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01 : 노동건강연대의 의제와 현장

노동건강연대가 한국사회에 던진 문제의식과 의제
― ‘안전’이 아니라 ‘정치’가 중요하다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대표

 

노동건강연대는 1988년 창립한 ‘노동과건강연구회’의 정신과 자산을 이어받은 조직이다. 하지만 노동과건강연구회는 1998년 해산하였고 노동건강연대는 2001년 창립하였으므로 엄연히 다른 조직이기도 하다. 조직을 이끌어 간 사람 중심으로 보자면, 노동과건강연구회 상근 활동가들 다수는 대부분 노동건강연대로 이어졌다. 하지만 상근 활동가들과 함께 운동을 만들어 온 소위 비상근 ‘전문가’는 대부분 바뀌었다. 노동과건강연구회 활동을 활발히 했던 많은 전문가들은 나이가 들어 대학교수가 되거나, 원진직업병관리재단에서 만든 노동환경건강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노동건강연대 창립 시에 함께 한 이들은 당시 20~30대에 불과했던, ‘활동가’ 정체성이 강했던 신진 전문가들이었다. 전문가로서 경력이 짧은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사실 ‘전문가’ 정체성보다는 ‘활동가’ 정체성이 강했던 젊은 의사, 변호사, 노무사, 연구자들과 노동과건강연구회 상근 활동가들이 의기 투합해 만든 조직이 노동건강연대라고 할 수 있다.

노동건강연대가 창립했던 2001년 즈음은 한국의 사회운동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던 시기였다. 노동운동은 1997년 IMF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후 전열을 정비해 나갔고, 시민사회는 2000년 부패정치인 낙천낙선 운동의 성공 이후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후반에 접어들었다.

당시 노동자 건강 및 안전 운동에 있어 가장 큰 이슈는 근골격계질환 산재 인정 투쟁과 더불어 그를 매개로 한 노동 현장 노동강도 완화 및 인력 충원 투쟁이었다. 노동건강연대는 그 운동과 연대하되 그 운동에 전력으로 투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결의 운동을 만들고자 했다.

근골격계질환 집단 산재 인정 투쟁과 그를 매개로 한 현장 권력 강화 투쟁은 당시 매우 전투적으로 이루어졌고, 여러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그 운동은 여러 가지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측면에서 보완이 필요했다. 첫째, 정규직 중심의 운동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야 했다. 둘째, 개별 현장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 노동자 문제를 건드려야 했다. 이에 노동건강연대는 창립 초기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모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 선보장 후평가, 산재보험 보장성 강화, 근로복지공단 체질 개선 등의 요구가 당시 노동건강연대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를 중심으로 전체 노동자 건강권 운동 진영이 모여 산재보험개혁공동대책위원회 활동을 벌였다.

이는 한국 사회 정치경제적 상황과 사회운동 흐름에 조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당시는 김대중 정부 출범과 더불어 기초생활보장 제도 도입, 의료보험 통합, 건강보험 제도 도입 등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다양한 사회보장 제도 개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때였다. 개별 노동자, 개별 질환의 산재 인정 여부를 넘어 한국의 사회보장 제도, 사회 안전망 제도 내에 산재보험을 위치시킬 필요가 있었다. 큰 틀에서 노동자의 건강 보장, 소득 보장, 고용 보장 차원에서 산재보험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요구와 운동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이루어진 산재보험 제도 개혁에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인 산재보험 이용 장벽 문제는 큰 제도 개선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변화된 상황에서 고용형태,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자가 평등하게 건강 보장, 소득 보장, 고용 보장을 받기 위한 제도로서 산재보험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는 아직 남은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창립 초기부터 노동건강연대는 기존 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당시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기초로 몇 가지 운동의 원칙과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노동자 생명과 건강 문제를 기술적, 전문적 이슈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이슈로 접근하고자 했다. 노동자의 사고와 질병 문제를 의학적, 공학적, 법제도 문제로 치환해 해결하고자 하는 접근 방식과는 거리를 두었다. 노동자의 사고와 질병을 한국 사회 정치경제적 모순과 연결 지어 해석하고 정치적 해결 방식을 모색했다. 둘째,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하거나 대응하기 힘든 문제들에 천착하고자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대규모 사업장 노동조합은 이미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었다. 꼭 노동건강연대가 아니더라도 연대하거나 함께 할 조직, 전문가, 역량이 많았다. 문제가 더 심각한데 드러나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니 개선도 어려운 문제에 천착하고자 했다. 셋째, 한국사회의 총체적 정치경제 상황 및 노동운동, 사회운동 전략과 조응하는 운동을 펼치고자 했다. 같은 문제를 다루더라도 그 문제의 맥락을 어디에 위치 지어서 어떻게 프레이밍하여 더욱 많은 사람과 공감과 연대 속에 운동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활동했다.

