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은 ‘정의’의 문제…죽음을 묵인하던 시대는 갔다”
박용현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다수가 누리는 이익을 위해 소수에게 희생 떠안기는 구조
“이런 건 말이 안 돼”라는 분노의 공감대 광범위하게 형성
경제발전 위해 용인하던 과거 벗어나 새로운 사회계약 필요
중대재해법, 사업주 유죄 입증 쉽게 하는 핵심 조항 삭제돼
감독기관 전문성 높이고 안전대표제 등 노동자 참여 확대를
대선주자들, 산재 문제 해결할 근본 처방 공약으로 내놔야
경기 이천시 쿠팡 물류센터 화재를 계기로 ‘쿠팡 불매운동’이 번지고 있다. 잇따른 과로사에 이어 대형 화재까지 부른 열악한 작업환경과 노동자 안전 무시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살인기업”이라는 지탄부터 “노동자들이 자꾸 죽는다면 그건 시스템의 문제”라는 진단까지 시민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정곡을 찌른다. 평택항에서 컨테이너 사고로 숨진 이선호씨 사건 이후 산업재해 사망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진 상황이다.
산업 현장의 안전, 노동자의 생명에 대한 시민의식 고조는 “사회정의에 대한 기본 관념”에서 나오며 “이제 기업의 안전·생명 무시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국민의 태도는 산업안전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 새로운 사회계약을 요구하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말한다.
산업재해 문제의 근본적 해법과 동력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이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산재·직업병을 전공으로 하는 의사인 이 대표는 1999년 레지던트 시절부터 시민운동을 통해 산재 문제와 싸워왔다. 인터뷰는 지난 18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내 노동건강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산업 현장에서 한 해 800명이 넘게 사고로 숨진다. 대개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지나가지만 어떤 사건들은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일부 사례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산재 사망 사고에 대해 뜨거운 관심과 분노가 일어나는 바탕에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는 정의의 관념, 공동체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회정의에 대한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적어도 이런 일은 안 되지 않아?’ ‘이런 것은 말이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그런 공감대가 상당히 넓다.”
―요즘 시대적 화두가 정의·공정이기도 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의의 문제다. 이 사회가 돌아가게 하기 위해 일부 사람들에게 위험을 전가한다. 그분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사회가 움직이고 있다. 이익은 다수의 사람들이 누리지만 이를 위한 희생은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부정의로 해석되고, 이런 건 용인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산재 사망이 발생했을 때 분노의 에너지가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산재는 부정의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서 정의를 말하기 힘들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핵심적으로 보완할 점은 무엇인가?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을 유예한 것도 법이 후퇴한 점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이 법의 핵심은 경영책임자의 죄를 입증하기 쉽도록 하는 것이었다. 살인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살인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하듯이, 산재 사망 사고가 났을 때도 경영책임자의 고의를 입증해야 처벌할 수 있는데 그게 현실에서 어렵다. 검찰이 적극적인 입증 노력을 하지 않으면 법이 있으나 마나가 되는데, 지금 검찰의 인식 수준이나 구조를 봤을 때 그걸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입증 책임의 전환 또는 완화를 통해 특정한 요건만 갖춰지면 경영책임자의 죄가 있다고 보는 식으로 법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 조항이 빠진 게 안타깝다.”
―검찰에도 산재 사고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나 전담 검사를 두는 게 좋지 않을까?
“검찰 내에서 공안 부서가 산재 사건을 담당하는데, 공안 부서는 경제계에 편향된 의식을 보여왔다. 예전부터 공안 부서가 산재 사건을 맡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바뀌지 않았다. 산재 사건을 다루려면 별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기업 범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서가 산재 사건을 담당하기도 한다. 산재가 예방 가능했는데 필요한 조처를 하지 않아 발생했다는 것을 입증하려면 현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검사가 현장 자체를 잘 모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연대’ 집행위원장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을 지켜봤는데, 법 제정이 힘들었고 그나마도 약화된 형태로 통과된 이유는 뭐라고 보나?
