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01 : 노동건강연대의 의제와 현장

스무 해 활동의 조각들

Ⅱ 서울 성수동 영세사업장 ‘노동자건강센터’ 건립을 위한 활동

100호 편집위원회

〈노동과건강〉 100호를 맞아 우리가 함께한 ‘활동의 조각들’을 모아보았습니다. 조각 크기에 상관없이 최대한 모든 조각을 모아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었네요. 스무 번의 여름이 이토록 긴 시간이었다는 걸 실감합니다. 욕심을 덜고, 조각들을 네 개의 주머니에 나누어 담아 보여드리기로 했어요. 여성노동자 건강권 활동, 성수동 사업으로 대표되는 영세사업장 및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 건강권 활동, 메탄올 실명 사건 관련 활동, 기업살인법 운동까지. ‘노동건강연대’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걸어봅시다.

 

서울 성수동은 지금 카페와 갤러리,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핫플레이스이지만, 노동건강연대의 성수동은 오랫동안 사무실이 있었고 골목골목 작은 공장들을 돌며 건강상담을 하던 활동의 현장이었다. 성수동에서 노동건강연대는 꽤 넓고 쾌적한 사무공간과 교육장을 갖추고 활동을 했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임대료가 폭등하기 전에 성수동에서의 활동은 중단되었다. 부동산 시장에 눈 밝은 회원이 있었다면 건물을 사 두었어야 했다는 농담을, 성수동을 떠난 후 한 적도 있다. 농담에 웃으면서도 마음 한쪽이 싸해지는 기억을 준 곳이 성수동이다.

노동건강연대는 성수동 지역노조와 함께 하는 노동안전보건활동(일명 ‘성수동사업’)을 2002년부터 2011년경까지 10여 년간 진행했다. 노동건강연대는 지역에 국한하지 않는 정책사업과 캠페인을 펴면서 동시에 지역 노동운동과 연계하는, 영세사업장 밀집 지역을 현장으로 ‘성수동사업’을 추진했다. 사업을 제안하고 기획하면서, 회원, 재정 등에서 책임성을 갖고 서울 성수동에서 노동자건강 사업을 폈다. 노동건강연대는 지역 노동자건강센터 설립을 목표로 끈질기게 지역 사업을 뿌리내리고자 힘썼으나, 지역 노동운동의 변화와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부침을 겪었다. 10여 년의 활동 끝에 사업을 중단했으나, 당시 함께 했던 민주노총서울본부, 서울지역제화노조, 서울경인지역인쇄노조, 서울동부금속노조,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 성동건강복지센터와 성수동의 빈민운동단체들과의 연대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1. 2002년 당시의 활동 배경

 

