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와 시사실]

지난 6월 출간된 『직장 갑질에서 살아남기』는 직장갑질119가 2년 반 동안 접수하고 공론화했던 상담 사례들을 정리한 것이다. 한국 사회의 직장 갑질 백과사전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다양한 갑질 사례들이 수록되어 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장마가 지속되던 7월 말, 이 책을 집필한 직장갑질119의 박점규 운영위원을 만나 책에 관해, 또 직장갑질119의 활동에 관해 물었다.

일시 : 2020년 7월 29일
장소 : 직장갑질119 회의실
참석 : 박점규(직장갑질119 운영위원), 박상빈(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기록 : 남준규(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박상빈 : 화제의 신간 『직장 갑질에서 살아남기』가 지난 6월 발간되었습니다. 책은 잘 팔리고 있나요? 인세는 좀 들어오시는지?

박점규 : 잘 팔릴 것 같나요? (웃음) 일단 인세는 전부 직장갑질119에 기부했어요. 이 책의 시작 자체가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제보들과 스태프들의 답변을 참조한 거니까요. 제가 내용을 다 추리고 추가로 취재하고 그러긴 했지만 공적인 성격이 더 강한 것 같았어요. 가족회의를 해서 인세를 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박상빈 : 이번 책의 예상 독자는 누구로 생각하고 쓰셨나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직장인들? 아니면 사용자들에게 이런 행동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일 수도 있을까요?

박점규 : 제가 동네 친구들이랑 등산을 자주 다니는데, 그 친구들이 이 책을 딱 보더니, 점규야 이 책 제목 바꿔서 한 권 더 내자. “직장 갑질 피해가기”라고. 사용자들을 독자로 하는 책인 거죠. 사용자들이 책을 사게 만들고 사용자들한테 가서 교육도 하고 교육비도 많이 받고. (웃음) 그런 얘기를 농담으로 많이 했어요. 근데 확실히 이 책은 사용자들에게도 필요한 책이에요.
지금 사용자들이 대개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에 학교, 90년대에 직장 다니고 그랬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회사도 군대 같았어요. 까라면 까고. 위계가 확실하고. 사회 전체가 병영화되어 있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내가 돈 주니까 아무 거나 시켜도 된다고 하는, 직장 내 독재 문화가 있는 거죠. 이 사람들은 억울하죠. 까라면 까고 원산폭격하고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와서 보니까 요즘 애들은 일 시켜도 하지도 않고, 야근도 싫다고 하고 하는 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지금 그런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세대 간의 갈등이 바뀌고 있는 시점이기도 해요. 조직의 변화만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 습관, 세대의 생활양식 이런 게 바뀌어야 하는 거잖아요. 대표적으로 아무한테나 반말하는 이런 거. 이 책은 그렇게 바뀌는 과정에서 사용자들에게도 필요하겠죠.
기본적으로 일반 직장인들에게 ‘아, 내가 이런 일 당할 수도 있겠구나’, ‘이럴 땐 이런 법이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걸 알려주고 대처할 수 있게 해주려고 쓴 거죠. 몰라서 돈 떼어먹히고, 몰라서 불이익당하는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쓰려고 했어요. 편안하게 사례 읽다가 뒤에 법 정보 보면서 ‘어 이거 좋네’, ‘알고 있음 좋겠네’ 하는 생각 하게 만들려구요. 그러면 사용자들도 긴장하게 되겠죠.

 

현실 밀착형 운동, 회사에 불만 많으시죠?

박상빈 : 직장갑질119는 어떻게 결성됐고,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요?

박점규 : 사실 직장갑질119 탄생의 진짜 주인공은 노동건강연대예요. 역사를 보면 87년 6월 항쟁의 힘으로 그 후에 노조가 굉장히 많이 만들어졌잖아요. 그것처럼 2017년 촛불 항쟁의 힘으로 정권이 바뀌게 되니까 그 후로 노조가 되게 많이 만들어지지 않겠냐 그런 기대가 있었어요. 그런 취지로 시민단체들을 모아서 얘기를 했어요. 그때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전수경 활동가가 와서 한 얘기가, 사람들이 노조로 바로 간다는 게 얼마나 멀리 있는 일인데 그게 되겠냐, 그 전에 직장을 바꾸자, 직장의 문화와 부당함을 바꾸는 운동을 하는 게 먼저 아니냐, 이런 얘기를 했어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요.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저랑 오진호(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가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을 찾아갔어요. 그 앞에 있는 밥집에서 낮술을 먹기 시작해서 술을 사 가서 계속 먹으면서 떠들기 시작했죠. 야, 그럼 어떤 모임을 만들어야 바꿀 수 있겠냐, 플랫폼을 뭘로 해야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쉽겠냐, 이런 얘기 초벌이 다 노동건강연대 회의실에서 낮술 먹으면서 수다 떨다가 나온 거예요. 직장갑질119 탄생의 비밀이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에서의 낮술인 거죠. 물론 이름은 제가 지었어요.(웃음) 어쨌든 사실상의 내용을 잡은 건 박혜영, 전수경이었어요.

