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현장]
지난 20여 년간 산재 사고 사망을 ‘기업살인’으로 인식하자는 운동, 그리고 그 귀결로써 ‘기업살인법’을 제정하자는 운동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때마침 이 기업살인법 운동이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에 관한 주목할만한 연구도 제출되었다. 이 연구는 그러한 운동의 성장에 어떤 구조적인 힘들이, 어떤 사건들이 작용했는지를 살핀다. 변증법적 방법을 통해 살펴본 기업살인법 운동의 역사는 앞으로의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영감과 숙제를 동시에 던져주리라 생각한다.
이주연 (노동건강연대 회원) |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들어가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노동안전보건 정책에 여러 변화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일명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그중 하나로 ‘산재 사고 사망 절반 감소’를 약속했다. 정부는 2018년 10월 28일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을 심의·의결 후 국회에 제출했고, 폐기될 뻔했던 개정안은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산재 사고 사망을 계기로 28년 만에 전부개정 되었다. 지난 6월 11일 정의당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것도 상징적이다. 물론,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수차례 지적되기도 했듯 만족스럽지 못하고,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도 입법까지 장벽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책 변화는 경제발전과 국민건강 수준에 걸맞지 않게 빈발하는 산재 사고 사망이 ‘사회문제’로 쟁점화됐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변화다.
이러한 변화의 기반에 ‘기업살인 운동’이 있다. 2000년대 초반 작은 캠페인으로 시작된 기업살인 운동은 현재 민주노총은 물론 소비자까지 아우르는 ‘기업살인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입법 운동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기업살인 운동을 처음 조직한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들도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이다.
햇수로 15년 넘게 운동이 지속되면서 내부에서도 운동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해야 하는 운동의 현장에서는 쉽게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비판공중보건 국제 학술지 (Critical Public Health)에서 “공중보건 운동”을 주제로 특별호를 발간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 계기로 우리는 기업살인 운동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이 논문에서 우리는 변증법적 비판실재론의 이론적 틀을 사용하여, 기업살인 운동이 어떠한 정치경제에서 출현하여 발전해왔고, 노동자 건강권 옹호와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특히 사회 변혁적 주체의 진화과정에 초점을 두고 탐색하였다. 해당 논문은 아직 게재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노동과건강> 2020년 여름·가을호 원고 청탁을 받고 연구 결과의 일부를 한글로 요약했다.
심층 면담에 참여해주신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진보정당 관계자 10명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에서 활동을 위해 애쓰고 있는 모든 분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노동운동에서 안전보건 이슈의 주변화
1987년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가 제도화되면서 ‘민주노조 운동’ 진영이 노동 운동의 새로운 주체가 되었다. 노동 운동은 사회 세력화를 달성했지만 안전보건 이슈는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렀다. 1988년 문송면 군 수은중독 사건과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이 계기가 되어 ‘노동과 건강 연구회’를 비롯한 여러 노동안전보건 단체들이 출범하였다. 이때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활동 주체는 진보적인 보건의료인과 법조인 등 전문가였고, 활동의 내용은 주로 산재 발생에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대책위원회 방식의 투쟁, 그리고 노동조합을 통한 교육과 상담 활동이 중심이었다.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로 1995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출범하면서 노동조합이 교육, 상담을 자체 진행할 수 있는 역량이 강화되었다. 90년대 중후반 이후 산재에 대한 단일한 운동 진영을 구축하고자 노동조합, 산재추방 운동 단체, 그리고 산재 피해자 단체가 주도하여 ‘산재추방 운동 연합’이 결성되었다. 그러나 결정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노선 갈등으로 해체되고 조직은 분화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산재는 노동자 개인의 불안전 행동 혹은 불운 때문에 발생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그나마 산재와 관련된 진보적 담론은 사고성 재해보다는 주로 직업병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었다.
조직노동 밖 기업살인 운동의 등장
2001년 6월 30일,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조합 산업안전보건 활동에 대한 기술적 지원”에서 벗어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의 산재 추방 및 노동안전보건 운동을 전개”를 지향하는 대중 정치조직을 표방하며 출범하였다. 당시 노동조합 활동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사업장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이들이 사업장에서 직면한 안전보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노동안전보건 운동의 새로운 구심이 필요하다는 진단에서였다.