(1) 지역적 배경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서 성수역 사이를 걸으면 수많은 제화공장과 작은 금속가공공장, 인쇄소가 모여 있는 모습에 놀라게 된다. 사람도 많고, 거리도 많고, 없는 게 없는 서울이지만, 거대도시 서울 한 구석에 잿빛 공장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좀 살벌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다. 도시 임금노동자들의 각박한 삶의 현장이다. 성수동 지역은 서울에서는 드문 준공업지역으로 약 1,350개의 작은 공장들이 있다. 성동구 통계자료 ‘산업별 사업체수 및 종사자수(2018)’에 따르면, 2018년 성수동 사업체수는 12,419개 종사자수는 3,068명이었고, 이중 제조업체수는 3,073개 제조업 종사자수는 21,498명이었다.
성수동 지역은 저소득노동자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밀집해 있는 대표적 지역이기도 하다.
성수동에는 구두공장이 많다. 정확한 수는 알지 못하나 수 백 개의 공장과 수 천 명의 노동자가 있다. 이들은 주로 백화점에 납품하는 고급 수제화를 만든다. 가죽으로 신발 모양을 만들고, 장식하고, 본드로 붙이는 모든 공정을 손으로 한다. 백화점에서는 고급브랜드로 비싸게 팔리지만 이들 손에 주어지는 돈은 구두값의 7%도 안 된다. 이들은 월급제가 아닌 개수제로 돈을 받는다. 당연히 하나라도 더 만들기 위해 화장실도 못 가고, 밥은 본드칠 하던 손으로 그 자리에서 먹는다. 계절을 많이 타기 때문에 성수기에는 집에 안 가고 며칠을 공장에서 버티기도 한다.
인쇄골목으로 유명한 서울의 을지로, 충무로 일대에는 책자, 팸플릿, 봉투 등을 찍는 작은 인쇄소가 몰려있고, 성수동에는 포장지, 박스 등을 찍는 큰 인쇄소가 많다. 인쇄노동자들은 일이 들어오면 시간을 맞추기 위해 잔업, 야근, 철야를 반복하고, 토요일에도 늦게까지 일한다. 잉크와 기계세척제를 쓰면서 화학물질을 많이 다루고, 기계를 돌보고, 종이뭉치 나르는 일을 반복한다.
공장 안에 휴게실이나 식당 같은 건 아예 없다. 하루의 반 이상,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내지만, 휴식이나 쾌적한 식사, 퇴근 전 샤워 같은 건 남의 나라 얘기다. 반복되는 장시간 노동 때문에 피로를 풀 수 없어 아픈 데도 많다. 환기시설도 없는 공장에서 본드와 잉크 증기를 마시면서 일한다. 일하다 다치거나 직업병을 의심하는 노동자들은 많지만, 공장의 지불능력이나 사장과의 관계 때문에 건강검진이나 산재보험 같은 건 아예 기대를 안 한다.
작은 공장들이 천 개가 넘게 모여 있는 성수동이지만 보건소나 응급의료시설이 없다. 성동구는 2019년 3월 성수동1가에 성수보건지소를 개소하여 한방, 재활, 만성질환 예방관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성수보건지소가 있는 성수동1가는 제화공장이 밀집해 있는 곳(수제화 거리)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서울숲역 근처)에 있기 때문에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이용하기에는 거리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공장 문을 나서면 다른 공장만이 보일 뿐 나무와 꽃도 없고, 벤치도 없다. 사람이 일만 하며 살 수 있나. 그러나 성수동 거리에 서면 ‘그렇게 살아도 돼’라고 이 사회는 말한다.

(2) 일반적 배경

1) 장시간노동에 저임금, 산재

1년에 일어나는 산재의 1/5은 5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다친 노동자가 차지한다. 2021. 2. 22. 언론보도(뉴스한국)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 9월까지 산업재해로 9467명이 사망했다. 이들 가운데 5인 미만 규모의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산재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2176명으로 전체의 23%에 이른다. (…생략…) 5인 미만 사업장의 산업재해 사망자는 2016년 412명, 2017년 416명, 2018년 479명, 2019년 494명, 2020년 9월까지 375명 발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한 노동자의 수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성수동 사업이 진행되었던 20년 전의 상황에서 달라진 것 없이, 여전히 5인 미만 사업자에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조금 규모가 있는 50인 미만의 소기업까지 치면 이들 노동자가 전체 산재의 2/3를 차지한다. 기계, 시설이 낡아 많이 다치고, 저임금, 장시간노동으로 건강을 돌볼 여유가 거의 없는데도 이들은 산재보험이나, 의료혜택을 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 사업주는 지불능력이 안되고, 노동자들은 권리를 찾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2) 정부정책

영세사업장 산재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해마다 수백억의 돈을 쓴다. 민간위탁과 공공근로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한다. 1년 목표량을 5,000개소로 잡고 CLEAN 사업장 조성사업을 하고, 금연지도 성공률 12명 중 58%, 당뇨병지도 후 식습관개선자 10명중 40% 개선예정자 10명중 50%라는 보고서도 낸다.
서비스제공자 관점에서 실적은 뽑아내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영세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노동과 삶은 제자리이거나 뒷걸음질이다. ‘CLEAN’해지지 않았다. 2002년, 산재는 더 늘어났다.