박상빈 : 오진호, 박점규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비없세)에서, 전수경, 박혜영은 노동건강연대에서 따로 활동을 하고 있었잖아요. 어떻게 그런 조합이 구성된 거예요?

박점규 : 원래도 같이 잘 놀긴 했어요. 좀 더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던 사람들이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여서 그랬던 거죠. 가령 메탄올 실명 피해자들을 만나서, 파견 노동이라는 말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사회 문제로 만들었잖아요. 노동운동에서 쓰는 말들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와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으로 뭔가 해야 한다. 그게 노동건강연대의 관점이었죠.
직장을 바꿀 때도 통했어요. 우리 회사 갑질 너무 많은데, 갑질 좀 없으면 좋겠다. 이런 운동을 하자고 한 거죠. 현실 밀착형, 현실 천착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노동건강연대의 문제의식이 사람들을 긁어모으는 데에 상당히 재능이 있는 비없세하고 만난 거죠. 그래서 야 이거 하려면 누구 모아야 해? 일단 법률가 왕창 모아야지. 그래서 제일 먼저 찾아간 게 민주노총 법률원장 권두섭이었어요. 권두섭 만나러 갔더니 야 이거 너무 좋은데? 노무사도 있으면 좋으니까 노노모(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회장 만나러 가자. 그래서 박성호도 끌어모았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만나러 가자! 해서 민변의 윤지영도 불러모으고 했어요. 순식간에. 그렇게 직장갑질119가 시작된 거죠.

박상빈 : 아이디어가 나오고 구체화되기까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 것 같네요?

박점규 : 처음 토론은 5월에 시작했는데, 한 7월, 8월까지 방향을 못 잡았어요. 그런데 그 무렵 혜성같이 나타난 우리 전수경, 박혜영과의 낮술 자리가 이 운동을 확신할 수 있게 한 거죠. 사람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뭔데? 카카오톡, 다른 플랫폼은 안 돼. 사람들이 그래도 좀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럼 법률가를 모아보자. 그럼 어떤 방식으로 시작할까? 일단 우리를 알리려면 설문조사부터 시작해야지. 직장인 700명 돈 들여서 설문조사하고 발표하면서 사람들 불러 모으자. 이렇게 척하면 척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됐어요.

박상빈 : 오진호 동지나 박점규 동지는 노조로 가는 징검다리를 만들려는 목적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전수경, 박혜영 같은 현실 밀착형 활동가는 입장이 달랐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박점규 : 똑같았어요.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건 노조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잖아요. 근데 그 노조로 가는 게 한국 사람들이 거부감이 있고, 세계적으로도 노조 조직률이 너무 낮은 나라이고, 노조에 대한 혐오, 왜곡된 인식이 굉장히 공고하게 잡혀있는 나라잖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노조를 하고 싶어도 쉽지 않고요. 또 노조 조직률이 300인 이상 사업장 같은 경우는 56% 정도 되거든요. 근데 30인 미만 사업장은 0.25% 예요.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 너무 많아요. 공공기관이나 300인 이상 사업장은 다 노조가 있다고 봐도 되고 노조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거예요. 우리 사회는 이 노동자들 사이의 양극화가 너무 심해서 100인 미만 사업장들은 노조 가입률이 2.2% 정도밖에 안 되니까, 이런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 노조를 하라고 해도 무슨 공자님 말씀 같은 거예요. 누가 몰라요? 노조가 좋은지?
노조 얘기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이 공간 자체가 자신의 권리를 찾아 나가는 공간이 된다면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노조로 갈 것이다 하는 방향에 동의했던 거죠. 처음에는 ‘야 노조하자 운동본부’를 꿈꾸고 시작했어요. 그게 회사의 부당함을 바꾸는 방향이 된 거죠. 그래서 우리 캐치프레이즈가 ‘회사에 불만 많으시죠’가 된 거예요. 회사에 불만 많죠? 물으면 누구나 많다고 하잖아요. 거기서 그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더 던질 수 있는 운동을 시작한 거죠. 아주 현실 밀착형으로 접근해서 성공하게 된 원인이 이거라고 생각해요.

노동조합 바깥의 사람들을 만나다

박상빈 : 박점규 동지가 이전에 해 오던 운동하고 직장갑질119는 많이 다른가요? 다르다면 어떤 지점이 다르다고 느끼세요?

