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⑩] ‘치료와 돌봄’ 공간에서 골병드는 병원 노동자들
병원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공간이다.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건강을 살피고 있을까? 정말이지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티던 인턴 시절의 경험과 한국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했던 연구를 생각해보면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인턴을 하던 시절 나는 생리통이 무척 심했는데, 생리휴가(공식명칭 보건휴가) 같은 건 상상도 못 하는 근무환경에서 나는 사탕 까먹듯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고, 타라신 주사를 맞아가며 생리 기간을 버텼다.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인턴의 근무 계획표는 가히 살인적이었고, 이런 업무 강도는 몸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 방에서 생활하던 네 명의 인턴 모두가 생리불순을 겪었던 것은 매우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체로 규칙적이었던 생리 주기가 흔들리고, 연달아 힘든 과를 돌던 시기에는 무월경이 생기기도 했다. 하긴 일주일에 백 시간 넘게 일하는 여성들에게 생리불순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인턴 시절을 마지막으로 병원을 떠났지만, 병원에서 가장 오래 또 많이 일하는 전공의들의 건강과 근무환경은 내 연구주제가 되었다. 2014년 전공의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주 평균 93시간을 일했고(인턴 평균 116시간), 한국의 다른 노동자들과 비교했을 때 세 배에서 스물두 배까지 높은 수준의 근골격계 통증과 수면장애, 우울감을 안고 살고 있었다. 예상대로 병원에서 일하면서 신체적 폭력과 언어폭력, 성폭력을 경험한 전공의도 각각 11.4%, 44.4%, 14.1%(여성)으로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김새롬, 김자영, 김승섭. 2015). 물론, 다행스럽게도 수련을 마치고 난 이후 의사의 객관적 건강 수준은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훨씬 높아서, 모든 원인에 의한 표준화 사망률이 일반 인구집단의 0.47배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신유철, 강재헌, 김철환, 2005).
그때는 몰랐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모든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안전한 환경에서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가지는 거였다. 의료기관에서도 사업주는 여타의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의료기관 내에서 근로자들이 노출될 수 있는 다양한 건강위험요인을 파악하고, 이로 인해 일하는 사람들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조처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산업안전보건이란 단어에서 떠오르는 상황이 주로 제조업 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노출이나 낙상과 끼임, 깔림 같이 사망·중상을 일으키는 중대재해라면, 병원에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유해요인이 곳곳에 깔려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감염이다. 병원 내 노동자들은 언제든 여러 가지 감염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다가 같이 감염된 의료인력에 대한 이야기가 비교적 널리 알려졌지만, 그전에도 병원 노동자들은 주삿바늘에 찔리거나 비말에 노출되면서 다양한 세균과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있었다. 병원 노동자들은 엑스레이와 CT 촬영을 하면서 방사선에 노출되거나, 항암제를 조제하는 과정에서 생식독성이 있는 약품에 노출되고,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알코올 솜을 만지며 손가락이 갈라지고, 라텍스 알레르기로 눈코가 간지럽지만 많은 경우 이를 당연하게들 여긴다. 잘 안다고 해서 꼭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도 않다. 교대 근무와 높은 노동강도, 야간 근무, 장기간 노동 역시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이들은 모두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규제받아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많은 병원이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관심을 둘 뿐,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지 않다. 의료인들은 그나마 스스로 건강과 질병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 좀 상황이 낫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비의료직군의 노동자들은 처지가 한참 나쁘다.
사실 이런 문제는 약과다. 매일 비좁고 딱딱한 보조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면서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고, 섬망이 있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를 돌보다가 주먹으로 맞아 안와골절이 생기고 공격당해 피부가 찢어져도 간병노동자들은 어디 호소할 데가 없다. 환자 보호자가 좋은 사람들이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얘기에 기가 찼다.
이들뿐일까. 병원에서 일하는 너무나도 많은 노동자가 몸이 아파도 이를 물을 곳이 없다. 기왕에 의료인도 많은데 학교마다 있는 보건실처럼 간단하게 처치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의료기관 내에 있으면 될 것 같지만 그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최근 다녀온 1,000병상 규모의 3차 병원에는 공간 조정을 하면서 병원 노동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건실이 없어진 지 오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고급-럭셔리 요양병원을 표방하는 500병상 규모의 사업장에서 만났던 청소노동자들은 조절되지 않는 당뇨와 고혈압이 있어도 이에 대해 묻거나 도움을 받을 사람이 하나 없다고 했다. 일하는 곳만 병원이지, 어디 의사 간호사와 말을 섞어볼 기회가 있겠냐며 묻는 청소노동자들의 혈압을 재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병원 내 소각장과 의료폐기물 관리를 담당하는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수없이 폐기물에 긁히고 찔려 두툼하게 일그러진 손에서 피 한 방울 얻겠다고 손가락을 쥐어짜며 “일 할 때 어떤 장갑을 사용하냐, 장갑을 왜 끼지 않냐”고 물었던 민망한 기억도 있다. 명예로운 가운을 입고 일하는 의사들의 안전과 건강에도 무심한 병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하청업체 직원의 감염과 상해 위험에 예산을 쓸 리가 없는 것은 이 사회에서 당연한 일일까? 같은 공간에 매일 같이 출근하는 의료인이 그렇게 많은데도 자상을 입으면 우리 병원은 비싸니까 밖으로 나가서 치료받는다고 말하는 노동자의 웃음을 떠올리면 어디에 화를 내야 할지 마음이 복잡해진다.
보건의료노동자, 아니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일하면서 다치는 사람이라는 걸 굳이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웃기고 슬프다. 병원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일터고,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런 점에서 노동부는 의료기관을 논외 취급하지 않고 일반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산업안전보건규제의 대상으로 보고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특히 타인의 건강과 생명을 업으로 여기는 관리자들이 같은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김새롬, 김자영, & 김승섭. (2015). 한국 전공의들의 근무환경, 건강, 인식된 환자안전: 2014 전공의 근무환경조사. 보건사회연구, 35(2), 584-607.
신유철, 강재, & 김철환. (2005). 통계청 사망자료를 이용한 우리나라 의사들의 사망률에 관한 연구 1992-2002. J Prev Med Public Health, 38(1), 3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