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로 손가락 잃은 아버지, 그의 아들은 산재로 사망했다

5월 22일, 산재로 사망한 지적장애인 노동자 김재순을 기억하며

 

정우준(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2020명. 2019년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매일 일하다 6명이 죽습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많은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나라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자살, 교통사고와 함께 산업재해를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라 하여 임기 내에 산업재해(사고)로 죽는 노동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2020년 6월까지 산업재해(사고)로 470명의 노동자가 사망해 2019년 동기간보다 5명이나 더 많은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다 보니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는 묻히고 그저 숫자로만 사람들에게 전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2016년의 구의역 김군, 2018년 태안화력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 정도가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사건일 겁니다.

그럼에도 한 명의 노동자 이야기를 더 꺼내 많은 사람이 기억할 수 있게 하고자 합니다. 2020년 5월 22일 광주의 작은 폐기물 공장에서도 노동자 1명이 사망했습니다. 폐목재를 커다란 파쇄기에 넣어 분쇄하는 일을 했던 그는 기계에 걸린 폐기물을 제거하려다 본인이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김재순입니다. 10명이 채 되지 않은 작은 폐기물 처리업체인 조선우드에서 일했던 김재순은 1994년생으로 고작 만 25살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18년 전에 산업재해로 왼손 손가락 한 마디를 잃은 산재노동자였으며 본인은 지적장애인 노동자였습니다.

김재순의 죽음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가 죽자 조선우드는 책임을 김재순에게 떠넘기려 했습니다. 김재순이 “사수가 없는 상태에서 시키지 않은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라며 사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태안화력에서 사망한 김용균의 사고 때도 회사가 유족에게 처음 했던 말은 시키지 않은 일을 해서 사망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일하다 다치거나 죽는 경우 노동자와 유가족이 가장 먼저 그리고 흔히 듣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광주지역에서 고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6월 4일 대책위는 회사가 2인 1조 근무를 지키지 않은 점 그리고 위험한 작업임에도 필수적인 안전장치 없이 김재순에게 일을 시켰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6월 14일 대책위는 김재순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했지만 조선우드의 사장인 박아무개씨는 사죄조차 하지 않았고, 이후 김재순이 사망한 공장은 멈춰진 작업을 재개하고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다시 돌아가는 공장에서 김재순 죽음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의 책임자는 거의 처벌받지 않습니다. 100명 중 1~2명만 감옥에 가고, 그마저도 말단 관리자입니다. 기업은 450만 원 정도의 벌금만 내면 노동자 죽음의 책임을 ‘법적으로’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김재순의 사망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서 사업주와 기업의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우리나라의 현행 법체계가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과 사업주에게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임이 없으니 기업과 사업주는 조선우드의 사장처럼 배짱을 부리며 노동자 죽음의 탓을 노동자에게 돌리고, 사건이 다 밝혀진 뒤에도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적장애인 노동자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지적장애인 노동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김재순은 조선우드에서 24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그런 그가 조선우드를 3개월간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직장을 찾고 싶어서였습니다. 조선우드는 2014년 1월 16일에도 노동자가 사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재순은 3개월 뒤 다시 조선우드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의 노동권은 매우 열악합니다. ‘한눈에 보는 2019 장애인 통계’에 따르면 15세 이상 장애인의 고용률은 34.5%로 전체 인구의 고용률인 61.3%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중증장애인의 경우에는 20.2%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김재순은 다시 조선우드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난 후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직장에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더 자주 다칩니다. ‘2019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장애인 고용기업체에서 일하는 장애인 노동자는 총 179,119명으로 그중 0.8%인 1,426명이 일을 하다 다쳤습니다. 같은 기업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비율은 0.5%로 장애인 노동자의 60%밖에 되지 않습니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비율도 0.54%에 불과합니다. 다치고 난 뒤도 문제입니다. ‘2019년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장애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승인율은 33.1%입니다. 반면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8년 6월까지 6개월간 접수된 산업재해 승인율은 90.9%입니다.

장애인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들보다 승인율이 1/3밖에 되지 않습니다. 조선우드에서 김재순이 견뎌야 했고 끝내 사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장애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권이었습니다.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써 책임을 묻겠습니다

지난 7월 30일 김재순의 장례는 치러졌지만 김재순의 아버지 김무영(가명)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조선우드 박아무개 사장의 법적 책임을 묻고 사죄를 받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김재순의 아버지는 6월 26일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많이 지치고 힘들어요. 그런데 어차피 이 일은 이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고, 짊어지고 가야 할 삶의 무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거부하기는 싫어요. 성실하게 일하다가 안전장치 미설치로 인해 사망사고가 난 건데 어떤 부모가 분개하지 않겠어요. 저도 인제 악에 받쳐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힘없는 노동자도 이길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줄 겁니다.”

많은 뉴스 속에 오늘도 6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할 것이고 김재순의 죽음은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 중에 1명으로 기억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더 기억하려고 합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2020년 9월 9일은 김재순이 죽은 지 111일이 지난 날이자 김재순이, 아버지인 김무영이 사죄도 받지 못하고, 조선우드의 책임도 묻지 못한지 111일이 지난날입니다.

그리고 시민·노동자들이 다시는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 그리고 조선우드 김재순처럼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은 채 사망한 노동자가 떠나야 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국회 국민동의청원(9월 9일 09시 기준 5만 5700여 명 청원)을 시작한 지 15일이 지난날이기도 합니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을 만나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사고 이후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아요”라는 말입니다. 111일이 지난 오늘도 지난 5월 22일을 그대로 살아갈 김무영님의 평안을 위해 그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도록 김재순을 계속해서 기억하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업과 사업주가 노동자의 죽음에 제대로 된 사회적 책임을 묻고 모든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 김재순 노동자의 명복을 빕니다.

 

※ 이 글은 ‘노들 장애인 야학’에서 발행하는『노들바람』2020년 가을호, 오마이뉴스 등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