“정치 지형이 기업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고정 변수다. 또 지속적인 관심과 대중적 에너지를 모아야 할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 그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산재로 돌아가시는 분들은 노조가 대변해야 할 조합원이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 노조가 많은 역량을 쏟아붓기 힘든 구조가 존재한다. 진보정당도 왜소화된 상태다. 한국 사회가 정치 지형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개혁이나 근본적 변화를 이뤄내려면 지속적인 시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처벌 강화 이외에 산재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은 또 뭐가 있을까?
“우리나라의 산재는 후진국형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첨단 기술을 이용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기술적인 차원의 해결 방식은 다 나와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를 보면 산재 사망을 줄이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는 기업 경영자의 관심이다. 두번째로는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처벌 강화도 결국 처벌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경영자들에게 우선순위를 높일 필요성을 각인시켜주기 위한 것이다.”
―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집행 과정이 철저하지 않으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현재의 산업안전 관리·감독 체계상 문제점은 무엇인가?
“전문성 부족이다. 행정고시 출신이 아니라 기사 자격증 등을 가진 전문성 있는 산업안전 근로감독관을 별도로 선발하기는 한다.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현장 사람들이 근로감독관을 무시한다. 집행 권한이 있으니 무서워는 하는데 진정으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현장을 잘 모르니 대충 넘어갈 것이라고 본다. 한마디로 현장에서 영이 안 선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는 전문성 있는 인력이 있는데.
“권한이 없다. 공단 운영 재원이 100% 가까이 산재보험에서 나온다. 사업주를 감독·지도한다기보다 산재보험료를 낸 사업주에게 안전과 관련한 기술적인 서비스를 하는 형식이다. 문제를 발견해 고치라고 해도 따르지 않으면 달리 방법이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질병관리청처럼 전문성 있는 관료들이 권한을 갖고 일하는 틀이 필요하다.”
―산업 현장이 매우 다양하고 각기 개별적 특성이 있을 텐데 현장 밀착형으로 관리·감독하는 게 쉽지는 않을 듯하다.
“전문성 있는 인력을 많이 뽑아도 사업장이 워낙 많아 100% 관리할 능력이 안 된다.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은 그때그때 기술이 바뀌기 때문에 전문성을 가진 관료라 해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다 할 수 없는 일은 노동자들과 권한을 나눠야 한다. 유럽이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 외국에는 ‘안전보건 대표제’라고 해서 노동자들이 투표로 안전 담당 요원을 선출하는 제도가 있다. 그 요원은 법적 감독권도 갖고 ‘타임 오프’가 적용된다. 중대 산재 사고의 대부분은 이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이 있어서 현장 노동자들이 예방 장치를 제안했음에도 무시된 끝에 터져나온다는 전형적인 패턴을 갖는다. 김용균씨 사고도, 이선호씨 사고도 그랬다. 큰 사고가 나기 전에는 징조가 있게 마련이고 그건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안다. 노동자들의 발언권·참여권을 확대해 위험 요인에 신속히 대처하는 게 필요하다.”
―산재의 원인이 노동자들의 ‘안전 불감증’에 있다거나 산업안전 규제를 노동자들 자신부터 싫어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유포되고 있다.
“그런 논리는 산업안전 정책을 펴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하니 금연 정책을 펴지 말자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작업하는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망에 이르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게 실질적 정책이다.”