박점규 : 제가 2011년까지는 금속노조에 있었고, 금속노조에 있을 때부터 시작하긴 했지만 또 한 7년~8년 정도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에서 운동을 했어요. 비없세 운동이란 건 희망버스 같이 대중적 운동이었죠. 저는 그런 대중적 운동을 계속 해보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아 그거, 나도 그거 연대하고 싶어, 하게 만드는 운동이요. 그래서 제가 또 했던 게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라는 것도 있었어요.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달라 그랬지 비정규직 연장해 달라고 했냐? 이러면서 파견법 개악에 맞서서 싸우는 운동도 꾸렸죠. 삼성전자 서비스 최종범씨 돌아가셨을 때 대응하는 운동도 했었고, 설치 수리 기사들을 위한 캠페인도 벌이고 그랬었어요. 뭔가 친근하게, 막 결사, 결의, 분노에 차 있고 세상에 대한 적개심이 있고 이런 거 말고, 좀 밝게 운동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비없세 활동의 전제였어요. 운동은 밝고 신나게 해야 오래할 수 있다. 분노에 차 있으면 운동을 오래 못한다. 하는 게 저희 신념이었어요.
사실 그간의 운동은 노조 내의 비정규직, 노조에 속해 있는 해고 노동자, 그런 해고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고 연대하는 운동이었던 거죠. 근데 이 사람들도 노동조합 안에 있는 사람이긴 했어요. 노동조합 밖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근데 우리의 관심은, 이렇게 운동을 했는데 노동조합이 일을 잘 풀어서 노동조합의 외연이 막 확대되고 이렇게 되지 않으니까, 노동조합 밖에 있는 사람을 직접 만나는 운동을 해보자는 게 됐어요. 말하자면 노동조합 안에서의 약자를 위한 운동이 그간의 운동이었다면, 노동조합 밖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직장갑질119의 운동인 것이죠. 그 사람들을 만나는 통로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관건이었는데, 그게 성공한 거죠.
지금도 밝게 일하는 건 똑같아요. 후원행사도 되게 심혈을 기울여서 했구요. 즐거운 자리를 만드는 것, 내가 하는 일 자체가 뿌듯한 일이라는 자부심, 스스로가 재밌고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이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럴 것 같구요. 이런 부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거예요.
또, 활동가들 사이의 연대가 중요해요. 그런 연대가 이런 운동을 만드는 거예요. 비없세 때는 대책위라던가 운동본부라던가 이런 걸로 쭉 엮어냈어요. 근데 직장갑질119는 상시적으로 엮어내는 걸 만들었어요. 직장갑질119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스태프가 110명인데, 이 110명이 하는 일은 질문에 답변하는 정도로 크지는 않지만 어마어마한 효과를 보여주고 있어요. 아무 때나, 지금도 카톡방 들어가면 상담하고 있단 말이에요. 이걸 만드는 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는데, 이 사람들을 묶을 수 있었던 것이 성공의 비결인 것 같아요. 그동안 노동문제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사측이 아니라 노동의 입장에서 싸워왔던, 그게 법률적으로 싸웠건, 운동적으로 싸웠건, 노조에서 싸웠건 간에, 그랬던 사람들이 여기 묶여 있다 보니까 다른 어떤 곳에서도 모방하거나 하기 어려운 운동이 된 것 같아요.

박상빈 :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 보면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가 너무 빠르더라구요.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요. 그런데도 스태프들은 일일이 하나하나 질문을 다 챙기면서 답변하는 게 경이로워 보였어요.

박점규 : 스태프들도 전부 다 보지는 못해요. 자기 시간에만 봐요. 한 시간 반 동안 올라오는 질문에 다 답변해야 하긴 하지만, 카톡에 답장 기능이 생겨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질문이 계속 올라와도 물어본 순서대로 답장을 한단 말이에요. 저 위에서 누가 열 받는다고 물어봤어, 그러면 그거 답장으로 답변하고, 그 다음 것도 답변하고. 사람마다 다르기는 한데, 저는 한글 프로그램을 켜 놓고 답변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 위에 걸 긁어 와서 거기에 대한 답을 쓰고 채팅방에 붙여 넣고, 그 다음 것도 긁어 와서 쓰고 붙여넣고, 그런 식으로 답변 쓰고 붙이고 그래요. 어떤 때는 사람이 많이 들어와서 질문이 많을 때는 한참 위로 찾아 올라가기도 해요. 내 답변 속도가 늦으니까. 그래서 순발력도 매우 중요해요.

박상빈 : 1시간 반 안에 답변을 다 못할 것 같은데요?

박점규 : 스태프 누구든지 자기 답변은 다 마치긴 해요. 답변 속도가 느리면 질문 속도도 다들 느려져요. 제가 헤메고 있으면 그것도 늦어지기 때문에 자동으로 맞아져요. 어쨌든 막 질문이 쏟아지면 하나씩 하나씩 다 답변을 하긴 해야 해요. 질문자가 어, 제 거 답변 안 했어요. 이러면 또 막 찾아 가서 답변해야 하고.
그 한 시간 반이 어떤 느낌이냐면, 지금 한국 사회 직장에 무슨 일이 있지? 이걸 가장 빨리 알려주는 시간이에요. 코로나 딱 터졌을 때 우리가 가장 빨리 대처할 수 있었던 것도, ‘사장이 연차 쓰래요.’라는 얘기를 2월 초에 채팅방에서 많이 접했으니까. 현장에서 그런 일 생긴 사람들 다 여기 와서 얘기하는 거죠. 한국에서 지금 사용자들이 어떤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회사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이런 걸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어와 있으니까.

박상빈 : 최근 상담 추이는 어떤가요? 어떤 질문들이 가장 많이 들어오나요?

