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재보궐 선거가 2주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보건의료 정책이 시민들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들의 선거공약에는 공공의료 강화와 공공병원 확충 약속이 전혀 없거나 극히 미미하다.

서울과 부산이라는 제1, 제2의 거대도시의 정치권력을 얻겠다고 나선 거대양당 후보들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방치하겠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게다가 더 황당한 점은 이들의 약속에 의료영리화가 더욱 눈에 띈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과 부산 시장 선거는 단순히 1년 임기의 시정을 넘어 대선 전초전으로, 거대양당의 보건의료 전국정책 비전을 가늠할 수 있는 기회이다. 이런 시기에도 오로지 의료로 돈벌이할 궁리에 매진하고 공공의료 방치로 일관하는 거대 양당의 모습에 우리 시민사회단체는 분노하며 아래와 같이 강하게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서울과 부산은 공공병원 2배 확충이 필요하다.

서울은 지난 수도권 발 2차 유행 당시 전국에 세자리 수 확진자가 발생한지 며칠만에 전담병원이 거의 포화했을 정도로 병상상황이 극히 열악하고, 3차 유행 때는 병상 대기환자가 하루 600명 가까이 발생했던 도시이다. 서울은 한 나라의 수도이고 가장 많은 거대민간병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공공병원 부족 때문에 감염병 사태에 쉽게 의료자원이 고갈되는 일이 반복되어 왔다. 정부는 병상부족을 은폐하려 서울지역 요양병원 환자들을 ‘코호트격리’라는 이름으로 뒤섞어 가둔 끝에 집단감염과 사망의 비극을 초래한 바도 있었다.

또 부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1월 말 지역 확진자가 두 자리 수를 넘은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부산지역 환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대구에 이송이 되어야 했을 정도로 공공의료가 열악하다. 부산 공공의료기관 비중은 2.5%로 전국평균 5.8%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수도권 다음으로 인구 규모가 큰데도 지방의료원이 부산의료원 1곳 밖에 없는 처참한 현실이다.

4차 유행이 예고되는 긴박한 코로나19 상황에서 두 도시의 상황은 여전히 큰 변화가 없지만,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이런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은 전혀 없거나 일부 있더라도 선언적 수준에서 제시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해결 방법은 공공병원 수를 절대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서울과 부산의 공공병상을 2배로 확충하라는 것은 두 도시의 공공의료 현실을 고려했을 때 최소한의 요구이다. 또한 의료인력 충원도 필요하다. 서울시는 시립병원 간호인력을 늘려달라는 간호사들의 요구도 차갑게 외면해왔다. 당장 환자를 살릴 의료 자원과 인력의 충원이 시급하다.

코로나19의 엄중한 현실에서도 공공의료 강화와 인력확충을 외면하는 정당과 후보에게 시민들이 건강과 안전을 맡길 수 없음은 자명하다.

 

둘째, 의료영리화 공약을 철회하고,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박영선 후보는 개인의료정보 상업화와 원격의료, 민간기업 건강관리서비스를 결합시킨 의료영리화 계획을 내놓았다. 또 시민의 의료정보를 가명처리해서 기업에 넘겨주겠다는 위험하고 반인권적인 공약을 하고 있다. 오세훈 후보는 보건의료 공약 자체가 거의 없고 전 시민에게 스마트워치를 보급해서 건강관리를 하겠다는 황당한 약속을 내놓았다. 보건소·공공의료 기능 강화와 사회정책으로 보장해야 할 시민의 건강증진을 입증되지 않은 사기업 돈벌이 사업으로 넘겨주겠다는 발상은 두 후보가 똑같다.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공공의료 설립 계획이어야 한다. 지금껏 공공병원설립은 지자체에서 논의되었더라도 여러 난관에 부딪힌 바 있다. 중요한 장벽 중 하나는 재정문제였다. 경제성 위주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발목을 잡아 왔다. 일부 지자체에 대해 시혜적 면제를 할 것이 아니라, 공공병원은 공공시설로 최소한의 인구대비 공익시설 기준에 준해서 예비타당성조사 등을 소방서·학교 수준으로 면제하는 것이 옳다.