2002년 노동건강연대는 하청, 불안정, 취약 노동자에게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재래형’의 사고성 산재와 기업에 대한 미약한 처벌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을 ‘기업범죄’이자 ‘살인죄’로 처벌하는 ‘산재 사고 처리 및 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2003년 기업살인법팀을 조직하고 영국, 호주, 캐나다의 기업살인법 사례를 소개했다. 그해 노동절을 기점으로 “산재 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새로운 구호의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기업살인 운동은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산재를 개인 중심의 파편화된 사례에서 구조의 문제로 전환했다. ‘누가 죽는가, 왜 죽는가’ 그리고 ‘누가 이득을 보는가, 누가 책임있는 자인가’를 명시적으로 질문함으로써 문제의 인식을 전환시켰다고 할 수 있다. 노동건강연대는 ‘기업살인’ 프레임을 꺼내며 원청기업 고발과 공중전을 통한 여론화 작업을 주도했다.
노동조합 중심의 노동안전보건 운동은 2000년대에도 직업병 인정기준, 보상 투쟁, 근골격계 유해 요인 조사, 노동강도 저지 투쟁,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의 민주노총 추천위원 참여 등 제도 개선 운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나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라는 캠페인처럼 노동자의 개인 서사에 주목했던 운동들은 대중들의 감수성, 사회적 공감을 이끌어냈고, 이들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개선시키는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에서 이중 노동시장 구조가 고착화되고 노동시장 분절화가 심화되면서, 노동조합 운동에서는 고용안정과 임금 문제가 여전히 중요했고 재래형 산재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노조 지도부의 임기 안에 단기적 교섭 요구안, 사업, 투쟁 계획에 집중해야 하는 기업별 노조 체계에서 재래형 산재처럼 장기적 구조 개혁이 필요한 이슈는 반향을 얻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2006년부터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산재 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 캠페인단’을 조직하고, 매년 4월 28일 세계 산재 사망 추모의 날에 ‘살인기업 선정식’을 공동 개최해왔지만, 기업살인 운동은 주류 노동 운동이나 진보적 법률가들 사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초기 10년 동안 민주노총과 산별 노동조합의 노동안전 담당자들도 기업살인 운동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고, “한국 사회에 있는 거의 모든 진보적 법률가들이 반대”했다. ‘기업살인’은 운동의 ‘감성적 구호’ 혹은 노동건강연대의 ‘브랜드 상품’으로 여겨지고 ‘기업살인법 제정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조직노동의 결합과 기업살인 운동 주체의 확산
그러나 2010년 즈음부터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중대재해가 빈발하고, 그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면서 조직노동 내에서도 분위기가 변화하였다. 구체적으로 2011년 12월 9일 계양역 인근에서 배수로 작업 중이던 인천공항철도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6명 (코레일테크 소속)이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은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양대 노총이 다단계 하청 고용을 산재 사망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고 ‘기업살인법’ 제정이 노조 요구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2년 하반기에 민주노총은 노동건강연대 전문가들과 함께 기업살인 대응과 입법 운동을 시작했다. 법률팀을 구성해 ‘산재 사망 처벌강화 특별법’ 초안을 만들고, 2013년 1월 ‘산재 사망 처벌강화 특별법’과 하청 산재에 대한 원청의 책임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2013년 4월 국회의원 심상정, 한정애, 장하나, 은수미가 공동주최하는 국회 토론회도 열렸다. 2013년 6월 26일 심상정 의원 등 10인이 ‘산업안전보건 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2013년 12월 24일 김선동 의원 등 11인이 ‘기업살인처벌법안’을 발의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처럼 조직노동이 결합하면서 기업살인 운동은 ‘기업살인법’ 제정을 위한 입법 운동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13년 국회에 발의한 기업살인법은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기업살인법을 추진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10년 전 기업살인 운동을 처음 조직한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조직노동이 운동의 주체로 결합하기 시작한 이때를 “역사적인 순간”이자 운동이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는 어떤 시점”으로 평가했다. 무엇보다도 조직노동의 결합은 자본-국가에 의해 굳어진 이중 노동시장 구조와 기업별 노조 체계로 제약을 받아 온 정치경제적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조직노동이 재래형 산재의 구조적 원인에 주목하고 기업살인법 제정을 자기 의제로 받아들인 것은 노동조합 운동에서의 중요한 도약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체로 기업살인 운동에 결합한 민주노총은 구체적인 법안을 마련함으로써 운동을 도약할 수 있게 했다.