박점규 : 하루에 이메일 제보만 10건에서 20건 오는데, 괴롭힘 사례가 절반 정도 돼요. 코로나 관련된 갑질이 한 20%정도 되는 것 같고 나머지는 기존의 임금체불이나 해고 사례 같은 직장 내 괴롭힘 말고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들이에요. 괴롭힘으로 신고 했는데 또 직장에서 어떻게 해요. 이런 사례도 많아요.
카톡방에서 제일 많은 건 제가 당하는 게 괴롭힘이 많나요? 이거죠.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직장, 회사라는 게 명확하게 권력관계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일단 시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게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더라도. 근데 이게 계속 되니까 이게 부당한 게 맞나? 하면서 헷갈리는 거예요. 내 주변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그게 정말 무서운 거죠. 근데 법 만들어지고, 이게 괴롭힘이래 이거 안 된대 이러니까 생각해보게 되는 거죠. 내가 당하는 게 불법 아닌가? 하면서요. 그래서 카톡방에 물어봐요. 저희가 맞다고 하면, 아, 이게 잘못된 게 맞구나 하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라고 물어봐요. 한 번 더 용기를 내야 할 때가 된 거죠. 증거를 수집하라고 해요. 증거를 수집 못하면 아무리 주장을 해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에,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을 가장 많이 얘기해줘요.

박상빈 : 책을 보니까 상당히 울컥울컥하는 사례들도 많은데, 그런 걸 매일같이 보다 보면 정신이 좀 피폐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박점규 : 매일 상담하지는 않아요. 저는 평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펑크가 많이 나면 세 번 이상 하기도 하고, 펑크가 없으면 한 번만 하기도 하구요. 어쨌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하죠.
우리 스태프 중에는 상담 받고 있는 분도 있어요. 상담하고 얘기 나누고 하다 보면 전이되잖아요. 또 우리가 되게 싫어하는 일 중 하나는, 녹음파일 듣는 거예요. 그게 폭언 위주로 있거든요. 내가 욕먹는 것 같은 느낌이라 서로 안 들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이걸 듣고 풀어야 하니까. 어쨌든 스태프들이 이런 걸 다 하고 있어요.
조심스럽긴 한데, 제보자 중에 심리적으로 힘든 사람도 많아요. 그렇게 아픈 사람 상담하는 게 진짜 힘들어요. 이게 사실 치료가 필요한 거죠. 치료를 권하기도 해요. 괴롭힘이나 갑질 때문에 정신적으로 아프게 돼서 저희한테 위로 받기도 하고, 상담 내용이 좀 어렵기도 하고. 저희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으로 상담을 하긴 하지만 피해 내용이 좀 과장된 건 아닐까 하는 사례들도 있어요. 스태프에 따라서 냉정하게 상담하기도 해요. 그 정도 같으면 선생님의 잘못도 있는 것 같은데요. 이렇게요. 이건 스태프마다 차이가 있는 거라, 자상하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어쨌든 상담이 쉬운 건 아니죠.

박상빈 : 제보자들한테 병원을 가라고 권하기도 하나요?

박점규 : 기본적으로는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많이 힘들테니 꼭 상담이나 치료를 받으라고 이야기해요. 그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거 자체로 치유가 되기도 하고, 증거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직장에서 폭언을 들었다거나 하면 반드시 그날 퇴근하고 가까운 병원 가서 치료를 받으시라, 그날 못 받으면 다음 날이라도 치료를 받으시는 게 좋겠다 정도로는 적극적으로 말씀을 드리기는 해요.

박상빈 : 그렇게 상담 치료를 받고 그걸 근거로 산재 신청해서 승인된 사례도 있나요?

박점규 : 네. 여러 건 있어요. 오늘 통화했던 제보자 사례가 있는데 말씀드릴게요. 이 제보자는 자기가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의 사장 아버지가 건설회사 사장이에요. 사실은 회사가 하나예요. 같은 회사인데 부서 하나를 독립시켜서 아들한테 만들어 준 거예요. 근데 이 제보자를 괴롭히고 갑질한 게 자기 사장의 아버지인 거죠. 근로계약과는 상관없는 사람인 거죠. 괴롭힘만이 아니라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있었어요. 뚱뚱하다느니, 아들 하나 더 있으면 며느리 삼고 싶다느니, 이런 성희롱은 일상적이었고, 성추행까지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도저히 못 참겠어서 직장 내 성희롱으로 걸었어요. 근데 노동부는 직장 내 성희롱이 아니라는 거예요. 직장 관계가 아니니까.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가 한 거니까. 그래서 이걸 그냥 아예 경찰에 성추행으로 고소를 했죠. 그리고 그때 받은 상처로 산재 신청을 했어요. 산재도 승인이 났고 이 사장 아버지도 1심에서 실형 선고는 아니지만 유죄판결을 받았어요. 그 뒤로 이 제보자는 밝아졌어요. 굉장히 힘들어 했는데 말이죠. 오늘 통화할 때 굉장히 목소리가 밝더라구요. 제가 도움드릴 게 있으면 많이 드릴게요, 이러면서 수다를 한참 떨다가 끊었어요.

박상빈 : 굉장히 좋은 사례네요. 상처가 치유된 거니까요. 그럼 그렇게 상담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비중은 어떻게 되나요?

