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인터뷰 ‘다가가다’

회원인터뷰 ‘다가가다’는 노동건강연대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회원을 만나 가까워지고픈 활동가들의 마음을 담은 코너입니다. 항상 회원들에 대해 알고 싶고, 알려드리고 싶었거든요. 소소하고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함께 꿈꾸고 연대의 방식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공학도가 전직하여 노동건강연대를 만나기까지

박정준(공인노무사) 회원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2단계로 격상된 2020년 11월 24일 오전, 박정준 회원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2시간 가까이 열차를 타고 평택 서정리역에 도착했다. 박정준 회원은 노동건강연대와 2018년 기업살인법 기획특강으로 처음 만났고 이어서 진행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세미나를 통해 회원이 되었다. 회원이 된 후 노동건강연대와 접점이 있을 법도 했으나 CMS 후원 계좌로만 만나게 되는 그였다. 이 엄혹한 시기 회원님들이 어떻게 살고 계신지 궁금한 사무국 활동가들은 가장 먼저 박정준 회원, 마음은 가깝지만 어쩐지 먼 것만 같은 그를 떠올렸다. 그리하여 활동가들이 직접 평택을 찾았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박정준 노무사가 노동건강연대 회원으로 가입하신 지는 꽤 됐는데, 만날 기회가 없었어요. 게다가 코로나19로 회원들이 모일만한 자리를 만들지 못했는데,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서나마 만날 수 있어 다행이에요. 기념적인 첫 회원 인터뷰인데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제안을 받고나서 인터뷰에 참고하려고 기관지 『노동과건강』을 다 뒤져봤거든요. 그 전에는 인터뷰가 하나도 없어서 당황했어요. 첫 회원인터뷰를 저로 시작한다고 해서 엄청 놀랐네요.(웃음)

저는 박정준 노무사입니다. 해 왔던 일을 소개하면,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 잠깐 있었어요. 그 다음에는 국내 공기업 발전소에서 현장 근무를 하다가 노무사 업무에 흥미를 느껴서 일을 그만두고 노무사 자격을 취득해서 노무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쉬면서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중이고요.

 

쉬는 중인데도 양복을 차려입고 맞아주신 것을 보고 놀랐어요.

인터뷰한다고 전날 머리도 새로 자르고 수습노무사 때 입었던 양복을 3년 만에 꺼내 입고 왔어요. 원래는 추리닝을 주로 입어요.(웃음) 예전엔 몸에 딱 맞는 옷들이 좋았는데 지금은 불편해서 잘 안 입게 되더라고요.

 

쉬는 중에 갖게 된 취미나 관심사가 있나요? 뭘 하면서 쉬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요즘 달리기를 하고 있어요. 제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 있거든요. 흡연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강하게 의심되는 원인은 건설현장이나 석탄발전소에서 일했던 경험이 아닐까 싶긴 한데. 근무기간이 짧아 직업병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대신 이틀에 한 번씩 달리러 나가요. 처음엔 1분도 힘들었지만 점점 달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손기정 평화마라톤 10km’에도 나갔어요. 짧은 거리지만 완주했다는 데 의미가 있었죠. 폐 질환이 있으니 코로나 때문에 걱정이나 고민도 많았어요. 생명이 덧없이 가는 것 같아 슬프기도 하고…

 

