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은 더 망가졌다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흰 눈 보다는 차가운 눈으로 더 기억되었던 농성장에서 버티며, 배고픔보다는 살려낼 수 있는 목숨을 기약하며 많은 이들이 함께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드는 투쟁을 했다. 그랬기에 더욱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안전사회를 위한 첫 발을 내딛는 법을 만들었다는 것을 위안삼고 투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세부적으로 적용할 기준을 담은 시행령은 어떠해야 한다는 우리의 의견을 냈다. 산안법 시행령처럼 중대재해처벌법을 더 망가뜨리는 시행령이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은 우리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안전보건관리자를 배치하고 관련 예산을 편성하면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한 것이고,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은 외부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24개 직업성 질병으로 1년에 3명 이상 발생해야 중대산업재해 질병으로 인정되고,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재판이 끝나야만 재해발생 사업장을 공개하고, 공연을 보다가 불이 나고 건물이 무너져도 중대시민재해가 아니고, 공중이용시설과 공중교통수단의 운영과 관리를 하도급 위탁할 경우 원청이 해야 할 책임은 모호하고, 연료 제조물에 의한 중대시민재해는 12개 법령으로 최소화되고, 느닷없이 사업장 규모에 따라 의무면제를 해주고 있는“ 시행령이다.

 

안전보건관리자 배치하면 재해가 예방되나

시행령에는 경영책임자들이 재해예방을 위해 어떤 조치들을 해야 하는지가 담길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 무리였던 것일까. 고 김용균노동자, 구의역 김군, 혼자 일하다 다음날 시신으로 발견된 건설노동자, 파쇄기 위에서 혼자 작업하다 맞은 죽음, 압축기계에 낀 채 발버둥 치다 도와줄 사람 1명이 없어서 사망한 노동자 들이 매일 매일 생기고 있다.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2인 1조라도 가능하게 노동자를 더 채용 배치하고, 작업량과 작업시간을 조정하고, 사업장 전반의 작업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김용균 노동자의 사고가 있었던 점검구에 없던 뚜껑을 달아두는 것으로 재해가 예방되지 않는다. 점검구에 몸을 집어넣지 않고 작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개선이며, 2인 1조 작업조를 편성하는 것이 재해를 예방하는 것이다.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이 아니라 안전보건 업무인력으로 한정하는 순간 인력부족에 따른 필연적인 장시간 노동이 해결되지 못하여 과로사망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어떤 심한 질병이라도, 살아있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대상이 아니다?

뇌심혈관질환, 직업성암 등으로 사망하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적용이 되지만 사망하지 않으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이 무엇인지 밝힌 시행령에서는 근골격계 질환, 소음성 난청 등은 아예 적용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놨다.

그리고 중대산업재해 관련 관계 법령에 대해 지난 9일 정부는 브리핑을 하면서 안전보건 관계 법령을 말하면서 근로기준법이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으면서 직장 괴롭힘이나 탄압 등에 의한 자살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중대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재판종료 후 공표가 무슨 의미인가

중대재해발생 사업장을 공표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적 처벌이다. 어디서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만으로 예방의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1심이 끝나는데도 1~2년이 걸리는 상황에서 최종 형이 확정된 다음에 공표하겠다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요식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경영책임자들에 대한 교육도 마찬가지다. 법을 몰라서 재해를 일으켰을까? 노동자, 시민, 피해자, 피해가족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예의를 갖추지도 않는 경영책임자들의 기본적인 시각을 바꾸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 배우는 법은 어떻게 하면 다음에는 걸리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기회가 될 뿐이다.

 

중대시민재해로 규정되기는 하는 건가

본 법에 사업장 규모에 따른 의무의 제한을 두지 않았는데 시행령에서는 원료제조물 분야에서 제외되는 사업장규모를 정했다. 거기에 적용되는 원료 제조물의 종류도 12가지로만 제한함으로 공중이용시설과 공중교통수단의 협소한 규정과 더불어 시민재해라고 할 수 있는 경우를 줄여놓았다. 강연이 이뤄지는 장소, 공연장소, 광주 철거건물 붕괴 참사가 있었던 철거현장도 모두 공중이용시설로도 공중교통수단으로도 포함되지 않는다. 교육시설인 유치원이나 학교 등도 빠져있다. 학교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어떻게 되는 건가? 평소에 누가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누가 평소에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런 시행령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다시 모두의 행동을 준비하고 시작해야겠다.

시행령을 개정하자!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개정하자!

 

2021년 7월 13일

(사)김용균재단 / 노동건강연대 /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 / 반올림 /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 일과건강 /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첨부) 시행령 입법예고안 주요문제점

 

첫째, 시행령안은 위험작업 21, 과로사 방지를 위한 적정 인력 확보 등 안전에 필수적인 인력 확보내용이 빠진 채, 단지 안전보건 전문인력 확보로 축소하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4조 1항은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 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를 시행령으로 위임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시행령(44) 안에는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에 대해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인력으로 협소하게 규정하였다.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을 안전보건관리를 하는 전문인력의 문제로 한정하는 것은 법 제정의 가장 중요한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법 제정의 공론화를 일으킨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김용균 노동자 참사를 비롯해 수많은 중대 재해가 2인 1조 작업 등이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하였다. 또한 적정인력이 보장되지 않아 집배, 택배 노동자를 비롯해 수 많은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죽어갔고, 지금도 많은 노동자가 죽음의 문턱에서 일을 하고 있다. 따라서 시행령 안은 이제라도 안전에 필수적인 적정 인력 확보에 대한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

