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20주년 축하의 말들] “고마워! 같이 살자.”

노동건강연대가 스무 해를 걸어오는 동안 무수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노동건강연대 활동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 사건이나 일 때문에 만났다가 진득하게 엮인 단체, 연락을 주고받지 못한 채 수년이 흘러 아쉬운 사람, 안부를 묻는 게 오히려 낯간지러운 사람. 노동건강연대의 오늘을 만들어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긴 여정에 함께 해주셨던 분들에게 받은 축하말을 나눕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김미란 ∥ 인쇄디자인꼼 대표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똑!똑!똑! 반갑습니다.^^ 노동건강연대 20주년을 축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현재 인쇄물 디자인·제작 일을 주 업으로 살고 있답니다. 멀티적인 생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인생 2막에는 ‘단순 유쾌 건강히’ 살고픈 게 희망인데 말이죠…ㅋ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노동건강연대는 인쇄노조에서 조합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요, 2003년(?) 상근활동을 할 적에는 한 지붕 아래 살기도 했어요. 충무로·을지로 영세사업장들이 밀집된 지역에 사무실이 있었죠. 이후 노건연이 성수동으로 터전을 옮겼던가요?ㅎ 떠오르는 노건연 식구들, 영세사업장노동자들을 위한 실태조사며, 건강권 사업 등, 다양한 일들과 함께 성동지역에서의 연대 활동 등이 퐁!퐁! 비눗방울처럼 떠오르네요. ㅋ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30주년이 아니고요? 단체명처럼 ‘노동건강연대’가 노동자들과 가까운 곳에 있으려 하고, 함께 연대사업을 실천했던 것 같아서 내공 100단이라고 생각했는데… ㅋ 20년밖에 안 되었다고 해서요. ^^ 지난날 함께했던 동지가 옆에 없더라도, 새 동지들과 함께 꿋꿋하게 노동자들 곁에서 힘이 되어주세요!!! ‘노동건강연대’ 영원하라! 30주년 가으자~ ^.~

 

김성희 ∥ 만화가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문밖의 사람들〉을 출간한 이후는 저는 로드워커 게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설명하기 모호한데, ‘미지수에 나를 열어두고 도시 수렵채집 활동하기’입니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반올림 연대에서 첫 인연을 마주했고, 기업살인법 입법활동에 관심을 가지다가, 메탄올 사건을 〈문밖의 사람들〉 만화로 만드는 인연까지 이어졌습니다. 활동가와 노동인권에 대해서 열린 질문과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소중한 인연이었습니다.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자기 조직 없는 노동자들, 인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20년이 고맙고 다행입니다. 노건연은 관성화되지 않고, 생생한 활동으로, 조직이 먼저이지 않았던 유연함으로 기억합니다. 행복한 마음으로 지치지 말고 활동하세요.

 

김순구 ∥ 산업잠수사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해양환경과 관련된 자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어민들의 수족자원 남획과 기후변화로 인해 나날이 황폐해져 가는 바다를 되살리기 위해 바닷속에 해조류를 심고 수중폐기물을 수거하고 해양생태계를 조사 분석하는 업체입니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2014년 9월 27일 월성원전의 냉각수 취수구를 청소하던 잠수사 한 분이 작업 중 가동된 취수펌프에 빨려 들어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고인의 시신 극히 일부만을 수습할 수 있었던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사고를 당하신 분이 저에게 아버지 같고 친구 같은 동료였습니다. 거대 공기업을 상대로 힘겹게 싸우던 중 언론사에서도 외면받아 낙담하고 있을 때에 저희에게 손을 내밀어준 분들이 노동건강연대의 전수경, 박혜영 활동가셨습니다.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대단히 존경스럽고 멋있는데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노동건강연대입니다. 이 세상이 상식적이라면 존재 이유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크게 만들어주셨고 세상을 우리 스스로가 바꿀 수 있다는 깨우침을 주신 분들이 바로 이 멋진 분들이십니다. 노동건강연대가 더이상 부당한 일로 싸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그러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응원하고 고대합니다. 20주년 축하드립니다.

