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공성 강화가 시대적 과제인 팬데믹 시기에도 정부는 거꾸로 심각한 의료 민영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참담한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민간보험회사가 헬스케어전문회사를 자회사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보험업법 시행령을 내일(17일)까지 입법예고했다. 또 지난 달 이와 연계되는 ‘마이헬스웨이’ 도입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는 민간보험사가 건강보험의 공적 영역인 건강관리와 심지어 만성질환 치료 행위까지 직접 하도록 넘겨주려 한다. 또 의료 상업화로 돈벌이를 하려는 민간보험사와 영리업체에 개인건강·의료정보를 넘겨주기 위한 플랫폼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고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 같은 의료 영리화 시도에 강하게 반대한다.

 

첫째, 민간보험사 ‘건강관리서비스’는 직접적 의료 민영화이다.

건강관리서비스 제도화는 2009년 이명박 정부 이래 박근혜 정부까지 추진해왔으나 감히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를 코로나19 시기에 완성시키려는 문재인 정부에 황당함과 분노를 느낀다. 국민건강증진법상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활동은 국가 책임이고,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예방·재활 등 건강관리는 보건소, 병의원, 약국 등이 건강보험 보험급여로 해야 할 공보험의 의무다. 이런 공적 영역을 고스란히 민간보험사 등 영리기업에 넘겨주는 행위는 직접적 의료 민영화이다.

특히 정부는 2019년 ‘건강관리서비스 가이드라인’에서 만성질환 관리까지를 민간보험사의 사업영역으로 규정했다. 만성질환은 ‘완치’ 개념이 아닌 ‘관리’가 곧 치료다. 즉 민간보험사가 질병치료 영역에까지 침투하도록 허용하려는 것이다. 이는 의료행위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하 비영리 의료기관이 한다는 한국 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영리기업의 건강관리는 삼성이 2010년 발표한 의료 민영화 보고서 ‘HT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고, LG 등 대기업들이 의료시장 침투를 노리고 부추겨온 것이다. 미국에서는 거대 민간보험사가 건강관리서비스로 시작하여 보험사와 계약한 의료기관과 연계함으로써 치료영역까지 장악하는 민간보험 중심의 의료 민영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이 길로 향하는 중요한 장벽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다.

건강관리라는 측면에서만 봐도 영리기업에 의해 제공되는 상업적 건강관리서비스는 건강증진 효과가 미지수이다. 건강증진은 사회적 영역이다. 노동자들이 과로사하거나 떨어지거나 끼여 죽고, 사회안전망 없이 실업과 빈곤 속에 건강을 잃는 사회에서 누가 봐도 건강은 개인 책임일 수가 없다. 정부가 제대로 된 사회정책을 펼치고, 보건소와 일차의료 기능을 강화해야 건강증진이 가능하다. 영리기업의 돈벌이 상품은 건강문제를 개인습관 탓으로 돌리는 것이어서 불안과 죄책감, 감시와 낙인만 조장하고 개인습관을 교정할 사회적 조건을 마련하기 어려운 계층에게는 효과를 갖기 어렵다.

 

둘째, ‘마이헬스웨이’는 영리기업 건강관리서비스를 위해 정부가 개인의료정보를 수집하겠다는 발상이다.

정부는 ‘국민건강증진 및 의료서비스 혁신을 위해’ 마이헬스웨이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상은 개인의료정보를 상품화해 영리기업 건강관리서비스에 넘겨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의 이 계획은 의료기관에 쌓여있는 진료기록·상담기록·의료영상 등의 진료정보,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수집되는 개인건강정보, 건강보험공단과 심평원 등 공공기관 정보를 한 데 모아 소위 ‘개인주도 건강관리’를 위해 활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개인주도 건강관리의 핵심이 바로 영리회사의 건강관리서비스 상품이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건강증진 영역을 민간업체 돈 벌이로 넘겨주는 것도 황당한데, 이 상품판매를 뒷받침해 주기 위해 개인 건강·질병정보를 한 데 모은 플랫폼을 직접 만들겠다는 발상은 정말 어처구니없다. 국민 세금이 왜 민간업체 돈 벌이 지원사업에 쓰여야 하는가? 이런 플랫폼은 결과적으로 개인 정보가 한 데 모여 영리기업에 넘어가는 통로가 될 뿐이라는 점에서, 만약 영리기업이 이런 시스템을 만든다면 국가가 나서서 규제해야 마땅하다. 거꾸로 정부가 나서서 개인정보를 한 데 모아 영리기업에 퍼주려 한다는 점에서 이 정부가 얼마나 의료 상업화에 혈안이 돼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정부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말로만 공공의료를 언급할 뿐, 실제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재정적·법제도적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재유행 대비 병상·인력 확충에도 소홀해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거리두기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사회안전망 강화에는 손을 놓고 있다시피 하면서 의료 민영화 정책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시기에 거리두기에 따른 경제적 고통도 오롯이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고, 민간병원 돈 벌이를 통제하며 동원하지 않아 병상부족 사태를 초래해 왔다.

이제는 ‘건강관리’ 책임도 개인에게 전가하려 한다. 국민건강보험이 책임져야 할 영역을 뚝 떼어 내 민간보험사에게 넘겨주고, 개인이 알아서 자신의 질병정보를 팔고 돈을 지불하며 건강증진을 하라는 것이다. 민간보험사가 건강관리와 사실상 의료행위까지 하도록 해 전국민건강보험제도와 비영리 병원 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면서 말이다.

 

우리는 정부의 이번 방침이 가장 심각한 의료 민영화 추진이라고 생각하며 강하게 규탄한다.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심각한 의료 민영화를 밀어붙이는 것을 시민들은 결코 지켜만 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건강관리서비스’와 ‘마이헬스웨이’ 추진을 즉각 멈춰야 한다.

 

2021년 3월 16일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기독청년의료인회,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서울YMCA 시민중계실,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행동하는의사회, 성남무상의료운동본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 경남보건교사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