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에 1명씩 일터에서 사망… 도대체 언제까지?
[해외리포트] 세계 산업안전보건의 날 맞아 돌아본 산업재해 문제

11.05.03 전희경 (hkchun)

▲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전하는 미국 노동부 포스터. “매일 12명의 노동자가 죽는다 +매년 330만 명의 노동자가 심하게 다친다 = 너무 많다.”
ⓒ 미국 노동부 산업재해

매해 전 세계에서 200만 명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15초에 한 명, 즉 하루에 5800명 꼴로 직장에서 사망한다.

720만 작업장에서 일하는 1억 3000만 미국 노동자 중 매일 12명씩, 2009년에만 4340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5만 명이 직업병으로 사망했다. 1만4000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한 1970년에 비해 그 수는 줄었지만, 여전히 작업장 사망에는 휴일이 없는 셈이다. 예방될 수 있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기업이 저지른 일에 대한 부담을 사회가 지고 있다.

지난 4월 28일은 세계 산업안전보건의 날이었다. 또한 미국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40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다. 이날 미국에서는 국제 산업재해 노동자를 추모하는 수백 건의 지역별 노총 행사를 비롯해 힐다 솔리스 노동부장관, 데이비드 마이클 산업안전보건청장의 연설과 산재 예방 결의가 있었다.

또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는 178페이지에 달하는 2011년 산재보고서 을 발표했다. AFL-CIO는 이 보고서에서 “매년 400만 명 이상이 산업재해를 겪었다고 보고되고 있지만, 노동계는 이 수치가 (실제의) 절반에 불과할 뿐이며 나머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날 피츠버그, 워싱턴DC, 오하이오 등에서는 산업안전보건청(OSHA)과 미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 설립 40주년 행사도 열렸다. 이 두 기관은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한 산업안전보건법(OSH Act)에 의해 탄생한 공기관이다.

두 기관 설립 40주년을 맞아 관련 정부 부서, 싱크탱크, 학계, 노동계에서는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졌는데 이 중 4월 21일 미국진보센터의 토론회는 많은 조명을 받았다. 미국진보센터는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중 하나다.

존 포데스타 미국진보센터 대표는 데이비드 마이클 산업안전보건청장, 페그 세미나리오 AFL-CIO 산업안전보건이사 등을 센터로 초청해 산업재해와 직업병 발생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예방 및 관리 대책, 그리고 이를 실효성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 등에 대하여 토론했다. 향후 반복적인 규정 위반 사업주에 대한 규제를 확대하고 산재 예방 및 노동자 보호를 법적 장치로 강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 미국 노동부 자료로 만들어 본 노동자 사망 원인 그래프. 운송수단에 의한 사고, 직장 내 폭력, 접촉 및 추락사가 많다.
ⓒ 전희경 산업재해

작업장 사망에는 휴일도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968년 린든 존슨 대통령(민주당)이 노동자 보호를 위한 포괄적 직업 건강 및 안전 프로그램을 제안한 후, 1970년 12월 29일 닉슨 대통령(공화당)이 최종 서명하면서 탄생했다. 이 법이 생기기 전, 수많은 노동자들은 사망하고 다치고 병드는 아픈 과정을 감내해야 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1년 3월 25일 뉴욕 트라이앵글셔츠웨이스트 공장에서 불이 나 146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죽었다. 도둑을 염려한 사업주가 화재 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막아놓는 바람에, 10층 건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10대 소녀들이 사망한 것이었다.

같은 해 4월 8일 앨라배마주 리틀톤에서는 128명이 탄광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1919년 1월 15일에는 매사추세즈주 보스턴에서 정유회사의 저장탱크가 폭발해 31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다쳤다.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는 1907년 362명의 광부가 사고로 사망했는데, 지난해에 또 탄광 사고가 발생해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BP사 사고로 11명이 사망했다.

1970년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되기까지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는 집단들(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 노동계 등) 간에 첨예한 대립이 벌어졌다. 사업주는 이 법에 담긴 일반요구의무조항이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주장했고, 노동계는 이와 달리 연방기관이 사업장을 감독할 때 작업장을 순시할 권리와 급박한 위험이 우려되는 상황일 경우 공장 폐쇄권을 요구했다. 노동계는 노동자가 보호받을 권리 및 관련 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일반요구의무(General Duty) 조항은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이 법에 대해 사업주와 공화당은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주가 어떻게 작업장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기보다 오히려 많은 사업주들을 처벌받아야 하는 잠재적인 범법자로 취급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법안에 (처벌보다) 사업주의 선의와 협조가 우선적으로 명시돼야 하는데 그런 사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제정된 후 4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법은 단 한 자도 수정되지 않았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이 법안의 원칙과 기준이 훼손되지 않은 것이다.

“작업장 감독 때 사전통지 금지 조항, 한국도 도입해야”

▲ 노상철 교수.
노상철

이러한 산업안전 문제와 관련해 기자는 노상철(42) 단국대 산업의학교실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 작업환경이 향상되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은 노동자가 산재 및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노 교수는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4월 초에 출간한 에서 미국의 산업보건 역사 및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의 하나인 사전통지 금지법을 다뤘다. 사전통지 금지법에 대해 소개해줬으면 한다.

“1970년 미국 상하 양원위원회는 작업장 감독 때 사전통지 행위(방문 시기를 미리 사업주에게 알리는 것)를 금지하기로 결정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 범칙금 또는 징역형을 부과하였다.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중요하며,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사전통지 금지 법안이 미국 사회에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산업보건 영역 중 감독 업무와 관련한 사항에서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세워진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작업장 감독에 대해 포괄적인 언급을 하고 있다면, 그 하위법에 해당하는 미연방규칙(CFR) 제29조는 사전통지 관련 사항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즉각적인 위험에 신속한 대책이 필요한 경우’ 등 네 가지 예외사항을 제외하면, 사전통지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이를 위반하면 벌금과 징역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 안전보건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을 방문할 경우 사전통지 행위가 금지된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사전에 알리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는데, 이는 정당한 것인가? 산재 예방 및 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로 어떤 것이 더 필요할까?

“감독관이 안전보건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을 감독 및 조사하기 위해 사업장을 방문하게 될 때, 그 시기가 중요하다. 감독관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사업장에서 미리 인지하면 작업환경 관련 사항들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은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업장에서 문제의 원인도, 해결책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것은 물론 향후 다른 사업장에서 발생할 유사사례에 대처할 기회도 잃어버릴 수 있다. 앞으로 한국에도 사전통지 금지 항목이 산업안전보건법에 새로 추가된다면, 재해를 줄이고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향후 산업재해를 예방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한국에서 노동자의 사망과 재해를 예방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 현실적인 방안은 국가 산업보건시스템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완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업장을 감시 및 감독하는 실제 담당자에게 그러한 권한을 부여하고, 이를 관련 법규에서 규정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과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 한 다른 많은 나라들이 겪은 심각한 산재 문제는 반복될 밖에 없다.”

출처 : 15초에 1명씩 일터에서 사망… 도대체 언제까지?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