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슈퍼히어로, 프랑스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직면한 현실

류한소 (노동건강연대 회원)

(좌)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거리 화가 FAKE가 만들어 배포한 이미지를 토대로 그려진 벽화. 제목은 슈퍼 간호사(Super Nurse)이다.

(우) 영국의 유명화가 뱅크시가 그려서 한 병원에 기증한 그림. 소년은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을 제쳐두고 그것들보다 더 큰 ‘슈퍼파워’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간호사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다. 그림의 제목은 판을 바꾸는 자(Game Changer)이다.

 

슈퍼맨이 된 보건의료노동자들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는 전지구적 위기 속에서 보건의료노동자는 지구를 구하는 슈퍼히어로로 소환되고 있다. 2020년 한국에 “덕분에 챌린지”가 있었던 것처럼 다른 나라들에서도 특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박수갈채를 친다든지, 거리 벽화를 그린다든지, 자동차 퍼레이드를 한다든지, 아니면 음식을 기부하거나 비행기 표를 제공한다든지 하면서 보건의료노동자들에게 갑작스런 존중을 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영웅법’(HEROES Act, Health and Economic Recovery Omnibus Emergency Solutions Act)이라 이름 붙은 긴급대책 법안에 필수노동자들에 대한 위험수당을 포함했다. 이렇게 갑자기 영웅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서 보건의료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특히 직업적 지위에 따른 위계가 철저한 병원에서 의사가 아닌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이러한 관심을 어떻게 경험하고 이에 반응하고 있을까? 국제 학술지 <응용심리학회지(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실린 프랑스 오덴시아 경영대학원 연구팀은 그동안 비가시화 되어 있다가 갑자기 “영웅”으로 불려나온 보건의료노동자들에 대해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실시한 후 이러한 갑작스런 지위 변화와 그들의 심리적 건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구팀은 프랑스에서 확진자가 치솟았던 2020년 3-4월 2개의 병원을 통해 161명의 간호사, 의료기사, 청소노동자, 물리치료사, 조산사, 작업치료사 등 의사가 아닌 보건의료노동자들(이하 보건의료노동자)에게 웹기반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는 개방형 질문으로 구성된 것으로,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1) 귀하는 코로나19 이전 귀하의 직업이 사회로부터 어떻게 인식되었다고 느끼십니까?

(2) 귀하는 코로나19가 사람들이 귀하의 직업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꿨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3) 귀하는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가 귀하의 직업을 바라보는 방식에 장기간 지속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위기가 지나면 잊혀지지 않을까

연구팀은 웹기반 설문조사에서 총 161명의 응답을 얻었고, 이후 세 명의 노동자를 심층 면접하였다. 분석 결과, 대부분의 보건의료노동자는 자신의 직업이 그동안 평가절하 되어왔고 때때로 낙인이 찍히기도 하는 등 존중과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하였다. 그러다 미디어가 보건의료노동자를 영웅으로 호명하면서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자신들이 너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연구 참여자 대부분은 코로나19의 위기 국면이 잦아들면 자신들이 다시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경제적 효율성에 입각한 코로나19 대응 과정을 살펴볼 때,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직업적 필요에 대한 고려 또한 잘 지켜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핫 토픽’을 찾아다니는 미디어의 특성상 사태가 장기화되면 경제위기나 경제회복에 집중한 보도들이 주를 이룰 것이고 자신들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코로나 이전부터 그들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로 취급해왔던 문화적 규범이 변하지 않고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연구 참여자들은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면 “노멀”로 돌아가고자 하는 급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사회 전체가 팬데믹 시기의 고통스런 경험을 집단적으로 잊으려고 하는 데 치중할 것이라고 보았다. 즉 일상을 회복하고 “노멀”로 돌아간다는 것은 보건의료노동자들에 대한 평가절하와 낮은 존중을 보이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연구 참여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영웅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했다. 이러한 거부의 이유 또한 크게 세 가지가 있었다. 우선, 그들의 직무 자체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 사람들은 갑자기 우리를 영웅이라 부르지만, 그 일들은 당신의 눈에서만 보이지 않았을 뿐 우리가 늘 해왔던 일들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로부터 이용당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었다. ‘영웅’은 불평불만을 하지 않으니 그들을 영웅이라 부름으로써 노동환경개선이나 보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를 일축하기 위한 의도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건의료노동자들은 그들에 대한 갑작스런 존중에서 사람들이 코로나19에 대해 갖는 공포의 크기를 엿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을 매우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영웅이라 부름으로써 사회가 보건의료노동자들에게 이미 어떤 대우를 해줬다는, 스스로 뿌듯한 기분을 느끼려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세 번째 이유 또한 우리가 코로나 이후 ‘노멀’로 돌아갔을 때 자신이 느낄 실망에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보호책으로서 영웅으로 간주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보건의료노동자들에 대한 영웅서사는 그들로 하여금 극심한 노동강도와 위험을 감내하도록 하는 한편, 그들의 일에 대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평가절하에 대한 가림막으로 쓰이고 있었다.