(3) 운동적 배경

성수동에는 가난한 사람들, 영세노동자,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려는 지역운동이 끊임없이 있었다. 노동건강연대도 성수동 지역에서 산재직업병, 사회보험의 권리를 교육하고 관심을 가질 사업이나 모임을 수년간 해왔다. 이런 시도는 주로 단체가 지역노조에 제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임이란 교육과 상담, 구체적 도움을 주고받는 동네 노동자, 지역노조 활동가, 단체활동가, 전문가의 상설적 네트워크였다.
사람도 돈도 늘 부족하기만 한 지역노조와 모임을 시도하다 깨지는 시행착오가 몇 해 이어졌다. 지역노조에게도 평일에도 주말에도 일만 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만나고 모으는 일은 늘 어려운 과제였다. 조건이 나아지지 않기에 지역노조와 단체 사이에 피로도가 높아졌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준비기간을 길게 두고 다시 시도하기로 했다. 스스로를 돌보고, 가꾸는 작은 공장 노동자의 힘을 보여야 했고, 엉터리 실적을 위해 돈을 쓰는 정부에게도 대안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2. 사업내용 및 특징

 

(1) 사업내용

1) 활동가모임 : ‘성수동식구들 노동건강연대 / 민주노총서울본부 / 서울지역제화노조 / 서울경인지역인쇄노조 / 성동건강복지센터

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활동가가 안정적으로 모이는 것이다. 활동가는 모든 사업의 전제조건이지만 이 사업에서는 사업의 성패가 달려있는 핵심이기도 하다. 지역노조와 단체가 지속적 모임을 꾸려간 경험이 없기 때문에 모임의 성사와 지속화 자체가 큰 사업이 되었다.

2) 교육 : 노동자가 참여하는 교육프로그램

① 일본「POSITIVE(Participation Oriented Safety Improvement by Trade Union Initiative)」프로그램을 활용, 성수동 특성에 맞게 재구성

이 프로그램의 트레이너인 도쿄노동안전센터 활동가의 관심과 지원으로 성수동에서 한 번의 활동가 프로그램과 한 번의 노동자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이 프로그램의 제안자인 노동건강연대는 물론 성수동식구들 모두에게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1차 프로그램은 2차 프로그램의 준비를 위한 활동가 사전 프로그램의 성격으로 진행했다. 강의와 질의응답 정도가 우리가 경험한 교육의 전부였다면, 1차 프로그램에서 맛본 참여형 교육방식은 입체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일본과 베트남, 몽골, 파키스탄 등에서 영세노동자들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보았다. 그룹토론은 토론방식과 정리방식을 아주 구체적으로 요구하여 토론이 뜨는 것을 막았다. 성수동 지역을 사전에 답사한 일본인 진행자의 열정적 진행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2차 프로그램은 지역의 조합원이 직접 실행해본 프로그램이었다. 체크리스트를 갖고 공장에 들어가 일하는 조건과 환경을 꼼꼼히 체크하고, 그룹토론을 하면서 이후 할 일을 찾는다. 이 활동의 가장 큰 특징은 잘된 점, 긍정적인 점을 찾아내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아무리 나쁜 조건의 일터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내도록 유도해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어 놓는다. 그 요구를 듣고 그대로 해보기 위해 사람들은 꼼꼼한 눈으로 공장을 돌아보고, 작은 시도로 공장을 바꿀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POSITIVE’ 프로그램을 해보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내 일터, 내 공장을 새롭게 보고 문제를 발견하는 눈, 바꾸어보려는 눈을 갖게 한 것이다. ‘POSITIVE’ 프로그램을 하면서 나온 이야기를 예시해 보면 아래와 같다.

 

② 게시판 세미나 : 자신의 언어로 일터와 내 몸의 건강을 이야기하기

POSITIVE 프로그램과 함께 게시판세미나를 병행했다. 게시판세미나는 다음과 같이 진행하였다.

① 질문1 : 내가 일하는 곳에서 가장 불편한 것, 또는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 한 가지를 적으세요.
② 질문에 대해 함께 분류하기
③ 질문2 : 내 몸에서 가장 건강이 안 좋은 곳, 또는 불편한 것 한 가지를 적으세요.
④ 질문에 대해 함께 분류하기
⑤ 모두 모아 : 우리의 노동환경과 건강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기
⑥ 질의응답

하나의 질문에 한 명의 노동자가 두세 개의 답을 적어 냈는데, 색지에 자기 생각을 적고, 색지를 하나하나 함께 읽어가며 분류하는 방식에 대해 조합원들은 매우 재미있어했다. 다른 동료의 생각과 같거나 다른 점을 확인하면서 흥겨워하고, 공장에서 서로 말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했다. 게시판 세미나는 노동자의 입을 틔우고, 동료와의 연대감을 키우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3) 실태조사 : 공장안 환경조사 계획에서 영세노동자의 복지, 건강조사로 확대

