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참사 현장을 가다
“다단계 하도급이 빚은 인재, 보상도 차별”
하도급의 끝은 이용직노동자, 안전교육 전무…산재보상금도 적어

매일노동뉴스 김봉석 기자

건설현장의 화마가 또다시 노동자 4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낮은 안전의식이 사고의 근본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안전의식을 높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핟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일을 하고 있는 건설노동자들과 노동계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낮은 안전의식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유발케 하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 만연해 있는 다단계 하도급. 하청에 재하청일수록 안전교육에 소홀하고 안전장비도 지급하지 않는 등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건설노동자들에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건설노동자들은 그런 위험성을 알면서도 시키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10일 화재가 발생했던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2000코리아냉동창고’ 사고현장을 건설연맹 간부와 건설노동자들이 찾았다. 장석철(45) 건설노조 경기도지부장은 “발주처와 원청, 전문건설업체에서 다시 전문건설업체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맨 밑바닥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있다”며 “이번 사고의 피해자는 바로 그들”이라고 말을 꺼냈다.

그 스스로가 목수 노동자로서 10여년을 넘게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현장에서 일할 때나 조합간부로 활동할 때도 늘 마음이 쓰였던 게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을 구하는 일용직 노동자였다고 했다. “정부가 다단계 하도급을 규제하고 산업안전에 신경을 썼더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울분을 토하던 그는 “노동조합이라도 보다 활동적이었다면 현장 감시를 더욱 철저히 했을 텐데”라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현장은 컴컴한 한밤중, 유독가스 여전

이천시 냉동창고 현장은 불길이 잡힌 지 사흘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레탄폼이 타면서 발생한 유독가스 냄새로 가득했다. 안전모와 유독가스 흡입을 막아주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서는 현장 출입도 불가능했다. 건물 전체가 시커멓게 타버렸다. 한낮에도 안에 들어서면 손전등을 켜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했다.

“저기 늘어져 있는 스프링클러 보이시죠. 화재가 나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게 돼 있는데 이번 사고는 폭발성이 워낙 강해 기계가 작동하기 전에 모든 건물을 태워버렸어요.”
남양주시에서 소방대원으로 일하고 있는 최종춘 소방관은 현장에 들어선 기자에게 그 당시 사고가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설명했다. “사망자들의 시신은 찾아냈는데, 폭발 당시 떨어져 나간 부분들은 재 속에 묻혀 있어 아직 찾지 못하고 있어요.”

현재 경찰과 소방방재청이 합동조사를 벌이며 화재의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용접작업 중 불티가 튀어 유증기를 폭발시키고, 이 불이 건물 벽을 이루고 있던 스티로폼과 우레탄폼에 옮아 붙으면서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우레탄폼에서 발생한 유독가스는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주요 원인이 됐다. 이날 사고현장을 찾은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은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런 어이없는 사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겠느냐”며 “또 한 번 와글와글 떠들다가 지나갈 문제가 아니라 건설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단계 하도급이 낳은 재앙

전문가들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의 1차적 책임이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던 업체들에게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방대책은 소방안전에서 찾고 있는 모양새다. 이번 사고가 화재로 인한 대형 참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에 건설현장에서 산업재해 사고로 목
숨을 잃은 노동자만 무려 242명. 이번 화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노동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한 건설현장에서 사라진 목숨은 이번 참사에서 생명을 잃은 노동자의 6배에 이른다. 특히 공사금액 3억원 미만 현장에서 죽은 노동자가 31.8%인 77명이나 됐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많은 것은 공사가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도급 단계가 내려갈수록 공사공정이 세분화되고 하청업체가 받는 공사금액도 적어진다. 이에 따라 전문건설업체들은 건설노동자들을 상용직으로 고용하기보다, 인력시장에서 일용인력을 데려오는 것을 선호하고 공기를 단축시켜 적정한 이윤을 확보하려고 한다.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안전교육이나 안전장비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물론 건설현장에 안전장치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공사는 대형업체가 발주할지 몰라도 결국 그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다단계의 끝에 있는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설일용노동자들인 것이다.

화재가 난 ‘코리아냉동창고’는 설비공사 중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 공사 역시 다단계 하도급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주처인 코리아냉동이 유성엔지니어링(원청)에 공사를 줬고, 한우·동신·HI코리아 등 전문건설업체들이 하청을 맡았다. 이들 하청업체들은 새벽 인력시장에서 인부들을 모았다.

사고현장을 찾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우리나라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지만 안전관리와 예방대책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다”며 “이번 사고 역시 공기단축 등 이윤만을 중시하고, 안전과 생명을 경시하는 현 세태에서 비롯했다”고 말했다. 남궁현 건설연맹 위원장도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은 건물의 지형조차 알지 못한 채, 새벽에 들어와 안전교육 한 번 받지 않고 일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이라며 “원청과 전문업체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없애고 원청의 직접고용을 이루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건설노동자의 현실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이날 오전 냉동창고 소유주인 코리아냉동 서울사무실을 방문해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동안 보상금액에 대한 협상을 벌였지만 유가족들의 기대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사고로 사망하거나 다친 노동자들은 기업체가 1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산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를 포함해 모두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들은 산재발생시 적용 보험요율이 평균임금(일당)의 50% 수준에 불과하다. 건설노
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낮은 보험요율을 적용받는 것은 이들의 대부분 일용직이고 수입이 일정치 않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사망한 근로자에 대한 보상은 유족급여와 장의비로 지급된다. 유족급여는 연금으로 지급되는데 일시금으로 환산하면 평균임금의 1천300일분에 해당하며, 장의비는 평균임금의 120일분이다. 일당이 약 7만원 수준인 건설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유가족은 일시금으로 420만원(3만5천원×120일), 월마다 받을 수 있는 유족급여로 따지면 4천500만원 정도다. 전부 합해봐야 5천만원에도 못 미친다.

건설현장의 일용노동자들은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보험요율이 낮아 산재보상도 덜 받는 이중 차별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산재보험요율이 워낙 낮다보니 보험금을 받고도 민사소송을 통해 원청에 다시 보상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며 “위험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보상에서 차별을 받는 열악한 현실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