박점규 : 비중을 통계를 내기는 어려운 게, 대체도 다들 해결 중이에요. 사태가 깔끔하게 딱 마무리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지난주에 직장갑질119 사단법인으로 창립총회 행사 했을 때 오셔서 자신의 경험 말씀해 주신 분이 있어요. 그분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자마자 신고를 했는데 흐지부지 처리가 됐었어요. 괴롭힘이 없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신고를 했어요. 신고하면 반드시 2차 가해나 보복, 따돌림 이런 게 계속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건 굉장히 큰 용기가 필요해요. 저희가 한 설문조사에서도 직장인 1천 명 중에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람이 한 45%정도 되는데, 신고한 사람은 3%밖에 안 돼요. 그만큼 어려운 거죠.

박상빈 :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상담만 받고 신고까지는 가지 못하는, 마음속에 응어리로 묻어두는 사례가 굉장히 많겠네요?

박점규 : 그럼요. 보복 같은 게 두려우니까 그렇게 용기 내는 일이 쉽지가 않으니까요. 그래도 법이 생겼고, 반쪽짜리지만, 어쨌든 법이 있으니까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노동행정이 중요해요. 근로감독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회사 태도도 달라지거든요. 근로감독관의 무기가 뭐겠어요. 너네 회사 근로감독 들어가겠다, 이게 굉장히 큰 건데, 이걸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지난주에 총회에 오셨던 제보자 분도 처음에 신고했을 땐 근로감독관이 시큰둥하게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저희가 또 압박을 했죠. 저희가 또 모범적으로 근로감독을 한 사례를 언론에 뿌리면서 제보자에게도 보도자료를 보내줬어요. 근로감독관한테 보여주라고. 그래서 제보자가 근로감독관한테 그걸 보여주면서 이런 사례도 있는데 너는 왜 그런 식으로 하냐고 따졌죠. 그랬더니 근로감독관 태도가 달라져요. 근로감독관이 달라졌더니 회사도 달라졌어요. 그래서 가해자를 전보 보내고 피해자랑 분리시키고, 또 다른 가해자를 징계 회부하고 그랬어요.

 

직장갑질119의 보물은 상담 스태프와 상담 시스템

박상빈 : 직장갑질119가 노동부를 굉장히 잘 다루는 것 같아요. 비결이 있나요?

박점규 : 없어요. 조금 있기는 하지만 영업비밀이죠. (웃음)

박상빈 : 기존 노동조합과의 관계, 언론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박점규 : 처음에는 민주노총과 뭘 같이 해보려고 했었어요. 민주노총도 우리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딱히 같이 할 수 있는 걸 찾지 못했어요. 가령 직장갑질119에서 문제제기가 돼서 노조가 만들어졌다 그러면 한국노총으로 가겠어요? 민주노총으로 가겠지. 아무튼 여기서 최종적으로 잘 된 데는 노조가 만들어지게 되겠죠. 그래서 우리 후원의 밤 할 때 축하 영상에 노조에서 나와서 축하해 줬잖아요. 근데 노조로 만들어지는 건 소수이고, 어려운 일이죠. 지금 네이버 밴드에 온라인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고, 또 금속노조하고는 자동차 정비사 모임을 만들려고 추진 중이에요. 학원강사, 미용사, 간호조무사 등 노조를 만들기 어려운 직종의 분들을 묶어 세우는 일이 잘 되면 노조가 만들어지겠죠. 사회복지119는 공공운수노조랑 같이 하고 있고, 콜센터119는 서비스연맹, 사무직노조랑 같이 하고 있고, 대학원생119도 공공운수노조랑 같이 하고 있어요. 현재 산별노조하고 모임을 같이 하고 있기도 해요. 성격이 같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할 모임도 더 생길 거고, 우리 독자적으로 추진할 모임도 생기겠죠. 현재 노조하고는 이런 정도 관계예요.
언론이 되게 중요해요. 저희가 언론에 도움받은 게 많아서요. 옛날에 비없세 때는 조중동 종편 이런 데는 인터뷰도 안 했어요. 근데 직장갑질119 만들 때는 공식적인 취재 거부는 없다고 못 박았어요. 우리 110명 스태프가 직장갑질119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취재 거부하지는 말자고. 누가 와서 뭘 하겠다 하면 누가 오건 막지는 않겠다는 거죠. 근데 개인이 어디랑은 안 하겠다 한다면 안 해도 된다. 저도 안 하는 데가 있다, 얘기했어요. 이렇게 공식적으로 문을 열어놓은 건, 직장 갑질 문제는 반노조적인 언론이라고 하더라도 언론이 대놓고 거부하기 어려웠던 거예요. 그만큼 사건이 많기도 했고. 양진호니 조현민이니 박찬주니 우리 사회의 갑질러들이 보여준 것 때문에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거죠. 우리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법 개정도 대놓고 반대하기 어렵거든요.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편인 거죠.
또 하나 우리가 언론을 상대하는 비법을 공개해 드리면, 우리는 보도자료를 토요일 날 내요. 이게 핵심이에요. 왜냐하면 일요일은 기삿거리가 없어요. 신문사 기준으로 얘기했을 때 기자는 토요일에 쉬고 일요일은 근무하거든요. 월요일에 신문 내야 하니까. 근데 일요일은 기사가 없죠. 사건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기사가 되게 적고, 월요일자는 기획 같은 게 많이 나가는 편이에요. 근데 저희가 요 틈을 딱 비집고 들어가서 토요일에 보도자료를 내, 그리고 인터넷 언론은 일요일 오후, 신문사는 월요일자로 써달라고 하면 일요일에 출근하는 기자들은 거저먹는 거죠. 자기들끼리도 거저먹는다고 표현해요. 이 좋은 기사를 가장 기사가 없을 때 준다는 거죠.
근데 그렇게 하려면 토요일에 누가 일해야 해요? 우리가 일해야 하잖아요. 그게 힘든 게 있는데, 그래도 이렇게 언론에 나가면 노동부도 반향이 있고 사회도 반향이 있고 또 제보도 더 들어와요. 그래서 새로운 보도가 나갈 수 있게 되고.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거죠.
대부분 노동단체들이 언론 활용을 잘 못하는 거 같아요. 기사 못 쓴다고 기자랑 싸우지 말고, 최대한 잘 설득하고 그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자료를 주는 게 중요해요. 저희는 만약 실수가 있잖아요? 그럼 바로 정정 보도자료를 내요. 실수한 걸 숨기게 되면 기자들은 ‘쟤네 단체 거는 검증해 봐야하는 자료다’라고 생각하게 돼요. 지금 직장갑질119 보도자료는 신뢰가 너무 높아요. 관공서 수준의 보도자료만큼 기자들이 받아줘요.