 

둘째, 시행령안은 중대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하청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경영책임자의 의무를 직접 의무가 아닌 간접의무로 한정하였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종사자’의 정의에서 노동자, 하청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의 중대재해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법 5조에서 원청의 경영책임자에게 동일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시행령안(4조 중대산업재해 관련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에서는 하청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해서는 ‘위험요인 점검, 작업중지, 대피보고’ 등 기본 조치 적용을 명시하지 않았다. 단지, 종사자의 의견 청취와 위탁도급시 안전보건관리 비용과 수행기간 보장 등으로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하청, 특고에도 전체 조항이 적용되고 배제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정부의 설명대로 전체 조항이 적용되는 것이라면 그에 필요한 명시적 문구가 추가되어야 한다.

 

또한 시행령안은 하청, 특수고용 노동자의 중대재해 발생의 가장 근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적정 도급대금 지급 등’의 문제는 빠진 채 단지 ‘안전 보건 관리 비용’으로 한정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다단계 하도급으로 공사비용 자체가 낮아지고, 저가 낙찰 등이 중대재해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만큼 ‘안전보건 관리 비용’으로만 한정하지 말고 ‘재해예방을 위한 적정 비용’으로 확대해야 한다.

 

셋째, 시행령 5조 중대산업재해 관련 관계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조항에서 안전보건 관계 법령을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협소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안은 장시간 노동 제한 및 휴게 시간 보장 등 규정이 있는 근로기준법의 경우도 안전보건관계법령으로 보고 있지 않다. 또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적용되는 법령 또한 배제하는 문제가 있다. 과로사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택배 노동자, 화물운송 노동자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근로자성 문제로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모두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해당 산업 관련법에 휴식시간 보장 등 보호조항이 일부 있는 경우다. 따라서 안전보건법령은 산업안전보건법을 넘어서 모든 안전보건관계법령으로 확대해 과로사망에 대해 실질적인 재발방지 대책이 마련되도록 작동되어야 한다.

 

뿐만아니라 여러 법령에 규정되어 있는 안전보건 조항들이 규정되어야 한다. 청소노동자의 재해예방 핵심 대책은 폐기물관리법에 규정되어 있다.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되는 화학물질 사고에 대한 안전대책은 화학물질 관리법에 규정되어 있다. 감정노동, 일터 괴롭힘에 의한 자살과 정신건강 문제도 매우 심각한데 일터괴롭힘 예방조치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안전보건관련법령이 포함되어야 한다.

 

넷째, 시행령(52)에서는 법령 이행에 대한 점검을 외부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위탁 점검은 문제가 큰 독소조항이다. 민간에 위탁 점검을 맡기는 경우, 사업장과 위탁기관이 갑을관계로 인해 제대로 된 점검을 할 수 없고, 유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경영책임자에게 민간기관의 부실 점검을 방패 삼아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 한마디로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독소조항인 것이다.

또한 작년 10월에 개정된 ‘기업활동 규제 완화에 관한 특별 조치법’의 경우도 상시 300인 이상 사업장의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의 위탁 대행을 금지시키고 직접 선임하도록 하였다(2021.10월 시행) 그럼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경우 사업장 규모 등에 대한 제한도 없이 법 취지에 역행하여 위탁 점검을 예고한 것이다. 위탁 점검 조항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다섯째, 시행령안은 급성 중독 사고를 제외한 뇌심질환, 직업성 암 등 여러 직업성 질병의 경우는 적용을 제외하였다. 특히 질병 산재 1위인 뇌심 질환의 경우 과로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함에도 이를 배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또한 삼성 백혈병, 포스코 직업성 암 등 직업성 암 피해의 경우도 제외하고 있다.

중대재해 처벌법은 중대산업재해를 △사망자 1명 이상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이상 발생한 산업재해 △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이상 발생한 산업재해로 정의하고 있다. 이미 법에서 그 자체가 엄격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는데, 시행령에서 다시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 사고성 재해보다 더 많은 직업성 질병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예방 대책이 작동하도록 법 적용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시행령안은 시민재해 적용범위도 부실하다. 경영계 요구대로 화학물질 중 일부만 적용시키도록 하였고, 소상공인의 경우 교육 의무도 제외하고 있다.

시행령안에는 중대재해로 인정되는 공중이용시설의 범위가 협소하게 규정되어 공연, 강연, 교육 장소가 제외되었다. 광주 붕괴 참사와 같은 경우도 포함되지 않았다.

또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해서 일부의 화학물질에 대해서만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 시행령에는 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요인의 확인, 점검, 신고, 조치 요구, 개선, 추가피해 방지조치, 개선조치 등 기본 내용조차 12개 법령에서 규정한 최소 물질로 제한 적용하고 있다. 즉 화학물질 관리법상의 사고대비 물질 97개로만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국내 화학물질 4만 3천 여종, 화학물질 관리법상 유독물질만 700여개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 협소한 조치다.

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은 교육의 의무 등에서 제외하고 있어 법에서 위임하지 않은 적용제외를 시행령에서 남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