―좀더 근본적인 산재의 원인으로 ‘위험의 외주화’ 같은 산업구조상 문제가 지적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 사망 사고의 대부분이 발생하는데 하나하나 사례를 보면 얼토당토않고 너무 어이없는 죽음들이다. 높은 곳에서 작업하면서 난간이나 안전망 등 당연한 안전장치 하나 없이 일하다 추락사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50인 미만 사업장에 나가 보면 대부분 한계기업이다. 안전 문제는 고사하고 이런 기업이 도산하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그런 기업이 생산활동을 유지하는 이유는 다단계 하도급으로 그 생산물이 값싸게 대기업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큰 사업장 내에서도 사고는 빈번한데, 이 역시 위험 작업을 대기업이 직접 관리하지 않고 외주를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작업은 한계기업에 맡기고 이윤은 위에서 뽑아가는 산업구조가 일반화돼 있다 보니 산재 해결이 난망한 것이다. 외국에서도 다 외주를 준다고 하는데, 일본·독일의 소규모 사업장을 가보면 안전조처가 제대로 돼 있고 작업장도 깨끗하고 괜찮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그런 기업에 가려고 한다. 정부가 청년들에게 중소기업에 가라고 하지만 가면 다치고 죽을 수 있다. 안 가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안전하고 일할 만한 기업으로 만들어놓고 가라고 해야 한다.”
―산재 감독과 처벌이 강화되면 기업 활동이 어려워진다는 인식도 여전하다.
“그런 논리는 팩트로 깰 수 있다. 산업안전에 투자를 많이 할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안전에 투자하면 비용으로 매몰되는 게 아니라 이익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경제 악영향 주장은 팩트나 논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다. 한국 사회가 워낙 기업의 앓는 소리에 반응을 잘해준다.”
―산재 방지를 위해선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지 않나?
“언론도 산재 보도의 우선순위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나온 논문을 보면, 산재에 대해 직업안전위생관리국(OSHA)이 보도자료를 낸 개수에 비례해 실제 산재 현실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도자료를 낸다는 것은 정부가 일종의 사인을 사업주에게 보내는 것이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것은 사회가 여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사인이 된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산업화를 이룬 나라들에서는 산재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왔나?
“서구에서는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에 많은 사람이 죽고 사회적으로 이를 용인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면서 여러 제도가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산재 사망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해결 방안의 모색이 새로운 국가 개념의 형성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국가가 시장·기업의 행위에 개입하는 사회국가의 틀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이후로도 광범위한 사회적 논쟁을 일으켜 새로운 사회적 합의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1970년대 영국에서 왕립위원회가 구성돼 방대한 의견수렴을 거쳐 ‘로벤스 보고서’를 낸 게 대표적이다. 이 보고서를 통해 산업안전 체계에 혁명적인 변화가 이뤄졌다. 우리도 산업안전을 기술적인 문제로 접근할 게 아니라 정치적 의제로 삼아 사회집단 간 맞닥뜨림을 통해 새로운 사회계약을 만드는 정치적 과정으로 해결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도 그런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나?
“우리 사회의 컨센서스가 이동하고 있다고 본다. 옛날에는 산재가 지금보다 더 심각했지만 사회가 용인했다. ‘이런 죽음이 안타깝지만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암묵적 합의 아래 사회가 돌아가는 체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사회적 합의가 깨졌다. 우리 국민은 더 이상 산재로 인한 죽음을 용인하거나 외면하지 못하겠다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 사회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기업과 정부가 부응하지 못하고 지체가 이뤄지는 형국이다. 높아진 시민의식, 정의에 대한 감각에 걸맞게 ‘진짜 뉴딜’을 해야 할 때다.”
―곧 대선 국면이 시작된다. 이 문제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태도도 중요할 것 같다.
“산재를 극단적 사례, 일부 계층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례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이미 국민이 요구하는 건 그런 수준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아프면 증상이 나타나는데 명의는 증상을 보고 근본을 찾아 들어간다. 팔이 곪는 원인이 암 때문일 수 있는데 곪은 곳만 치료하고 말면 암은 묻혀버린다. 산재 사망 사고는 한국 사회가 가진 극심한 불평등, 그 배후에 있는 경제·산업구조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극단적 증상이다. 그 증상을 해결하려면 근본 문제를 정치인들이 천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의에 대한 국민적 감수성이 높아진 데 따른 강렬한 시대적 요구다. 이런 부분을 심각하게 여겨 정부와 재계, 노동계, 시민들이 사회계약의 형태로 새로운 틀을 짠다는 생각으로 정책 공약을 내주기 바란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