 

김철주 ∥ 회원·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안녕하세요. 노동건강연대 회원 김철주입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얼굴 본지 다들 오래된 것 같네요. 다들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늘 똑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특수건강검진을 하면서 늘 무력감을 느끼고 있고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서울시 민간역학조사관으로 나름 열심히 활동했던 것이 기억이 남네요. 늘 철밥통으로 생각하고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보건소, 지방자치 공무원들이 국난을 맞아 나라를 지키는 것을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 무차별적인 초과노동이 있긴 했죠.

노동건강연대 회원이 된 지도 오래되었네요. 2009년 한림대 직업환경의학과 전공의가 되면서 강제로(?) 회원가입을 마치고 우체국 근골 교육 사업을 시작으로 여러 일을 수행한 것 같습니다. 제일 기억나는 일은 내방역 사무실이 있을 때 회의는 짧게 하고 뒤풀이를 길게 하면서 노동자의 건강을 위해 토론하던 시절입니다. 하루는 이상윤 대표님 댁 아이 출산 소식을 듣고 봉투에 10만 원을 들고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 대표님이 그날 안 오셨더군요. 그래서 그 돈을 활동가를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돈도 많아 낙지를 시켰을 때 혜영샘이 좋아하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나네요.

어느덧 노동건강연대도 20주년이 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메탄올 투쟁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 등 우리 노건연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제가 그 회원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하지만 갈 길은 먼 것 같습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하는 일이 우리 사회 모순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쿠팡 노동자의 검진을 하면서 이 잔인한 자본주의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이 대표님 표현대로 노동자가 건강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맺고 그걸 이행하는 날까지 열심히 전진했으면 합니다.

 

박두용 ∥ 전 대표·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요즘 산재, 안전 문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서 그 물길 속에 떠내려가는 중이다. 사람들의 요구수준과 눈높이는 계단식으로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데 문제의 구조나 해결은 이를 못 따라가고 있다. 어려운 점은 누구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 오랫동안 누적되고 꼬여있어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오랜 문제들이 안전이라는 윈도우를 통해 터져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지금의 물길을 거슬러 갈 수는 없지 않나. 정신 차리면서 잘 헤엄쳐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노건연 생길 때가 1인당 1만 불을 막 넘어가던 시점이다. 이전에는 ‘수질오염’이라고 하면 법에서 정한 오염만 피해서 가면 되었지만, 「대기환경보전법」처럼 환경의 보전과 증진까지 시각이 확대되고, 산재 문제도 조금 더 일반적이고 폭넓은 시각으로 보자는 흐름이 있었던 것 같다. 산추련 시절부터 회원이었던 건 아니고 외부 전문가로 세미나에서 발제하고 토론에 참여하곤 했는데 어쩌다보니 휩쓸려가서 같이 활동하게 되었다. 개미지옥이라고 해야하나? ㅋㅋ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기도 했다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산추련이 해체되고 노건연으로 전환하던 시기가 하나의 변곡점이라면, 지금이 또 한 번 변혁의 시기가 아닐까 싶다. 스무 해면 이제 성인으로 접어든 시기다. 앞으로 시민사회운동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깊이 고민할 시기이다. 이제 기술적·법리적 쟁점들이 더 복잡하고 교묘해져서, 분명한 책임 여부나 선악의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게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보건문제를 과거의 방식으로 해결하거나 운동으로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 한 차원 높은 노동자, 아니,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 운동으로 호흡을 맞출 것인지, 어려운 숙제지만 열심히 하길 기대한다.

 

백도명 ∥ 전 대표·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정년퇴직을 앞두고 정리, 마무리를 하는 중이다. 물리적 공간도 그렇고 하던 일도 그렇고, 정리하며 골라내는 일이 엄청난 거 같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노건연에 대한 맨 처음 기억은 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에서 박사학위 공부를 하던 중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는데 ‘노동과건강연구회’에서 일본분들과 같이 과로사 모임을 서강대에서 한다고 해서 가본 것이 시작인 거 같다. 이후 산추련 해체 과정에 대해 당시에는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고, ‘현장에서 문제를 푸는 것이 쉽지만은 않구나’ 생각했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2001년 임상혁, 주영수 선생들이 새롭게 노건연 문을 연다고 할 때 본격적으로 같이 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산업보건 분야가 중요하게 바라보지 않던 파트를 들여다볼 수 있는 활동이 좋았다.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삶이 노동을 통해 의미를 찾지만, 또 노동 때문에 삶을 잃어버리는 지점도 있다. 노건연은 그 부분이 어디인가를 가장 앞에서 바라보았던 단체 아닐까 싶다. 가장 앞에 서 있으면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잘 안 보이고 깜깜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에서 그 자리를 지켜가는 사람들이면 좋겠다.