노동–시민사회 연대의 결성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피해 규모나 정치·경제·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200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세월호 참사는 2011년부터 위험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함께 기업살인 운동에서도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 기업의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노동자만이 아니라 시민들도 죽는다는 점에서 기업살인법이 노동 운동의 의제에서 시민사회 운동의 의제로 확장된 것이다. 2015년 7월 22일 416연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노동건강연대, 민주노총을 포함한 총 22개 단체가 연대하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를 결성했다.
아래 <표 1>은 기업살인 운동의 핵심 캠페인으로 2006년부터 시작된 살인기업 선정식과 세월호 참사 이후 2015년 결성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의 연대 단체를 정리한 것으로, 지난 10년간 기업살인 운동 주체의 확대를 보여준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수많은 사회적 참사가 발생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사망 292명, 부상 70명),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망 32명, 부상 17명),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망 502명, 부상 973명), 1999년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망 23명),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사망 192명, 부상 151명) 등이다. 세월호 참사와 이전의 여러 사회적 참사들은 기업이 이윤과 안전을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법과 제도가 이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근본 원인은 동일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가 이전 참사들과 다른 점은 피해 당사자들이 참사를 개인 중심의 ‘파편적’ 이슈가 아닌 구조의 문제로 접근했고, 그 결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사회적’ 대책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피해자와 가족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의 중요한 행위자로 참여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진상 규명’,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에 피해자와 가족들의 요구가 집중되었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처음부터 요구사항에 들어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노동안전보건 운동 단체들이 기업살인 운동을 통해 구축해온 ‘언어’ 혹은 ‘해석의 프레임’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가족, 그리고 대중의 문제 인식을 전환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존 기업살인 운동의 주체들이 이 ‘해석의 프레임’을 산재의 영역을 벗어난 사회적 참사에 적용하였고,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와 가족들이 운동의 새로운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든 것이다. 이제 기업살인 운동은 노동안전보건 운동과 시민사회가 연대하는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편 노동의 관점에서 볼 때,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3년 문민정권 집권 이후에도 노동계는 ‘생존’ 그 자체가 엄청난 과제였다. 사회 일반에서 벌어지는 사고는 ‘노동’ 이슈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런 노동계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반 시민, 사회 안전 이슈를 노동자가 함께 싸워야 할 이슈로 받아들이게 된 배경에는 노동 운동이 여러 차례 촛불집회를 경험하고, 2000년대 이후 조직화 수준이 높아진 시민사회와 연대 활동 경험이 풍부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노동-시민사회 연대가 한편에서는 이전의 여러 사회적 참사와 달리 세월호 참사를 ‘정치화’하는 데 기여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기업살인법과 같은 노동계의 의제를 사회적 의제로 외연을 확대시킨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결성된 노동-시민사회 연대는 이후 발생한 여러 산재 사고에서도 확인된다. 2016년 서울메트로 정비 용역업체 소속 김군이 스크린 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책임을 개인 노동자에게 돌렸으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김군을 추모하고 언론에서 앞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하며 사회적 책임을 물어 기업과 정부의 대처가 달라진 경우다. 해당 정비 용역업체 대표가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을 뿐만 아니라, 서울메트로 전 대표도 대법원 상고 결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벌금 1000만원 형을 확정 받았다. 불과 3년 전인 2013년 성수역에서도 똑같은 산재 사망 사고로 동일한 정비 용역업체 소속 심씨가 사망했지만, 당시 경찰과 검사는 서울메트로에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며 정식 수사도 없이 사건을 종결했다. 이 사례는 시민들을 바꾸는 힘의 중요한 한 축에 노동안전보건 운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고찰
노동안전보건 운동 단체들이 오랫동안 기업살인 운동을 통해 구축해온 ‘해석의 프레임’과 ‘언어’는 산재를 비롯하여 기업 잘못으로 발생하는 사망 사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전환하고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이끌었다. 기업살인 운동은 산재에 대한 개인 중심의 인식론에 균열을 내고 구조의 문제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2000년대 초반 조직노동 밖 한 시민사회단체의 캠페인으로 시작되었지만, 조직노동이 운동의 주체로 결합하였고, 이후에는 노동-시민사회 연대를 통해 운동의 주체가 계속해서 확산되었다.
