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바보같은 죽음’… 안전보건공단의 황당한 체험 영상

노동자 안전교육 담당 노동부 산하기관, 홈페이지에 영상 올렸다 삭제… 결국 사과

 

노동건강연대

 

엄동설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산재 유가족들이 20일 가까이 단식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30일 노동자 안전을 책임진다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믿고 싶지 않은 게시물들이 한 번에 올라왔다.

옮기고 싶지 않은 글귀들이지만 아래와 같은 제목의 영상들이다.

▲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 내 안전보건자료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VR콘텐츠 영상을 볼 수가 있다. ⓒ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

말림 바보 같이 죽는 방법’, ‘끼임 바보 같이 죽는 방법’, ‘깔림 바보 같이 죽는 방법’, ‘질식 바보 같이 죽는 방법’, ‘추락 바보 같이 죽는 방법’, ‘충돌 바보 같이 죽는 방법’

 

‘동영상 VR 콘텐츠’란 게시물을 클릭해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나온다.

“‘바보 같이 죽는 방법 VR 시리즈’ ‘어쩌면 당신의 머리 위에도 있을지 모르는 그것.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VR로 체험해보세요. 바보 같은 죽음… 당신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 안전보건공단의 VR 영상 설명 문구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바보 같이 죽는 방법 VR 시리즈. 어쩌면 당신의 머리 위에도 있을지 모르는 그것.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VR로 체험해보세요. 바보 같은 죽음.. 당신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 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그간 안전보건공단은 안전교육에 사용되는 콘텐츠를 제작해 기업과 노동자에게 제공해왔다. 그 관점은 대부분 노동자 책임론에 근거해서 제작되어 왔다. 노동자 개인이 실수해서, 부주의해서, 졸아서, 전날 술을 마셔서, 보호구를 벗어서 노동자가 죽었다는 것이다.

수년 전에도 노동건강연대가 공론화하여 사회적 문제가 됐던 안전공단의 영상이 있다. (관련 영상 : 노동부의 개념 없는 산업재해 광고)

안전보건공단, 정말 이래도 되나?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에 묻고 싶다. 노동자의 산재 사망에 대해 노동자 개인의 책임이라고 교육해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경제단체들, 안전전문가들, 안전교육 전문단체라는 곳들이 고용노동부, 안전공단 같은 국가의 예산을 받아 가며 기업이나 공장마다 교육해 왔다. ‘노동자 당신이 정신을 차려야 다치지 않는다’, ‘노동자가 실수해서 사망사고가 일어난다’고 말이다.

개인 책임론은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하청·일용직 누구에게라도 겨눌 수 있고, 공장의 노동자도 사무직·서비스 노동자도 피해갈 수 없는 만능의 교육론으로 활용돼 왔다.

국가는 안전 정책 철학이 없고, 기업은 안전시스템을 갖출 동기가 없고, 정부 당국은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 그러니 개인 책임론만큼 활용도 높은 교육 콘텐츠가 없었다.

2018년 12월,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 이후 그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대통령을 만나고, 정부 책임자들이 사과를 하고, 해당 공기업에 원청의 책임을 묻고자 하는 국민들의 분노를 본 다음에는 어떤가.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개인 책임, 노동자 부주의로 사망의 책임을 돌리는 안전교육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노동건강연대는 책임 있는 관계자의 해명을 기다렸지만 30일 오후 5시 현재 별도의 해명 없이 해당 영상은 모두 내려간 상태이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이 사태를 외주 제작사의 탓으로 돌리거나 홍보 부서의 잘못으로 돌리지 말고 책임감 있는 해명을 해주길 바란다.

 

안전보건공단 해명 자료 배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한편 안전보건공단은 이날 오마이뉴스 기사가 나간 직후 해명 자료를 통해 사과 입장을 밝혔다.

안전보건공단은 “이 영상은 2013년도 칸 국제광고제에서 5개 부문 대상을 수상한 호주 멜버른 철도공사 사망사고 방지 캠페인(‘바보 같이 죽는 방법 21가지’)의 제목을 참고해서 제작했다”면서 “제작 의도와는 다르게 적절하지 않은 제목으로 산재 피해자 및 가족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료 제작 시 신중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고문입니다.  →→ [오마이뉴스에서 기사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