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01 : 노동건강연대의 의제와 현장
스무 해 활동의 조각들
Ⅰ 여성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노동건강연대 초기 활동과 현재의 상태
100호 편집위원회
〈노동과건강〉 100호를 맞아 우리가 함께한 ‘활동의 조각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조각 크기에 상관없이 최대한 모든 조각을 모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었네요. 스무 번의 여름이 이토록 긴 시간이었다는 걸 실감합니다. 욕심을 덜고, 조각들을 네 개의 주머니에 나누어 담아 보여드리기로 했어요. 여성노동자 건강권 활동, 성수동 사업으로 대표되는 영세사업장 및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 건강권 활동, 메탄올 실명 사건 관련 활동, 기업살인법 운동까지. ‘노동건강연대’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걸어봅시다. |
여성노동자 건강권에 대한 노동건강연대의 초기 활동을 돌아봅니다. 어떤 노동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많은 이야기를 들춰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과 건강권의 실태는 슬프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를 위해서 활동한 노동조합과 노동건강연대 회원들의 연대는 자랑스럽기도 했습니다. 노동건강연대가 막 문을 열고 활동을 시작한 초기 학교급식, 골프장경기보조원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한 활동을 돌아보고 이 두 직종 노동자들의 현재를 함께 돌아보고자 합니다.
1.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노동건강연대는 계약직 노동자, 파견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동조합이 없거나, 노동조합을 조직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함께해왔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이하 캐디 노동자) 조사를 시작한 것도 캐디 노동자가 임금을 고객에게 직접 받는다는 이유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캐디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오랜 기간 방치되었다. 1989년 캐디 노동 경력을 가진 여성이 잇달아 기형아를 출생하고, 1993년에는 양주CC에서 업무 중 한 노동자가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2001년, 노동건강연대는 캐디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건강실태 조사를 시작했고, 토론회를 열어 결과를 공유했다.
활동시기 | 주요 활동 내용 |
2001-08 ~ 2001-09 | 경기보조원 건강실태 조사 |
2001-10-29 | 경기보조원의 업무상재해 실태 및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을 위한 토론회 |
(1) 캐디 노동자 건강실태 조사
캐디 노동자의 건강 문제와 관련된 체계적인 실태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설문지를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직업관련 위험요인과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건강장해를 파악하기 위해 ‘골프 경기보조원의 직업관련 건강장해에 관한 조사’ 설문지를 만들었고, 이 작업에는 전국여성노동조합이 힘을 보탰다. 노동조합이 결성된 골프경기장 한 곳을 현장 조사하여 설문지 초안을 만들고, 예비조사와 노동조합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설문지를 완성했다. 조사는 노동조합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2곳의 골프경기장에서 120부의 설문을 수거했다.
【실태조사】 ◯ 기간: 2001년 8~9월 ◯ 대상: 골프경기장 2곳의 캐디 노동자 120명 ◯ 목적 ● 캐디 노동자 직업관련 위험요인 조사 ● 캐디 노동자 직업관련 위험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장해 파악 |
(2) 경기보조원의 업무상재해 실태 및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을 위한 토론회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의 97.4%가 입사 후 근육과 관절통증을 경험했고, 이 중 66.7%가 병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캐디 노동자가 업무 중 취급하는 물품을 담는 수동카트의 평균 무게는 55~60kg에 육박하여 허리·무릎·발목·손목·어깨 등에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응답자의 74%가 ‘업무중 사고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나, 치료를 자비로 해결했다는 응답이 74%에 달하여 캐디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여주었다.
위와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같은 해 10월에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캐디 노동자의 현실을 지적하고, 기본적인 노동권 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제발제자인 권영준 교수는 캐디 노동자의 업무로 인한 질병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발표하며, 대책으로 △산재보상법 적용 △단체협약을 통한 사업장별 캐디 노동자 건강 보호를 위한 노력을 제시했다.
【토론회】 ◯ 일시: 2001년 10월 29일 10:30~13:00 ◯ 장소: 국회 헌정기념관 1층 회의실 ◯ 주최: 비정규노동자 기본권 보장과 차별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 주관: 전국여성노동조합,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노동건강연대 ◯ 사회: 박석운(비정규공대위 운영위원장) ◯ 주제발표: 권영준(한림대학교 산업의학과 교수) ◯ 사례발표: 김은정(전국여성노동조합 88CC분회 회계감사) ◯ 지정토론 ● 강승화(대한노무법인 노무사) ● 박찬임(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박승흡(비정규노동센터 소장) |
【토론회 자료집】 2. 주제발표 3. 사례발표
4. 지정토론 |
2.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가정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엄마’의 사랑과 정성으로 포장되기 마련이라서 ‘노동’의 관점에서는 잘 거론되지 않는다. 급식을 만드는 조리노동자도 비슷하다. 무거운 조리도구와 식재료를 운반하고,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고, 땀이 쏟아지는 환경에서 학생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 급식 조리노동자는 대표적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부분 중장년 여성이다. 임금과 고용 측면에서 겪는 열악함은 물론이고,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조차 쓰기 쉽지 않다. 산재보험료는 꼬박꼬박 내지만 일 때문에 아파도 산재보험 적용은 제대로 받지 못한다. 학교 급식을 만드는 조리노동자의 노동환경을 파악하고,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건강연대 비정규팀은 2003년 8월부터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함께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건강실태와 작업환경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는 보도자료와 토론회를 통해 공유되었고, 조리노동자 관련 활동은 2007년까지 이어져 〈일하는 여성의 건강이야기〉 조리노동자편을 발간하기도 했다.
