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소식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전세계 노동자와 시민이 건강과 생계의 위험을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방역정책에 노동자 건강권 관점이 포함된 경우는 많지 않다. 코로나19 위기가 드러낸 다양한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해 어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한가? 노동조합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현재진행형인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주연 회원이 현지 상황을 소개하는 글을 보내주었다. 캐나다의 상황과 우리의 상황을 비교하며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원고는 2020년 12월 초 시점에서 작성되었다.

 

캐나다 보건의료 노동조합의 코로나19 대응

이주연(회원, 토론토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사과정)

 

캐나다 온타리오주 보건의료 노동조합의 싸움

코로나19 유행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노동건강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는 한국 팬데믹 대응에서 ‘노동자 건강권’ 관점을 요구해왔다. 노동자 건강권 관점이란 일터를 감염의 중요한 경로로 관리⦁규제하고 노동자들의 건강과 안전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건강권 관점은 팬데믹 대응의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위기 대응 거버넌스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검증된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신종감염병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건강연구소 & 의료연대본부 2020: 8).

이 글은 『노동과건강』 97호에 이어 캐나다 온타리오주 보건의료 노동조합의 팬데믹 대응 사례를 소개한다. 캐나다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장기요양시설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2020년 12월 8일 현재 장기요양시설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입소자 9,004명, 종사자 3,522명이며, 사망자는 입소자 2,326명, 종사자 8명으로 집계되었다. 온타리오주 전체 확진자의 10%, 사망자의 61%가 장기요양시설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장기요양서비스의 민영화, 영리화, 분권화와 그에 따른 만성적인 인력난, 서비스 질 저하, 저임금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불안정 고용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근본적인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구조적 맥락에서 팬데믹 유행 초기 보건의료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낮은 수준의 안전장치인 개인 보호장구 지급조차도 원활하지 않았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2019년 3월 보건의료노동자를 위한 개인 보호장구 지급에 관한 시행령(Directive #5)을 공표하였으나, 시행령의 범위와 내용,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여러 노동조합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보건의료노동자를 대표하는 네 개 노조는 2020년 4월 7일 온타리오 주지사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시행령 개정을 요구하였다. 개정 전 시행령은 개인 보호장구 지급 대상에 정규간호사만 명시하고 있어 병원과 장기요양시설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 등 많은 보건의료노동자를 제외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행령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단일 노조(간호사노조 Ontario Nurse Association)에만 자문을 구했다는 점이 중요한 문제로 지목되었다. 이후 간호사노조를 포함한 다섯 개 노조는 공동으로 시행령에 대한 위헌 법률 심판을 청구하였고, 보건부에도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외에도 주정부를 상대로 팬데믹 대응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N95 마스크 지급을 위해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요구에 온타리오 주정부는 개인 보호장구 지급에 관한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으로 응답하였다. 10월 5일 발표된 개정 시행령은 이송원, 간병노동자, 요양보호사, 환경/미화팀 노동자 등 환자 진료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는 비 의료전문가를 ‘보건의료노동자(health care worker)’라는 용어로 재정의하였다. 이들은 환자 진료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보건의료체계의 작동을 위한 필수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일선 노동자임을 명시한 것이다. 개정 전 시행령은 이들을 의사, 간호사를 지칭하는 ‘보건의료노동자’와 구분지어 ‘기타 고용인(Other Employee)’으로 분류했었다.

개정 전 시행령은 보건의료노동자에 대한 N95 마스크 지급을 권리로써 보장하지 않았다. 개정된 시행령에서 의료전문가는 모든 환자 진료에 앞서 N95 마스크의 필요 등에 대한 일선 위험 평가(Point-of-Care Risk Assessment, PCRA)를 시행해야 한다. N95 마스크는 일선 위험 평가에서 필요성이 인정되면 의료전문가와 보건의료노동자 모두에게 반드시 제공하도록 했다. 개정 전 시행령은 고용주가 N95 마스크 지급 요청이 “불합리하다(unreasonable)”고 판단하면 요청을 거부할 수 있었지만,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고용주는 개인 보호장구 지급에 대해 더 이상 자의적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었다. 한편, 보건당국이 감염병 집단발병(outbreak)을 선언한 시설의 경우, 보건의료노동자가 확진자나 의심 환자와 2미터의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의료전문가의 일선 위험 평가 없이도 N95 마스크를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 보호장구는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보건의료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낮은 수준의 안전장치이다. 개인 보호장구 지급을 두고 노동조합이 싸워야 하는 상황 자체가 비극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경험은 다양한 직군의 보건의료노동자를 대표하는 여러 노동조합이 연대를 통해 정부의 팬데믹 대응을 감시하고 안전보건 표준을 성공적으로 개선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간병노동자나 환경/미화팀 노동자 등 상대적으로 노동조합 가입이 어려운 불안정 고용 보건의료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목소리를 냈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선 노동자의 현장 지식과 의견이 노동조합을 통해 주정부와 보건당국의 의사결정에 충분히 반영되어 보다 효과적인 팬데믹 대응이 가능했다.

 

온타리오 주정부에 근본적 개혁을 촉구

온타리오주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지적해온 장기요양서비스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팬데믹 유행 초기 보건의료노동자에 대한 개인 보호장구 지급이 시급한 과제로 노동운동의 동력을 모았다면, 이제 노동자 건강권 운동은 충분한 보건의료 인력 보장과 서비스 질 개선을 중심으로 하는 장기요양체계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개혁의 길은 순탄하지 않을 것 같다. 11월 초 온타리오 주정부는 요양보호사(Personal support worker, PSW)의 또다른 하위 직종을 만들어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주정부의 계획이 기존 보건의료노동자의 고용과 노동환경 문제를 외면한다는 점, 그리고 전문성 없는 저임금 인력을 양산해 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2024년까지 입소자당 하루 평균 4시간의 직접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장기요양 진료 표준을 발표했지만 (현재 평균 2시간 45분), 인력이나 예산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황이다.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노동자 건강권 운동은 공중과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정부와 기업을 견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가 위기를 표면에서 봉합하려는 손쉬운 선택을 내리려고 할 때, 위기가 드러낸 여러 사회 문제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하도록 대안을 제시하고 압력을 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