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는 <이달의 기업살인>에 대한 취재기를 월간 신문과방송 8월호에 게재했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의 조용한 죽음을 기록하여 책임을 묻고자 꾸준히 기업살인을 모니터링 해왔습니다. 좋은 기회로 ‘이달의 기업살인’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감시를 이어가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이달의 기업살인>
노동자의 ‘조용한 죽음’ 공개해 이끈 변화
남준규 /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오마이뉴스 <이달의 기업살인>은 노동자의 ‘조용한 죽음’을 기억·기록하고 책임을 묻기 위한 밑거름을 만들고자 기획됐다. 노동자의 죽음을 한데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 확인해 본다. (편집자 주)
1. “기업이 살인을 한다는 겁니까? 참 심하게들 하시네”
노동건강연대가 <이달의 기업살인>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배경에는 2006년부터 진행해 온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있다.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의 핵심은 ‘하청 업체의 산재를 원청 기업의 산재로 합산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원청과 하청 기업의 산재를 서로 다른 기업의 산재로 취급해 집계했기 때문에 원·하청 관계에서의 위험 전가, 위험의 외주화 개념은 없던 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산재를 원·하청 관계로 파악해 집계하는 것은 맞는 방법도 아니고 가능하지도 않다. 노동자 산재 사망은 건설과 조선 같은 규모가 크고 위험한 산업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이 산업 안에서 일어난 사망에 대해 원·하청 관계를 파악해왔다. 그 때문에 조선과 건설 산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는 대기업이 5위권 안에서 순위를 바꿔가며 최악의 살인기업상을 받아왔다.
원·하청 관계를 파악하는 방법은 아주 수공업적이었다. 정부에서 받은 사망 사고 사업장의 주소를 확인해 같은 주소지를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망 가운데 현대중공업과 같은 주소에서 발생했는데 업체명이 다르다면 현대중공업의 사내 하청 기업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볼 수 있다. 이 사망은 현대중공업의 사망 사고로 집계한 후 실제 그 이름으로 사내 하청 기업이 존재하는지 사업체를 확인하고 울산 지역 노동조합, 노동단체에 사고 발생 여부를 파악하는 추가 확인 과정을 거친다.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은 기업들 사이에서 피하고 싶은 상이기에 사전에 순위를 확인하려는 회사 관계자가 연락해오기도 하고, 대기업 사이에 서로 1등이 아니라면서 순위를 바로 잡아달라고 연락하기도 한다. 마음 아픈 상이지만 순위는 정확히 해야 하기에 재확인을 거친다. 기업들도 이 상을 자꾸 받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에서 사망 사고가 잦았다. 레미콘, 덤프트럭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들은 교통사고로 집계돼 있기에 잘 찾아내야 한다.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사망했는지 찾아내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2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것을 밝혀내 2011년에는 4대강 사업 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특별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 상의 선정과 관련해 가장 임팩트 있었던 것은 한 일간지의 기자의 반응이었다.
“기업이 살인을 한다는 겁니까? 참 심하게들 하시네.”
언론사에서 <이달의 기업살인> 연재까지 하는 지금, 그 기자님은 생각이 좀 바뀌었을지 궁금하다. 이 선정식을 하면서 기업별 사망 노동자의 수를 집계하고 공개하는 것이 기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얼마나 정치적인 문제인지 인식하게 됐다. <이달의 기업살인>은 그렇게 태어났다.
2. 본인 회사 빼달라는 항의 전화도
노동건강연대가 일 때문에 죽은 노동자를 확인하는 방법은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를 확인하는 것이다. 네이버나 구글에서 ‘숨져’, ‘사망’, ‘추락’, ‘노동자’, ‘작업자’, ‘인부’ 등 키워드를 검색해 찾아서 사망한 날짜, 사망한 지역, 재해 유형, 재해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안전보건공단의 사고 사망 속보, 국내 재해 사례를 참고하고,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신문의 국민 안전관리 일일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또 노동조합이나 시민의 제보를 받고 있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SNS를 통하는 등 이용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망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런 수집·분류 방식을 만들어가기까지 처음엔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다. 크레인이 ‘넘어지면서’ 위에 있던 노동자가 ‘추락’하는 경우는 재해 유형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부터 고민이 들었다. 고용노동부는 사망 유형을 24가지로 세분하고 있다(떨어짐, 넘어짐, 부딪힘, 물체에 맞음, 무너짐, 끼임, 절단·베임·찔림, 감전, 폭발·파열, 화재, 깔림·뒤집힘, 이상 온도 접촉, 빠짐·익사, 불균형 및 무리한 동작, 화학물질 누출·접촉, 산소 결핍, 사업장 내 교통사고, 사업장 외 교통사고, 업무상 질병, 체육 행사, 폭력 행위, 동물 상해, 기타, 분류 불능). 위와 같은 상황은 ‘무너짐’으로 분류하고 있다. ‘넘어짐’은 주체가 사람이어야 하고, 크레인 관련 사망은 추락(떨어짐)보다는 무너져서는 안 될 크레인이 지반 ‘무너짐’으로 넘어가게 된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이처럼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뉘앙스가 <이달의 기업살인> 회차가 진행되면서 점차 선명해져 갔다.
