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산재보험, 더 넓고 평등해져야 합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현재 한국 산재보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제도의 혜택을 누리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산재를 당하거나 직업병이 생기면 100% 이 보험으로 치료받고 현금급여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은 사업주 눈치를 봐야 하는데, 사업주가 산재보험 신청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가장 큽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도 이 보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신청 방법이 복잡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보장 제도는 본인의 지식수준이나 시간이 있고 없고를 떠나 공평히 누려야 하는데, 현재 산재보험은 이 부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노동자들이 더 이 사회보장 제도 이용이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산재보험은 그간 산재보험에 신청조차 하지 못하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이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더 넓고, 평등한 산재보험이 되기 위해서는 첫째, 사업주가 산재보험 신청을 꺼릴 이유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업주가 소속 노동자의 산재보험 신청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산재보험 적용과 산재예방을 위한 근로감독을 행정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업주들이 산재 신청이 많아지만 산재보험료 부담이 많아지는 것 때문에 산재 신청을 꺼리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도 산재 신청이 많아지면 근로감독을 많이 받는 것 때문에 두려워서 산재 신청을 하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산재예방을 위한 근로감독은 상대적으로 은폐나 축소가 어려운 산재 사망 통계나 다른 객관적 지표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산재보험 신청을 많이 했다고 해서 근로감독의 대상이 되는 사업주 부담을 줄여주면 산재보험 신청에 대한 사업주 부담을 많이 줄여줄 수 있습니다.

 

둘째, 개별 사업장의 산재율에 연동해 산재보험료를 인상하거나 깎아주는 ‘개별실적요율제도’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별실적요율 제도는 산재가 많이 날수록 산재보험료가 오르게 되면 사업주가 스스로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해 운영되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산재예방 효과보다 산재를 은폐하게 하고 대기업의 산재보험료를 감면해 주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산재를 산재로 신청하지 않는 사업주에게 여러 가지 패널티를 주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이를 적발하기 쉽지 않아서 생각보다 그리 큰 효과는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의료기관 진료 자료가 거의 모두 전산화되어 건강보험공단에 보고되고 있어서, 이를 활용한 산재보험 은폐를 잡아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방식도 보다 고도화해서 사업주의 ‘보험사기’를 막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산재보험 신청 절차의 간소화도 필요합니다. 건강보험의 경우 환자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면 건강보험 신청 및 적용과 관련된 행정 절차는 의료기관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환자를 대신해 처리해 줍니다. 병원 진료 받으면서 건강보험공단에 건강보험 적용 신청 해보신 분들이 없으실 겁니다. 심지어 자동차보험도 보험회사가 환자의 많은 행정적 부담을 덜어줍니다. 많은 부분을 보험회사 직원이 대신해 주죠. 그런데 사회보험임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은 환자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정적인 사항을 다 챙겨야 합니다. 이는 산재보험을 이용하려는 노동자에게 과도한 행정적 부담을 지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재보험 신청, 적용시 소요되는 여러 행정적 부담을 의료기관과 근로복지공단이 나누어지도록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의료기관이 환자의 손상, 질병 상태를 파악하여 산재에 해당하는 환자들의 경우 환자들을 대신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는 제도를 활성화하고 확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산재 여부를 판단하고 산재 치료와 관련된 전반적 사항을 관할하는 의사를 지정하여 운영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넷째, 의료기관이 산재를 신청한 후 산재 여부 승인을 위해 필요한 행정적 절차를 돕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신청 도우미’를 적극적으로 운영할 필요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행정 소요가 적은 절차는 근로복지공단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고, 직업병 승인과 같이 행정 소요가 많은 경우에는 ‘국선 노무사’ 제도 등을 운영하여 산재 환자 당사자의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다는 점에서 환자 입장에서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건강보험 요양 과정과 산재보험 요양 과정을 통합일원화해야 합니다. 환자는 병원에 와서 치료받고 재활하는 것에만 신경을 쓰도록 하고, 나머지 행정적 과정은 의료기관, 국민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이 소통하고 사후 정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한국은 건강보험도 통합일원화되어 있고, 산재보험도 통합일원화되어 있습니다. 지역별로, 직장별로 다른 조합을 구성하여 운영하는 일본, 독일 등과 다른 사회보험 행정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행정 체계만을 놓고 보았을 때 영국, 북구 유럽 등 국영의료서비스를 운영하는 나라들과 더 흡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의료서비스와 공통적인 재활서비스는 보편적인 의료 체계 내에서 동일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고,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급여비용은 일단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먼저 의료기관에 지급하도록 한 다음, 사후에 근로복지공단이 정산하는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해보아야 합니다.

산재보험은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분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더 위험한 일을 하는, 더 보장받아야하는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산재보험이 지금처럼 이들을 배제한다면 산재보험은 가장 불평등한 사회보험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토론회를 통해 이들이 누구인지 고민하고, 찾아감으로써 산재보험이 더 평등하고, 더 보편적인 보험이 될 수 있는 기초가 놓아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