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의 칼끝이 이동한다
[이명박 시대, 기억해야 할 죽음들] 영세·이주노동자와 산재
2008-02-12 오전 9:44:40
2006년 4월 29일 부산지역 녹산공단의 한 사업장에서 조선족 출신 산업연수생 김 아무개 씨가 급성 전격성 간부전증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망한 노동자는 34세의 노동자로 한국에 온 지 6개월도 채 되지 못한 상태에서 DMF(디메틸포름아미드)라는 유기용제를 취급하다 중독되어 사망한 것이다.
DMF는 주로 합성피혁이나 합성섬유 제조에 사용되는 유기용제로 간기능에 치명적인 손상을 미쳐 독성간염을 유발하며, 조기 발견하여 치료하지 않는 경우 전격성 간괴사로 1개월 이내에 사망하게 만드는 유해 물질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급성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DMF 취급 공정에 배치될 경우에는 배치되기 전에 노동자의 건강상태를 미리 파악하기 위한 배치 전 건강진단을 실시하게 하고 문제가 없을 시 공정에서 일을 하도록 한 후 다시 1개월 내에 건강진단을 하도록 되어있는 유일한 물질이며 이 검진에서도 문제가 없을 시에 작업을 계속 하게끔 되어있다.
사망한 김 씨는 2005년 12월 6일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들어왔고, (주)백산 본사에 배치되어 근무를 하다 2월 8일 부산 녹산공단에 있는 지방공장의 DMF 배합실에 배치전환된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배치하기 전에 실시해야 할 건강검진을 19일이 지난 다음에야 실시했다. 김 씨는 그 건강검진에서 간기능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도 간기능 질환자(D2)로 판정되어 ‘근무 중 치료’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러한 사실을 노동자에게 알리지 않았고,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했으나 치료를 하지 않은 채 계속 배합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몸 상태가 나빠져 결국 4월 7일 병원에 가게 되었고, 급성 간염으로 진단받아 입원했으나 급격히 간기능이 악화되어 4월 29일 사망했다. 이 노동자는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떠한지 그리고 왜 아픈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사망사건이 발생한 후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사태파악과 대응을 시작한 지역의 대응 또한 문제가 많음을 반성해야 할 일이지만, 뒤늦게라도 사망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사업주, 검진기관, 노동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망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업주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으나 결국 부산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기각 결정이 났고, 회사에서 지키지 않은 대부분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은 과태료나 안전보건계획수립 명령 정도로 끝나게 되었다
19일이 지난 상태에서 실시한 배치 전 건강진단에서 ‘근무 중 치료’로 판정을 내린 검진기관의 판정 문제에 대하여 특수건강진단기관 지정 취소 명령이 내려졌으나 오히려 검진기관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잘못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근 1년 반 동안에 걸친 법적공방은 실제로 기관 취소 명령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연되면서 제대로 된 기관 취소 명령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어온 DMF 물질 취급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던 노동부는 정작 문제가 발생하자 반성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인원이 부족하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가 미약한 것은 알지만 제도적인 문제라 어쩔 수 없다며 오히려 발뺌했다. 또한 몇 번의 정보공개와 집회 등을 거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번 사건으로 진행된 관할 DMF 취급사업장에 대한 일제점검 결과-29개 사업장 중에 7개 사업장이 DMF 취급을 하지 않고 1개 사업장은 타관으로 이전한 것도 이번 점검에서 파악된 점, 28개 사업장 중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업장이 27개 사업장인 점-는 그동안 노동부가 DMF 사업장관리를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평소에도 작업장 관리를 얼마나 형식적으로 해왔는지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대응은 진행되지 못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 앞 집회, 노동부 앞 집회와 지청장 면담, 검찰 진정, 인권위 진정 등 여러 대응을 했으나 지역 전체 대응으로 확대되지 못했고, 보상이 끝나버린 상태에서 유가족들 없이 단체중심으로 진행한 대응은 한계가 명백함을 느꼈다.
다시 발생한 DMF 사망사건
DMF 사망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1년 만인 2007년 4월 11일 또다시 36세의 여성노동자가 DMF 중독으로 사망하게 된다. DMF 코팅 원단과 부직포를 접착기에 밀어 넣는 일을 했던 이 노동자는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독성간염으로 사망했다. 이번에도 정부는 독성물질 취급 사업장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결론적으로 현장은 나아진 것이 없다.
더 큰 문제는 2006년 산업재해자 수 중 73.5%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다는 통계보고에서 알 수 있듯이 규모가 영세할수록, 같은 현장에서조차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노동자·이주노동자일수록, 중대재해에 많이 노출되고 현장의 열악한 문제가 전가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설혹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에 문제가 발생해도 일방적인 계약해지나 해고, 추방 등의 문제로 현장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이야기 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해 있다는 것이며, 그러한 내용을 알게 되는 상담단체조차도 실제 사망사건이나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에는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제도적으로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더군다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한 부단한 정부의 노력은 오히려 강화해야 할 규제를 더 완화시켜내면서 자본의 이윤을 위하여 모든 희생을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감당하게끔 내몰고 있다.
DMF 사망사건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들의 요구를 되새겨 본다. 중소영세사업장·여성·이주·비정규직노동자의 건강권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을 내팽개치고 건강보호의 의무를 거부하는 사업주를 구속하고 간접살인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 노동부는 다시는 DMF 중독 사망사건과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조속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이숙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