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01 : 코로나19는 노동자에게 어떤 상흔을 남기고 있는가?]

감염병의 시대, ‘혁신물류산업이 작동하는 원리

박상빈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양적 성장과 노동자 건강 악화

코로나19가 불러온 물류산업의 특성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외부의 충격은 물류 산업 자체의 양적인 ’성장’과 노동자 건강의 ’악화’라는 특징적 현상을 만들어 냈다. 국내 대표 물류기업인 CJ대한통운은 2020년 3분기까지 95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이는 2019년 당기순이익 508억 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이며, 2020년 연말까지 순이익은 더 커질 전망이다. 쉴 새 없이 돈이 벌리는 동안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은 극한의 위험에 처했다. 2020년 2월부터 11월까지 CJ대한통운 소속 택배와 물류센터 노동자 6명이 가중된 업무를 견디지 못하고 과로로 사망했다. 쿠팡, 한진택배 등 다른 기업까지 더하면 물류업에서 과로사한 노동자는 15명에 이른다(택배연대노조 자료 제공). 지난 5월에는 이른바 ‘혁신 물류기업’ 쿠팡의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건이 벌어졌고, 이는 노동자 자신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지역사회에 심각한 건강 문제를 일으켰다.

양적인 성장과 노동자 건강 악화라는 두 측면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것은 이 산업을 둘러싼 복잡성을 보여준다. 방역지침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비대면·비접촉 경제활동을 촉진시켰고, 이로 인해 노동강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현재 물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겪고 있는 고통은 기존 물류산업의 고유한 고용형태와 노동환경, ‘혁신’으로 포장된 물류산업 내 경쟁 강화, 경기 침체로 인한 노동 공급 증가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하여 작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의 이면, 사람을 쓰고 버리는 산업

일회용 노동자의 규모 파악 어려워

 

2010년대 들어 유통과 물류가 결합하면서 수요를 예측해 물류를 관리하고, 새벽배송, 익일배송, 신선식품 배송 등 소비자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배송 서비스를 전략적 무기로 삼는 이른바 ‘혁신’ 물류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쿠팡으로 대표되는 이들 물류기업은 보관과 적재, 상차와 하차를 주요 업무로 삼던 물류센터에 분류와 포장 업무를 추가했고, 물류의 회전 속도를 더욱더 높여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구성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단순노무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류를 하역, 적재, 분류, 포장하는 노동자는 한국표준직업분류 상 ‘단순노무 종사자’에 속한다. 고용형태는 일용직 혹은 임시직이 대다수다. 이들에겐 특별한 기술이나 학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수많은 노동자가 알바몬, 알바천국 등 구직 사이트를 통해 하루 만에 입직하고 별도의 채용 절차나 직무 교육 없이 바로 업무에 투입된다.

물류센터 건설에는 자본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는 데에도 비교적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기업은 이미 많은 자본을 투자한 상태이기 때문에 유동적인 물류량에 대응하기 위해 적절한 설비와 체계를 갖추기보단 일시적으로 노동력을 추가 투입하는 방법을 택한다. 일용직 노동자는 조직력이나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고, 기업이 장기적 책임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며, 관리하기 쉽다. 이러한 이유로 물류센터 노동자의 대부분은 일용직 혹은 임시직 단순노무 노동자로 채워진다.

물류산업이 등장한 이래로 물류센터, 물류 터미널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규모나 구성, 고용형태가 정확하게 파악된 적은 없다. 쿠팡 부천2센터(신선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고용형태가 파악된 것도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건이 발생한 뒤 역학조사 덕분이었다. 부천시의 설명에 따르면, 해당 물류센터에서 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2.67%에 불과했다. 3,673명의 노동자 중 2,591명이 일용직 노동자였고(70.54%), 984명이 3개월 혹은 9개월의 단기 계약직 노동자였다(26.79%).

