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산업안전보건법 판례 671건을 분석하다]

 

김예림 (노동건강연대 회원, 공인노무사)

 

전 세계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방역 체계를 총괄하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한국은 초기 방역에 성공하면서 세계적으로 방역 모범국으로 인정받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역량을 집중한 결과이다. 그런데 산업재해(이하 산재)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해마다 공식 집계로만 약 1000명 가까운 노동자가 일터에서 사고로 사망하고, 질병까지 포함하면 2000명이 넘는다.

반복되는 산재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사업주에 대한 가벼운 처벌이 지목되고 있다. 필자가 2018년과 2019년 산안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전수 분석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고민하게 된 산안법 양형기준의 문제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사건의 성격에 비해 너무나 가벼운 양형기준

양형(量刑)이란 죄에 해당하는 형벌의 정도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양형기준은 법관이 형벌의 정도를 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다. 양형위원회는 2007년 처음 설치된 이후 개별 범죄마다 양형기준을 설정해 왔다. 그전에는 법관마다 양형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법관이 양형기준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양형기준을 이탈하는 경우에는 판결문에 양형 이유를 기재해야 하므로,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위반하는 경우는 적다. 범죄의 발생빈도가 높거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우선 설정되어 있고 양형기준 설정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현재 살인, 뇌물, 성범죄, 횡령·배임, 절도, 사기, 선거, 교통 등 41개 주요 범죄의 양형기준이 시행 중이다. 산안법의 양형기준은 2016년에 제정되었으며, 과실치사상 범죄군의 하나로 설정되어 있다.

산안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들을 분석하면서 팀원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낀 점은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양형이 가볍다는 것이었다. 자연인인 피고 중 1.9%만이 실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는 벌금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실형 기간은 평균 9.3개월, 벌금의 평균 액수는 500만 원 수준이었다. 숨진 노동자가 1명이든 4명이든 벌금 액수도 거의 비슷했다. 당시 산안법에는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하여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양형위원회가 설정한 산안법 위반 양형기준은 기본이 6월 ~ 1년 6월이었고, 감경 시 4월 ~ 10월, 가중 시 10월 ~ 3년 6월에 불과했다. 이렇게 가벼운 처벌로는 범죄 예방은커녕 처벌의 응보적 목적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다.

산안법 재범률이 다른 범죄에 비해 서너 배 더 높은 것도 가벼운 처벌과 관련 있다. 최근 개정된 산안법은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는데, 이러한 변화가 양형기준에 조속히 반영되어야 한다.

산안법 위반사건 대다수는 벌금형이 부과되고 있는 상황에서 벌금에 대한 양형기준이 없는 점도 문제다. 기업 또는 법인에 대한 제재 수단은 벌금형이 유일하고, 개정된 산안법에서 법인 벌금형이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대폭 상향된 점을 고려할 때 벌금형에 대한 양형기준 신설이 필요하다.

판결문의 양형 참작사유 중 사업주가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 ‘근로자재해보장책임보험(이하 근재보험)’에 가입한 경우 양형을 감경해주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산재보험의 경우 사업주는 의무 가입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감경해주는 것은 산안법 위반 사업주의 형량을 ‘일단’ 감경해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재 산안법 위반 범죄의 양형기준은 고용주가 필요한 안전·보건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했을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 중대재해가 일어나기 전에 비슷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는 산재 사고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근로자 사망 사고가 아니더라도 전반적인 산안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중대재해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산안법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는 개인의 주의의무 위반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달리 안전관리 체계 미비 등 기업범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산안법 위반사건을 독립범죄군으로 설정하여 양형기준을 수정하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산안법 위반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별도 범죄군으로 다뤄지면 안전보건 조치 미이행이나 작업 중지 미이행 같은 세부 범죄유형에 대한 각각의 기준도 정할 수 있어 형량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양형기준뿐만 아니라 양벌규정의 논리도 문제

산안법 위반시 사업주나 법인보다 실무관리자가 더 엄하게 처벌을 받는 현상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산안법상 의무 이행의 주체는 사업주(법인 기업의 경우 기업, 개인사업자의 경우 사장)이므로 의무 위반 시 사업주가 처벌받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판결문에서는 현장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자를 가장 엄하게 처벌했다. 실제 잘못한 ‘행위를 한’ 것은 현장의 말단 책임자이고, 사업주는 양벌규정에 따라 ‘간접적인 행위자’로 처벌되는 것이기에 현장 관리자보다 훨씬 약하게 처벌받았다. 실제 현장의 안전보건 조치를 좌지우지하는 사업주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아무리 산안법 위반 판결문이 쌓여나간다 하더라도 한국의 산재 현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된다.

최근 안전보건공단의 조사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 9명은 안전조치 미흡으로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지금보다 강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사후적인 처벌이 산재 사망의 직접적인 예방 조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업주에게 산재 사망의 직접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 산재 예방 조치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반복되는 산재 사고를 막기 위해서 양형기준과 양벌규정 법리부터 조정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