성수동 제화공장과 인쇄소 안의 노동환경과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를 조사하기로 하였다. 어디에도 영세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실태는 나온 적이 없고, 사업을 하는 우리조차도 정확한 자료가 없어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1차 설문지까지 작성했다.
그러나 고민이 좀 많아졌다. 한 연구소가 인쇄노조에 설문조사를 의뢰하여 영세노동자의 빈곤실태와 이 사회에 대한 의식을 조사해 갔다. 생활 수준, 사회적대감 등을 물었는데, 공장 내부의 환경과 건강뿐 아니라 영세노동자의 총체적 건강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신빈곤, 급증하는 자살 등을 보며 우리가 함께하는 조합원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성수동식구들은 실태조사에 앞서 영세노동자의 총체적 건강 척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공부하고, 토론했다.

 

①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실태조사(2004)

2004년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는 제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실태조사에서 노조는 다음 네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첫째, 제화 노동자들의 심각한 장시간노동, 둘째, 개인사업자 신분에서 파생되는 문제, 셋째, 제화업종의 공동화 문제, 마지막으로 열악한 작업환경과 장시간 노동 속에서 제화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노동안전보건문제를 지적했다. 구체적인 조사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 제화 노동자 인구는 17,000명이고 대부분 10명이하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중앙고용정보원,2002), 성수동에서는 20~30명 규모의 사업장이 많다는 점,
▹ 설문을 통해서 알게 되는 재정 상태는 수입이 적고 부채가 많다는 상황인 점,
▹ 도급제의 경우 성수기(224만원)와 비수기(116만원)에 임금이 1/2 차이가 생긴다는 점,
▹ 주당 초과근로시간은 성수기는 36.8시간이고 비수기에도 17.4시간 일하고 있는 점,
▹ 직장 생활 만족도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점,
▹ 건강 검진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은 74.3%이고, 부상당한 사람은 51%, 질병증상 호소는 근골격계 42.3%, 유기용제 15.4%인 점,
▹ 산재처리는 7.7%에 불과하고 35.9%가 개인의 의료보험으로 치료하고 있다는 점 등이었다.

노동건강연대는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정책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정책적 과제로 제시했다.

▹ 제화 노동자의 건강한 노동을 위해서는 제화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함으로써 사업주의 노동안전보건 책임을 명확히 할 것
▹ 사업주의 책임하에서 작업환경 및 노동조건을 개선시킬 것(유기용제 및 먼지에 대해 적절한 환기시설의 설치 및 활용, 소음에 대한 방음대책 및 인간공학적 작업대 및 도구의 마련, 근로시간 단축, 적정 임금 보장)
▹ 건강검진 및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하고, 산재보상을 받도록 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는 재정적 지원을 할 것

 

② 영세노동자 노동복지 실태와 복지요구도 조사(2005)

노동건강연대는 제화지부에서 실시한 실태조사에 대한 정책적 과제를 제시한 이후, 성수동 식구들과 성수동 영세사업장 실태조사를 하기로 했다.

성수동 일대는 금속, 제화, 인쇄, 의류 등 중소 영세업종이 많은 곳이고 의류업종을 제외하고 3개의 지역노조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 사업장은 고용보험, 국민연금, 산재, 노동안전등 노동복지에서 소외되어있어 그동안 지역노조에서 노동조건개선, 노동상담, 노동권 옹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었지만 노동조합 조직이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서울시에서 성수일대를 첨단 산업단지로 만들겠다고 나서 지금의 영세한 사업장들은 모두 타지로 밀려날 예정이라 업주와 종사자는 생존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책이 필요해서 현장과 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단체와의 간담회도 진행하고, 설명회 등을 통해 지역노조와 지역에 있는 사회단체, 복지단체로 구성된 “영세노동자 복지를 위한 공동 실태조사단”이 구성되었다.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노동실태와 복지수요를 파악하여, 실효성 있는 노동복지정책을 제안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조사는 사업장을 직접방문하고 주요 거점에서 거리 캠페인을 통해 설문을 진행했다.