 

물류량에 따라 노동강도와 시간이 정해져

화물중심의 노동환경이 코로나19 감염위험 높여

 

물류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은 물류량에 따라 결정된다. 택배 물류 터미널의 경우, 하루에 들어오는 화물을 대부분 당일에 처리해야 해서 화물을 전부 분류하고 상차하기 전까지는 퇴근할 수 없다. 근무 중 임의로 퇴근하면 그날 일한 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연장근로가 강요되는 셈이다. 통계청의 2019년 지역별 고용조사를 살펴보면, 운수창고업의 주당 노동시간이 모든 산업 중에서 가장 길었다. 직업별 장시간 노동자 비율 역시 16.2%로 1등을 기록했다. 언론사의 기사에 드러난 택배 물류 터미널의 일일 노동시간은 약 12시간에서 14시간에 달했다.

쿠팡 물류센터의 경우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24시간 3교대로 돌아가도록 되어있어 연장근무를 포함해도 노동시간은 하루 10시간 내외이다. 다른 곳에 비해 노동시간은 약간 적지만, ‘UPH(Units Per Hour: 시간당 처리한 물품의 수)’라는 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 노동자를 관리한다. 노동강도는 극에 달한다. 상대평가에 기반한 이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저성과자를 만들어내고, 평균 UPH 기준을 상승시킨다. 관리자는 평균 UPH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한 노동자를 중앙방송으로 지목해 업무 속도를 높이라고 독촉한다. 중간 관리자들 역시 물류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UPH를 끌어올리라고 소리치는데, 폭언과 인격모독도 서슴지 않는다. UPH가 낮은 노동자는 하루에도 수차례 집품 업무에서 포장 업무로, 포장 업무에서 리빈(재분배) 업무로, 리빈 업무에서 집품 업무로 옮겨진다.

이러한 관리 방식은 쿠팡 부천 2센터(신선센터)의 집단 감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언택트 소비’로 물류량이 증가했고, 증가한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일용직 노동자가 많아졌다. 동일한 공간에 더 많은 노동자가 일하게 되면서 밀집도가 높아졌지만, 환기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무관리 시스템에 따라 이 업무 저 업무를 오가며 일하다 보니 한 명의 노동자가 접촉하는 동료 노동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번졌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쿠팡의 ‘혁신적인’ 노무관리가 노동자의 감염위험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한 것이다.

 

산업 성장세와 맞물려 실직 노동자 유입 증가

물류 회전 속도 개선 없이는 언제든지 집단 감염 발생

 

코로나19가 불러온 경기침체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건강 위험을 개선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일자리를 잃거나 무급휴직 중인 노동자, 매출이 급락한 영세 자영업자 등이 소득을 얻기 위해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시장으로 꾸준하게 진입 중이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렇게 노동력 공급이 보장되니, 기업은 고강도·장시간 노동에 의존하는 노동환경을 개선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물류기업 간 강화된 경쟁 역시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쿠팡이 익일배송과 새벽배송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자 마켓컬리, 신세계 등의 기업들도 잇달아 빠른 배송을 무기로 삼으면서 경쟁이 심화되었다. 앞서 말했듯 물류의 회전속도를 단기간에 급속히 끌어올리는 전략의 핵심은 새로운 기계설비 도입이나 기술혁신이 아닌, 단순노무직 노동력을 극한까지 쥐어짜내는 데에 있다. 기업 간 속도 경쟁이 노동자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로나19 감염 문제도 마찬가지다. 물류센터 노동은 열악한 환경, 강한 노동강도, 강한 노동 통제 등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이는 물류를 입고, 분류, 적재, 출고하는 그 노동의 본질에 내재된 특성이 아니다. 물류의 회전 속도를 높여야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물류센터의 기본적인 수익 구조로 인해 나타나는 특징이다. 밀려들어오는 물류량에 맞추어 노동자를 몰아세우는 구조가 유지되는 이상 노동환경 개선은 어렵다. 이러한 환경이 바뀌지 않으면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서 제2, 제3의 집단 감염이 발생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