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비정규직 실태 유사, 공동 모색 필요”

매일노동뉴스 김봉석 기자

“일본 도쿄 네리마구에 있는 구립 도서관에는 ‘협력원’이라 불리는 비상근노동자 60여명이 일을 하고 있다. 이들 비상근노동자들은 지난 88년부터 1년 단위로 재계약하면서 현재까지 일해 왔다. 물론 임용회수가 제한되지 않아 고용은 보장받았다. 하지만 구 당국은 지난 95년 ‘재임용 한도를 5회 5년으로 제한’하려 했다. 임시직원 장기고용에 따라 비상근직들을 상근직으로 전환 채용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협력원으로 고용돼 있는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투쟁했고, 98년에도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노조를 결성하면서 ‘심각한 문제가 없는 한 65년까지 재임제한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경조휴가·여름휴가·병가휴가에 있어서도 상근노동자에 준하는 제도를 보장받는 성과도 얻었다. 하지만 2005년도 구 당국은 다시 도서관의 민간위탁을 추진했다. 노조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결원 보충을 하지 않는 형태로 인력의 자연감소를 꾀했다. 노조는 이에 맞서 싸우고 있다. 상근노동자들은 전문직이 아니고, 인사이동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협력원 노동자들이 업무에는 정통하다. 하는 일도 90% 이상이 같다. 하지만 임금은 상근노동자의 3분에 1 수준에 불과하다.”

‘너, 나 없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증가

민간기업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대량의 비정규노동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 비정규노동자들은 고용과 임금에서 상대적으로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 사업을 아웃소싱하거나 고용연한 갱신회수를 제한하는 등 일상적인 고용불안에도 시달리고 있다. 국영 지하철과 버스 운전수는 물론 우체국과 연금을 관리하는 사회보험청에도 비정규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정규직 비율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만큼 비정규직들이 그 숫자를 채워가고 있다.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옆 나라 일본의 이야기다.
공공서비스노조와 전일본자치단체노조,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1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한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공동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네리마 구립도서관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함께 해 왔던 미사와 마사끼씨는 “구 당국은 두 차례에 걸쳐 다른 방법으로 비상근직들을 해고하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다행히 협력원노동자들이 단결해 노조를 결성하면서 이런 시도를 막아내고 있지만, 미래는 불안하다.

미사와씨는 “구 당국이 재임용제한을 시도했던 95년에는 비상근직들은 싸웠지만 정규직 노조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했다”며 “민간위탁을 시도하고 있는 지금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를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도쿄 네리마 구립도서관의 비상근노동자들의 투쟁과 비슷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그만큼 우리나라와 일본의 비정규직 문제는 비슷하다. 고용형태나 규모, 차별형태 등 비정규직 실태도 비슷하지만 기업별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노동조합 구조상 비정규직과 정규직들의 반목이 심하
다는 점도 유사하다.

따라서 일본에서도 비정규직의 독자적 노조를 결성하면서도 정규직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방안을 조직화 사업의 핵심 화두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계약기간이 짧은 한계와 정규직과의 반목이 일상화되면서 조직화가 쉽지 만은 않은 상황이다. 전일본자치단체노조(자치노)와 전국공공서비스노조에 따르면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조직화 수준은 각각 7.0%와 5.7%에 불과했다.

경험 공유해 투쟁방향 모색해 보자

자치노에 따르면 일본 공공부문 종사자 중 임시노동자와 비상근노동자의 비중은 전체 종사자의 15%에 이르는 61만명(국가기관 15만명, 지방자치단체 46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나라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183만명으로 전체 종사자의 40.1%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 비해 규모나 비중 면에서 훨씬 심각한 수준인 것이다.

임금에서는 일본이 차별정도가 훨씬 심했다. 예를 들면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정규직 평균연간급여는 692만엔이지만 임시직원은 203만엔(정규직 대비 29%), 비상근직원은 264만엔(38%)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은 136만원으로, 정규직 임금(264만원)의 51.3%다. 물론 상대적인 차별이 심하다는 것은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마찬가지다.

비정규직들이 심각한 고용불안을 느낀다는 것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는 임시직이나 비상근직에 대해서 △직군(혹은 직종)의 축소와 폐지에 따른 정리해고(또는 아웃소싱) △고용연한 갱신회수 제한 △근무태도 평가에 따른 계약해지(이른바 ‘자의적 해고’) 등을 통해 비정규직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 공공서비스노조는 “우리나라 공공부문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혼마 세이치 자치노 조직국장은 “일본의 비정규직은 생활비를 보조하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주 수입으로 삼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라이시 다카시 아라카와구직원노조 서기장도 “일본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 국가 중 미국 다음순인 2위”라며 “비정규직인 파트타임 남성과 여성의 59%와 86%, 아르바이트 남성과 여성의 69%와 84%가 연간소득 150만엔 미만의 저소득층”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일본에서도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적극 나서는 한편 비정규직의 고용보장과 상대적 차별해소를 위한 법제도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혼마 자치노 조직국장은 “지난 2004년부터 조직화 체제를 정비하고 지난해부터는 임시·비상근 조직화 사업을 중점과제로 추진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비정규직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기업별노조의 협력이 필요하고, 정규직 노조의 협력을 얻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치노가 이름은 산별이지만 실제로는 기업별노조의 연합체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자치노는 △직원 차별 폐지와 단시간 노동자 균등처우 실현 △기간제노동계약규제법 제정 및 파트타임노동법개정 등 법 정비 △노동조합 가입차별 철폐와 혼합조합화(비정규직과 정규직 통합노조) △비정규직 해고저지와 고용연합폐지 등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공공서비스노조나 공무원노조도 구체적인 투쟁방향으로 △비정규직 해고저지 및 처우개선 △사회공공성(공공부문의 행정공공성) 강화 △비정규직 주체 형성 지원(조직화) 등을 제시하고 있어 큰 흐름에서 자치노의 투쟁방향과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김주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은 “정규직 노동운동에 있어서는 한국이 대체로 일본과 비슷한 추세를 보이면서 따라가고 있지만, 비정규직 운동에서는 반대인 경향성이 있다”며 “한국 노동운동이 산별노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 일본과 다른 변수이긴 하지만 서로의 경험과 고민들이 비교·공유하면서 각 나라의 운동방향을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