박상빈 : 확실히 기자들이 따로 취재를 하나도 안 해도 될 정도로 상세하게 작성해서 주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러면 기자들이 더 나태해질 것 같은데요.

박점규 : 대충대충 만들어서 줘도 일 안 하는 건 똑같아요. 심지어 보고서 한 번 내면서 4일 전에 보도자료 뿌린 적도 있어요. 그런데 기사가 내가 쓴 보도자료랑 똑같이 나왔어요. 그때 열 받아 가지고, 최대한 상세하게 써줘요. 어쨌든 언론에 최대한 많이 나올 수 있는 게 중요하니까.

박상빈 :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주중에 하루 더 쉬거나 하나요?

박점규 : 저는 대충대충 해요.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보도자료 만들 때, 예를 들어 근로감독관 개선 방안 이런 거 쓸 만한 정책·법률 전문가를 우리가 110명이나 데리고 있잖아요. 그래서 주제별로 이거 하면 누구 하면 되고, 저거 하면 누구 하면 되고, 이런 네트워크가 있으니까요. 다른 단체는 흉내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전문가들이 많이 같이하기 때문이에요.

박상빈 : 비없세의 활동능력과 인력 네트워크가 상당히 많이 도움이 된 것 같네요.

박점규 : 그렇죠. 직장갑질119 하면서 새롭게 맺은 관계는 정부 관계예요. 그래서 시행착오를 좀 겪었지만 이젠 적절한 노하우가 생겼어요.
노조하고는 일정한 협력을 하고 있는데, 민주노총 법률원이 그중에서도 가장 큰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보건의료노조에서 우리 모델을 벤치마킹해서 오픈 채팅방을 만든 적 있었는데, 사람들이 좀 늘어서 100명 넘고 200명 넘더니 문을 닫더라구요. 왜냐하면 상담이 유지가 안 되니까. 우리처럼 스태프 투입하는 게 한 노조 차원에서 운영이 안 되는 거예요. 이런 거는 저희 스태프들에게 상당히 고마운 거죠. 매일 아침 10시 반부터 밤 9시까지, 1교시부터 5교시로 나눠서 상담이 이루어지니까요. 한번은 저희 조카 애가 전화 온 적이 있어요. 뭐 좀 물어보려고. 그러면 야 이모부 바빠, 거기 들어가면 누가 상담하고 있으니까 거기 가서 물어봐. 지금 누구 노무사 있을 거야 거기 가서 물어봐. 이랬어요. 문제가 해결되잖아요. 거기서 해결 안 되는 문제는 이메일 보내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게 중요한 거 같아요. 힘들긴 했지만, 일정하게 시스템화 됐다는 거.

 

직장갑질119의 비전, 온라인 노동조합

박상빈 : 이렇게 훌륭한 시스템을 갖고 앞으로 다른 활동이나 운동을 만들어볼 생각도 있나요?

박점규 : 저희가 처음에 이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정류장이라고 불렀어요. 사람들이 막 모여요. ‘야 여기 재밌는 거 있대’ 하면서요. 근데 여기서 모였다가, 어 좀더 자세하게 알아봐야겠는데? 하는 사람들은 이메일을 보내요. 이메일이라는 건 어쨌든 일정부분 자기 신원을 노출하는 과정이잖아요. 처음에 익명성에 숨어있다가 이메일이라는 반익명, 반실명 정도로 한 걸음 더 나오는 거죠. 그랬다가 온라인 모임에 가입하게 되면 완전 실명으로 나오는 거죠. 가입할 때 핸드폰 번호까지 다 쓰게 해서 가입시켜요. 안에서는 익명으로 활동하지만 실제로 저희한테 모든 정보가 다 있는 거죠. 이렇게 한 걸음 더 나오는 거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건 온라인 노조겠지요. 저희가 꿈꾸는 건 그래서 온라인 노조, 지금 이 온라인 모임을 노조화시킨다는 거죠.

