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파수꾼 “생계위해 죽음 고통감수”

[특별한 인터뷰] 임종 앞둔 사람들의 ‘벗’, 간병인들의 눈물

임민희 기자

병원에서 몇몇 간병업체를 협력업체로 지정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간병서비스 홍보하고 간병인에 대한 지휘감독권한 행사하지만 ‘병원직원이 아니니 책임지지 않는다’며 간병인들의 고통 외면

최 소장 “이름뿐인 노인장기요양법, 실상 노인 100명 중 3명만 해당, 중증질환자 3등급까지만 적용, 장애인도 제외돼…요양시설?인력 모두 민간 위탁하면 돈벌이 기관으로 변질되고, 시급으로 설계된 요양보호사 등 비정규직의 대량양산 가속화시킬 것”

하루 24시간 주6일(144시간) 근무, 일당 5만원, 월수입 100만원 내외… 이는 대다수 간병인들의 실상이다. 현재 약 25만 명의 간병인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가사사용인’으로 분류(노동부 행정해석)돼 산재보험과 최저임금 등 최소한의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요양병원에 직·간접 고용된 경우는 그나마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만 일반병원의 경우 환자와 간병인간 일대일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노동자란 신분이기 때문에 환자를 간병하다 부상이나 전염 등의 피해를 입어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더욱이 유료소개소들이 간병인들의 처지를 악용해 20만∼40만원 이상의 등록비(교육비, 의료비, 신발비 등)를 챙기고 과도한 소개비를 요구하고 있어 간병인들의 피해가 극심한 상황이다.

생계 및 자녀학비를 벌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40∼60대 중고령의 여성 간병인들은 “먹고살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다”며 회한 가득한 한숨만 지을 뿐이다. 병원 측의 무책임과 소개업체의 부당한 횡포,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간병인들은 매일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며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사건의내막>은 이들이 당면한 실상과 비정규직의 노동력을 유린·착취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심층 취재했다.

간병인은 노동자가 아니다?

간병서비스는 현재 의료기관이나 복지시설 등 보건의료 및 복지영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또한 노인복지시설과 요양병원, 재가 서비스, 급성기 의료기관 등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간병서비스는 비공식 노동으로 차별받으며 비인격적 대우와 중간착취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시민단체에서 대구지역 중·소·대형병원의 간병노동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 간병인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1월15일 의료공공성 확보와 간병노동자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대구지역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구공대위)는 지난해 10월4일부터 31일에 걸쳐 대구시내 16개 병원에서 활동하는 17개 간병소개소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구공대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다수의 간병인들은 주 14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절반 수준의 임금, 열악한 근무여건 등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유로소개소들은 간병인들에게 갖은 명목으로 금품을 공제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간병 서비스의 질적 개선 의지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결과를 토대로 간병인들의 생활상을 살펴보면 이들은 24시간 격일제와 12시간 맞교대, 12시간 낮 근무, 24시간 전일제(주 6일 상주근무) 순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 6일 상주근무의 경우 일요일 오후 2시에 들어와 근무를 시작해 토요일 오후 2시에 근무를 마치는 것으로 한 주에 144시간을 근무하는 셈이다.

이들은 병원 환자입원실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 집에서 냉동시킨 밥 일주일분과 김치를 싸와 자체적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또한 병원에 휴게 공간과 탈의실이 없어 옷을 갈아입으려면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고, 병실 안 좁은 의자에 앉아 짬짬이 쉴 수밖에 없다.

간병업무도 병원직원과의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보니 필요에 따라서는 병원직원의 업무와 간호사 업무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며 때때로 의사업무(인공호흡)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렇듯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장시간 환자를 간병하다 보니 간병인들의 육체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임시직이기 때문에 산업재해 보상이나 연·월차 휴가 등은 꿈도 꿀 수 없다. 대부분의 간병인들은 장기적인 야간근무로 불면증 (수면장애)을 안고 있다. 특히 신경외과의 경우 환자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간병인들 또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면서 안구건조증에 걸려 인공누액을 상시적으로 발라주거나 심할 경우 수술을 하기도 한다는 것.