소개를 듣고 보니 다양한 산업현장 경험을 갖고 계시는 것 같아요.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노무사로 전직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공기업은 규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는 편인데, 저는 그 규정을 보고, 임금을 계산하고,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현장 일은 적성에는 맞지만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거든요. 안전에 관한 문제도 있었고요. 적성에 맞는 일보다는 좋아하고 관심이 가는 일을 하고 싶어서 노무사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노동건강연대를 알게 되었나요? 회원가입을 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2019년 2월에 노동건강연대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노노모)’이 함께 준비한 〈기업살인법을 들이셔야합니다〉 강의를 듣게 됐어요. 그걸 계기로 산업안전보건법 세미나에도 참여하게 됐고요. 처음에는 제가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니 업무와 연결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세미나에 참여하니 오히려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발전소에서 일할 때 중앙제어실에 앉아있다 보면, 갑자기 ‘하청업체 부장님이 떨어져서 죽었다’ 이런 이야기가 들려와요. 공식적 라인이 아닌 동료들 말로만 옮겨지는 거죠. 그런 일이 있는데도 ‘무재해’는 바뀌지 않고, 또 우리 직원이 아니니 아무렇지 않다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이런 경험이 강의나 세미나와 결합하면서 제 주변에 수많은 산업재해가 있고, 산안법이 있어도 기업을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기업살인법 도입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건강연대를 지지하고 싶어서 가입하게 됐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좀 더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노무사 일을 하게 되신 건가요? 노무사가 되고 나서 인천국제공항 노조에서 일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저는 처음에 노동자를 위해 일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노무사가 된 건 아니었어요. 제가 수습을 받은 곳은 사측 편에 있는 노무법인이었는데, 두 달간 일하면서 위법은 아니지만 탈법의 경계에서 노동자를 착취하려는 기조가 있었어요. 수습 중이다 보니 노동청 제출 자료를 준비할 때가 많았는데,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안주기 위해 증거들을 밀어 넣는 것을 보며 비상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자괴감을 많이 느꼈죠. 수습을 마무리하고 쉬던 때에 우연히 인천공항지역지부 자문노무사 분의 권유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됐어요. 제가 초임노무사치고는 나이가 좀 많은 편이라 갈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고요.(웃음)

인천국제공항 노조에 가서는 정규직 전환이 된 노동자들의 단체협약이나 임금협약 관련해 법적 틀 안에서 조언하는 일들을 했고, 또 임대계약 아래에 있는 카트노동자 분들의 노동조합 설립과 투쟁을 지원했었습니다.

 

노무사 일을 하면서 여러 노동자를 만나실텐데, 어떤 고민이 드셨나요? 이를 바탕으로 노동건강연대가 집중했으면 하는 활동을 제안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노동조합 활동을 해보니 노동자들이 어느 정도 임금 쟁취를 해야 안전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가능하더라고요. 그런데 특히 카트노동자 같은 미조직 노동자의 경우 임금 쟁취가 어렵고, 당장의 임금협상이 더 중요하니 안전문제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노동건강연대가 이런 미조직 노동자, 좀 더 취약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니 그런 뜻에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천국제공항 사태는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 생각해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공부 열심히 해야 돈 많이 버는 좋은 직장 간다고 가르치잖아요. 요즘은 “열심히 공부해야 추울 때 따뜻한 데서 일하고, 더울 때 시원한 데서 일한다”라는 말도 있다더라고요? 공부를 못하면 적은 임금을 받고, 나쁜 노동조건을 감수해도 된다고 자연스럽게 배우는 거잖아요. 그런 교육과정이 원청부터 하청까지 이어지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노동단체에서 교육 커리큘럼에 접근해 교육과정에서부터 뭔가를 바꿀 수는 없을까요? 근로기준법은 사회에 나가서 배워도 되지만 자신의 생명과 관련된, 산업안전보건법 같은 것이라든가, 꼭 법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인권교육이 교육과정에 필요한 것 같아요.

당장은 제 역량으로 단체에 구체적인 활동을 제안하긴 어렵지만, 회원으로서 앞으로 노동건강연대가 관련된 사업을 한다면 적극 참여할 의향이 있습니다.

 

인터뷰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나에게 노동건강연대란?

사전에 이 질문을 받고 멋진 말을 찾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거든요.(웃음)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대사인데,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이 말을 보니 노동건강연대는 저에게 ‘알 밖의 세상을 보게 해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꼭 함께 하겠습니다.

 

이 말은 꼭 기관지에 증거로 남겨야겠어요. (웃음) 첫 인터뷰라 긴장도 많이 되셨을 텐데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국종애, 한지훈 노동건강연대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