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인정못받는 억울한 죽음들
[커버·직장인이 쓰러진다] ‘업무상 질병’ 판단 기준 애매모호… 과로사로 판정받는 돌연사 절반도 안돼
밤낮으로 회사 일에 매달려 살던 젊은 직장인이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황망한 경우를 요즘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직장인의 돌연사는 모두 업무상 질병에 의한 것으로 판정 받을 수 있을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직장인 돌연사의 원인이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등으로 추정되더라도 상당수 경우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업재해(산재) 승인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경우 산재 신청인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역시 수긍치 못할 경우에는 법원에 소송을 내 최종 판단을 얻을 수 있다. 법원은 종종 근로복지공단의 결정과 다른 판결을 내리고 있다.
기계류 유통업체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양모(사망당시 30세) 씨는 1996년 2월 23일 새벽 4시께 약혼녀의 집에서 가슴 통증을 호소한 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 날 아침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지고 말았다.
이에 양 씨 부모는 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라며 유족급여 및 장례비 지급 등을 근로복지공단에 청구했다. 양 씨가 평소 거래처를 돌아다니며 과로를 한 데다 특히 사망하기 열흘쯤 전부터는 설날을 앞두고 수금업무가 집중되는 등 회사 업무로 인한 과도한 스트레스로 심근경색을 일으켰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양 씨 사망이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수긍할 수 없었던 그의 부모는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양 씨가 설날을 앞두고 더러 한두 시간 정도 늦게 퇴근한 적은 있지만 18일부터 사흘간 설날 연휴로 쉰 데다 사망 직전 이틀 동안에도 오후 7시 무렵 퇴근했기 때문에 과로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양 씨는 사망하기 몇 개월 전 협심증, 심장성부정맥 등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그 증세가 근무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어서 영업 업무를 계속했다. 또 평소 하루 한 갑 반 가량의 담배를 피웠으며 1주일에 서너 차례 정도 술을 마셨다. 특히 사망 전날 밤에는 맥주 3병을 마셨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점들이 그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판단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법원이 유족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사단법인의 총무과장으로 근무하며 상조회장까지 겸하던 김모(당시 41세) 씨는 99년 4월께 갑작스레 쓰러져 세상과 영영 이별을 했다. 사인은 급성심장사였다. 당초 근로복지공단은 김 씨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았지만 법원은 그 결정을 뒤집었다.
김 씨는 98년 건강진단에서 고지혈증 및 비만 증상과 함께 심근경색 의증(疑症)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 그는 99년 1월부터 직장 내 ‘특수상황’으로 인해 평소보다 과도한 업무량을 석 달간 소화해야 했고, 이 때문에 거의 매일 야근을 하다시피 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그는 회사의 임금 동결 및 상여금 삭감 조치를 직접 수행하는 업무를 맡았던 까닭에 동료 직원들로부터 불만과 비난의 표적이 되는 등 직장 내 스트레스가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을 중시한 법원은 김 씨가 3개월 이상 이어진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에 짓눌린 나머지 심관상 동맥경화의 악화로 사망에 이른 것으로 판단했다. 김 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직장인 돌연사의 업무상 재해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는 명쾌하지 않다. 각각의 사건에 대해 어떤 사실을 주목하고, 어떤 시각으로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왕왕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동진 공인노무사는 “과로사로 추정되는 직장인 돌연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과로사로 인정되는 경우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며 “근무여건 등 다양한 과로인정 요건을 따져봐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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