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코로나19와 노동

 

김한별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송본부 조직부장)

 

5월 23일, 신선식품을 다루는 부천의 쿠팡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유행이 발생했다. 쿠팡은 5월 23일에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5월 25일까지 노동자들을 정상 출근시켰다. 하루하루 확진자가 늘어났고, 8월 18일까지 이곳과 연관된 확진자는 152명을 기록했다. 한 쿠팡 노동자의 가족은 코로나에 확진되어 6월 7일 의식을 잃은 뒤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밀폐된 곳에서 밀집해 있으면 감염 위험이 크다는 것은 감염병 전문가가 아니어도 그간의 뉴스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대기업 사무직은 번갈아 출근을 하거나 자택 근무를 도입해 밀집의 가능성을 줄였다. 그런데 물류센터는 어떠했는가. 소위 코로나19 특수를 맞아 채용 규모를 늘렸다. 코로나19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유입된 곳이 물류 업계라는 해석도 있다. 물류센터와 콜센터, 물류센터와 녹즙 배달 등 ‘투잡을 뛰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이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생계 앞에서 무의미했다. ‘아프면 쉬라’는 질병관리본부의 메세지가 그저 문자에 불과한 이들이 있는 것이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제대로 방역 관리를 안 했다”고. 어떤 노동자는 철저히 개인 방역 수칙을 지켰는데도 불구하고 감염이 되었다고 한다. 쿠팡은, 믿을 수는 없지만, 자신들은 방역에 만전을 다했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소모적인 책임 공방의 구도 속으로 피해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사회적·경제적 자원이 부족한 노동자들은 장기전이 될 이 공방에서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

수천 명의 노동자를 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기업이 방역을 소홀히 했다는 사실, 이것만으로도 대단히 문제적이다. 하지만 기업이 작업장 소독에만 최선을 다하면 책임은 끝나는 것일까? 그것만으로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은 지켜질 수 있을까?

쿠팡은 노동자가 정해진 시간에 몇 개의 물량을 소화하는지, 화장실을 몇 분 동안이나 이용하는지, 노동자가 지금 건물 어디에 있는지 모든 것을 데이터로 관리한다.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이러한 관리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 어디까지 이렇게 숫자로 측정한 생산성 지표를 통해 노동자를 평가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노동자의 건강한 삶을 위한 기술의 규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쿠팡 물류센터의 코로나 유행에서 문제의 초점은 작업장에 소독을 열심히 했느냐가 아니라, 쿠팡의 일터 관리 방식과 노동강도로 옮겨져야 한다.

생산성의 극대화와 노동자의 안전, 그중 쿠팡의 알고리즘은 무엇에 가중치를 두고 있는가? 뉴노멀 시대에 물류센터 노동의 새로운 표준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이 필요하다.

 

노동자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2013년 등장한 쿠팡은 젊은 기업, 벤처 기업, 스타트업 등 다양한 수식어로 묘사되었다. 글로벌기업 아마존과 유사한 경영 전략으로 국내에서 입지를 넓혔고, 쿠팡과 유사한 IT기업들이 연달아 등장했다. 세상은 4차산업혁명이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대중의 삶과 소비는 데이터가 되었다. 이제는 ‘시장조사’라는 개념조차 무의미한 과거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수집된 개인정보들을 종합하면 대중의 움직임을 단순히 읽어낼 뿐 아니라 예측하고, 심지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 쿠팡은 로켓배송에 이어 새벽 배송을 도입했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은 만들어진 시장에 이끌려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더 나아가 이제는 없으면 안 되는 서비스로 인식하는 지경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편의를 앞세워 만들어진 일자리는 도대체 어떤 일자리인가, 이후 만들어질 일자리는 어떤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50년 전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외침이 있었다. 여전히 유효하지만, 앞으로는 알 수 없다. 이제는 “노동자는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쿠팡을 필두로 한 스타트업기업들은 대개 IT노동자, 그와 관련된 기술과 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쿠팡의 본사가 하는 일은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데이터 마이닝으로 효율적인 배송 프로세스를 기획하고, 유통과정의 비용을 줄이며, 소비자의 소비패턴을 예측한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물류센터 노동자나 배송 노동자는 부수적 변수일 뿐이다. 임금, 안전, 복지 등 모든 영역에서 이들의 처우는 상대적으로 낮다.

 

미지의 영역에 노동조합의 깃발을 펄럭여야 할 때

스타트업 자본은 능력주의를 이야기하며,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합리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의미’를 부여한다. 이게 올바른 평가라고. 이런 논리에 물류 노동자들의 가치가 절하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조합의 깃발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가치는 투쟁으로 올릴 수밖에 없다. ‘귀족노조’ 운운하며 노동조합을 평가절하하거나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시도들이 계속되는 이유는, 노동조합이 없어야, 노동조합이 신뢰를 받지 못해야 자본이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승전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으로 뭉쳐야 한다. 알고리즘이 업무를 지시하고 어떤 일들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로봇이 할 수 없는 일들을 사람이 하는데. 그런 노동에 대한 평가는 최저에 머물러 있다. 쉽다는 이유로, 단순하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며 합리화한다. 손쉽게 인권을 침해한다. 누구나 가져야 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가 침해된다.