또한 과체중 환자나 무의식 환자를 간병하면서 체위변경을 해주다 보니 간병인들의 90% 이상이 허리디스크나 어깨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병을 호소하고 있다.

피로 누적으로 인한 면역력 약화로 MRSA(슈퍼박테리아, 메티실린 내성황색 포도구균, 항생 물질에 내성이 생긴 균) 등에 전염돼도 병원이나 간병업체에서는 책임지지 않는다. 환자를 돌보다 부상을 당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간병인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며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아프다는 사실마저 숨겨야 한다.

월 100만원 내외 저임금

간병인들은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간병료는 12시간 간병 시 3만5000원, 24시간 간병 시 7만원(일부 6만5000원)을 받는다. 이는 식대, 교통비 등이 모두 포함된 액수로 하루 8시간으로 환산하면 2만3336원으로 최저임금 3만160원에 못 미치며 월(226시간) 60여만원 수준에 불과한 저임금이다. 뿐만 아니라 야간수당,

유급주휴보장 등 근로기준법 적용에서도 대다수의 간병인들은 배제되고 있다. 급성기 병원(일반 중증환자 병실)은 사용주체 문제, 즉 병원에서 일을 하지만 환자와 간병인 간 개별적인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특수고용형태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몇몇의 간병업체를 협력업체로 지정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간병서비스를 홍보하고, 간병인에 대한 지휘감독권한을 행사하면서도 “병원직원이 아니므로 책임지지 않는다”는 모순된 입장을 고수하며 간병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

장기요양병원(노인전문병원)의 경우 직접(병원) 또는 간접(파견업체) 고용돼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소개소를 통해서 일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명의 간병인이 평균 9.8명의 환자를 공동 간병하기 때문에 체력적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만 요양병원은 급성기 병원과 달리 환자 및 보호자로부터 간병료를 걷어 간병인에게 직접 돈을 주거나 소개소를 통해 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그나마 노동자성(사용주체-병원)이 인정될 뿐이다.

소개업체들은 이러한 간병인들의 처지를 악용해 등록비, 소개비 명목으로 과다한 돈을 징수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직업안정접 제19조 제1항, 노동부 고시 제97-21호 국내유료직업소개 요금 등 고시 제1항에 따르면 “파출부, 간병인 등 일용근로자를 회원제로 소개, 운영하는 경우에는 그 소개요금에 갈음하여 월 3만원의 범위 내에서 회비를 징수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대구공대위 조사결과 대부분의 소개소가 5만원 이상의 월회비(60%)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회절차라는 명목으로 적게는 10만∼20만원의 돈을 받고 교육비와 의복비, 신발값, 책값 등을 이유로 추가부담시켜 많게는 40만원 이상의 돈을 착취하고 있다는 것.

중국동포의 경우 일을 가르쳐주겠다며 100만∼200만원의 입회비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 또한 공동간병의 경우 병원이 환자에게 간병료를 걷어 중간이득을 취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대구지역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간병인들이 처해 있는 현주소다.

보건사회연구원이 2006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간병인 교육기관의 교육생 배출인원은 약24만7236명이며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1449개소에서 1일 활동간병인 수(2005년 12월 말 기준)는 총 3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동부의 공식적인 집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정부 사회적 일자리 사업관련 간병도우미와 노인복지시설 등에서 일하는 간병노동자, 대기 중인 간병인력 등을 고려하면 더 많은 간병인들이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노인시설이나 요양병원 및 요양원 등 극히 일부 기관에서 직접 고용된 경우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간병소개소(유·무료)나 파견업체 등을 통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유료소개소가 증가하면서 간병인들을 상대로 등록비, 소개료 등을 명목으로 과대 징수하는 것은 물론 간병교육 부재 및 간병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부추긴다는 우려가 높았다. 때문에 소개업체의 횡포를 막고, 간병노동자들의 전문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4대 보험 및 퇴직금 지급 보장과 함께 환자에게 간병료를 받는 특수고용형태의 간병노동자들도 노동자성을 인정, 노동3권 등의 법적 제 권리를 보장(국가인권위 2006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대구대책위 집행위원회 서창호 부위원장은 “핵가족화와 고령화로 인해 간병서비스는 특정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화·보편화되고 있지만 간병노동자들은 비공식 노동으로 외면 받으며 최소한의 노동기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한 실상을 알리고 사회제도적 문제점을 개선, 간병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자 실태조사 및 토론회를 열게 됐다”고 조사배경을 설명했다.

