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제40회 소방의날 기념식이 열렸다. 원래 소방의 날은 11월9일이지만 ‘높은 분들’의 스케줄 때문에 부득불 ‘생일 잔치’를 늦춘 것이다. 과거 소방의 날엔 대통령이 꼭 참석했지만 이날은 국무총리 모습만 보였다. 또 이날이 소방의 날인지 관심을 가지는 국민이나 언론은 별로 없어 보였다.

서울 종로소방서 구항모 구조과장(53)은 생일날이었지만 이날도 거의 밤을 꼬박 새웠다. 12일 인사동에 화재가 발생해 비상이 걸리면서 또 새벽에 출근했다. 서울 도심에서 일어난 이 불은 구조대원이 주민 5명을 신속히 대피시켜 인명피해 없이 1시간30분 만에 진화됐다. 구과장이 지휘하는 종로소방서 구급대는 하루평균 7~8차례 출동한다. 구과장은 “밤 12시 이후 몇번 출동하다보면 거의 밤을 새울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비번날 비상이 걸리면 출근해야 하는 날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행자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2만4천여명의 소방관 중 79.1%인 1만9천여명이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고 있다. 그나마 소방검사다 뭐다해서 비번일에 근무하는 것은 물론 비상근무도 다반사로 이뤄져 주당 약 100시간을 근무하고 있다.

한 일선 소방관은 “다른 공무원들은 주5일 근무다 뭐다하는데 소방은 비번보장조차 확실히 되지 않는다”며 “제발 소방공무원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교정직이 1991년, 경찰이 지난해 3교대 근무를 시작했지만 소방관은 계획상 2007년에야 3교대가 가능하다. 이것도 계획대로 예산이 책정돼야 그렇다. 현재 예산이 부족한 서울과 제주를 제외한 다른 시·도 소방관들은 법에 보장된 휴일근로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비해 소방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 5년 평균 화재 4.8%, 구조 13.3%, 구급 17%씩 소방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소방인력은 평균 1.1% 늘어나고 있어 소방관의 근무여건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처지다.

더구나 소방업무는 출동할 때마다 소방관의 생명을 걸어야 한다. 소방공무원은 88년 순직 23명·부상 249명을 비롯해 해마다 10여명이 순직하는 등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지난해에도 19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특히 소방관의 주된 부상은 화상으로 장기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무원연금법상 지급되는 공무상 요양비로는 치료비가 모자란다. 결국 공무상 부상도 자신이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지난해 홍제동 화재 때 소방관이 방화복이 아닌 우의를 입고 불속에 뛰어들다 5명이 순직하자 요양비를 대폭 올렸지만 아직도 치료비에서 모자란다. 행자부의 한 관계자는 “경찰은 경찰병원이 있어 완치될 때까지 치료가 가능하다”며 “소방병원도 검토됐으나 예산문제로 장기과제로 꼽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최소한 노동법에 규정된 수당도 받지 못하고, 비번 근무는 다반사로 하면서 부상당하면 자신의 돈으로 치료해야 하는 소방관. 한 소방관은 다음과 같이 우리 소방의 현실을 절규하고 있다.

“계속되는 비번자 동원에 아이들이 아빠 얼굴을 몰라보겠다고 하네요. 왜 이리 비번자를 동원시키는지…72시간 근무 한번 해보세요. 3일 연속 근무를 해보세요. 사람이 반은 돌고 말지요. 높으신 분은 하위직 공무원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계시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