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와 시사실]
류한소 (노동건강연대 회원)
몇 년 전, 한 선배에게 87년의 경험담을 물어보았을 때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뭔가 역사가 만져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나. 그때 나는 ‘내 평생 저 느낌이 뭔지 모른 채로 살겠구나’하는 묘한 아쉬움과 질투심이 동시에 들었다. 그러다가 요사이 ‘역사가 만져지는 듯한 느낌이 이와 비스무리한 느낌일까?’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먼훗날 누군가가 ‘책에는 이러이러했다고 나오는데 실제로는 어떠셨어요?’라고 2020년을 겪지 못한 이가 물어볼 그 일상을 지금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우리들의 삶 전 영역에 위기를 촉발한 2020년이 역사책에 어떻게 쓰일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맨날 귀에 박히도록 듣던 ‘지구촌’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처음으로 느끼게 만들어준 해다. 또한 원래도 미래는 모르는 것이었지만 한치 앞을 더욱더 모르게 된 시점으로 남지 않을까 한다.
2019년 5월 영국 BBC에서 방영된 드라마 <Years and Years>에서 2020년을 살아가는 등장인물 또한 이렇게 말한다.
“난 뭐부터 걱정해야 할지 모르겠어. 정부는 둘째치고 빌어먹을 은행이 무서워 죽겠어. 온갖 회사들이 우리를 알고리즘 취급하고 모든 자연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잖아. IS 얘기는 꺼내지도 마. 미국도 무서워 죽겠어. 게다가 가짜 뉴스들은 어떻고. 어떨 때는 뭐가 진짜인지 헷갈린다니까.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지금도 이렇게 살기가 힘든데 30년, 10년, 5년 후엔 어떨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이 드라마는 2019년부터 2035년까지의 근미래 사회를 한 가족의 삶을 통해 6회 안에 훑듯이 보여준다. 미리 말해두자면 다이나믹 코리아에 어지간히 단련된 사람이라도 현기증이 날만큼 매우 다이나믹한 미래들이 기다리고 있다. 소위 말해 빵빵 터진다. 예를 들면 첫 회 내용이 이렇다. 재선에 성공한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중국에 핵미사일을 쏘아 4만 명이 사망하며 전 세계가 요동친다.
<Years and Years>에서는 좀비 떼와 로봇이 몰려오는 대신 권력을 가진 늙은 남자들이 전쟁을 한다. 은행은 도산하고 이 드라마를 방영하는 BBC도 도산한다. 백만 파운드를 굴리던 중산층도 몰락하여 하루 12개의 일자리로 먹고 사는 긱 이코노미의 최신판을 보여준다. 북극은 녹아버렸고, 80일 연속으로 비가 내리는 이상 기후가 지속되며, 인수공통 감염병이 창궐한다. 도시에서는 방사능 폭탄 테러가 곧잘 일어나 사람들은 방사능 피폭과 감염병 둘 다를 걱정해야 한다.
이런 혼란한 시기 영국의 총리는 비브 룩이란 사람인데 그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고, 조국의 영광된 나날을 가져오겠다고 말한다. 기업가 출신의 비브 룩은 한때 TV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야기 같은 건 좆도 상관없이 우리 집 앞의 쓰레기나 깔끔하게 치워졌으면 좋겠다’는 식의 자극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근본 없는 인물이었다. 그의 이러한 망발들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웃음거리가 되지만,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만큼 화제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시원한 돌직구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이상한 TV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유튜브를 하면서 서서히 유명세를 쌓아가던 그의 곁에는 대놓고든, 은근히든 지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만든 당에서 출마하여 지역 초선 의원에 도전하더니 야금야금 세를 불려 급기야 총리 자리에까지 오른다. 비브 룩의 감염병 대책 중 하나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난민들을 특정 ‘시설’(수용소라는 말은 반인간적이기 때문에 꼭 ‘시설’로 지칭한다)로 몰아넣어 난민의 수를 자연적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이 드라마는 올해 3월에 국내에 스트리밍되기 시작했다. 3월 코로나 대유행 시기 학교 도서관이 문을 닫아 좁은 자취방에 누워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핸드폰 속 미래가 그렇게 친숙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그렇게 폭주하던 세계는 어떻게 됐을까. 주인공 가족의 할머니는 손자 손녀들을 모아놓고 말한다. 다 너희들이 만든 세상이라고, 은행, 정부, 경제 불황, 미국, 룩 총리, 잘못된 일은 모두 다 너희들 때문이라고. 손자 손녀들은 펄쩍 뛰며 억울해한다. 안 그래도 힘들어진 세상에서 각자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는데 그게 다 왜 나 때문이냐고.
“왜인지 아니? 1파운드 티셔츠 때문이야. ‘완전 거저네’ 하고 좋아하며 사잖아. 가게 주인은 티셔츠 값으로 달랑 5펜스를 받아. 밭에서 일하는 농부는 0.01 펜스를 받겠지. 그래도 우리는 괜찮다고 생각해. 평생 그 시스템을 믿지. 난 모든 게 잘못되는 걸 봤다. 시작은 슈퍼마켓이었어. 계산대 여성 노동자들을 자동 계산대로 바꾼 게 시작이었지. 20년 전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잖니. 거리 시위는 했니? 항의 편지는 썼어? 아니면 다른 곳에서 장을 봤니? 씨근덕대기만 하고 참고 살았지. 실은 우리도 그 계산대를 좋아해.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장 볼 물건을 고르기만 하면 되니까. 계산대에 서 있는 사람과 불편하게 눈을 안 마주쳐도 되는 거야. 우리보다 적게 버는 그 여자들의 눈 말이야. 이제는 그 사람들이 없어졌지. 우리가 없앴고 쫓아낸 거야. 그러니까 우리 탓이 맞아. 우리가 만든 세상이야.”
다소 장황하고 교훈적인 내용이지만, 할머니의 입을 빌려 작가는 하고 싶었을 말을 한다. 이 드라마는 세상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그 폭주에 제동 또한 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마무리 된다.
폭주를 멈출 수 있게 하는 힘은 다양성과 연대에 기초한다. <Years and Years>의 가족은 아동부터 노인까지, 비장애인과 장애인, 퀴어와 비퀴어, 비시민권자와 시민권자, 여러 인종, 싱글맘부터 전형적인 4인 가족까지, 우리 삶의 형태가 교차하는 다양한 지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비시민권자 연인 때문에 목숨을 잃은 가족이 생겨도 그 난민의 권리를 위해 같이 싸우고 그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를 통해 견고해 보이는 세계에 균열을 낸다. 폭주하던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괴물을 치우면 또 괴물이 올 것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올 여름에 내가 참가하고 싶었던 한 학회의 주제는 ‘위기를 넘어 상상하기’였다. 코로나로 학회가 취소되었음을 알리는 이메일에는 올해는 ‘위기를 넘어’가 아닌 ‘위기의 한복판’에서 상상하자는 웃픈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해를 거듭해 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Years and Years>를 앞으로 거듭해가며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안도와 때로는 작가의 예지력에 탄복하면서.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작품들에 끌리는 이유는 그것들이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냉정한 분석이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지는 않을까. 위기의 한복판에서 다른 이와 ‘같이’ 그 너머를 상상하고 싶은 사람에게 <Years and Years>를 추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