또한 지방의회에서도 공공병원 필요성만 논의하고, 그 재정지원 방안이나, 중앙정부로부터의 재정지원방식 등에 대해서는 차일피일 미뤄두는 일이 허다하다. 공공병원설립을 지방의회의 조례재정이나, 공공병원기금 안 등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선거시기에도 이런 입장을 정리하고 공약하지 못한다면, 언제 이런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겠는가?

이번 선거의 주요 후보들과 정당은 공공병원설립의 당위성만 공감한다는 입에 발린 소리말고, 공공병원설립의 구체적인 과정과 절차에 대해서도 본인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구체적인 계획을 선언해야 한다.

 

셋째, 지자체 후보들은 공공택지개발을 공공적 목적에 한정해야 하며, 주요 공공기관에 공공병원 설립을 포함시켜야 한다.

최근 2기 신도시였던 위례신도시(서울 송파, 경기도 성남·하남)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의료복합부지 개발을 위한 민간사업자를 공모했다. 위례신도시는 43000여 세대, 10만명이 수용되는 대규모 공공택지개발사업(LH와 SH의 공영개발방식)이었다. 이런 대단위 주거시설에 아직까지 병원이 없다는 점도 황당하지만, 이를 공공택지개발에 맞지 않게 민간에 개발권을 넘긴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거기다 SH는 황당하게도 거주지역에 ‘의료복합타운’을 만들어 의료상업화를 부추기려는 계획까지 조장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최근 폭로되어 국민적 공분이 일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사건’의 배경이라고 생각된다. 즉 공공택지개발사업임에도 각종 민간개발과 이권이 결합되어 투기사업으로 변질되는 과정으로, 시민들의 필수 공공시설인 병원조차 이런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애초에 신도시라면 학교·소방서 등과 같이 공공병원도 기본적인 공공시설로 계획의 일부여야 한다. 이 신도시가 공공택지개발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지자체 후보들은 이제라도 공공택지개발에 일정 주거인구가 있다면 공공병원설립을 기정사실화하라. 공공병원도 학교·소방서처럼 필수 공공시설이다. 또한 기존 신도시에서의 의료단지등에도 공공병원 우선 설립으로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이미 민간병원은 포화상태다. 한국에서 부족한 것은 공공병원이다.

 

최근 백신 도입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의 빠른 극복은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변이바이러스의 확산, 여전한 국제적인 대유행의 현실 등을 고려할 때 시민 건강은 여전한 심각한 위기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공공병상과 의료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보건의료 핵심공약이 거대양당에 빠져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이들이 공공의료에 소홀한지 보여준다.

공공병원확충은 의지가 있다면 구체적 방안으로 실현가능하다. 예를 들면 당장 서울시는 SH가 관리하는 위례신도시의 의료부지를 공공병원설립으로 전환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 노동시민단체는 시급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민간병원 눈치를 보며 차일피일 미루거나 의료영리화에 매진하는 주류 정치 세력들에 기대지 않고, 풀뿌리 시민노동 사회운동의 힘으로 공공병원설립을 이루어내기 위한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공공병원 확충과 공공의료 강화는 시대적 과제이자 시민의 열망이다. 이번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내년 대선에서 공공병원설립의 대의에 동의하고 구체적 실현의지를 가진 정당과 후보를 시민들이 선택하도록 하기 위한 노력도 다할 것이다.

 

 

2021년 3월 25일

좋은 공공병원 만들기 운동본부(준)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공공병원설립운동연대(공공의료성남시민행동, 대전의료원설립시민운동본부, 울산건강연대, 화성시립병원건립운동본부, 토닥토닥), 공공병원설립을위한부산시민대책위, 국민건강보험공단일산병원노동조합, 대한물리치료사협회, 서부경남공공병원설립도민운동본부,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올바른광주의료원설립시민운동본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참여연대, 코로나19의료공백으로인한정유엽사망대책위원회, 한국노동조합총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