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피해’ 국내 첫 손해배상 판결
법원, 20여년 전 2년간 근무 석면회사에 책임 물어
“위험성 교육·보호의무 소홀”…유사소송 잇따를 듯

한겨레신문 12월 5일

석면에 노출돼 암으로 숨진 노동자의 유가족에게 석면 제조회사가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석면피해는 노출된 지 10~40년이 지나야 증상이 드러나기 때문에 상관 관계 입증이 어려웠으나, 이번 판결을 계기로 석면에 노출된 노동자와 석면 작업장 인근 주민의 유사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 판결=대구지법 민사 52단독 김세종 판사는 4일 2년 동안 석면제조 회사에서 일하면서 석면에 노출돼 악성 중피종을 얻어 숨진 원아무개(사망 당시 46살)씨의 유가족이 ㅈ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유가족에게 1억6천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서 “ㅈ사는 근로자들에게 석면 노출로 유발되는 질병의 내용이나 예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을 하지 않고, 작업 현장의 석면 분진을 방치했으며 보호복과 장갑 등을 지급하지 않은 잘못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숨진 원씨는 1976년부터 2년 동안 부산시 연산동에 있는 석면원단 제조회사인 ㅈ사 방적부에 근무한 뒤 2004년 ‘석면 노출에 의한 악성중피종’ 진단을 받고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투병 중이던 2005년 5월 대구지법에 ㅈ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10월 숨졌다.

■ 파장=석면은 1급 발암물질이지만 건축자재, 자동차부품, 섬유제품으로 1970~1980년대 널리 수입돼 쓰였다. 그로부터 20~30여년의 세월이 흘러, 과거에 석면에 노출됐던 노동자나 일반인들의 피해 사례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들은 원씨처럼 소송을 낼 가능성이 크다. 실제 중피종 사망자는 1999년 16명, 2001년 24명, 2003년 33명이 발생했지만 전문가들은 실제로 환자 수는 그 10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석면 노동자인 악성중피종 환자 2명과 석면폐 환자 3명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환경운동연합과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민주노총은 이달 안에 ‘석면피해자와 가족모임’을 결성해 일반인 석면피해자의 소송도 지원할 계획이다.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은 “소송에 오랜 시일이 걸리고 입증하기가 어려워 정부가 피해자를 지원해야 하는데도, 노동부는 석면공장에서 3년 이상 일해야 석면수첩을 발급하고 있고 환경부는 예산이 없다며 피해조사를 내년으로 미루고 있다”며 정부의 안이한 대책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