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중대재해법 ‘단계적 시행’ 반대한다

 

유성규(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 노무법인 참터 공인노무사)

 

12월에도 노동자들의 죽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30일에는 화물열차가 철로에서 작업 중이던 굴착기와 출동해 2명의 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지난 28일에는 음료 생산 공장 설탕 보관 창고에서 청소 중이던 협력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설탕 더미에 파묻혀 1명이 죽고 1명이 다쳤다. 모두 이번 주에 벌어진 일들이다.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가족을 잃은 이들의 통곡 소리가 세상을 뒤덮고 있지만, 그 소리가 국회 안까지는 전달되지 않는 듯하다. 그 소리가 정부 당국자들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하다.

어쩌면 이 같은 비판에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억울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의 내용과 이에 대응하는 국회의 태도를 보면, 이보다 더 심한 비판에도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억울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안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이름 아래서 논쟁하기도 민망할 정도다. 국회에서 농성하고 있는 유가족들도, 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될 노동자들과 시민들도 정부안에 모두 분노하고 있다.

이 법의 도입을 가장 앞서 주장하고 누구보다 원하는 이들, 앞으로 이 법의 혜택을 받게 될 이들이 모두 분노하는 내용이라면 더 이상 어떤 논쟁과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정부안은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그 문제점을 일일이 살펴보기 어려울 정도다. 지면의 한계 상, 부득이 문제점들 중에서 하나만 우선 살펴보기로 한다.

정부안은 이 법 시행 당시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포 후 2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며, 이 법 시행 당시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포 후 4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정하고 있다. 즉 법의 전면적 시행이 아닌 단계적 시행을 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은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서 반대한다. 필자가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에 반대하는 구체적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은 현실과 괴리된 방안이다. 이는 2019년 산업재해 발생 통계만 살펴봐도 곧바로 알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2019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업무상 사고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발생하는 업무상 사고 사망자수의 비율, ‱)은 ‘5인 미만 사업장’이 1.00,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이 0.44,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이 0.36,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이 0.31, ‘300인 이상 1000인 미만 사업장’이 0.22, ‘1000인 이상 사업장’이 0.07이었다.

즉 사업장의 규모가 작을수록 업무상 사고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수가 많았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1000인 이상 사업장’에 비해 무려 약 14.3배나 많은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로 사망했다.

따라서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은 현실과 괴리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업무상 사고로 더 많은 노동자가 죽는데,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은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법 시행 시기를 늦추자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은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거대한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 고용노동부의 2019년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따르면, 2019년 총 노동자수는 1872만 5160명이었다.

이 중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가 299만 6744명,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가 816만 6782명,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가 194만 2824명이었다. ‘10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1310만 6350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약 70%였다.

따라서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에 따르면, 이 법이 공포 후에 즉시 적용되는 노동자는 (2019년 통계를 기준으로 할 때) 전체 노동자의 약 30%에 불과하게 된다. 더욱이,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로 사망할 위험성은 ‘100인 미만 사업장’이 ‘100인 이상 사업장’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은 이 법을 업무상 사고로 사망할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2019년 통계를 기준으로 할 때) 약 70%의 노동자들에게 우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만 놓고 보더라도,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셋째,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은 위험의 외주화를 확대시키고 가속화할 위험성이 높다.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에 이 법이 시행되는 것은 법 공포 후 4년이 경과된 날 부터이고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이 법이 시행되는 것은 법 공포 후 2년이 경과된 날 부터이다.

이는 ’50인 미만 사업장’의 잘못으로 노동자나 시민이 피해를 입더라도 법 공포 후 4년까지는 해당 업체는 물론 그 업체의 원청까지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의 잘못으로 노동자나 시민이 피해를 입더라도 법 공포 후 2년까지는 해당 업체는 물론 그 업체의 원청까지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는 합법적인 면죄부를 지닌 광범위한 하청 업체 집단의 형성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원청은 어떤 의사 결정을 하게 될까?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따라서 합법적인 면죄부를 지닌 하청 업체가 존재한다면, 원청은 당연히 위험을 하청 업체에 외주화할 가능성이 높다. 하청 업체 역시 이 면죄부를 영업의 수단으로 삼아 위험을 하청 받으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합법적인 면죄부를 지닌 광범위한 하청 업체 집단의 형성은 위험의 외주화의 확대와 가속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안의 내용적 문제점들이 모두 해소되더라도,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이 유지된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어렵다. 이 점이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그렇다면, 국회가 선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정부의 단계적 시행 방안을 단호하게 배척해야 한다. 정부가 선택해야 할 길도 명확하다. 단계적 시행 방안을 스스로 철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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