활동시기 | 주요 활동 내용 |
2003-09 ~ 2003-10 |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건강실태 및 작업환경 조사 |
2004-02-24 |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 |
2007-02 | 〈일하는 여성의 건강이야기〉 조리노동자편 출간 |
(1)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건강실태 조사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실태조사를 위해 노동건강연대 비정규팀에서 설문지를 직접 제작했다. 질문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학교 비정규직 간부수련회에 이상윤, 정최경희 선생이 참석하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사 과정에 조리노동자 당사자의 이야기가 반영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썼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인터뷰】 ◯ 일시: 2003년 7월 26일 오후 6시 ◯ 장소: 합정동 마리스타 수녀원 ◯ 대상: 부천 원미초, 서울 서교초, 공진초교 급식조리원 8명 |
정최경희 선생을 중심으로 하여 2003년 8월 한 달간 설문지 구성 작업이 진행되었다. 문항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건강실태와 노동환경, 산재보험 관련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전국여성노동조합에 설문지 검토를 요청하는 동시에 설문지와 조사계획서를 홈페이지에 올려 다른 회원들에게도 의견을 받았다. 수일에 걸쳐 세미나, 온라인 등 다양한 창구로 여러 의견을 취합한 뒤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 최종 설문지가 완성된 이후 9월부터 10월까지 전국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시행했다.
【실태조사】 ◯ 기간: 2003년 9~10월 ◯ 대상: 전국 초등학교급식 조리종사원 407명 ◯ 목적 ● 근골격계 질환 및 피부질환, 생리장애, 재해 실태 1차 파악 ● 노동조건 및 작업환경과 근골격계 질환, 피부질환, 생리장애, 재해와의 관계 파악 ● 급식 조리노동자의 산재보험에 대한 인지도, 가입여부, 산재발생시 처리 방법 파악 |
(2)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
실태조사 결과, 급식 조리노동자 10명 중 3명이 근골격계 질환 관련 즉각 조치가 필요한 상태였다. 응답자의 34.2%가 지난 1년간 사고를 경험했고, 그중에서 9.1%만이 산재보험 처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응답자의 54.3%가 근골격계 자각증상을 호소했고, 실제로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 노동자도 26.2%에 달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노동건강연대는 2004년 2월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노동건강연대는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건강권 보장 대책으로 △필요인력 수준으로 인력을 충원하여 노동강도를 낮출 것 △병가 사용 보장 및 치료권 보장을 위한 산재인정체계 개선 △급식 조리노동자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 및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토론회】 ◯ 일시: 2004년 2월 24일 화요일 14:00~17:00 ◯ 장소: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2 ◯ 주최: 전국여성노동조합, 노동건강연대 ◯ 사회: 최상림(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 발제: 정최경희(노동건강연대 비정규팀) ◯ 토론 ● 하영숙(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 학교급식지회장) ● 이복임(노동부 환경보건과 전문위원) ● 조혜영(교육인적자원부 사무관) ● 강동묵(부산대학교 산업의학과) |
【토론회 자료집】 2. 지정토론 3. 부록 |
(3)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의 건강 및 작업환경 개선 토론회
급식 조리노동자에 대한 노동건강연대의 관심은 2007년에도 이어졌다. 관심의 결과는 〈일하는 여성의 건강 이야기―조리노동자 편〉을 낳았다. 총 4종의 책자로 구성된 〈일하는 여성의 건강 이야기〉는 각각 대형마트 캐셔(계산원), 급식 조리노동자, 의류제조업 종사 노동자, 간병노동자를 위한 안전건강 매뉴얼이 담겨있다. 당시 사회적으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발맞추어 대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인 조리노동자의 건강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제작했다. 책자는 조리노동자가 ‘식당 아줌마’라는 호칭 아래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마저 잃고 있다는 언급과 함께 운을 뗀다.
3. 마치며
학교급식 조리노동자와 골프장 캐디 노동자. 업종·직종·계약방식 등 다른 점이 많아 보이는 노동이지만, (중장년)여성 노동자의 몫으로 주어진 노동이라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안정하고 건강하지 못한 노동이지만, 그동안 한국 사회는 중장년 여성에게 노동이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식의 태도를 고수해왔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는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정규직화’를, 골프장 캐디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을 주장했습니다. 투쟁과 연대 끝에 2021년 현재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는 무기계약 교육공무직으로, 캐디노동자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 및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인정받아 노동조합을 만들고,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노동환경이 개선되리라 희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우리의 노동환경은 외곽에 위치할수록 법적 안전망이 헐거워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캐디 노동자와 급식 조리노동자 모두 법적 안전망의 바깥에서 시작된 노동이었기에 권리를 찾아가는 일 역시 힘겨웠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많은 관심과 연대 속에서 조금씩이나마 건강한 변화를 만들어왔다. 높은 산을 오르다 무심코 산 아래를 내려다볼 때 즐거운 마음이 드는 것처럼, 잠시 멈춰 서 뒤를 돌아보는 이 순간만큼은 지금을 이루기 위해 달려온 모든 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