 

선대식 ∥ 오마이뉴스 기자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어요. 이때다 싶어 육아휴직을 신청했어요. 어느덧 육아휴직 5개월째, 아이가 좋아할 저녁 식사를 고민하고 만드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2016년 봄이었어요. 메탄올 중독 사건이 벌어진 때였습니다. 취재를 위해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박혜영 노무사에게 연락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이듬해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뜨거운 1년을 보냈습니다. 메탄올 중독 사건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스토리펀딩을 진행했습니다. 피해자들을 만나고, 토크콘서트를 열고, 전국 곳곳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도 했습니다. 1,740만 원의 후원금이 모였습니다. 그때 노동건강연대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회원에 가입했습니다. (강요에 의한 게 아니었어요!)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앞으로 일하다 다니거나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온다면, 그건 지난 20년 동안의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회원의 활동 덕분일 것입니다. 언젠가 노동건강연대의 활동이 필요 없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 노동건강연대를 주변에 많이 알리고, 후원도 하고, 응원도 계속할게요!

 

시민건강연구소

〈노동과건강〉 100호, 노동건강연대 20주년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노동건강연대와 시민건강연구소는 그 어떤 단체보다 각별한 연대와 우정, 그리고 사랑과 열정을(!) 나누고 서로를 응원하며 오늘까지 함께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노동건강연대가 서울혁신파크의 아주 세~련된 사무실을 쓰고 있지만, 한동안은 시민건강연구소와 겨울엔 몹시 추운 사무실을 나눠 쓰며 활동가들이 동고동락하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짠해지네요…) 그리고 아직도 시민건강연구소는 노건연이 남기고 간 비품들을 쓰고 있어서 농담처럼 우리 두 단체를 자매단체라고 소개하는 말이 아주 빈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답니다 ㅎㅎ 그래서 오늘 이 순간이 너무나도 내 일처럼 기쁘고 감격스럽네요.

노동건강연대가 건강하지 못한 일터를 바꾸기 위해 현장을 지켰던 지난 20년과 〈노동과건강〉 100호에 담아낸, 안전하고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현장에 대한 고심들은 한국 사회의 소중한 역사입니다. 계절에 맞춰 나오기로 했던 그 작은 소식지는 가끔 계절을 훌쩍 넘어 예기치 않은 순간에 도착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활동가들이 도저히 책을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없을 만큼 현장에서 노건연 활동가들을 많이 불렀기 때문이었죠. 소식지가 늦어지는 만큼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들이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노동과건강〉 100호에 대해서 축하와 기쁨만큼 감사와 연민의 마음도 큽니다. 모든 노건연 활동가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노동자 건강권 보장을 통해 건강한 일터,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노동건강연대의 활동을 변함없이 지지하며 앞으로도 그 여정에 시민건강연구소가 함께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이장욱 ∥ 회원·동국대 일산 병원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동국대 일산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이장욱입니다. 일터를 새로 옮긴 지 벌써 4개월째이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이 낯설고 부족한 부분이 많아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박한솔 선생님의 뜻하지 않은 전화 연락을 받고 무척 반가웠습니다.