그 결과 2020년 현재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어느 때보다도 강해졌다. 하지만 대중적 요구의 크기에 비해 이를 정치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진보정당의 역량이 여전히 미흡하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7일 심상정 의원 등 10인이 ‘산업안전보건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을, 2017년 4월 14일 노회찬 의원 등 11인이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하였으나 모두 회기 만료로 폐기된 사실이 이를 잘 뒷받침한다. 운동 내부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 세력화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운동 내부에서 운동의 지향점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했다. 대중적 운동을 위해서도 입법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기업살인 운동이 입법 운동으로 본격화하면서 법률 체계, 기술적 이슈에 매몰되고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존재했다. 다른 한편, 기업살인법이 운동의 구호로서 굉장히 실효성이 있었지만 한국형 산재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제대로 된 처벌을 위한 기업살인법 뿐만 아니라 예방 측면까지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운동이 동시다발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법 처벌을 통한 통제는 결국 검찰에게 선택권을 주는 신자유주의적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미 기업살인법을 도입한 영미권 국가에서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러한 우려를 일부 뒷받침한다. 운동의 지향점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기업살인 운동의 주체가 빠르게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어떻게 하면 기업살인 운동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한 법의 형태로 외화시키고 구체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법리상 일관되고 규범상 문제없는 법안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비판적 토론과 평가가 운동 내에서 필요한 이유이다.
기업살인운동은 자본-국가에 의해 이중 노동시장 구조가 확대되고 기업별 노조 체계가 고착화되고 있던 조건에서 시작하였다. 이중 노동시장 구조는 고용, 임금뿐 아니라 위험까지 이중화하고 개별화시키면서 오늘날 높은 산재 사고 사망률과 불평등에 기여했다. 또 기업별 노조 체계는 노동 운동에서 안전보건 이슈가 ‘부문 운동’으로 게토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보다 구조적인 개혁을 위한 주체의 등장을 제약하는데 기여했다. 우리 연구는 기업살인 운동을 사례로 삼아 사회 변혁적 주체가 조직노동 밖에서 탄생한 기저에 어떤 구조적 제약이 작동했는지 설명하고, 이후 산재 영역 바깥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회적 참사가 기업살인 운동의 주체를 조직노동 너머 시민사회로까지 확장시킨 과정을 조명했다.
기업살인운동은 이질적인 집단이 하나의 사회운동에서 연대하여 사회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연대를 통한 사회 변혁적 주체의 확산이 어떤 조건에서 가능했나? 노동안전보건, 교통안전, 소비자 안전 등 겉보기에 서로 다른 영역에 위치한 경험적 사건들이 전체를 가로지르는 정치경제 차원의 공통의 구조적 원인이나 메커니즘으로 설명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연대가 가능했다. 노동-시민사회 연대 운동으로서 기업살인 운동이 진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의 여러 논쟁적 이슈들을 연결하는 공통의 ‘해석틀’ 혹은 ‘마스터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심층 인터뷰 내역
2019.10.22. 노동건강연대 A
2019.10.23. 노동건강연대 B,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2019.10.29. 노동건강연대 C
2019.10.31. 노동건강연대 D
2019.10.25. (전)노동건강연대
2019.12.0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2020.01.31.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2020.01.02. (전)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2020.02.19. (전)진보정당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