준비기간을 더하면 7개월 동안 영세노동자의 노동실태, 노동안전건강실태, 고용정책, 노동복지 분야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였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50인 미만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2005년 7월 현재 받고 있는 월평균 임금은 142만이며,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2시간, 토요일 전일근무 비율이 3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8%의 노동자만이 연차휴가를, 24%의 노동자만이 월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54%의 노동자들은 연장근로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또한 최근 1년 이내에 이직한 적이 있는 32%의 노동자들 가운데, 38%가 장시간노동, 열악한 근로조건과 저임금을 이직사유로 들었으며, 사업장 폐업 등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비자발적 이직도 3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처한 어려움으로 1순위 ‘경제적 어려움’에 이어 ‘자녀양육, 보육문제’, ‘일자리 불안’을 꼽았다.
▹ 이 결과는 지난 6~7월, 영세사업장 밀집지역인 서울 성수동 일대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4백78명을 조사하여 드러난 것으로, 최근 사회문제가 되는 사회양극화 현상, ‘일하는 빈곤층’의 확산을 여실히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 이들의 작업환경과 건강문제 또한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60% 이상의 노동자가 분진, 소음, 반복 작업 등 전통적으로 건강상의 유해인자가 많은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43%의 노동자는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서’ 병의원 이용에 어려움을 느끼며, ‘치료비가 부담돼서’ 병의원에 가지 못한다고 답한 비율도 33%에 이르렀다.

2005년 10월 2번의 실태조사 결과 보고를 했다. 1차 결과 보고는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진행했다. ‘10명중 7명이 50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하는 현실과, 구조적 고용불안 속에 갈수록 피폐해져 가는 영세노동자의 삶의 질을 봤을 때, 정부의 노동정책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과 기업복지를 뛰어넘는 노동복지의 전환을 촉구했다. 또한 대통령 공약인 근로감독관 증원과 체불임금에 대한 임금시효 10년 연장’ 등 제도개선책도 제시했다.
2차 결과 보고는 성수동에서 마을잔치를 하듯이 열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조사결과를 보고하고, 참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담아 먹거리와 영상 상영을 성수동 근린공원에서 진행했다.

 

③ 영세사업장 유해물질 실태조사(2003)

2006년 8월 성수동 영세사업장 100여 곳을 방문하여 유해물질 사용 실태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실태조사 실시 전에는 사전 단계로 지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 사업에 대한 내용홍보, 유해물질에 대한 안내 홍보물 배포 등을 겸한 캠페인도 진행했다.

 

4) 상담과 건강검진 : 직접적인 서비스 제공

건강문제, 환경과 직업병에 대한 상담은 지역노조 홈페이지와 전화, 거리상담을 통해 진행했다. 교류를 통해 노동자의 관심이 높아졌고, 공장 안의 유해환경, 불편한 작업조건 등에 관한 관심과 자각도 확산되었다. 노조가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자료나 답변을 요구하는 걸 보면서 힘을 얻고, 사업 방향성에 대한 신뢰도 생겼다.
노동건강연대가 보건, 의료인 자원을 활용하여 지역에서 건강검진을 시행하자는 계획은 사업의 구상단계부터 가장 기본적인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 실행되기 어려운 이유는 노동자들의 작업시간과 의료인 업무시간과의 조율, 장소 등이 지역노조의 여건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직접적인 활동으로 건강검진은 상시사업이든, 기획사업이든 꼭 필요한 사업이었다. 당시 성수동에는 작은 공장들이 천 개가 넘게 모여 있었지만, 보건소나 응급의료시설이 없었다.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내지만, 자신의 건강을 돌보기 위한 시간을 낼 수는 없었다. 건강검진 프로그램은 노동건강연대 보건의료인 회원들의 자원활동으로 진행되었다.

 

① 무료특수건강검진

노동건강연대는 2003년부터 무료특수건강검진을 실시했다. 2004년 10월에는 성수동, 을지로 등 인쇄, 제화, 금속 영세사업장 밀집지역 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이들은 유기용제를 많이 사용하면서 일하지만, 이에 맞는 특수건강검진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는 상태였다.