서 부위원장은 노동법상 사각지대에 처해 있는 간병노동자들에 대한 노동기본권 보장과 더불어 병원에서 간병인력을 직접 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해 환자와 보호자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간병 서비스를 제공할 것과 국공립병원 및 비영리기관 중심의 무료소개소 운영 의무화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요양서비스 공공성 확보, 간병인 직접고용 시급

병원노동자 희망터 최경숙 소장은 “정금자 의료연대 서울지역지부 간병인분회장이 2001년 노동부에 질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노동부는 행정해석상 ‘간병인은 노동자가 아닌 가사사용인’이라는 답변을 했다”며 “다른 행정해석이 없어 지금까지 ‘가사사용인’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간병인들도 엄연히 병원이라는 사업장에서 집단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라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또한 지난해 4월2일 국회를 통과해 올해 7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노인장기요양법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가 장기요양보험을 통해 노인들의 노후 및 요양을 책임진다고 홍보를 하고 있지만 실상 노인 100명 중 3명밖에 해당이 안 되며 보험 혜택을 받으려면 등급(1∼5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3등급까지만 해당이 되고 나머지 4, 5등급은 제외되며 장애인들도 배제됐다는 것이다.

그녀는 “요양보험이 사회보험으로서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해 공공성을 보장해야 하는데 정부보조금도 적을 뿐더러 오히려 시설과 인력을 전부 민간 시장화하고 있다”며 “요양시설과 인력을 민간에 모두 위탁하게 되면 영리추구를 위한 돈벌이 기관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고 시급(임시직)으로 설계되어 있는 요양보호사 등의 간병인력도 비정규직의 대량양산을 가속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65세 이상의 노인 및 65세 미만 노인성 질병(치매, 파킨슨병, 뇌혈관성 질환)을 가진 사람이면 신청할 수 있으나 장기요양 1∼3등급으로 판정(노인 인구의 3.1% 16만 명 추계)을 받은 사람에 한해 재가급여(방문요양, 방문목욕 등)와 시설급여(노인요양시설 등), 특별현금급여(요양시설이 없어 불가피하게 가족의 요양을 받는 경우)를 받을 수 있다.

보험료는 국가와 지자체가 일정 부분 부담하고 시설급여는 20%, 재가급여는 15%를 본인이 부담토록 했다. 의료급여수급자나 저소득층의 경우 1/2로 경감(시설 10%, 재가 7.5%)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안정적인 공급체계 없이 과도한 본인부담률에 의존하고 있어 결국은 국민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며 저소득층의 경우 서비스 접근조차 어려워 사회적 양극화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소재(부담비율)가 불분명하고 병원과 가정, 요양병원에서 보험이 다르게 적용되는 등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경숙 소장은 “민간위탁 계획을 전면 중단하고 정부가 직접 운영, 관리하는 기관을 만들어 공적인 인프라를 구축, 이를 통해 인력을 공급하는 체계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국민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간병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요양보호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임금 가이드라인과 노동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병인들은 가족 또는 의료진이 감당하기 어려운 중증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간병 서비스를 담당해 왔다. 그들이 환자에게 쏟는 노력과 정성만큼 그에 걸맞은 합당한 대우와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한 그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책임을 부여한다면 서비스의 질은 자연스럽게 향상될 수밖에 없다. 많은 시민단체들의 지적처럼 병원이 입원부터 간병까지 모든 서비스를 구축해 환자에게 제공한다면, 국가에서 공공의료 서비스에 대한 보조금을 확대해 나간다면 국민들의 이중부담의 고충과 간병인에 대한 불신은 자연스럽게 사그라지지 않을까.

2008/02/09 [16:32] ⓒ브레이크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