수집 방법에서는 ‘근로자’, ‘숨져’ 같은 키워드로만 검색하다가 ‘인부’, ‘배달’로 보도되는 단신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 노동자를 지칭하는 키워드가 ‘근로자’, ‘직원’, ‘인부’, ‘기사’, ‘작업자’ 등 다양하게 존재했다. 산재 사망의 경우 디테일한 보도 양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노하우가 생겨서 모니터링에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놓치는 기사가 있을까 마음을 졸인다. 그리고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사고 사망 소식을 ‘코샤뉴스(KOSHA NEWS, Korea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gency NEWS)’라는 이름으로 공개했는데, 언론에 보도되는 재해 장소와 재해 유형이 일치하지 않아서 여러 차례 문의해 확인하기도 했다. 노동안전을 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 재해 조사 의견서를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는 최근까지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건설사에서 자기네 회사를 빼달라고 항의 전화를 걸기도 했다.
수집하는 기사에서 사고가 발생한 곳의 회사명 등을 밝히는 경우는 아주 드물긴 하지만, 회사명이 적힌 기사를 찾게 되면 <이달의 기업살인> 리스트에도 꼭 반영해왔다. 주로 자기네 회사 소속이 아니고 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라는 주장을 펴곤 하는데 이럴 때면 수정할 수 없다고 돌려세우고 해당 업체의 과거 사고까지 찾아내 노동건강연대 SNS에 공개했다. 노동건강연대는 오래전부터 원·하청 관계, 파견처럼 비정규 노동이 산업재해의 구조적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하며 위험의 외주화에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3. 산재 사망 묵인하던 시대가 가고 있다
노동건강연대가 <이달의 기업살인>을 공개하면서, 그리고 김태규, 김용균과 같은 한국 사회의 경종을 울린 청년 노동자의 산재 사망 후 변했다고 느낀 것은 늘 단신 처리만 되던 노동자의 죽음이 좀 더 많이 보도되고 며칠에 한두 건 공개되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사고 사망 속보량이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에서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입수한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달간 발생한 중대재해를 보고하기 시작했다. 또 경향신문의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2018년 1월
~2019년 10월까지의 산재 사망 사고 아카이브)>, KBS와 노동건강연대가 함께한 <일하다 죽지 않게> 연속 보도처럼 언론도 산재 사망에 대해서 훨씬 비중 있게 다루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2019년 1월 15일 ‘김용균법’으로 알려지게 된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부개정 됐고, 2021년 1월 26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우리 사회가 산재 사망을 묵인하던 시대가 가고 있다고 느껴졌다.
한편 방송과 신문에서 노동자 산재 사망을 다룰 때 아쉬운 부분이 있다. 기업명이 가려져 있거나 축소돼 보도되는 문제다. 기업명 가운데서도 발주 기업, 원청 기업의 이름을 제대로 정확하게 알리고, 기업 내부 시스템이 어떠한가를 들여다보는 기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노동건강연대 같은 시민단체는 기업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건강연대는 기업살인 운동을 하면서 많은 대기업의 대표이사를 노동자 사망 책임을 물어 고발했다. 이건 비밀인데, 대기업은 대표이사, 최고경영자, 오너의 이름이 이런 일로 오르내리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우리 같은 작은 단체가 고발해도 고발을 취하해 달라고 은밀하게 연락을 시도한다. 비밀이 아니라 언론에서 가장 잘 아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노동자 산재 사망에서 발주 기업, 원청 기업 사장님들의 책임을 묻는 취재와 보도를 더 많이 해줬으면 한다. 아마도 노동자들이 조금은 더 안전해질 것이다.
4. 최소한 일 때문에 죽는 억울한 노동자가 없기를
<이달의 기업살인>이 목표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모든 일하는 사람이 일 때문에 다치거나 죽지 않는 노동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죽음이 ‘큰일’로서 언론에 더 많이 보도될 수 있게 하고,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통계를 왜곡 없이 집계하도록 하고, 중대재해 조사 보고서나 재해 조사 의견서를 시민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할 것이다.
노동자의 죽음을 한데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을 매일같이 하다 보니 죽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든다. 죽음은 하나의 우주가 소멸하는 것과도 같다. 특히 산재 사고 사망은 가족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발생해 유가족의 시간을 그날로 멈추게 한다. 지금은 재해 경위와 집계에 급급하지만, 산재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의 면면을 보여줄 수 있다면 산업재해의 사회 구조적 원인을 이해하고 알리는 데 효과적일 것 같고 좀 더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최소한 일 때문에 죽는 억울한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