이러한 원칙과 방향 속에서 활동함에 따라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여성, 이주노동자 안전과 건강 문제 조사연구 사업과 당사자 역량 강화 사업이 주요한 일상 사업이 되었다. 고용형태에 따라, 사업장 규모에 따라, 노동자의 성별과 국적에 따라 불평등한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노동시장 구조가 가장 큰 ‘노동자 생명·건강 위해요인’이라고 보았고, 이들의 권리 보장, 차별 철폐, 역량 강화가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동건강연대는 창립 초기부터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건강권 조사 사업과 더불어 당사자 교육, 역량 강화, 투쟁 연대에 많은 역량을 투여해 왔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어느 조직보다 앞서 드러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된 노동자뿐만 아니라 계약직, 단시간,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 직접고용 되었지만 권리가 제약된 노동자들의 건강이 어떻게 파괴되고 착취되는지 알리고 투쟁에 연대했다. 노동건강연대는 연구소가 아니고 활동가 조직이었기에 부족한 조사연구 역량은 당시 노동건강연대 활동의 원칙과 방향에 동의하고 함께 해주었던 신진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원청 책임 강화, 위험작업 외주화 금지,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 등의 이슈를 제기했고 구체적 정책 과제를 제시해 노동조합과 함께 투쟁을 이끌었다.

2016년에는 파견 노동자 메탄올 실명 사고와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파견노동의 문제점뿐 아니라 다국적 기업의 생산 공급망 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권 문제를 이슈화했다. 20, 30대 청년 노동자 6명의 시력을 앗아간 비극적 사고의 대응 과정에서, 핸드폰 생산 공정의 열악함을 드러내고, 제품의 생산 공급망 내 노동자 인권에 대한 대기업의 책임을 물었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파견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맞서 파견 노동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5년부터 2011년에 이르는 기간에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했다. 지역운동과 연대해 지역사회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서울 성수동 지역을 중심으로 노동운동과 지역운동을 결합해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지역사회 노동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성수동 지역에서 그 운동을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지역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도,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도, 노동건강연대의 활동은 적지 않은 활동의 계기를 제공하였다. 당시 가장 큰 문제의식은 소규모 사업장 밀집지역에서 당사자들의 역량 강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지역 노동자 안전 및 건강센터’를 만들어 문제 해결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노동건강연대의 문제의식은 다양한 형태의 정부 중심의 ‘근로자 건강센터’가 설립되도록 했지만, 노동자의 참여, 역량 강화가 중심이 되지 못하는 정부 중심의 ‘근로자 건강센터’ 운영은 이후 많은 개혁이 필요하다.

노동건강연대가 한국 사회운동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기업살인 대응 운동’의 프레임을 개발하고 해당 운동에 초기부터 역점을 기울인 것이다. 이하 기업살인 대응 운동 및 기업살인법 관련 논의는 <이상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의 성과와 과제.” 시민과세계 (2021): 233-242.>를 축약한 것이다.
‘기업살인 대응 운동’은 사회경제적 문제로서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중적인 방식으로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던 운동이다. 노동건강연대는 2002년부터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대중 캠페인을 시작했다. 2003년 5월에는 기업살인법팀을 만들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초기 형태의 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살인법 법의 명칭과 관련하여 노동건강연대는 초기부터 줄곧 이 법을 ‘기업살인법’으로 명명하여 왔다. 이는 이 법의 아이디어를 얻은 영국 법의 명칭이 “기업의 과실치사 및 살인에 관한 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재사망에 대한 논의 프레임 변화를 위해 ‘기업살인’이라는 개념을 대중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의식적 판단 때문이기도 했다. 운동과 별개로 20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이 법의 명칭은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약칭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으로 변화했고, 최종적으로는 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약칭 중대재해 처벌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되었다.
’ 논의를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시작 초기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 속에 외연을 넓혔다. 2005년 4월에 민주노총, 한국노총, 매일노동뉴스, 노동건강연대가 함께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을 결성할 수 있었던 것도 노동사회 내에서 이 운동에 관심과 지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는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하며 관련 사업을 본격화하였다. 정치적 상황과 주체적 조건에 따라 부침이 있었지만, 운동은 꾸준히 이어져 2021년 1월 26일 법 제정에 이르렀다.

노동건강연대는 운동의 초기부터 형벌법으로서 기업살인법에 대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가지 한계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여러 주·객관적 상황 속에서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 이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은 산재사망 문제를 다루는 지배적 프레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프레임으로 산재사망 문제를 들여다보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한국에서 산재사망 문제를 다루는 지배적 프레임은 산재사망을 개인의 부주의와 불운, 기업 활동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로 보는 관점이다. “사망한 노동자의 잘못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지배적 프레임 내에서 산재사망 문제는 사회경제적 문제, 구조적 문제가 되기보다는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안전 문제, 기업과 유족 간 손해배상 문제로 취급되어져 왔다. 이 프레임 내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는 이상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그래서 법 제정 운동은 “산재사망은 (개인의 부주의와 불운, 기업 활동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가 아닌)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지배적 프레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프레임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산재사망 문제를 ‘사고’나 ‘재해’ 프레임에서 ‘살인’ 프레임으로 전환하고자 한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은 의식적, 전략적으로 ‘기업살인’ 프레임을 적용함으로써 산재사망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었고, 불완전하지만 법 제정에 이를 수도 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은 노동 문제를 노동운동의 문법이 아닌 인권 운동의 문법으로, 진보정당을 통한 경로가 아닌 대중적 진보정치 연합을 형성함으로써 해결하려 한 운동이었다.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 해결이 더딘 것은 기업에 우호적인 이데올로기적 지반의 문제도 있지만,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주체 역량이 튼튼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이러한 전략은 현실적 조건 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였다.

