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보건복지부 업무계획이 의료영리화인가?
– 극히 부족한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인력 충원 계획으로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지난 1월 25일 보건복지부가 올해 업무계획을 내놨다. “일상 회복과 포용복지 구현으로 선도국가 도약”이라는 듣기 좋은 표제가 달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틀 후 “이제 한국은 코로나 극복의 단계로 진입하며, 포용적 회복과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말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 업무계획에는 그 동안 비판 받았던 정책들이 전혀 수정되지 않았다. “일상 회복과 포용복지”는 모두가 바라는 바이지만 이번 정부 계획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부는 시민사회의 촉구에도 불구하고 병상과 인력 대비에 소홀했고, 소위 ‘K-방역’ 자화자찬을 하며 ‘바이오헬스 산업화’란 이름의 의료영리화에 치중했다. 그러다가 겨울 3차 대유행이 시작되자 이내 대응에 한계를 드러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사망하고, 코호트격리로 이름붙인 치료 포기로 요양병원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도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경고를 무시하며 자화자찬과 태만함으로 일관한 정부를 보유한 대가를 국민들이 치렀다. 다시 하루 4~5백 명대로 확진자가 줄었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가공할 위협이다.
3차 대유행을 거치며 정부는 부랴부랴 공공병상 확보 계획을 내놨지만 진작에 진행중이었거나 실행했어야 할 정책의 재탕에 불과했다. 지방의료원 신축은 3개에 불과하고 증축, 개보수가 전부였다. 시민사회는 이를 강력히 비판하며 “공공병원을 단기적으로 최소한 17개 시도별로 2개씩 빠르게 신설하고,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기 어려운 규모인 300병상 미만의 28개 지방의료원 모두 병상을 증축”하고, “나아가 공공병상 4만 개를 확충해 인구 1000명 당 공공병상 2.0개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제도적 한계, 이해관계자 반발”로 신속한 공공의료 확충이 어렵다며 지난 번 계획을 이번 복지부 업무계획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올 상반기까지 겨우 1,700병상을 확충하겠다는 게 전부다. 후진국형 컨테이너로 땜질할 게 아니라 공공병상의 비중을 급격히 늘려야 한다.
의료 인력이 부족해 공공병원의 간호인력이 모두 육체적, 정신적으로 소진돼 퇴직과 이직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올 3월까지 중환자 전담 간호사 588명만 양성할 계획이란다. 이미 코로나19 전담병원에 파견된 1천여 명을 정원으로 흡수해 달라는 요구조차 들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헌신하고 희생해 온 간호 인력의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 줄 간호 인력이 조속히 충원되어야 하고, 이직과 퇴직을 막아 숙련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임금 등 처우 개선을 즉각 시행해야 한다. 병원 측 눈치 볼 일이 아니다.
공공의사 인력 확충도 “의대정원, 국립의전원은 코로나 안정화 후 의정협의체 논의를 거쳐” 추진할 계획이다. 공공의사 인력확충에 반대해 집단휴업을 강행한 힘있는 이익단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코로나가 안정된 후에 말이다. 힘없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생업을 강제 중단시키는 초강수와는 너무나 비교된다.
당장 도입해야 하는 상병수당도 기존 계획대로 올해 연구용역, 내년 시범사업까지만 계획해 이 정부 임기 내에는 실시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반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보건 복지 디지털 뉴딜”로 바이오헬스와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한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고 차세대 기간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료 산업화 계획은 중단하지 않는다.
바이오헬스 규제완화, 수조 원을 지원하는 ‘세계적 제약사’육성, 공공의료데이터 선제적 개방과 민간의료정보 연계 확대, 코로나19 상황을 이용한 비대면진료(원격의료) 지속 이행 및 발전, 건강관리서비스 인증제 도입, 스마트 병원, 스마트 건강관리 등 의료영리화, 민영화 계획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고작 지난해 8월 제정된 ‘보건의료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도 5개월 만에 ‘개선’해 가명정보 활용을 활성화 한다. 그나마 최소한의 제약을 두었던 건강정보의 가명처리 활용을 용이하게 할 것 같아 우려된다. 신성장 동력과 차세대 기간산업 육성을 빙자한 의료산업화 투자는 국민 의료비 상승과 민간 기업의 이윤만 보장할 뿐이다.
오늘 아침 복지부는 지역과 소득에 따른 건강격차를 완화하겠다며 2030년까지 실행할 국민건강증진계획을 발표했다. 담뱃값을 10년 안에 OECD 평균 수준으로 인상하고 술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것도 검토한다. 노동자,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담배와 술에 세금을 부과해 건강증진 부담을 노동자, 서민들에게 지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흡연과 음주를 줄이기 위한 소득 개선과 과도한 노동에 대한 실질적 개선없이 증진기금만 부과하는 것은 소득과 건강 격차를 더 벌릴 나쁜 정책이다.
또한 건강에 투자할 시간과 여유가 있는 고소득 부유층에게 유리해 건강 격차를 더 벌리는 건강인센티브제도 도입한다고 한다. 건강격차를 완화하겠다며 격차를 벌리는 모순된 정책은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방역, 백신, 치료제’ 3대 전략으로 코로나를 극복하겠다고 하지만,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백신이 유력한 무기이긴 하지만 코로나 상황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거리두기를 지속할 수 있도록 노동자와 서민들을 위한 적극적 지원정책과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않고서 방역 희생만을 요구해선 안 된다. 게다가 ‘치료제’는 코로나 상황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음에도 지나친 기대가 부추겨지고 있다. 또 백신은 의료기관 비정규직을 비롯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 약자들이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코로나19 대응에서 필수불가결함이 거듭 입증된 국민건강보험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해,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을 대폭 늘리고 항구적으로 제도화 해 건강보험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백신 무료접종 등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건강보험에 의존할 게 아니라 국가의 재정 투입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우려스럽게도 정부는 코로나19가 단기간에 종식될 거라는 낙관으로 공공병상, 공공의료인력 확충, 상병수당 도입, 사회안전망의 대폭 강화 의지가 없다. 다음 4차 대유행은 더욱 큰 규모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있는데도 여전히 3차 유행의 수준에 대처하는 데도 미치지 못하는 대응계획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거듭해서 정부가 상황의 심각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코로나19 재난 사태에 대비하기를 촉구한다.
2021년 1월 28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서울YMCA 시민중계실,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성남무상의료운동본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