 

② 무료특수건강검진 결과 설명회

건강검진은 검진에서 끝나지 않았다. 사업장에서 검진 기회를 갖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건강검진을 제공하면서 자기 건강과 작업환경을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결과설명회를 개최했다. 검진은 결과에 대한 의료진의 설명과 검진을 받은 당사자의 이해가 중요하기 때문에 의사의 설명을 듣고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5) 센터설립 활동

 

① 영세사업장 노동복지연대

2005년 실시한 공동실태조사에서 ‘성수동 식구들’은 영세사업장노동자의 복지 요구를 파악하고 현장 프로그램을 구상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황동을 계속하기 위해 일시적이었던 ‘공동조사단’은 ‘영세사업장 노동복지연대’로 발전하게 됐다. 영세사업장 노동복지연대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복지정책요구안을 마련하고, 요구안 실현을 위한 활동, 노동자들이 주체로 나서는 활동을 목표로 삼았다.

 

② 성수노동자건강센터

노동건강연대는 성수노동자건강센터 건립을 위해 성수동지도그리기(성수동 일대의 제조업체, 식당 등 영세업체들의 현황 파악 목적), 간담회, 워크숍 등을 진행했고, 2008년 성수노동자건강센터가 만들어지게 됐다. 성수노동자건강센터는 노동건강연대가 재정을 마련하여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고, 건강검진, 교육, 상담 활동을 진행했다. 2009년에는 건강검진, 정신과상담, 노동자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2010년에는 노동건강연대 산업의학과 의사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센터에 와서 상담을 하였다. 공장 현장방문, 월례강좌를 진행했고, 지역 노동자와 함께하는 노래자랑 같은 문화 행사도 성수동의 단체들이 함께 했다.

 

(2) 내용적 특징

공장안 환경이 좋아지는 것은 동네 환경이 좋아지는 것과 통한다. 공장 안 금속가루와 본드 증기, 화학약품은 문밖을 나서면 아이들에게, 여성들에게, 노인들에게로 간다. 작은 공장은 환경과 복지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한 채 존재해왔다.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공장안에서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낸다. 기계를 돌리는 그 자리, 구두를 만드는 그 자리가 식탁이고, 흡연실이고, 휴게실이다. 공장이 바뀌지 않으면 건강도 생활도 나아질 수가 없다.

정부도 공장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 공공근로를 주어 노동자밀집지역을 방문하고, 개별노동자의 혈압, 당뇨, 흡연, 음주 등을 ‘관리’ 한다. 그런데 노동자는 자기 일터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일터는 그대로이다. 성수동 식구들은 공장 안 환경에 대해 더 정확히 알기 위해 공부하고, 토론하고, 행동으로 바꿀 방법을 찾았다. ‘관리대상’이 아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주체’가 되어야 공장안 산재가 줄어들 방안도 나온다.

기획 단계부터 열린 상태로 함께 의논하고, 공동 결정하는 방식이 성공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지역노조는 노동조합이기 때문에 조합원이 있고, 조합원이 원하는 것부터,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부터 일을 한다. 작은 공장은 산재도 심각하지만 부도, 임금체불, 불투명한 전망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환경이나 건강문제는 부도나 임금체불에 비하면 배부른 걱정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로 생존에 필요한 최소의 조건은 일자리와 임금이다. 노동자들이 건강과 작업환경문제가 급한 문제가 아니라거나 필요하지 않다고 말할 때는 더 기다리는 방식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노동건강연대는 이 사업을 위해 상근활동가 2인과 회원활동을 하는 의료인들이 교육과 상담, 건강검진, 실태조사 등에 전문적 지원을 하고, 노동조합은 이 네트워크를 활발하게 이용하였다. 조직체계 안에서 지역노조를 포괄하고 지원하는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사업의 기획 단계부터 성수동식구들의 일원으로 함께 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상급조직이 사업을 정식으로 채택하고 지원하는 것은, 노동조합에 힘도 주고 성과를 내라는 뜻도 있는 것이다.

 

3. 주요 사업 및 활동경과

※ 해당 내용 표는 기관지 원고 pdf 파일에서 확인 부탁드립니다.