학부생일 때 선택 실습으로 처음 연을 맺게 되었던 노동건강연대에서 2주간의 짧은 기간 동안, ‘산재가 장애와 같은 신체적인 문제에만 고착된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노동자를 말 그대로 갉아먹고 있는 현장의 모습과 문제’를 열정적으로 알려주셨던 전수경 선생님, 박혜영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께 뒤늦게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지금도 언론에 노출되는 ‘일부’ 산재 사례를 보며 의제를 놓치지 않으려 하지만, 생업에 몰두하느라 매번 오는 계간지를 읽어보고, 정기 회비를 내는 것 외에 특별히 참여하는 일은 없는 나일론 회원인 탓에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계신 활동가 선생님들을 뵐 때마다 늘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노동 건강 연대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더는 피를 흘리지 않고 ‘모든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그날이 올 때까지, 저 역시 제가 발 딛고 선 곳에서 예각을 선명하게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싸워 오신 모든 선생님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이정현 ∥ 청년을 위한 사회적 협동조합 일하는학교 사무국장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 성남에 있는 ‘일하는학교’ 사무국장 이정현이라고 합니다. 일하는학교는 가족이라는 배경이 없거나 취약한 ‘학교 밖 청소년’, ‘1인가구 청년’의 진로·취업·자립을 돕는 청년진로학교입니다. 제도권 밖 청년·청소년과 관련된 연구나 정책들이 너무 미비해서, 최근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연구·정책 실력을 키워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박혜영 활동가와 오래전 야학활동을 함께 했던 인연으로 노동건강연대를 알게 되었어요. 일하는학교 청년 대부분이 부모가족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생계형 알바 청년들이어서, 노동상담이나 교육을 부탁했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마음씨 좋으신 노무사님들 소개도 많이 받고, 노건연이 진행하는 사업이나 활동에 대한 자료와 정보제공도 받고, 후원자 소개도 받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학교를 안정적으로 다니기 어려웠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청(소)년들이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의 상황과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노건연이 꼭 노동과 건강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힘든 시절을 견디고 있는 청년들의 삶 이야기 전반에 귀를 기울이고 애정을 표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노건연도 이제 스무 살 청년이 되었네요, ㅎㅎ 축하드립니다. 멋져요 노건연.

 

임상혁 ∥ 전 대표·녹색병원 원장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현재 녹색병원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병원은 원진레이온 직업병 환자들의 직업병 인정투쟁 성과로 2003년 설립되었고, 가치 중심의 노동자 병원, 주민 병원 역할을 해왔다. 올해는 ‘전태일 병원’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운영 측면에서 미흡한 부분이 많고, 그래서 원장이 해야 할 일도 너무너무 많다. 그야말로 장난이 아녀…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과거 산추련이 해체되면서 안전보건단체 공백기가 있었다. 사실 민주노총도 있고, 꼭 안전보건단체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 당시 사회적 상황은 안전보건 문제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소수의 문제였고, 사회적 의제로 이슈화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면서 과거 노동과건강연구회 멤버 중심으로 다시 모여 노동건강연대를 만들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함께 했다. 사실 IMF 이전에는 노조 중심 노동운동이 어느 정도 성장세에 있었고, 노동안전보건 측면에서도 성과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IMF 이후 신자유주의가 급속히 강화되고 노동이 양극화되면서, 취약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조직 노동자들이 이것까지 챙기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다.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더 많은 활동가, 더 많은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산재피해자와 연대, 시민사회와 연대, 지역과 연대, 민주노총과 연대… 우리는 ‘연대’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 20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최소 서너 개의 지역 지부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어쨌든 노건연의 핵심은 ‘연대’에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연대’해서 활동을 이어가면 좋겠다.

 

