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산재 이야기 담아내기
아름다운재단 〈산재보상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지원 사업〉 콘텐츠 제작
박한솔 상임활동가
한국의 사회보험 중 가장 빨리 도입된 산재보험. 여느 제도가 그러하듯 산재보험 역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일하다 다친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런데도 일하다 다친 수많은 사람이 ‘최선의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업재해의 일상성과 회복의 불평등’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일반 대중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두 가지 질문을 품고 기획을 시작했다.
출발점은 ‘오늘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던 바로 그 사람이 일하다 다칠 수 있고, 그 사람이 겪은 문제를 나도 맞닥뜨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몇 차례 회의 끝에 비교적 접근이 쉽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만화와 영상, 매거진으로 콘텐츠 형식을 결정했다. 산업재해와 산재보험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되, 산재보험의 제도적 한계 때문에 노동자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연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좀 하시나요?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자는 기조를 먼저 정하고, 만화 중에서도 인스타그램을 플랫폼으로 사용하는 ‘인스타툰(인스타그램과 웹툰의 합성어)’을 제작했다. 파급력을 고려하면 일정 규모 이상의 팔로워를 갖춘 계정이 필요했는데, 일정과 비용 등의 문제로 섭외에 난항을 겪었다. 고민하던 차에 팔로워 20만이 넘는 ‘삼우실’ 팀에서 사업 계획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어서, 이후에는 원활하게 작업이 진행되었다.
기획 초기에는 산재보험 신청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단계별로 구분하여 이용 장벽 측면을 부각하려 했는데, 콘텐츠의 타겟이 일반 시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내용이 생소한데다가 어려워서 와 닿지 않을 것 같았다. 산업재해도 잘 모르고, 산재보험도 잘 모르는데 ‘이용 장벽’ 이야기라니? 미팅하는 과정에서 약간 방향을 수정했다. 직장인 팔로워가 많은 삼우실의 계정 특성을 고려하여 일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산업재해와 산재보험에 대한 일반 정보’를 전달하고, 이와 동시에 산업재해를 겪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존재하는 보통의 노동자라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그렇게 ‘재해의 일상성’에 중점을 둔 콘텐츠가 완성되었다.
인스타툰에서 다루지 못한 ‘회복의 불평등’은 영상으로 풀어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은 산업재해를 겪을 수 있지만, 재해의 결과는 제각각이다. 큰 어려움 없이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갖은 절차적 불편을 겪은 뒤에야 일상을 되찾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이전의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기도 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산업재해인데, 회복 과정은 왜 저마다 다른지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건강하게 일하고 볼 일이다> 매거진 탄생
동영상 구성 역시 산재보험 단계별 장벽을 부각하는 대신, 노동자 개인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방법을 택했다. 각본 제작 과정에서 신경 쓴 부분은 두 가지였다. 산재보험 이용 관련 어려움을 보여줄 때,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제도(구조)의 문제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 재해를 경험한 사람이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애써서 삶을 되찾았다면 그 부분을 삭제하지 않을 것. 장호경 감독이 제작을 맡아 어려운 주문을 잘 풀어주었고, 동영상에 삽입된 일러스트는 작가 ‘덕분’이 그려주셨다.
마지막으로 ‘오세이프’와 진행한 〈건강하게 일하고 볼 일이다〉 매거진은 세 가지 콘텐츠 중 유일한 장기 프로젝트다. 오세이프는 안전 디자인을 통해 안전의식 개선과 안전문화 진흥을 꾀하는 ‘안전디자인연구소’로, 매년 테마를 정해 안전문화매거진 〈오래살고 볼일이다〉를 발행하고 있다. 안전에 관심이 많은 곳인 만큼 ‘노동자의 건강권과 안전’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여주어 수월하게 계약이 진행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발성 매거진으로 생각하고 2020년 연구 사업을 총망라할 수 있게끔 기획했으나, 미팅 이후 1년간 지속될 장기사업으로 수정되었다. 사업계획이 변경되면서 내용도 새로 구성했다. 첫 번째 편에서는 산업재해와 산재보험 관련 일반 현황을 전달하여 문제를 환기하고,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더 많이 위험하고, 덜 보상받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2021년 1월에 발행된 첫 번째 편을 시작으로 두 편이 더 이어질 예정이다. 매거진에 사용된 다양한 일러스트와 그래픽은 추후 노동건강연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도 업로드하여 알뜰하게 사용할 계획이다.
우리가 서로의 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누군가 직장에서 안전하지 않다면, 다치고도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면, 함께 부담해야 할 위험의 무게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위험물질을 다루는 공장의 노동자가 안전하지 않다면, 공장 주변 주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에 만들어진 모든 결과물이 개인의 아픔을 공유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더 넓게, 더 깊게 산재보험을 다듬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다.
백문이 불여일견. 콘텐츠를 직접 보는 것이 훨씬 더 좋다. 맘에 든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시고, 부족한 부분은 어떻게 앞으로 나아질 수 있을지 많은 의견을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