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노동자’의 등장과 정부 대응
국종애 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
‘기적의 노동자’도 ‘3D 노동자’도 아닌
기상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은 비가 쏟아졌다고 발표된 2020년 7월.
흙탕물에 잠긴 부산지하철 역사가 단 몇 시간 만에 침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끔하게 복구된 모습을 담은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퍼져나갔다.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새벽 내내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들과 역무원들이 시민들의 일상을 위해 쉬지 않고 청소한 결과였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기적’ 이라 추켜세웠다.
이 ‘기적의 노동자’들은 다른 한편에서는 불안정한 고용형태, 열악한 근무환경, 저임금 속에서 ‘밑바닥 노동자’, ‘3D노동자’라 불려온 사람들이다. 사회는 다양한 이름으로 이들을 정의해 왔으나 그 어떤 이름도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노동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이름이 생겼다. 바로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명이 노동자 처우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노동 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 고용 불안정은 여전했고 택배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대부분 과로나 기업의 횡포에 의한 죽음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호소, 학교나 보육시설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돌봄노동자의 파업, 콜센터 노동자의 집단감염 소식이 들려온다. 이전부터 사회 유지의 핵심이 되는 노동을 해왔음에도 저임금과 고용불안을 겪고 있던 필수노동자의 상황이 전 지구적 위기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비대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필수노동자의 강도 높은 노동에 기대고 있다. 대면을 줄이기 위해 택배를 더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아침 출근을 위해 현관문을 나서면 전날 주문한 물건들이 밤사이에 혹은 새벽에 배송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편리함과 죄책감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이는 필수노동에 기대고 있는 개개인이 죄책감을 가져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구조적 변화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쏟아지는 관련 정책, 그러나…
필수노동자는 보건의료‧환경미화‧돌봄‧복지‧물류‧운송 등 재해나 감염병의 긴급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안전과 생활 보장, 사회 기능유지를 위해 대면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이들에게 코로나19 시대가 새롭게 붙인 이름이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약한 고리부터 끊어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 상황을 방치한다면 사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에 정부나 지자체는 필수노동자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일찍이 ‘필수노동자’ 또는 ‘핵심노동자(key worker)’ 개념을 만들어 이들에 대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자 했으며 한국 또한 최근 필수노동자 지원에 관한 조례나 법안 제정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나라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여 필수노동자를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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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영국, 캐나다의 경우 필수노동자 보호를 위해 위험수당 지급, 보험료 지원, 현금 직접지원 등이 이루어졌는데 대부분 일시적 금전 보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마저도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되며 지지부진해지고 있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0년 9월 10일 서울시 성동구에서 가장 먼저 ‘필수노동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뒤를 이어 제주와 광주광역시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조례 제정을 준비 중이다. 또 여당 의원이 ‘필수노동자 보호법 제정안’을 발의했으며 정부 차원에서 ‘필수업무 종사자 보호법’ 제정을 예고하는 등 관련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 가장 먼저 필수노동자 조례를 제정한 성동구는 마스크와 손소독제 무상지급, 무료 독감 예방접종과 심리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정부도 구체적 방안을 마련 중이다. 내년 상반기에 소득이 급감한 방문 돌봄 노동자와 방과 후 교사에게 생계지원금을 지급하고 보건의료 영역의 인력충원과 개인 보호장비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뒤늦게나마 필수노동자가 수행하는 노동의 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조례나 정책 등에서는 여전히 필수노동을 ‘재난 등 긴급 상황 발생 시’의 노동으로 한정하고 있어, 필수노동자 보호와 지원 또한 특정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방역 물품 지급, 심리상담, 위험수당 같은 지원 또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이 아닌 여전히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자리에 필수노동자들을 놓아두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의 삶의 안전망 역할을 하는 노동자를 ‘필수노동자’라 명명하면서,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놓아두는 것은 역설적이다. ‘필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조건에 대한 근본적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팬데믹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들의 노동은 여전히 ‘필수’ 노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필수노동자 보호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필수노동’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앞서 필수노동 개념을 만든 미국의 경우, 추상적인 정의 때문에 오로지 고용주의 판단에 따라 졸지에 필수노동자가 되어 원치 않는 위험에 노출된 채 일하게 된 노동자도 있었다. ‘필수’를 누구의 관점에서 정의하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안전이나 생명에 큰 영향이 미치고 지원 내용도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필수노동’ 개념을 규정하는 과정이 구체적 지원 내용만큼이나 치열하게 고민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필수노동자 개념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여러 가지 우려는 있으나, 필수노동자 개념의 등장은 현재 한국 사회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먼저, 필수노동 영역에 보건의료, 돌봄, 복지, 환경미화 등의 노동이 포함되면서 여성의 돌봄노동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돌봄은 여성의 성역할일 뿐 노동이 아닌 것으로 취급되었다. 노동이 아니거나 손쉬운 노동이기에 여성 돌봄 노동자는 필요할 때 언제든 동원했다가 해고해 버릴 수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고 사회 곳곳에서 돌봄이 절실해지면서, 평가절하 되었던 여성의 돌봄이 인간의 생명과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노동이었음이 드러나고 돌봄의 가치가 인정되었다.
또한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 주는 명명이라는 점에서도 필수노동자 개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동일한 노동도 그 행위를 정의한 사회의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며 이를 통해 그 노동에 대한 인식과 처우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대기업 총수의 노동조건과 말단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당연히 달라야 한다고 믿어 왔다. ‘먹여 살리는 자’와 ‘덕분에 살아가는 자’가 정해져 있다는 노동의 위계가 오랜 시간 사회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필수노동자 개념의 등장으로 누구 ‘덕분에’ 우리가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을 이러한 위계의 바깥에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이나 사용자 입장에서 구성된 중요성이 아니라, 실제로 사회에서 노동이 가지는 역할을 중심으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필수노동’을 다시 정의해야 할 때
다시 한 번, 우리는 ‘필수노동’이 무엇인지 다양한 관점에서 질문해야 한다. 정말 필수노동은 재난 상황에서만 필수적일까? 재난 상황일 때 인간의 안전과 생존에 관한 노동은 재난 상황이 아닐 때에도 당연히 필요하다. 사실 대부분의 필수노동은 코로나19 시기 이전과 이후에도 필수적이었다. 인간의 삶에서 그간 너무 당연하고 필요한 노동이었던 것들이 위기 상황을 계기로 가시화되었을 뿐이다.
또 재난은 누구의 입장에서 정의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감염병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한정된 재난은 필수노동자 지원을 한시적인 것에 머무르게 하며 장애인, 노인 등 취약한 사회적 안전망에 놓여있는 이들이 겪는 일상적인 재난을 드러나지 않게 만든다.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위기는 인간의 생활에 필수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가장 취약한 위치에 두고 착취하며 권력을 공고하게 유지해 왔음을 알려주었다. 필수노동 논의를 계기로,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노동은 무엇이고 그 일을 누가 해왔으며, 어떻게 평가해왔는지 의문을 품고, 한국 사회가 어떤 노동으로 쌓아올려졌는가를 밝혀낼 수 있다.
결국 필수노동자와 관련된 정책은 단순히 보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 노동 개념에 대한 재정의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필수노동을 자본의 필요가 아닌 노동자의 필요에서 바라보고, 필수노동 개념을 노동자의 언어로 정의할 때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사회의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