임준 ∥ 전 〈노동과건강〉 편집위원·전 대표·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인천에 위치한 가천의대 교수로 있다가 2018년 1월 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그즈음 국립중앙의료원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장도 맡아 지금도 겸임하고 있다. 예전에는 노동자건강권, 산재보험에 대한 연구와 활동을 많이 했지만, 요즘은 보건의료 정책, 특히 공공의료 정책에 더 집중하고 있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노동건강연대와의 인연은 의대 본과 3학년인지 4학년이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1993년 ‘노동과건강연구회’에서 김은희 선생님, 이경우 변호사와 같이 활동한 것이 시작이다. 복학해서 학생운동 너머 사회운동에 대한 전망을 고민하고 있을 때, 간호학과 선배 손에 끌려 처음 오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노동자건강에 특별한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1988년 문송면 장례식에 갔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학생이었는데 혼자 신문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비가 오는데 너무 비참했던 기억이 여전하다. 현재의 노건연은, 노조 중심의 노동자 건강권 운동이 아니라 훨씬 취약한 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하자는 생각으로 2002년에 시작하게 되었다. 중간에 노건연 대표도 했었다는데 기억이 없다. ㅋㅋㅋ 대표 정체성이 없는 사람이다. 우리가 노건연을 시작하던 때, 운동의 방향성은 좋았으나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분열되고, 여전히 전문가 중심의 운동이 강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운동은 훨씬 대중화된것 같고, ‘직장갑질119’ 같은 새로운 방식도 출현했다. 저변이 넓어진 것 같아 뿌듯하고 현재 활동하는 이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면서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느낀다.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지금 당장의 성과에 연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운동의 방향성 맞기 때문에 앞으로의 상황 변화에 따라 연대의 힘이 훨씬 커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라!(비장한 톤)” 후배들의 정서적 정신적 지지를 위한 소소한 지원활동을 계속 이어가겠다.

 

정해명 ∥ 회원·노무법인 상상 대표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저는 경기도 안산에서 노무사를 하는 정해명 회원입니다. 안산과 경기도에서 여러 회사와 노동자들을 만나며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에 기억에 남는 일은 경기도 화성에 중국동포 산재사망사건을 진행했는데, 유족분들에게 평택항 이선호 군 장례식장에 가보자고 권하여 평택 안중의 이선호 군 장례식장에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하고 이선호 군 아버님도 만나 뵙고 인사드렸는데, 유족분들이 큰 힘을 얻고 망인의 잘못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제가 노동건강연대와 연을 맺은 것이 벌써 14년이 지났네요. 그때 사회초년생 수습노무사 시절 “여성비정규직노동자, 건강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교육홍보사업”에 함께 했던 것이 노동건강연대와의 첫 인연이었습니다.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노동건강연대와 첫 인연을 맺은 14년 전과 지금. 노동을 둘러싼 새로운 환경과 변화, 제도들도 많이 바뀌고 있는데요. 노동자건강과 생명에 관심을 가지고 지나치지 않는 것이 노동건강연대가 걸어온 길이 아닌가 합니다. 제도와 환경은 바뀌어도 처음 마음 잃지 않고 우리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 기대합니다.

“노건연 20주년, 당신이 걸어온 삶이 어느 누구의 삶보다 더 아름답다.”

 

조완웅 ∥ 그래픽 디자이너

안녕하세요, 그래픽, 영상 디자인을 하는 조완웅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가 비대면 사회를 만들어 요즘에는 회의나 행사를 라이브로 중계하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관련 디자인이나 행사도 늘어났고요. 초기에는 행사, 세미나, 모임 등이 모두 조심스러워 어려운 시간도 있었는데, 이제는 모두들 적응하고 새로운 생활방식에 익숙해져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처음에 계간지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로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활동에 필요한 디자인 지원을 하거나 기획하는 일에 간간이 참여하게 되어 보람찬 일이 되었는데 바빠져서 함께한 지 좀 되었네요. 조만간 찾아뵙고 인사도 드리고 미력이나마 참여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계간지 표지를 만들 때 역사가 짧지 않은 단체이며, 그만큼 큰 역할을 하는 단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20주년’이라 하니 새삼 대단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수많은 사고와 힘든 이야기들이 활동하시는 분들에게 일상이 되는 걸 보면서,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었습니다. 부디 지치지 않고 힘차게 일하실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일처럼 보이지만, 활동가분들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 힘이 되어주신 노고에 감사를 넘어 존경을 표합니다. 힘차게 박수를 드립니다.

이런 거 오랜만에 써서 맘이 다 안 담겨요. ×10000 해주세요.

