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⑨] 코로나19 방역은 노동자 건강권 문제다
박상빈(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지난 8월 중순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되면서 매일 200명~300명의 확진자가 추가되고 있고 누적 확진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이렇게 불안한 하루하루가 지속되고 있지만 ‘검사(testing)’, ‘추적(tracing)’, ‘치료(treatment)’를 핵심으로 하는, 소위 말하는 ‘K-방역’ 모델은 재확산세가 심화된 현재에도 여전히 신뢰할만한 방역 모델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의 재확산세는 일탈적인 교회와 대규모 집회를 중심으로 발생한 것이기에 방역 모델 자체에 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유럽이나 북미 수준의 전면적인 사회 봉쇄 조치인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선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고도 감염병 유행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희망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하지만 ‘K-방역’ 모델에는 노동의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노동자 감염 위험에 대한 평가와 모니터링은커녕, 코로나19 확진자 통계에서 직업 정보도 확인할 수 없다. 직장 내에서의 집단 감염 사례가 몇 차례나 발생한 바 있지만, 방역 당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건강 위협을 ‘노동안전보건’ 이슈로 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 역시 일터의 방역을 사업장 자율로 맡기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사업장 방역 지침이 제대로 준수되는지, 이에 관한 현장 점검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등은 알 수 없다.
감염병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수많은 노동자가 생계 위협과 건강 위험 사이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해야 할 수밖에 없다. 기존에 불평등한 지위에 놓여 있던 노동 계층일수록 더욱 심한 건강 위험과 생계 위협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감염병 확산세가 더 심해지기 전에 K-방역에 노동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여성 일자리’일수록, ‘불안정 일자리’일수록 더욱 위험
시민건강연구소와 사회공공연구원에서는 지난 7월 『코로나19 대응과 노동자 건강권 보장』(김명희&이주연, 2020)(이하 ‘연구보고서’)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바로가기> 연구보고서는 코로나19 감염 고위험 직업군이 누구인지,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추정하고, 노동자 건강권의 관점에서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를 제안한다.
우선 연구보고서는 2017년 근로환경조사와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20% 표본자료를 연계하여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을 직장 동료가 아닌 불특정 대중과 접촉하는 노동자의 규모를 추정한 논문을 소개한다. 분석 결과 보건의료복지 업종에 속한 직업군 중 영양사를 제외한 모든 업종이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또한 종교, 교육, 금융 및 보험, 상담통계 안내, 이·미용 및 예식 서비스, 운송 및 여가 서비스, 조리 및 음식 서비스, 영업, 매장 판매, 방문 및 통신 판매, 운송 관련 단순노무 등의 직종에서도 감염 위험 점수가 5점(6점 만점)으로 거의 모든 근무시간에 대중과 접촉하는 고위험 직군으로 드러났다. 이들 직군에 종사하는 종사자 수는 2015년 기준 전체 취업자 2,617만 명의 약 46%(약 1213만 명)에 달했다.
이 결과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지점은 감염 위험이 높은 직업군일수록 대체로 여성 비율이 높았고(그림1), 여성의 비율이 높은 직업군일수록 월 평균 임금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었다(그림2). 가령 간호사, 보건의료 관련 종사자(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등), 의료복지 관련 서비스 종사자(요양/간병 종사자), 사회복지관련 종사자(사회복지사, 보육 교사 등)은 모두 위험 점수가 5점으로 고위험군이었는데 압도적 다수가 여성이었다(각각 96.5%, 84.9%, 92.3%, 85.1% 비중). 특히 감염 위험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하는 요양/간병 종사자는 92.3%가 여성이었는데 월 평균 소득은 124만원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이는 감염 위험과 사회적 보상이 비례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감염 고위험 직업의 여성 종사자 비율과 월 평균 임금
전체 직업별 감염위험 중위값과 여성 종사자 비율
감염 고위험 직업의 여성 종사자 비율과 월 평균 임금
연구보고서는 또한 불특정 다수와의 접촉 빈도 이외에도 노동강도, 사업장 내 노동자 보호 자원의 유무, 유급 병가의 가용성 등도 감염 위험을 증폭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한다.
