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樂)’은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공단에서 일을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해 발행하는 신문으로  ‘바꿀 건 바꾸고 지킬 건 지키키고 즐겁게 살자’의 약자입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신문 ‘바지락(樂)’에 노동안전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청년노동자 여섯 명은 왜 실명했는가

[바지락][노동안전 칼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파견노동자와 산업재해

전수경

인터넷에 ‘공장알바’라고 검색하면 일자리 정보가 우수수 쏟아집니다. 알바사이트나 인력 업체의 알바모집 글을 보면 아이스크림 공장, 빵 공장부터 의료기기, 금속가공업체까지 일자리도 다양합니다. 코로나 19 유행 이후 마스크 공장 알바도 많이 보이네요.

공장 알바 후기를 보면 단순 반복작업의 지루함을 호소하는 글부터 ‘이런 공장은 절대로 가지마라’ 같은 알바 선배들의 깨알 조언까지 다양하게 올라와 있습니다. 공장 알바는 몸은 힘들지만, 임금이 세서 좋은 일자리라고 이야 기하는 분들도 꽤 보입니다. 지금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저 후기처럼 수시로 시계를 보며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이런 시간을 쌓아가며 하루하루 버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공장 알바를 통해 스마트폰 부품 공장에 들어간 20~30대분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TV나 인터넷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는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부천공단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발생한지 몇 해가 지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 현재 진행형이라고 하는지 짚어보고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5년 전 여섯 명의 노동자가 각기 다른 공장에서 비슷한 시기에 쓰러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통점은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공장들이었고, 쓰러진 분들은 기계에서 생산된 부품을 용액으로 씻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쉬운 일이라고 알고 있었고, 인터넷 알바사이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였습니다.

세척 용액은 메탄올이었습니다. 메탄올은 에탄올보다 싸지만, 독성이 강해서 보호 장구 없이는 사용하면 안 되는 유해물질입니다. 세척액으로 메탄올을 사용하는 일은 상식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가을에서 겨울까지 날이 추워 창문을 꽁꽁 닫은 공장 안에서 메탄올액이 자연스레 몸에 닿고, 메탄올 수증기를 맡으며 일했습니다. 그렇게 세 개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쓰러졌습니다.

일한 지 몇 개월이 된 분도 있었지만, 나흘만에 쓰러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메탄올 중독의 가장 큰 증상은 ‘시각손상’이라고 합니다. 쓰러진 여섯 명의 노동자들은 시력을 잃었습니다. 메탄올이 온몸을 돌아다니면서 뇌와 신경에 손상을 입혔습니다. 20~30대 청년 여섯 명에게 일어난 실명사건에 한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노동자들이 일하던 하청회사는 물론이고, 원청기업인 삼성, LG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습니다. 국회에서 기자회견이 열리고, 피해노동자들은 UN인권이사회에서 한국 대기업의 책임에 대해 발언했습니다.

여기서 한 곳이 더 등장합니다. 알바를 모집해서 공장에 보낸 파견업체입니다. 파견업체는 알바를 모아 공장에 보내면서도 막상 그 공장의 작업환경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용한 당사자이지만 일할 공장을 중개해 주면 그만입니다. 공장의 환경이 어떤지, 어떤 물질을 쓰는 공정인지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공장은 공장대로 인력업체를 통해서 받은 사람이니 우리 직원이라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력을 파견한 업체 파견사업주와 하청 공장 사장인 사용사업주들은 1년 6개월 ~ 3년 정도의 징역과 집행유예, 사회봉사 명령 등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감옥에 간 사람은 없습니다. 원청회사인 삼성, LG는 사회적 비난은 받았지만, 법률상 책임은 지지 않았습니다.

청년노동자 여섯 명의 실명 사건이 벌어지고 한참 후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미 1년 전에 똑같은 사건이 안산 공단에서 일어났으며, 이때 실명한 중국 동포 노동자는 조용히 한국을 떠났다고 합니다. 당시 인력 파견업체와 공장이 수사를 받았는지 정부는 기록도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떠들지 않으니 조용히 덮인 겁니다. 만약 당시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고 정부가 감독해 제대로 조치를 했다면 1년 후 여섯 명의 실명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여섯 명의 메탄올실명 노동자의 이야기를 파헤친 『실명의 이유』라는 책이 나오고 『문밖의 사람들』이라는 만화책이 나왔지만, 피해당사자들은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직장은 어떤가요? 이 글을 읽으며 남의 회사 얘기가 아니라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분도 있겠고, 현장이 썩 쾌적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나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내 일이 바빠서 관심 둘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도 늦기 전에 내 현장을 둘러봅시다. 그렇게 나와 내 동료, 우리 현장을 보다 건강하게 바꿔 갑시다.

 

  • 노동건강연대는 금속노조 공단노동자신문 ‘바지락(바꿀 건 바꾸고 지킬 건 지키고 즐겁게 살자)’에 노동안전 칼럼을 싣고 있습니다. https://bit.ly/3qG2p33 에서 바지락 2021년 3월호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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