 

주영수 ∥ 전 대표·국립중앙의료원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요즘 근황은 말 그대로 태평성대라 할 수 있다. 작년에 너무 정신없던 것에 비하면 ㅋㅋ 작년 3월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일터를 옮겨서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기획조정실장을 하며 코로나19 대응에 정신이 없었다. 정말 맛이 갈 만큼 일했다. 이후 공공의료본부로 돌아와 공공의료정책, 코로나19 대응 뒷정리를 고민하는 상황이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오래된 다른 회원들과 달리 노동과건강연구회 시절부터 같이 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 정치운동이나 정파조직에 속해서 활동한 게 아니라 종교(기독청년)활동을 주로 했었다. 당시 유명했던 임상혁 선생님이나 노동자건강 운동을 하는 분들하고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다.ㅋ 그런데 1999년 ‘노동과건강연구회’가 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받아서, 이 운동이 사라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노동건강연대 첫모임부터 참여했다. ‘이 운동이 사라지면 나라 망한다’ ㅋㅋ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렇게 매우 자발적으로 시작했는데 바로 일 년 있다가 대표를 맡게 되었고 상당히 오랫동안 대표를 했다.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더 잘 버텨보자. 모두 다 힘든 시기 아닌가. 조직 노동자야 어찌 되었든 노조가 버텨준다 해도 미조직 노동자들이 함께할 곳은 같이 많지 않다. 같이 버텨보자.

 

천주교노동사목 ∥ 박신안 선임팀장

노동자의 건강권 회복과 일터의 안전을 위해 활동해오신 노동건강연대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박신안 선임팀장입니다. 저희 단체의 지향을 한마디로 정의한 ‘양질의 노동(Decent Work)을 하는 존엄한 노동자’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 가치에서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은 ‘양질의 노동’을 위한 기본과제라 여기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노동건강연대의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2017년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미사’(2017. 5. 25)에 이상윤 대표님을 모셔 메틸알코올 실명 피해노동자의 상황을 통해 유해 화학물질의 심각성을 알리고, 리플렛도 자체 제작하여 배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018년에 노동사목에 관심있는 전국의 신학생들과 함께 노동건강연대를 방문했을 때에는 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말씀을 사제가 될 신학생들에게 들려주셨습니다. 노동자의 실제적인 문제와 전문적 지식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쉽지 않았을 20년간의 꾸준한 활동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올바른 시행과 나아가 안전한 일터와 노동자들의 건강권 향상에 노동건강연대가 큰 몫을 해주시리라 믿으며 함께 나아가길 희망합니다!

 

허환주 ∥ 프레시안 기자

□ 요즘 어떻게 지내냐면,

기자 연차가 쌓여서 요즘은 데스크를 주로 보고 있는데요. 후배 기자들 기사를 검토하고, 기사 지시를 내리는 일이 주 업무라고 보면 됩니다. 아무래도 이전처럼 현장에서 취재하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듯해요. 그래도 관심 있는 주제는 계속 취재하는 중입니다. 요즘은 플랫폼노동 관련 취재를 하고 있습니다. 배달앱 속 노동자의 실태와 구조적 문제점 등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 노동건강연대와 언제 만나게 되었냐면,

언제 처음 인연을 맺은 지는 기억도 이제 나지 않는 듯해요. 전수경 선생님이 사회를 보는 산업재해 좌담회를 프레시안에서 주최했는데, 그때 처음 인연을 맺은 게 아닌가 싶네요. 가장 기억에 남는 노동건강연대의 협업은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13명의 하청 노동자를 공동기획으로 기사화했을 때네요. 그때 기사를 노동건강연대는 영문으로 번역해 소책자로 만들어 해외 선주사 등에 배포하기도 했죠.

□ 20주년에 해주고 싶은 말?

그냥 그렇게, 지금처럼 그 자리에서 계속 있어주길 바랄 뿐이네요.

 

강송구 ·박용식 ∥산재노동자 자활공동체

※ 삼겹살집에서 나눈 대화를 전수경 활동가가 녹음해 왔습니다.

노동건강연대 대표 이상윤 아냐?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님하고 건강하고,
코로나 때문에 힘든데 열심히 가자!
코로나 지나면 다 같이 놀러 가자.
– 강송구

유성규, 전수경, 이서치경, 정우준 잘 지내냐? 건강해라!
쫌 내려 놓으면 건강할 거야. 싸우지 말고.
너네들이 있어서 우리가 큰다.
산재노협이 너네가 있어서 보탬이 많이 됐어. 고마워!
사는 날까지 같이 살자. 열심히 하자!
– 박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