서구 유럽에서 산재 사망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었다. 산재사망 문제는 노동 문제이고 노동자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역사적으로 서구 유럽의 노동조합은 강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단체 교섭으로 기업을 압박하고, 진보정당과 함께 기업을 강하게 규제하는 법을 제정함으로써 산재사망을 줄일 수 있었다. 노동조합은 작업장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노사 협상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작업장 담벼락을 넘어 국가의 개입을 강력히 요구했고, 이러한 요구를 진보정당이 받아 안아 기업에 대한 사회적 개입 전통을 마련한 것이 유럽의 ‘사회국가’ 전통의 기틀이 되었다고 평가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지 않고,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도 대기업, 정규직 비율이 높아 대표성과 역량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의 산재사망은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에게 주로 발생하는데, 이들은 사회적으로 보면 자원이 없고 발언권도 없으며 영향력도 없는 이들이다. 한국의 노동조합이 의지와 뜻은 있더라도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노동조합과 더불어 노동조합 외부에서 운동의 주체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다. 한국의 진보정당 역시 서구 유럽에 견줘 미약한 상황에서 정치적 역량 역시 진보정당을 넘어 문제 해결을 위한 광범위한 진보정치 연합을 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은 방법론적으로 인권 운동의 문법을 차용하였고, 광범위한 대중적 진보정치 연합 형성을 통해 문제를 정치화하려 노력했다.

지난 20년간 노동건강연대는 많은 일을 했고, 성과도 적지 않았다.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을 자리매김해 적어도 법제도적으로는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최소화해왔다. 비정규직 노동자 건강에 대한 원청 책임 강화, 생명안전 업무 노동자의 정규직화, 위험 업무의 외주화 금지 등을 슬로건으로 투쟁함으로써 관련 제도가 부분적으로 포함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쟁취했다.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안전과 건강 문제를 제기하며 지역 중심, 당사자 역량 강화 중심의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했고, 그 결과 다양한 지역 근로자 건강센터의 설립과 활동을 견인했다. 노동자 죽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문제 삼아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거시적 측면에서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애초에 노동자 생명과 건강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간주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던 ‘고용형태, 사업장 규모, 성별에 따른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할 일이 많다. 기업과 인권 측면에서 기업에 의해 행해지는 노동자 건강권 침해 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 조사, 구제, 처벌 과정을 제도화하는 문제도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플랫폼노동이 증가하는 현실 속에서 고용 형태와 원인에 따라 좌우되는 사회보험 체계가 아니라, 문제의 성격과 결과에 따라 차별 없이 적용되는 노동자 건강 보장, 소득 보장, 고용 보장 체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노동자 생명과 건강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지키고 증진하기 위해, 기업과 시장에 대한 국가와 정부의 책임과 개입력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 역시 노동자 생명과 건강 보장을 위한 새로운 행정기구의 설립 논의와 더불어 더 많은 논의와 투쟁이 필요하다.

운동의 주체 측면에서는 역량 있는 상근 활동가들의 지속적인 충원과 더불어 건강이나 안전과 관련된 일부 영역 전문가, 연구자가 협업하는 구조를 넘어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와 연구자들이 함께 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노동자 생명과 건강 문제는 일부 전문 영역에 국한된 전문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들은 우스갯소리로 “노동건강연대는 조직의 발전적 해소를 목표로 활동하는 사회운동 단체”라고 말해왔다. 실제 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노동조합 활동이 힘 있는 산별노조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이루어지더라도 전체 사회운동 의제를 포괄하지 못하는 미국이나 일본 등의 나라 외에 노동건강연대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는 거의 없다. 한국의 산별노조 운동이 활성화되어 산별노조가 제 역할을 하게 된다면 노동건강연대 같은 단체는 필요 없게 되는 시절이 올 것이다.

전문성을 가진 연구소 혹은 연구 단체를 지향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이슈 메이킹 및 파이팅 역량과 더불어, 조사 연구 역량, 정책기획 역량까지 갖춘 노동건강연대의 단체 성격 역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동자 시각으로 노동자의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연구 역량이 강화되고, 노동 정치를 중심에 두고 효과적으로 활동하는 진보정치 역량이 강화된다면 노동건강연대 같은 단체는 필요 없게 되는 시절이 올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 진보정치의 발전이 더딜수록 노동건강연대라는 조직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하나의 역설이다. 노동건강연대는 그러한 모순, 역설 속에서 20년을 지내왔지만, 늘 그랬듯 향후 그 모순이 해결될 것을 믿고 바라며 더 힘차게 투쟁할 것이다. 조직이 있고 조직이 활성화되어야 운동을 할 수 있지만, 조직의 안정적 운영이 운동의 목표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노동건강연대는 또 다른 20년도 처음처럼, 함께, 오래, 연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