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01 : 코로나19는 노동자에게 어떤 상흔을 남기고 있는가?]

콜센터 노동자가 보여준 재택근무의 미래

박한솔 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입사 동기는 60여 명. 계약기간을 온전히 채우고 퇴사하는 날, 7명만 남아있었다. 인터뷰에서 들은 이 단순한 사실이 콜센터 노동환경을 설명하는 어떤 묘사보다 적나라했다. 콜센터는 비대면 서비스 확대에 따라 시장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지만, 콜센터 노동자는 여전히 불안정한 고용과 높은 노동강도로 인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고 비대면 업무가 활성화되면서 콜센터의 중요성이 증가했다. 하지만 그에 걸맞는 노동환경의 개선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고용불안이 심해지고 인입량이 폭증해 업무량과 노동시간이 늘어났으며, 노동강도가 세졌다. 응대할 수 없을 정도로 인입량이 증가했지만, 회사는 기존의 성과 평가제를 고수하면서, 들어오는 전화를 다 받지 못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겼다. 대기시간이 길어지면서 강성 민원이 증가했지만, 고객의 분노를 감당하는 것은 온전히 노동자의 몫이었다. 몇 차례에 걸친 집단감염에도 불구하고 병가와 연차 사용은 여전히 자유롭지 않았고, 회사는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보다 성과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 두 가지 쟁점이 있다. 하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콜센터 방역지침이 노동자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콜센터 노동자를 통해 한국 사회 재택근무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이지 못한 콜센터 방역지침

휴게실 폐쇄·이석 제한 등

노동자 통제로 이어져

 

콜센터 집단감염이 연달아 발생한 뒤 정부가 내놓은 방역 대책은 실효성이 없었다. 2020년 3월, ‘직장갑질119’에서 콜센터 노동자 622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콜센터 노동자 10명 중 6명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 정부의 지침이 콜센터 노동환경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방역 당국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전해지는 지침은 탁상공론이지 않나 싶어요.”

‘상시 마스크 착용’은 상담업무를 하는 노동자가 따르기에는 불가능한 조치였다. 사업장 점검이 이루어지는 날이면 사내 메신저로 공지가 내려왔다. 보여주기 식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띄어 앉기를 했다. 콜센터 환경개선에 드는 비용 지원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비용 일부를 지원해도, 위탁계약 관계에서 도급사가 나머지를 부담하지 않으니 시설개선을 이루기 힘들었다. 코로나19 이후 칸막이 설치, 소독제 구입 등 방역 관련 지출이 생겼지만, 도급사의 추가 지원은 없었다는 증언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은 환경개선을 통해 노동자의 부담을 덜어주기보다는 통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방역지침을 수행했다. 이를테면 사업장 사정에 따라 접촉전파가 일어날 수 있는 다중이용공간을 폐쇄하라는 지침은 바로 휴게실 폐쇄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쉴 수 있는 대안 공간은 마련되지 않았다. 휴게실이 사실상 식사 공간을 겸하고 있던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콜을 받는 동료 옆자리에서 식사를 해야 했다. 이는 오히려 비말전파를 높이는 환경이다.

휴식을 취하거나 화장실에 다녀오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이석’ 역시 제한되었다. 심한 경우 휴무일 일정을 보고하도록 노동자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임의로 인원을 할당하여 재택근무로 전환했고, 전환이 불가한 노동자는 다른 센터로 전환 배치하거나 해고했다. 모든 조치에는 방역이라는 정당한 ‘말’이 따라붙었다.

콜센터 방역지침의 현실성과 실효성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조치는 계속되고 있다. 작년 11월, 대전시는 콜센터 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 미착용 근로자에게 10만 원 이하, 사업장에는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대전시에 위치한 콜센터 137개소에 종사하는 노동자 1만 7725명이 해당 조치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 밀집도가 높고 비말이 많이 발생하는 위험한 환경이라는 것을 알면서 ‘자발적으로’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노동자가 과연 있을까? 노동자에게 부과되는 과태로는 과연 무엇을 징벌하기 위한 것일까? 업무 특성과 노동자의 건강권을 고려하지 않은 지침이 강제되면서 책임은 개인에게 전가되고, 노동자 통제는 심화되고 있다. ‘방역’과 ‘노동자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있는 셈이다.

 

실시간 감시 · 시간 외 노동

효율성 중심의 재택근무 논의

 

콜센터 노동자의 모습으로 미루어 본 한국 사회 재택근무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일부 콜센터는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기업은 재택근무 노동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더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했다. 수시로 휴식·이석 체크를 하고, 업무시간 외에도 일하게 되는 구조를 방치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라 재택근무에 들어간 노동자도 같은 문제를 겪었다.

재택근무 중인 콜센터 노동자는 업무시간과 휴게시간이 구분되지 않아 더 높은 강도의 노동을 견뎠고, 실시간 감시 상황에 놓여있었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여성 노동자는 업무와 돌봄 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부담까지 지게 되었다.

“재택근무를 하다가 후처리[통화 이후 고객과의 상담 이력을 남기는 일], 이석 시간이 길어지면 ‘△△씨 지금 뭐해요?’하고 바로 전화해요. (관리자) 눈에 안 보이니까 더 심하게 관리를 하는 거죠.”

재택근무가 노동자 감시, 통제 강화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적절한 규제가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간 고용노동부가 배포한 재택근무 가이드라인은 사용자 입장에서 필요한 ‘재택근무 실시 방법’, ‘복무 관리’, ‘비용 지원’ 같은 내용이 중심이었다. 실시간 감시 체제에 놓일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진 반쪽짜리 가이드라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로나19 이후 근무 형태는 이미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작년 9월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국내 100대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이미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다는 비율이 88.4%였으며, 코로나19 해소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활용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비율은 53.2%로 절반이 넘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재택근무가 확대될 경우,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재택근무에 관한 모든 논의는 업무 효율성에만 집중되어 있고, 여기에 노동자의 관점은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 특성 고려한 방역 가이드라인

재택근무 노동자 안전망 필요

 

효율만 따지는 재택근무 논의는 결국 노동자 통제로 이어진다. 방역도 마찬가지다. 개인에게 책임을 오롯이 전가하는 방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지난 10개월간 콜센터 노동자들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확인했다. 지침을 섬세하게 설계하지 못하면 취약한 사람이 부당한 책임을 떠안게 된다. 더 약한 사람이 더 많은 부담을 지는 상황을 막으려면 이제라도 업무 특성을 고려한 방역지침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노동자 당사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동시에 재택근무를 확대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실시간 감시, 휴게시간 미보장 문제 등 노동 통제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