국내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한 콜센터, 물류센터의 경우 사업장 내의 물리적 밀집도와 노동강도(콜센터의 경우 1일 처리 콜 수, 물류센터의 경우 컨베이어 벨트 속도)가 코로나19 이전과 변함이 없었기에 노동자들이 안전거리를 유지하거나 보호장구를 제대로 착용하고 일을 할 수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100명이 넘는 노동자와 가족, 지인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아프면 3~4일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방역 제1수칙을 지킬 수 있는지 여부는 감염병 통제에 결정적이다. 하지만 유급병가 제도가 취업규칙에 있는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하며, 일급이나 시급으로 지급받는 불안정 노동자의 경우에는 유급병가는커녕 유급 휴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병가를 내는 것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는 산재를 당하거나 꼭 병원을 다녀와야 하는 경우에조차 개별적으로 대체인력을 구해서 직접 일당을 지급하며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거나, 아예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해서 참고 일을 계속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노동건강연대,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및 형평성 강화를 위한 연구』, 2019)
직장 내 노동자 보호 자원의 불평등도 감염 위험을 증대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연구보고서는 직원을 대표하는 유사 위원회, 안전보건 대표자/위원회, 안전 문제 해결 창구, 직원 정기 회의 등 4가지 주요 노동자 보호 자원을 갖고 있는 비율이 고용형태별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보았다. 그중 대표적으로 안전보건 대표자/위원회의 경우만 살펴보자면, 보건의료복지 직종에서 임시직은 9.8%, 일용직은 3.3%만이 이러한 보호자원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는 상용직에 비해 2배에서 6배까지 적은 수치였다. 그 외의 부문에서도 보호자원을 보유한 상용직은 임시직과 일용직에 비해 3배에서 5배까지 더 많았다. 즉, 불안정한 고용형태에 종사하는 노동자일수록 감염 위험이 더 높은 노동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현황은 지난 5월 부천 물류창고의 직장 내 집단 감염 사례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노동자 대부분이 일용직이거나 계약직이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기존에도 불평등한 지위에 놓여 있다고 이야기되었던 노동 계층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상대적으로 더 큰 건강 위험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감염 위험 이외의 노동자 건강 문제
더 나아가 연구보고서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될 때 정신건강 문제, 노동강도 증가에 따른 과로 문제, 일터 폭력과 차별 문제, 안전보건 규제 집행의 완화로 인한 산재 위험 증가 등 감염 위험 이외의 노동안전보건 위험도 증가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가령 감염 위험이 높은 보건의료/돌봄 서비스 노동자들은 본인 혹은 가족, 지인 감염에 대한 두려움과 노동강도 증가로 우울증이나 소진증후군과 같은 정신건강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전반적인 경기 위축으로 무급휴직을 강요당한 노동자들이나 수입이 줄어든 이들도 역시 정신건강 측면에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보건의료나 방역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 택배, 생활물류 노동자 등의 과로로 인한 탈진과 과로사 문제는 이미 여러번 언론을 통해 우리 사회에 전해졌다. 특히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는 코로나19 이후 3월부터 8월까지 7명이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집계되지 않은 노동자가 5명 더 있어 2020년에만 1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고 말한다.
약국, 응급실이나 방역 현장에서 난동을 피웠다거나,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했다가 노동자를 폭행했다는 소식 역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러한 폭력은 특정 개인들의 일탈적 행동이라기보다 분명한 ‘작업장 폭력’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염병의 유행에는 불안, 혐오, 공포와 같은 감정들이 수반되며, 이것이 보건의료와 방역, 공공서비스 일선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으로 쉽게 표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보건 규제 집행의 완화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노동자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당한 지난 4월의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사건의 경우, 사건 발생 이전에 고용노동부가 코로나19를 이유로 현장 점검을 중단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코로나19 이후 대면 접촉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물론 규제 완화가 노동자 사망으로 즉각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전보건공단이 공개한 2020년 상반기 산재 사고 사망자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전년도보다 소폭 늘어난 470명이었다는 사실은 특별한 주의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K-방역 모델, 무엇이 필요한가?
연구보고서는 K-방역 모델을 보완하기 위해 노동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우선 코로나19 방역의 중심에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두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며, 코로나19 역학조사에서 직업이나 고용형태 관련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일은 제도적으로 즉시 시행 가능한 것이라 제안한다. 직업이나 노동환경이 감염병 관련 위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실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성공적인 방역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실효성 있는 방역을 위해 유급병가를 제도화하는 일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라 주장한다. 휴가권이 보장되지 않아 아파도 일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는 노동자는 ‘아프면 3~4일 쉬기’라는 제1 방역 수칙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감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자 하는 사회적 목표는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건강을 위한 일이다. 이는 노동자의 건강 보호라는 목표와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 일터는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성인이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건강해야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
노동자의 건강권은 단순히 개인에게 안전 수칙을 준수하라고 요구하는 일에 그쳐서는 안 된다. 방역 당국은 그것이 가능한 환경과 제도를 구축하기 위해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