 정말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분노했다는 것이며, 정의를 실현하고자 애썼다는 점입니다.”
버니 밴튼에 의해 소송을 당해 대규모 보상금을 물도록 판결이 난 제임스 하디 역시 버니 밴튼의 가족에게 조의를 표했으며, 그가 이룬 업적을 칭송했다. 아마도 밴튼이 사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제임스 하디 소송을 이끈 변호사 타냐 세겔로프일 것이다. 그녀는 지난 월요일 오후에 소중한 친구 밴튼을 만났다.
“버니는 신앙심이 깊었기 때문에 죽으면 천국으로 갈 것을 믿었습니다. 버니는 이제 고통없는 곳으로 떠나 편히 쉬게 될 것입니다.”
밴튼의 가족들은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밴튼의 장례식에 꽃을 보내는 대신 석면 연구 기금에 기부해달라고 말이다.
출처 : 디에이지닷컴, 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