 

영웅이라는 말보다 필요한 것들

연구팀은 이러한 부조화, 즉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의 평가 사이의 차이가 노동자들에게 증가된 불안과 낮은 자존감을 통해 부정적인 건강 효과를 야기한다고 보았다. 특히 이러한 일시적인 영웅지위 부여는 노동자의 심리적 안녕에 어떠한 긍정적 효과도 없다고 말했다. 이미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비존중 속에 있어왔던 보건의료노동자들을 갑작스레 영웅이라 부른다고 해서 그들의 자존감이 상승한다든지 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일시적인 현상으로 것이 뻔히 보이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존중이 심리적 고통을 유발할 가능성만 있다고 보았다. 사실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노동 실태와 그들을 대하는 영웅주의 서사의 문제점은 굳이 해외연구를 가지고 오지 않아도 국내 사례에서도 매우 잘 확인할 수 있다. 시민건강연구소의 연구보고서 「보건의료노동자, K-방역을 말하다: 더 나은 팬데믹 대응을 위한 제안」가 그 예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필수노동자에 대한 논의가 막 시작되고 있고, 그 논의의 출발선에는 어떤 사람들을 필수노동자로 정할지에 대한 문제가 깔려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미국 국토안보부는 필수노동자를 “공중보건과 안전에 중요한 기능들의 연속성을 보장하면서 경제와 국가 안보뿐만 아니라 지역사회를 보호하는” 노동자들로 광범위한 정의를 하였고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62%라는 큰 규모가 이 필수노동자 개념에 포함된다고 보았다. 국제사회 내에서도 필수노동자에 대한 세세한 개념 정의가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큰 줄기에서 봤을 때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공백을 메워주고 우리가 일상을 살 수 있게 하는 데 필수적인 일들을 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증가된 위험을 무릅쓰고 대면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낮은 사회적 처우를 받아왔던 사람들로 칭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는 음식을 배달하고, 물이 나오게 하고, 전기를 켤 수 있게 하고, 통신망을 쓸 수 있게 하는 사람들부터, 쓰레기를 치우고, 다른 이를 돌보는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최전방의’ 사람들이 포함될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팬데믹의 시기를 거쳐 오면서 우리 사회가 뼈저리게 학습해 왔던 점은 위험이 너무나도 투명하게 불평등하게 전가된다는 점과 코로나 이전과는 다른 이후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팬데믹이 계속되고 경기침체가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필수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계속해서 맞닥뜨리게 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우리를 ‘필수’ 노동자라 부르고 ‘영웅’이라 부르지만 우리는 그저 소모되고 있다”고 말한 한 물류창고 노동자의 말처럼, 우리를 살게 해주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서지정보

Hennekam, S., Ladge, J., & Shymko, Y. (2020). From zero to hero: An exploratory study examining sudden hero status among nonphysician health care workers during the COVID-19 pandemic.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105(10), 1088-1100. http://dx.doi.org/10.1037/apl0000832

Kane, J. W., & Tomer, A. (2020). Valuing Human Infrastructure: Protecting and Investing in Essential Workers during the COVID-19 Era. Public Works Management & Policy. https://doi.org/10.1177/1087724X20969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