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다
[이명박 시대, 기억해야 할 죽음들]자살하는 산재노동자

2007-12-23 오후 6:36:47

최근 열린 대한산업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산재환자의 자살사망률이 일반인구의 자살사망률보다 1.3배 더 높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근로복지공단의 허술한 통계만 보아도 2003년 일반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자수는 24명인데 비해 산재환자들의 10만 명당 자살사망자수는 41명이나 되었다. 산재환자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비교적 젊고 건강한 사회인이라는 점에서 일반인구보다 더 높은 자살사망률을 보인 결과는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의미 있는 결과라고 한다. 단지 ‘일하다 병들고 다쳤다’는 사실만으로 적지 않은 수의 산재환자들이 자살로까지 이어진다는 이 연구결과는, 모든 노동자들이 예비 산재환자라고 보았을 때, 전체 노동자에게 재차 경각심을 주는 문제라 할 것이다.

어느 날 당신이 원치 않는 산재를 당했을 때, 그 사건과 동시에 멀쩡하던 자신이 자살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섬뜩섬뜩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며 나와 내 주위 동료의 이야기이다. 단지 ‘산재를 입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죽음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무엇 때문일까?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고통의 실체는 무엇일까?

산재환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고통의 실체

2004년 11월 5일, 31세의 한 젊은 노동자가 4년간의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인한 통증과 고통에 괴로워하다 자동차로 가로수를 들이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종엽. 짧은 생을 그렇게 마감한 그는 19살 청춘에 안산 반월공단 자동차 부품회사 SJM에 입사했고, 10년 넘게 조립작업을 해오다가 2001년 목과 어깨에 근골격계 질환을 얻어 산재요양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현장일을 다시 시작하면 통증이 재발되었고, 2003년까지 산재와 공상치료 그리고 현장복귀를 반복했다. 몸은 나아지지 않았고 더 심한 통증으로 2004년 4월엔 허리의 근골격계 질환까지 얻게 된다. 허리치료를 위해 산재요양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산재승인 여부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그 과정에서 고인은 병원과 공단에 대한 불신, 육체적 고통 그리고 극심한 심리적 불안까지 더해져 우울증, 정신분열증으로까지 병세가 악화되었다. 결국 누나에게 네 살배기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길고 길었던 산재로 인한 고통을 스스로 죽음으로써 끝맺을 수 있었다.

10년 동안 몸 바쳐 일하다 20대에 골병이 찾아왔다. 4년 동안 병원을 들락날락거렸지만 통증으로 일을 지속할 수 없었고, 온몸이 너무 아파 남들 다 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허리통증에 대한 산재승인 여부는 기약 없이 길어졌다. 그로 인해 그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과 불안감은 얼마나 컸을까? 4년을 치료했는데 왜 제대로 치료되지 못했을까? 왜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었을까?

2005년 6월 30일, 허리디스크(요추추간판탈출증)로 요양치료 중이던 한 산재노동자가 유서와 함께 실종되었고, 보름 만에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에서 제품 입고원으로 일해 온 고 이흥수 씨.

18년간의 노동은 그에게 허리디스크를 주었고, 1년이 넘도록 산재요양치료를 했건만 현장 복귀 이틀 만에 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3개월짜리 재요양에 들어갔다. 요양종결일을 얼마 앞둔 6월 어느 날, 그는 병원 인근에 산책을 나간다 하더니 이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유서를 보면 그가 온전히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들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느 정도 통증이 없어 회사 일을 하니까 바로 통증이 와 재요양 하니까 마음에 병까지 와서 우울증, 무력증, 삶의 의욕 상실…회사는 다녀야 하는데…남자가 병이 나서 돈을 못버니 가족을 이끌어 갈 수 없어…통증이 사라진다 해도 회사일을 하면 바로 통증 때문에 일을 못할 것 같아서…또 재요양 할 수는 없고 마음 고통이 심에…이 못난 아버지를 용서해라”

1년이 넘도록 꾸준히 치료했건만 복귀 이틀 만에 찾아온 그의 통증. 그것은 자신의 몸을 망가뜨렸던 그 폭력적인 노동환경과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통증이 다시 재발될 것이라는 두려움, 불안, 우울함이 그의 온몸을 짓눌렀을 것이고, 결국 그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고 말았다.

그의 몸에 맞는 제대로 된 치료가 행해지고, 그의 몸 상태에 맞춰나가는 현장복귀만 준비되었어도, 그리고 정신적·사회적 지지를 위한 심리재활치료를 받았다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 텐데.

죽음으로 몰고 간 ‘강제요양종결’

2007년 3월 28일 새벽, 부천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두 아이의 아빠인 산재노동자 표만영 씨(47세)가 자신의 방안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2000년 5월, 그는 일하던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졌고 이후 간질과 우울증, 적응장애라는 산재 합병증으로 인해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2005년 이후부터는 통원으로 매일같이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장기환자라는 이유로 치료종결대상이라며 자문의사협의회를 소집했다. 자문의사협의회는 환자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예” 한마디 하고 나온 후 치료 종결이 결정되었다.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주치의의 판단이 있었고 심리평가보고서에도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며 심각하다는 소견을 냈지만, 공단과 자문의사협의회는 이를 모두 무시한 채 강제로 치료종결시킨 것이다. “본인이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아 정신과로 입원시켜 달라고 하였으나, 산재치료가 종결되었기에 일주일 입원조차 불가능하다”라던 표만영 씨는 결국 3월 28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단이 장기요양의 원인을 단지 산재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몰아가며 일방적 통보 식으로 결정하는 ‘강제요양종결’은 그들에게 치료의 기회마저 박탈해버려 극한의 고통을 가져다준다. 주치의의 소견과 환자의 상태를 무시한 공단 자문의사협의회의 폭력적 결정은, 공단의 초법적인 내부규정으로 산재보험재정 지출축소라는 자본의 이해와 맞물려 수년 전부터 수많은 산재환자들에게 견디기 힘든 이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게다가 불행히도 산재환자들의 숨통을 더욱 옥죌 수 있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아래 산재보험법) 개악안마저 지난 11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개악안은 ‘강제요양종결’의 근거가 되고 있는 자문의사협의회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공단의 초법적인 내부 독소규정을 법제화했다.

