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동료인 이준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화력지회장. 그는 ‘김용균 추모 배지’를 늘 달고 있다. 전수경

 

2020년에만 노동자 10만8천여 명이 업무상 사고를 당하거나 업무상 질병에 걸렸다. 산업재해(산재)는 멀리 있지 않다.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은 우리 곁에 항상 있다. 이철 작가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산재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들은 ‘내 곁에 산재’ 이야기를 전한다. 노회찬재단과 〈한겨레21〉이 공동기획했다. 앞으로 격주로 이들의 기록을 연재한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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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서 용균이와 맥주를 마셨었죠.” 2021년 8월 초, 충남 태안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만난 이준석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태안화력지회장이 호프집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가슴에는 ‘비정규직 이제 그만’ ‘죽지 않고 일할 권리’라는 글자가 쓰인 ‘김용균 추모 배지’가 달려 있었다.

2018년 12월, 이준석 지회장은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태안 시내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 있었다. 그때 용균이가 자기 생일이라면서 이 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호프집으로 용균이를 불렀다. 군 제대 후 일자리를 찾아 경북 구미에서 태안으로 온 스물넷 청년 용균이는 나이 차이가 나는 동료 형들과도 편하게 지냈다. 그날 저녁이 용균이를 살아서 본 마지막 날이 됐다. 닷새 뒤인 12월11일 새벽,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 석탄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노무비 착복 근절 권고했지만 월급은 그대로

김용균은 새벽에 혼자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고 어느 부위가 고장났는지 알기 위해 머리를 숙여 벨트 안으로 불을 비췄다. 그 순간 몸이 벨트로 빨려 들어갔지만 벨트를 멈추는 버튼을 눌러줄 동료가 곁에 없었다. ‘2인1조 근무’는 이뤄질 수 없었다. 김용균이나 이준석 지회장 같은 하청업체 비정규직이 아무리 인력 충원을 요구해도, 원청이 인건비를 늘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원청인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은 업체 이윤과 관리비 등을 최소화해 입찰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다음 노동자 인건비에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하는 복지비를 ‘업체 몫’이라며 떼갔다. 한국서부발전을 포함한 발전 5사(서부·남동·중부남부·동서발전)의 운전과 정비 부문 등이 민영화된 뒤, 입찰에 참가하는 하청업체가 이윤을 남기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김용균의 죽음 이듬해에 구성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이 같은 노무비 착복을 근절하라고 권고했지만, 그 뒤에도 발전소 하청노동자의 임금은 230만원 안팎 그대로다.

“하청업체가 떼가는 노무비만 돌려놔도 월 70만원은 오르거든요.” 이준석 지회장은 여전한 저임금에 목소리가 높아진다. “하청노동자들을 직고용한 이후에 임금체계를 바꾼다면서 미루고 있어요.” 정부가 공기업 안전지침을 만들어 ‘2인1조’ 작업 의무화를 지시했지만, 이 작업을 위해 추가로 필요한 일자리는 3개월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 비정규직 차지가 됐다. “직고용을 기다린다고 정식 채용을 미루는 거죠.”

2019년 2월9일, 김용균의 장례가 치러졌다. 죽음 이후 62일 만이었다. 김용균의 죽음은 ‘위험의 외주화’와 원·하청 구조 때문이라는 사회적인 공감도 점차 커졌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당정합의서를 공개하고,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직고용을 약속했다.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연료운전 파트에서 가장 큰 민영 업체인 한전산업개발을 공공화한 뒤에 김용균이 일한 한국발전기술 같은 작은 민영 업체 노동자들까지 한전산업개발이 고용한다는 안을 내놨다.

쉼터도 생기고 물 넣는 냉장고도 있지만

걸림돌은 한전산업개발 지분 51%를 보유한 자유총연맹의 입장이었다. 한전산업개발은 정부가 먼저 매입 가격을 내놓으면 지분 매각을 생각해보겠다면서 팔짱만 끼고 있다. 정부는 자유총연맹이 원하는 가격을 먼저 제시하라고 한다. 한전산업개발 주가는 2021년 상반기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러가는 사이, 김용균의 동료들은 화력발전소 안에서, 폭염 속에서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힘겨운 노동을 견디고 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 발전 5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투자하고 쉴 곳을 마련하는 일보다는 △안전 슬로건을 만들고 △안전경영 목표를 세우고 △안전작업 허가서를 엄격하게 마련하는 일에 힘썼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안전을 제1기준으로 반영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홍보 강화와 문서량 증가’로 둔갑했다. 위험한 곳에 스티커를 붙이고 사진을 찍게 하거나, 경광등을 달아주는 일 등이 안전경영의 일환으로 등장했다. 2020년에는 안전작업 각서를 받으려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달라진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에요. 어두컴컴했던 작업장도 밝아졌고, 설비도 개선됐고, 시원한 물을 무료 지급하는 냉장고도 놓였고 쉼터도 만들고 있어요.” 한국서부발전은 2019년 당정합의 당시에 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개선을 약속한 바 있다.

2019년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일원으로 발전 5사 노동자 면담조사를 진행할 때 방문했던 어느 발전소의 연료운전 작업장은 ‘어두운 것’과 ‘덜 어두운 것’ 정도만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온통 어두웠다. 석탄가루가 쌓인 작업장 바닥은 위원회의 조사를 앞두고 급히 청소했는지 물이 흥건했다. 당시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쉴 곳도 씻을 곳도 없다” “식당이 없어서 사무실 책상에서 밥을 먹는다”고 호소했다.

다행히 태안발전소만큼은 환경이 나아지고 있다. 이준석 지회장은 그래도 노동조합이 있어서 계속 요구해온 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태안발전소의 변화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다른 발전소 노동조합 동료들에게 보내면 “믿을 수 없다” “정말이냐”는 답이 돌아오곤 한다.

“노동조합의 힘으로 하는 데까지”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갑사’는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어요.” 여기서 ‘갑사’는 항상 ‘갑’인 회사, 즉 원청을 뜻한다. 20여 년 공기업 민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갑사’가 된 석탄화력발전소의 임직원들은 석탄이 컨베이어벨트에 실리는 현장에 가보지 않아도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위험한 노동의 대가로 창출된 이윤은 자유총연맹의 주주 배당금으로 돌아간다. 정부가 공공화를 추진하는 한전산업개발은 원래 한국전력이 전액 출자한 공기업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발전소 생산시설을 돌리고, 발전 5사 산재 사고의 97%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서 일어나는 배경에는 이처럼 효율과 비용절감을 앞세워 민영화를 추진한 정부의 정책이 있다. 많은 연구가 기업친화적인 국가정책과 노동자의 높은 산재 사망률이 연관돼 있다고 분석한다.

이준석 지회장에게 김용균의 죽음은 ‘책임감’이다. “용균이가 죽고 처음에는 진상만 규명하자고 생각했다”는 이 지회장은 이제는 “노동조합의 힘으로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말한다. 직고용 전망은 “먹구름”이다. “직고용을 약속했던 민주당은 이미 다음 대선 일정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어요. 이번 정부에서 약속한 거니까 이번 정부에서 책임져야죠.”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