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건강 연속기고⑬] 의학적으로 바람직한 야간·교대근무란 없다!

이주연(노동건강연대 회원, 토론토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최근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소식이 연이어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과로사 추정 사망자만 10명이 넘는다.<아래 표 참고> 코로나19가 기존의 여러 사회 문제를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택배노동자의 불안정 고용, 열악한 노동조건, 그로 인한 과로사 문제가 과거보다 더 주목받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지난 몇 달간 비대면 서비스 이용이 급증하면서 노동 강도가 증가했고,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과로 문제가 건강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코로나19 유행은 이미 장기화의 길로 들어섰고,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선호는 코로나19 유행이 종식된 후에도 쉽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0일 발표된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이후 배송 상품 개수는 26.8%, 소위 ‘공짜 노동’이라 불리는 분류작업의 분류 상품 개수는 35.8% 증가했다. 실제 택배 물동량도 작년보다 크게 증가하여, 올해 2~7월 평균 24.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택배노동자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으로 나타났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법)에 따라 과로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주당 평균 60시간을 크게 상회하는 장시간 노동이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노동 시간, 강도, 배치에 대한 규제가 더 시급한 이유이다.

 

                                         출처:  택배 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대책 마련 토론회 자료집. 경향신문 이슈 “택배노동자 잇단 사망”

과중한 업무로 인한 사망을 뜻하는 ‘과로사‘는 산재보험법에서 정하는 기준을 충족하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고 있다. 업무상 과로와 그에 따른 육체적·정신적 부담은 뇌혈관 질병이나 심장 질병을 발생시켜 사망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자살을 결심하게 하는 중요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로로 인한 질병이나 사망에 대해 산업재해 신청을 하는 경우는 여전히 드물다. 예컨대, 과로 등 직장 또는 업무상의 문제로 자살하는 노동자가 2018년 487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들 중 산재 신청자는 95명에 그쳤다. 한편, 택배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형태 종사자들은 일하다 다치거나 죽어도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인정받지도, 보상받지도 못하는 게 현실이다. 산재보험법상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택배노동자 과로사에서도 밝혀졌듯이, 보험료 부담을 원하지 않는 사업주들이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강요하거나 대필하면서 제도를 계속 악용하고 있다.
최근 택배노동자의 잇단 과로사 추정 사망에 대한 업체들의 대응에서도 과로사에 대한 얄팍한 인식이 드러났다. 한진택배는 10월 12일 과로사로 추정되는 36세 택배노동자의 사망에 대해 “김씨가 평소 지병이 있었고 배송량도 200개 내외로 적은 편이었다”고 해명하며 업무 관련성을 부인하였다. 같은 날 쿠팡 대구 물류센터에서 1년 넘게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야간조로 근무했던 일용직 노동자가 사망했다. 쿠팡측은 고인이 ‘최근 3개월간 주당 평균 약 44시간 근무했다’고 보도하면서 택배노동자 과로사대책위원회의 ‘과로사 주장’을 반박하였다.노동시간 단축을 둘러싼 정부 정책의 일관성 부족도 과로사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한편에서는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의 노력으로 과로사 인정기준이 개선되고 승인율도 높아지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부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계도기간 부여, 특별연장근로 인가 등으로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노동 시간, 강도, 배치의 규제를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현행 산재보험법에서 과로사 인정여부는 노동시간이라는 양적 측면뿐 아니라 노동의 강도와 교대근무, 야간근무 등 시간 배치를 포함하는 노동의 질에 근거해 판단하도록 한다.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52시간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업무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들에 복합적으로 노출된다면 과로사로 인정할 여지가 커지는 것이다. 특히 야간근무를 포함한 교대근무가 장시간 노동만큼이나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한다는 증거는 국내외 다수의 역학연구에서 일관적으로 밝혀졌다. 비표준적 근무시간의 건강 영향은 유방암, 심혈관질환, 대사증후군, 당뇨병, 소화성 궤양, 위험한 임신 결과의 증가, 수면의 질 저하, 피로, 집중력 저하, 관상동맥질환의 위험까지 다양하다.

쿠팡 측은 물류센터 ‘단기직 직원이 원하는 날짜, 시간, 업무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야간근로를 강요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망 노동자가 야간근로의 건강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까? 업무상 사고, 질병, 그로 인한 사망에 대해 노동자 개인을 탓하는 프레임은 여전히 견고하다.

국제노동기구는 ‘의학적으로 바람직한 (야간근로를 포함하는) 교대제는 불가능하다’고 천명했다. 기업의 이윤 혹은 소비자의 편리성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으로 관점을 전환하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장시간 노동을 줄여 적정 노동시간을 확보하고 야간근로를 포함하는 교대제를 최소화하는 것. 보건의료 영역처럼 교대제가 불가피한 직무라면 야간근로 횟수, 교대근무 사이의 휴식 시간 등을 법으로 규제하고 강하게 집행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노동시간 개선은 택배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형태 종사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업계 내 불공정한 계약 관행과 불안정 고용구조를 개혁하는 보다 근본적인 개혁과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