박상빈 : 온라인 노조라는 개념이 기존에 있는 건가요?

박점규 : 아뇨. 그냥 저희가 만든 거예요. 노조는 지금도 만들 수는 있어요. 예를 들면 저희 콜센터 방에 350명 정도 있는데, 그중 두 명만 모여서 설립신고하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근데 그건 전통 방식이고. 저희는 그렇게 안 하려고요. 왜냐하면 기존 노조는 민주노총 산별에 가입한다고 하면, 조합비가 통상임금의 1%나 1.2%정도 되거든요. 200만원 받으면 2만원 내야 하는 거예요. 근데 2만원어치 뭘 할 수 있지도 않고 뭘 해줄 수도 없어요. 그렇게 만들면요. 또, 예를 들면 어린이집 교사 같은 경우에 저희 방에 3000명 넘게 모여 있는데, 실제 노조로 가는 사람이 몇 명 없기도 해요. 기존 오프라인 노조로요.
그래서 저희는 꿈을 꾸는 거죠. 이 모임 자체를 노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조합비는 월 5000원 정도만 받고, 단협 이런 건 어렵고, 상담을 중심으로 사업을 꾸려서 체불임금 진정 같은 걸 집단으로 하고, 그런 걸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상담과 법률지원 서비스 정도를 기본으로 하는 거죠. 근데 돈 안 내면 못 들어오잖아요. 그리고 돈을 냈다는 건 대표도 뽑고 총회도 하고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총회는 온라인으로, 유튜브로 하고, 누가 입장하셨습니다 입장하셨습니다 뜨잖아요. 그렇게 성원이 되었으니 ‘총회 시작합시다’ 해서 하는 거죠. 그렇게 총회해서 설립신고를 노동부에 내는 것까지, 그리고 노동부에 설립필증 받는 것까지 저희가 실험해볼 거예요. 어디를 먼저 실험할지는 지금 논의 중인데, 이렇게 해서 과거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지금 코로나라는 게 도움이 되기도 해요. 민주노총도 온라인 총회 했잖아요. 온라인 총회 가능하다는 거 확인되고 있잖아요. 이렇게 노조를 만들고 몇 명만 신분을 까는 거예요. 나머지는 안 까도 돼요. 우리끼리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지. 우리 350명인데 임원진만 깔게. 이렇게 하고. 지금 간호조무사가 7만 명 넘게 활동하고 있는데, 온라인 노조 만들어서 한 500명이 가입한다고 쳐봐요. 이 사람들이 서울 시내에 있는 여러 병원에서 일하고 있으면, 서울시 병원 협회를 통해서 교섭하자고 하는 거예요. 우리 조합원 어디어디 병원에 있어 하면서요. 이렇게까지 나가자는 거예요. 기존 노조처럼 단협 100개씩 하고 그러지도 않으려구요. 기본 협약 한 10개 정도만, 뭐 ‘태움’ 하지 않고, 존댓말하고 뭐 이런 걸로요. 이렇게 모범협약을 만들고 그 모범협약이 병원으로 확산되게. 그런 실험을 하고 싶어요. 올해 포함해서 한 3년 정도 해보고 싶어요.
문제는 이렇게 노조까지 나아가려면 5000원 낼 사람이 몇 명 모일 거냐는 거에요. 어린이집 교사 모임에 3000명 있는데, 5000원 내고 올 사람이 100명 될 거냐 1000명 될 거냐 이게 관건이죠. 이런 고민을 하는 중이에요.

박상빈 : 처음 시작하는 온라인 노조 성과가 좋으면 줄줄이 사탕으로 만들어지겠네요.

박점규 : 그래서 첫 시도를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준비 중이에요. 당장 올해 중에 만든다. 이렇게 날을 정해놓고 하고있는 건 아니구요. 준비가 되면 중요한 시기에 띄울 거예요. 설립신고가 되면 바로 교섭할 거예요. 업종 교섭으로요.
일단 5000원 내는 조합원을 몇 명이나 모을 수 있을 거냐 하는 게 관건이에요. 지난주 창립총회 때 권남표 노무사 편지에도 언급됐었듯이, 어린이집 교사가 온라인 모임에 가입한 걸 자기는 노조에 가입한 거라고 얘기하잖아요. 밴드에 가입하는 것도 굉장한 용기를 내서 가입한 거라는 거죠. 근데 여기 3000명이나 있잖아요. 사실 2000명, 3000명 되는 속도가 굉장히 빨랐어요. 여긴 공짜잖아요. 그래서 여기 오는 건데, 대신 한 단계를 넘어서는 거죠. 자기 이름, 어린이집, 연락처 등 개인정보를 다 안 넣으면 우린 받지를 않으니까. 노조는 한 단계 문턱이 더 있어요. 돈 내야 하니까. 5000원이라도 매달 내야하는 건 또 다르거든요. 확 떨어질 거예요. 이 전환을 어떻게 할 거냐가 저희의 가장 큰 고민이고 과제고 숙제에요.
대신 카카오톡이랑 이메일 제보는 틀이 계속 유지되는 거죠. 상담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안 돼요. 상담과 상담을 통한 언론화, 이게 세트로 가야 하는 거죠. 가령 우리가 또 학원 강사 온라인 모임을 만들려고 하는데, 학원 강사 제보를 보도자료로 내서 학원 강사 모이세요 이렇게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야 계속 선순환되는 거니까. 카톡과 이메일 상담이라고 하는 우리가 만들어놓은 굉장히 보물 같은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온라인 노조, 온라인 공동체라는 새로운 꿈을 한 번 꿔보는 거예요.