치료하게 해달라…”산재환자들의 자살을 강요하는 산재 불승인”

산재환자를 자살로 내모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은 요양치료 과정 중에도 혹은 복귀 이후의 문제에서도 비롯되지만 산재 승인 전부터 시작된다. 최근 근골격계질환 산재인정을 보다 까다롭게 하여 산재불승인을 남발함으로써 수많은 산재환자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내몰았던 공단의 초법적 내부규정이 또 한명의 산재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2006년 10월 28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이유로 복직을 거부당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내하청업체 한성ENG에서 9년간 소지공으로 일해 왔던 고 손창현 씨(37세).

철의장품을 팔레트에 올리던 중 허리를 삐끗, 요추염좌와 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고 한 달간 공상치료했다. 하지만 한 달간의 치료로는 9년 망가진 몸을 회복할 수 없었다. 이후 치료비와 생계 때문에 고심하던 그는 8월 23일 산재요양을 신청했고, 50일이나 지난 10월 13일에서야 공단으로부터 산재승인통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중병인 추간판탈출증에 대해서는 불승인! 자문의의 소견만으로 불승인이란다. 이로 인해 요양기간은 짧았고, 어처구니없게 요추염좌 승인과 함께 치료종결! 이 힘없는 사내하청노동자는 이제 정작 필요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곧바로 현장에 복귀해야만 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원청으로부터 130만 시간 무재해 달성 포상이 절실했던 한성ENG 사측은 산재신청과 동시에 이미 그를 해고한 상태였다. 마지막 복직 희망을 품고 치료를 담당했던 주치의로부터 복직소견을 받아 사측을 찾아갔으나 절대 복직거부. 결국 그는 돌을 갓 지난 어린 딸과 아내만을 남겨두고 스스로 자신의 손목 동맥을 잘라야만 했다.

고인이 산재로 충분히 치료받고 생활할 수 있었다면 아픈 몸으로 복직하기 위해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적어도 그의 죽음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산재 승인과 동시에 산재치료가 종결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만 피할 수 있었다면, 그가 아프고 지친 몸을 조금이라도 돌볼 여유라도 있었다면, 그렇게 어린 막내를 두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11월 국회를 통과한 산재보험법 개악안은 산재불승인을 남발하는 공단 내에 또 하나의 산재 진입 절차인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법제화함으로써 누구나 아프면 치료받아야 하는 산재보험으로의 진입 장벽을 더욱 높였다.

죽어간 동료를 기억하자

해마다 40~50여 명의 산재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가면서 살아남은 자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요양과정 전반에 걸쳐 산재환자를 위한 제대로 된 서비스를 쟁취해 내는 일일 것이다.

첫째, 폭넓은 인정기준으로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고, 산재신청 후 조기에 승인되도록 해 치료가 늦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둘째, 제대로 된 체계적인 치료시스템과 내용이 필요하다. 모든 산재노동자는 가능한 빨리 치료받고 건강한 몸으로 빨리 작업장에 돌아가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하나 현재 제대로 된 치료를 하고 있는 요양기관은 거의 없다. 산재요양기관의 질을 높이고,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감시·지도할 수 있는 역할을 근로복지공단이 해야 한다. 이를 수행하지 않고 산재노동자의 도덕적 해이만을 논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셋째, 모든 직업병 재활과정에 심리치료가 반드시 재활급여로 제공되어야 한다. 현행 물리치료 수준의 재활치료로는, 개정된 산재보험법 상의 일부 한정된 직업재활급여로는 계속되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절대 막을 수 없다. 심리적 안정과 정신적 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죽어간 동료들이 여실히 보여주었다.

넷째, 단계적 작업복귀 등 노동자의 몸을 고려한 복귀프로그램과 함께 몸을 망가뜨린 노동환경의 개선이 필요하다.

다섯째, 현행 ‘찾아가는 서비스’가 산재환자를 위해 제대로 찾아가게 바뀌어야 한다. ‘찾아가는 서비스’는 공단 직원이 직접 병원을 찾아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진행되지만, 실제로는 자본의 편에 서서 요양급여를 줄이고 요양종결을 강제하기 위한 서비스다. 산재환자가 요양을 시작하면, 가장 적절한 요양기관을 찾아주고, 그 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는 등의 요양과 재활, 복귀의 전 과정에 걸쳐서 산재환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원될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할 방안들은 너무도 명명백백한데, 자본과 정부가 2007년 11월, 40년만의 대대적인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국회를 통과시킨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보면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산재노동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는 축소하고 근로복지공단의 반노동자적인 권한은 강화되었으며 사업주의 부담은 완화되어 진정 산재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으로부터 한참 멀어지는 개악인 것이다.

이제라도 개악된 산재보험법의 반노동자적인 요소들을 낱낱이 드러낼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고 쟁취해 내자.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송홍석/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