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01 : 코로나19는 노동자에게 어떤 상흔을 남기고 있는가?]

답답해서 직접 연구해본, 코로나19가 노동자 건강권에 미친 영향

노동건강연대

코로나19 대유행은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 사회 모든 곳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회 모든 부문이 방역을 위해 조정되고 있고, 당연히 노동 현장도 코로나19라는 충격을 피해갈 수 없었다.

노동자 건강권의 사회적·정치적 결정요인에도 코로나19는 큰 영향을 미쳤다. 고용불안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약해져 있던 노동자의 교섭력은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더욱 약해졌다. 노동조건이 악화되었고, 고용 불안정성도 더 커졌지만, 노동자 건강과 관련된 법·제도는 코로나19 방역이라는 우선 과제에 밀려났다. 노동자 건강 보호에 필요한 행정 조치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근로감독의 양과 질이 저하되었다. 노동-자본 간 권력의 불균형 역시 더욱 심해지고 있다. 경기침체를 극복한다며 정부가 ‘한국형 뉴딜’, ‘4차 산업혁명’에 속도를 내고 있는 사이, 노동조합 활동은 위축되고 있었다. 반면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는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의 개혁, 상병수당 도입 등 사회보장 체계 개혁 논의를 촉발한 측면도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 중 ‘노동자 건강권’ 보호 관점을 견지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방역과 노동은 분리할 수 없는 것임에도, 모든 공적 자원을 방역에 투자하느라 있는 제도도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때문에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중대재해가 전년과 다름없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실은 근로감독의 양과 질 저하와 관련 있을 것이다. 실제로 2020년 4월 29일,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건설현장에서 불이 나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치는 중대재해가 발생했는데, 당국의 산업안전 근로감독 약화가 한 가지 기여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코로나19 시기 노동자 건강권은 전반적으로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발견은 노동자 건강권 운동 진영이 이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지점들을 보여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비명은 곳곳에서 들려왔다. 콜센터와 물류창고, 요양시설 등에서는 노동자가 집단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여행업, 숙박업, 돌봄 등의 업종에서는 무급휴직을 강요당하고 해고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물류업 등에서는 과로로 인한 사망 소식도 들려왔다. 경기침체 때문에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던 중대재해도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노동자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방역 당국은 바이러스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코로나19 통계에서 확진자의 직업, 일하는 곳에 관한 정보는 오직 ‘집단’ 감염이 발생했을 때에만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고용 유지 대책과 사업장 방역 정책을 찔끔찔끔 풀어냈지만, 실효성 있는 조치는 아니었다.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려면 현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관련 정보는 고용노동부 하드디스크에 잠들어 있는 것일까? 노동자의 비명이 왜 끊이지 않는지, 어떻게 해야 멈출 수 있는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건강연대는 재단법인 ‘숲과나눔’의 지원을 받아 직접 현장의 노동자를 만나고 이를 기록하기로 했다.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와 회원들은 어떠한 현장을 찾아 누구를 만날 것인지 정하기 위해 최근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충격은 이미 취약한 조건에 처해있던 노동자에게 더 큰 피해를 줄 것이라는 가설을 기반으로 어느 직종을 들여다보아야 할지 고민하였다.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직종을 선정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직접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지, 코로나19 이후 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으나 기존 취약성은 그대로인지, 향후 변화할 노동환경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등을 생각했다. 그리하여 콜센터, 물류센터, 청소업, 요양돌봄업 총 네 가지 직종을 탐구 대상으로 결정했다.

이어서 해당 직종의 ‘무엇’을 ‘어떻게’ 조사할지 토의했다. 단순히 직종별 노동조건과 코로나19가 그에 미친 영향을 찾아보는 것을 넘어, 코로나19가 노동자 건강권을 결정하는 사회적·정치적 결정요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탐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본의 권력관계, 사회보장체계, 노동시장에서의 지위 등 보다 거시적인 조건들까지 고려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코로나19는 노동 현장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콜센터 노동을 살펴보니 코로나19 방역조치의 일환으로 도입된 재택근무가 한층 강화된 노동통제 장치로 활용되고 있었다. 코로나19 극복 이후에도 재택근무 등 노동공간의 유연화가 일상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새로운 노동환경과 기술로부터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물류센터 역시 4차 산업혁명 담론을 비롯하여 기술 발전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화려한 수식어를 받치고 있는 건 종전과 다를 바 없이 착취에 시달리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였다. 물류센터 노동자는 코로나19 집단 감염과 산업재해의 위험으로부터 아슬아슬하게 살아남고 있었다.

한편 코로나19 이후 ‘필수노동’으로 일컬어지며 돌봄노동의 중요성이 재조명 되었지만, 요양돌봄 직종의 노동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노동자 보호조치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감염위험과 고용불안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등 모든 것을 노동자 개인이 부담했다. 이는 돌봄 서비스를 받는 시민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의 민간 공급 방식으로 과연 돌봄노동의 공공성 확보가 가능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청소 직종은 노동건강연대가 조사한 네 직종 중에서 코로나19 영향이 가장 비가시화된 영역이다. 청소노동자는 이전에도 고용불안, 낮은 임금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업무량이 증가하면서 노동환경이 더 악화되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고령의 여성노동자인 까닭에 노동환경보다는 계약 연장이 더 중요한 이슈였다. 고용에 대한 걱정이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꺾고 있었다. 현재의 취약성이 지속되거나 악화되지 않게 하려면 고용과 건강권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안전망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 분명했다.

코로나19가 이들 네 개 직종에 미친 영향은 이어지는 글에서 상세히 기술된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들은 현장 노동자를 만나고, 논문과 보고서를 찾으며 보냈다. 시간과 일손의 한계 때문에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었던 점이 아쉽다. 그러면서도 ‘이런 조사는 정부 기관에서 해야 하는데’라는 의문이 연구 사업을 진행하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미흡한 점이 많은 연구지만, 시사점도 많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남긴 충격이 코로나19 극복 이후 노동 현장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 그 상처가 치유 불가능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동자 건강권 운동이 어떤 지점을 건드려야 하는지에 대해 옅은 밑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노동건강연대는 이번 활동을 의미 있는 운동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2021년에도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