박상빈 : 좀 중장기적인 계획인 것 같지만 온라인 노조 만들어지고 새로운 교섭 방식이 만들어지면 의미 있는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새로운 운동 방식으로 계속 만들어내시는 게 어떤 의미인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박점규 : 저희가 3월 한 달간 매주 코로나19 갑질 관련 보도자료를 냈고, 4월과 6월 두 번에 걸쳐서 직장인 1천 명 설문조사를 두 번 했고 한 번 더 할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코로나19 대응에 저희 에너지와 돈을 다 쏟아붓고 있어요. 코로나19 난민은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노조도 없고 심지어 고용보험도 없는 노동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는 걸 우리 설문조사, 제보를 통해서 확인시켰잖아요. 그러면서 기존 노조가 뭘 해야 하는지, 앞길을 밝혀주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정규직 노조의 이해와 비정규직 노조의 이해관계가 다르게 되어버린 상황이다 보니, 특히 코로나19 국면 같은 경우에는 노조 밖, 고용보험 밖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특수고용 어떡할래! 라고 난리 쳐서 정부 정책도 바꿔냈고 했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계속 떠드는 게 기존 노동운동의 지향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이야기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

박상빈 : 제보접수, 상담, 보도자료 작성에서부터 앞으로의 운동 기획 등등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계시는데, 그럼 보통 퇴근은 몇 시에 하시나요?

박점규 : 일은 오진호 동지가 밤을 다 갈아 넣어가면서 하고 있어요. 저는 훨씬 적게 하고 있어요. (웃음) 근데 일이라는 게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아침에 한 40분 정도 개랑 4km정도 매일 달리는데, 그 시간이 제일 많이 떠올라요. 보도자료 아이디어라든가 이런 거요. 제 스타일은 일이라는 게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저는 밤에 뭔가 막 떠오르기도 해요. 집에 가서도 뭔가 끄적거리기도 하고 그래요.

박상빈 : 예술가 타입이신 듯 하군요.

박점규 : (웃음) 낮에는 대충 놀기도 하고 낮술도 먹기도 하고 해요. 시간 제약을 가지고 장시간 노동을 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심지어 내일은 우리 다 같이 북한산 계곡 가서 백숙 시켜놓고 물에 발 담그면서 회의하고, 상담도 거기서 할 거예요. 노트북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뭐.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답답함이 있잖아요. 북한산 가서 수다도 떨고 놀기도 하고 맛있는 거 먹기도 하고 할 거예요. 제주도 가서 바다 보이는 카페에서 상담하기도 했어요.

박상빈 : 놀러갈 때도 일을 갖고 가시다니.

박점규 : 업무니까요. 상담도 해야 하고 이메일도 받아야 하고. 다 같이 제주도 가서 첫날은 회의하고 둘째 날은 상담하고, 펑크난 상담도 때우고 했어요. 이렇게 환경을 바꾸는 방식으로, 놀면서 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게 좋아해요.
활동가들이 에너지가 소진되면 일을 못 하잖아요. 저는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랑 술도 잘 먹고, 수다도 많이 먹고, 어디 같이 가기도 하고 해야 활동을 할 수 있어요. 저는 1년에 한 번씩은 꼭 제주도 가거든요. 그리고 일정 중에 하루는 꼭 비워놔요. 상담 안 하고 한라산 갔다 오거나 하는 시간을 갖는 거예요. 다양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거예요. 사회운동 하시는 분들이 스트레스 푸는 게 쉽지 않은데 그걸 푸는 방법을 잘 만들어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건강연대도 어디 놀러 가서 회의하자고 하세요. 제주도도 가고 뭐 어디 섬에도 가서 낚시하고 그러면서.

박상빈 : 마지막으로 노동건강연대에 한 마디 해주신다면?

박점규 : 아까도 얘기했지만, 직장갑질119 탄생의 비밀이 노동건강연대 전수경, 박혜영이라 늘 고맙게 생각해요. 저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일하다 다치고 죽을 수도 있는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곳에서 일하는데 노동조건은 좋겠냐구요. 그런 우리 사회의 최약자들과 함께하는 게 노동건강연대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노동건강연대가 없다면 약자들이 기댈 곳이 없어질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니, 노동건강연대가 힘을 더 갖게 되고, 더 지속 가능하게 잘 유지되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 약자들에게는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는 것이니까요. 노동건강연대 회원분들 주머니를 여셔서 더 많은 후원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