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02 : 2021 노동자건강권 운동 전망]

2021 무엇을 할 것인가?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노동자사망 문제의 구조적 원인

 

한국의 노동자 안전과 건강 보장을 위한 체계는 법 제도, 행정 인프라, 주체의 권리, 법 제도 불이행시 처벌 수준 등 많은 영역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산재사고 사망률이 OECD 국가 평균에 견줘 두세 배 이상 높은 현실은 그러한 체계가 작동한 결과의 일면일 뿐이다.

법 제도 측면에서는 제조업, 정규직, 대공장 중심의 법체계가 변화하는 산업 구조, 고용 형태, 기업 간 협력 구조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적극적으로 진행되는 ‘위험의 외주화‘ 현실에 적절한 규제 체계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을 보호 대상으로 하는 법 제도 체계 역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사회 변화와 노동-자본 간의 권력관계 변화로 기존의 고용-피고용 관계, 사용자-노동자 관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노동자 안전보건 보장 법체계는 그러한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자 권리 보장의 한계 역시 많이 지적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노동자의 알 권리, 참여할 권리, 위험작업을 중지할 권리 등을 보장한다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러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어렵다.

법 제도뿐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법 제도가 돌아가게 만들고 기능을 하게 만드는 체계 역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법적 억지력을 가지기 힘든 처벌 수준은 이미 많은 부분 공론화되었다. 법 제도가 있으나마나, 법을 어겨도 처벌 수준이 낮은 현실에서 법 제도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법 제도를 집행하는 행정 인프라의 취약성 역시 심각하다. 노동자 안전과 건강 보장을 위해서는 행정 기관의 사업장 지도, 감독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한국의 사업장 지도, 감독 인력은 매우 부족하다. 인력 부족뿐 아니라 지도, 감독의 질 역시 문제여서 지도, 감독 기능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보기 힘들다.

사업장 수준에서는 사업주, 노동자가 법 제도를 준수하도록 만드는 전문적, 기술적 지원을 담당해야 할 안전보건 서비스의 질 문제도 심각하다. 작업환경측정, 건강진단 등 기본적인 안전보건서비스의 공급량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서비스의 질은 늘 문제가 되고 있다. 작업환경측정, 건강진단 등 기본적인 서비스 외에 좀 더 높은 수준의 안전보건서비스(건강 증진, 안전보건 컨설팅 등)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공급이 미흡한 상태이다.

 

운동의 성과와 한계

 

이와 같이, 구조적이고 다층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현실에서 ‘위험의 외주화’와 관련된 사회적 문제의식이 커지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2019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은 위에서 언급한 문제 중,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거둔 ‘일정한 성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김용균법에 김용균이 없다”는 비판이 있는 것처럼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 하지만 하청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도 원청 사업주에게 책임이 있으며, 위험한 작업은 하청을 주기보다는 원청이 직접 행하는 것이 좋다는 법 정신이 일정 정도 구현된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근로기준법상 사용-종속 관계를 넘어 다양한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도 최종적으로 노동을 사용하여 이익을 얻는 이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진전이 있었다.

이에 더해 노동자 생명과 건강 보장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과 경영 책임자, 이를 방조한 공무원을 강력히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또한 내용에 아쉬움은 크지만 일단 법 제정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이렇게 되면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체계로 법 제도 체계는 어느 정도 틀을 갖추게 될 것이다. 물론 이 법 제·개정에도 불구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원천적으로 막고, 플랫폼 노동자도 보호하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의해 실제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법 제도 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향후 이러한 영역에서 법 제도 개혁에 대한 사회운동의 동력은 상당 부분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에 제·개정된 법의 효과를 시간을 두고 평가해 보자는 의견이 다수를 이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 안전과 건강 보장을 위한 사회운동의 다음 전략적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제·개정된 법안이 현실에서 실제 작동하는지 감시하고 모니터링하며 문제 제기하는 것을 제외하고 어떤 전략적 목표를 제시하고 운동할 수 있을까?

다음 목표는 독립적 노동자 안전 건강 보장 정부 기구의 설립과 노동자 권한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와 프로그램 실험이 되어야 한다.

현재 정부의 노동안전보건 조직은 노동부의 1국과 한국산업안전공단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조직 구성으로는 제조업과 건설업 사업장에 대한 행정과 기술 지원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현재의 노동부는 노사 관계를 기본으로 한 행정을 수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어서 근로기준법상 노사관계를 벗어나는 영역을 행정 영역으로 포괄하는 데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 노동자 안전과 건강에 관한 정부의 감시, 감독 기능은 지방 노동청에서 근무하는 산업안전보건 담당 감독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현재 산업안전보건 담당 감독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사업장 지도, 감독의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로 산업안전 감독관에 의한 지도, 감독이 대부분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한 조사와 처벌에 집중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예방적 지도와 감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감독관의 수적 부족과 더불어 조직체계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운영의 전문성을 확보할 만한 조건을 확보하지 못하여 사업장 지도 및 감독에 있어서 전문성과 질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독립성· 전문성 부족한 정부와 노동의 역할

 

새롭게 제·개정된 법 제도가 기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법 제도는 있으되 지키는 사람은 없고 법 제도는 법전에만 있는 현실이 개선되기 힘들다. 정부의 노사관계 정책, 행정과 독립적으로, 전문성을 가진 기술 관료들이, 진정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만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 활동하는 정부 기구의 설립이 꼭 필요하다.

더불어 현재 산업안전보건위원회와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근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자 참여, 결정 체계 역시 근본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사업장 내 산업안전보건위원회는 노동자 참여, 결정 구조로 매우 중요한 거버넌스 체계이다. 하지만 위원회의 구성, 논의 안건의 범위, 권한 등에 있어 많은 제한이 있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과 관련된 사항은 실제 노사가 공동 결정하고 집행하는 거버넌스 체계가 될 수 있도록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긍정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비판이 존재하고 있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개혁하여 서구 여러 나라에서 도입, 실행하고 있는 ‘노동안전보건 대표 제도’ 도입 등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 시간을 가지고 노동자 건강, 안전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업장 내 노동자 측 실행위원을 제도화하는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나 다른 노동자 조직 등 ‘집단적’인 형태로만 노동자 권리를 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을 넘어 노동자 개개인이 가지고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역시 개발하고 확장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운동적 측면에서 더 큰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부분은 이러한 정책 과제 혹은 전략적 목표와 관련된 것이기보다는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매개로’, ‘어떻게’, ‘누구와 함께’ 운동을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간 ‘위험의 외주화’ 저지 운동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은 반복되는 후진국형 ‘산재사고 사망’을 매개로, ‘시민’에게 관련 사안의 부당함을 알려 시민의 공분을 바탕으로 시민의 힘으로 관련 입법을 쟁취하는 형태로 운동을 전개하여 왔다.

하지만 독립적 노동자 안전 건강 보장 정부 기구의 설립과 노동자 권한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와 프로그램 도입을 위한 운동은 기존의 방식과 주체로 진행할 수 있을까? 이를 사회운동으로 만들어 내고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10년 혹은 20년에 대한 기획이 필요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