국제적으로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물류 노동자들의 안전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유럽, 미국에서도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투쟁을 펼쳐나가고 있다. 비정규직, 초단기 계약직, 최저임금의 악조건 속에서 한국의 물류 노동자도 한 걸음을 내디뎠다. 국제연대를 위한 메시지를 서로 주고받으며 어떤 전략이 좋았는지, 어떤 것들이 개선되었는지, 교류해 나갈 계획이다. 향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야 자유롭게 사람들이 국외로 나갈지 또는 국내로 들어올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물류는 자본이 터놓은 길을 따라 흐를 것이다. 그 길에 노동자의 연대와 투쟁이 있기를 기대한다.

 


[쿠팡 피해자 지원 대책위원회에서 국제 운수 노조 연합에 보낸 서한]

 

세계 각국의 아마존 노동자와 물류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인사를 보냅니다.

“우리는 한국에 쿠팡이라고 하는 이커머스 기업의 노동자들입니다. 쿠팡은 아마존과 매우 흡사한 방식으로 기업운영과 시장 지배 전략을 사용하는 기업입니다. 최근 아마존 노동자들의 코로나 감염과 노동자들의 가족 감염 사태 소식을 접했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매우 비슷하여 놀라웠고 한편으로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물류센터 내에 최초 확진자가 발생하고 150명이 넘게 감염이 이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회사는 물류센터 내에서 발생한 확진 사실과 그 경과에 대한 제대로 안내를 노동자들에게 하지 않았고 운영에만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폭주하는 물량에만 정신이 팔려 노동자의 안전을 갈아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까지 전염이 퍼져버린 동료도 있었습니다. 그 가족분은 뇌사상태에 빠졌습니다.” – 쿠팡노동자 고건

코로나19가 발생한 이래 세계적으로 배송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습니다. 단순히 수요만 높아진 게 아니라 배송 서비스의 공공적인 성격도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서 고되게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늘어난 주문 물량에 노동강도는 높아졌고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정부의 지침은 일터에서 유명무실했습니다. 현기증이 나는 물량 속도와 윽박지르는 관리자까지,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조금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쿠팡 피해자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쿠팡 노동자들이 목소리 내기 시작했고 이들이 목소리가 더욱 커질 수 있도록 우리는 법률지원, 실태조사, 언론보도 등을 하며 함께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연대 정신으로 여러분과 우리가 서로 국적은 다르나 연결될 것입니다. 국경을 넘어 물류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에 든든합니다.

세계의 더욱더 많은 물류 노동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조직되길 고대하며, 동시에 부디 여러분들의 투쟁이 코로나와 회사의 탄압으로부터 안전하길 바랍니다. 물류 노동자들의 세계적인 연대를 위해!

 

2020년 7월 16일

쿠팡 노동자 지원대책위원회에서 보냄.

 


[미국의 팀스터즈 노동조합에서 쿠팡 피해자 지원 대책위로 보내온 서한]

 

쿠팡 노동자 지원대책위에게,

저는 미국 팀스터즈 노동조합의 활동가입니다. 팀스터즈는 미국에 있는 수천 명의 물류/공급 체인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조입니다. 우리 노조와 우리를 지지하는 많은 지역공동체가 아마존 노동자들과 함께 자유롭게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좋은 단체교섭 협약을 맺을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노동법은 노조 결성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 결성을 주장하는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등. 억압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아마존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 우리의 조직활동가들과 교육활동가들에게 여러분들의 연대 메시지를 회람했습니다. 연대 메시지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저는 한국의 쿠팡 사업장에서 발생한 코로나-19의 확산에 대해 알고 분노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전염병 확산과 온라인 주문으로 인해 집에 틀어박혀 있기 때문에 우리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물류/공급망/전자상거래 업종의 고용주들은 안전한 일터를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당신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입니다.

쿠팡 노동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지원대책위를 결성한 것을 축하합니다. 노동자들이 존중받고, 노동권을 획득하고, 단체교섭을 체결하기 위해 벌이는 당신의 모든 투쟁이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

연대의 마음을 담아

 

2020년 7월 24일

팀 비티
글로벌 전략 담당 국장
팀스터노조 국제협력팀

 


[국제운수노조연맹에서 회원 노동조합에게 쿠팡 노동자와의 연대를 촉구하는 서한]

 

동지들에게.

한국의 쿠팡 노동자와 연대합시다.

한 달 전, 저는 동지들에게 코로나19 방역에 지속적으로 실패한 사측에 맞선 독일 아마존 노동자의 파업 투쟁을 지지해달라고 편지를 쓴 적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또 다른 온라인 커머스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었네요.

코로나19에 전반적으로 잘 대처했던 한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이게도, 한국의 아마존이라 볼 수 있는 쿠팡 물류창고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습니다.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있고 노조 결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공공운수노조를 중심으로 조직된 지원대책위가 결성되었습니다.

대책위가 보낸 서한은 아마존과 다른 물류회사 노동자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우리는 국제 연대의 정신으로 이 문제를 공유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쿠팡 노동자의 이 어려운 투쟁을 지원하고자 하시는 분은 warehousing@itf.org.uk 로 답신을 주시기 바랍니다.

전 세계 물류 노동자들은 코로나19의 최전선에 서서 우리에게 생필품을 확실하게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가 감염 및 사망 위험에서 보호되어야 할 근본적인 책임은 고용주와 정부에게 있습니다.

친애하는 마음을 담아.

 

2020년 7월 27일

리즈 블랙쇼(Liz Blackshaw)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International Transport Workers’ Fede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