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⑪] 노동자 안전보건 외주화, 책임은 누가 지나

조상근(노동건강연대 회원, 예방의학전문의)

의료전문가가 노동자인 환자를 진료실에서 만나는 것은 노동자의 수만큼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환자인 노동자를 일터에서 만나는 일은 흔하지 않다.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묻는 장소가 일터일 때, 의료전문가는 노동환경과 작업에 관한 생생한 정보를 얻게 되며 건강과 노동을 보다 수월하게 연결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의료전문가가 일터에서 노동자를 만나도록 규정하고 있다. 큰 기업의 경우 직접 고용된 보건관리자가 이 역할을 담당하지만, 규모가 작은 업체는 이를 보건관리전문기관(이하 ‘전문기관’)에게 위탁할 수 있다. 흔히 이 위탁 업무를 ‘보건관리대행’이라고 부른다. 이 업무에는 크게 사업체, 전문기관, 고용노동부 세 기관이 관여한다. 사업체는 전문기관에 보건관리자의 일을 위탁하고, 방문한 사업체는 그 대가로 전문기관에 수수료를 지불하며, 고용노동부는 사업체와 전문기관을 감독한다.

보건관리대행에 관여하는 주체와 주된 상호작용.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전문기관의 관리 의사로 일했다. 사업체에 방문하여 담당자를 만나 함께 사업장을 돌아보고, 노동자들을 불러 건강상담을 하고, 조언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등 보건관리자의 일을 위탁 받아 수행했다. 그 이후 보건관리대행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노동자 건강에 충분히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보건관리대행으로 연결된 각 기관의 입장과 보건관리의 실제 실행 방식에 있다.

먼저 사업체는 보건관리대행 서비스를 이용함으로써 근거 법 조항의 의무를 적은 비용으로 충족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대부분의 업종에서 50인 이상의 사업장은 보건관리자를 두어야 하며, 300인 이하의 사업장은 보건관리자의 업무를 위탁할 수 있다. 즉 50인 이상 300인 이하 규모의 사업장은 보건관리자의 업무를 위탁할 수 있다.

보건관리자는 의사, 간호사, 산업보건지도사 등의 전문 자격을 갖춰야 해 구하기 어려운 데 비해, 보건관리대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300인 사업장 기준 대개 월 150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는 보건관리대행 수수료 시세가 노동자 1인당 3천원에서 5천원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법과 시장 환경에서 사업체는 자연스럽게 보건관리대행을 이용하게 된다.

보건관리대행을 수행하는 전문기관은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시 말해, 굳이 무리해서 보건 문제를 제기하려 하지 않는다. 계약관계상 사업체가 갑이고 수수료는 법이 규정하는 서류만 잘 작성해도 지불되기 때문이다. 보건관리의 결과를 수용하는 것은 사업체의 소관으로 ‘사소한 문제’는 넘어가고 돈이 많이 드는 개선 사항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문기관이 노동부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무리하게 문제를 제기해 사업체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 결국 전문기관 직원은 경력이 쌓일수록 체념하는 태도를 보인다. 전문기관이 사업체에게 가장 흔하게 제시하는 해결책은 보호구 착용이다. 시설 개선보다 돈이 적게 들고 보호 효과가 있지만 노동자 개인의 보호구 미착용에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완전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을 통해 사업장을 감독하며 과태료, 과징금, 벌금, 영업정지 등의 처벌 수단으로 사업체를 규율하는 가장 강력한 주체다. 전문기관 직원의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업체도 고용노동부가 파견한 근로감독관의 지시 사항은 거역할 수 없다. 하지만 사업장 수가 많아 대부분의 ‘큰 문제없는 사업장’은 서류 심사에 그쳐 현장을 자세하게 감독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보건관리의 체계 속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는 건강상담 서비스를 수동적으로 제공받는 것 이외의 혜택을 받기 어렵고, 이 체계에 접근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창구도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업재해는 보건관리의 수행과 그 결과가 불충분함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지금의 분업이 과연 노동자의 건강을 함께 책임지고 있는가? 오히려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