 

4. 사업효과 및 지역사회의 반응

 

(1) 사업효과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관심이 높았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장시간노동으로 건강, 쾌적한 환경에 무관심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사업은 노동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 수 있다는 소망을 갖게 했다. 참여하는 주체로, 일터의 주인으로, 토론하면서 배우고 발전하는 것,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는 느낌은 이 사업이 준 보람이었다.
재정부족, 활동가 부족이 노동조합의 어려움이다. 노동권에 대한 교육은 하지만, 조합원들이 필요로 하는 산재나 노동환경에 대한 정보는 엄두를 내지 못하던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건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보았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성수동에서 활동해도 지역과 밀착할 계기를 갖기는 어려웠다. 지역노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지역사회의 문제를 보면서 책임감이 생기고, 노조가 할 일을 생각하게 마련인데, 노조의 역량은 늘 이를 어렵게 했다. 지역주민으로서 노동자와 노동자가족의 건강을 위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고민하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성수동사업을 통해 현장과 만나게 되는 전문가들은 지식과 경험이 실천적으로 쓰이는 것,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 쓰인다는 것은 지식의 생산적 쓰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2) 지역사회의 반응

제화공장과 인쇄소 사업주들을 만나 활동을 소개하고, 공장 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 교섭을 하기도 했다. 많은 사업주가 지역사회 단체들의 방문을 꺼렸다. 노동자가 쾌적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곳은 사업장의 문을 열기도 했지만, 그럴 여력이 안 되는 사업장들이 많았기에 공장 관리자들은 방문을 거부했다.
사업주와의 마찰, 인간적 관계, 체념 등이 노동자들의 노조활동을 막는 장애물이다. 교육이나 프로그램 중간에 포기하기도 하고, 공장을 방문하면 귀찮아하기도 하였다. 사회복지, 노동환경 등에 대해 별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숙박교육을 하고 싶어도 노동자들이 월차나 휴가는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에 토요일 저녁 늦게 시작하는 짧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활동주체가 노조 안에 만들어져야 사업을 계속하고, 이끌 수 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참여를 어렵게 한다.

 

5. 에필로그

영세사업장노동자에 대해서는 노동건강연대가 재정과 역량을 투여하여 10년 이상을 활동하였다. 거점이 되었던 서울 성수동 지역사회에서 활동을 중단하고 공간을 옮긴 이후로 다시 10년이 흘렀다. 노동건강연대는 이주노동자를 교육과 교재개발 활동에 역량을 투여하고, 특수고용자의 산재보험적용을 위한 정책제안과 현장에 대한 연대 활동, 알바노동자, 현장실습생과 같은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의 경계에 있다고 불리는 이들에 대한 지원, 역량을 투여해 왔다. 경계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생산하기 위한 집필, 간행물 발간 작업을 노동건강연대가 활발히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현장에 대한 지원, 연대 활동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집중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에는 고공농성 노동자들에 대한 긴급진료, 노숙농성 중인 노동자들에 대한 건강상담과 진료활동을 직접 진행하기도 하였다.

배달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계기가 된 라이더유니온의 초기 활동에도 노동건강연대가 최대한 지원, 연대하였다. 배달노동자의 산재사고, 폭염과 혹한에서의 노동실태를 알리고, 산재보험을 적용하도록 정부의 제도 개선을 촉구하였다.

노동건강연대가 생각한 것은 ‘가려져 있는 노동, 보호가 필요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은 무엇인가’였다. 건강권에 대한 조사연구, 자문, 발언요청 등에 대해서, 노동조합이 없거나 작은 곳, 정부 감독이 없는 곳에 대한 지원을 우선으로 하였다. 이러한 노동건강연대의 방향성은 2018년 ‘직장갑질119’를 여는 문제의식을 제공했다.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 권리의 사각지대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대하여 노동건강연대가 가진 관심과 활동방향은 코로나19 이후의 노동과 사회보장정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건강연대가 펴냈던 작은 책자들을 소개한다.

 

※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건강연대가 발간한 간행물 목록

제목 발간연도
주머니 속의 진료실 1993
‘건강하게 일할 노동자의 권리’ 교육자료 2001
영세사업장 노동자 노동복지 실태조사 보고서 2005
일하는 여성의 건강이야기 (계산원노동자, 조리노동자, 의류노동자, 간병노동자) 2007
일하는 청소년의 건강과 기본권 (현장실습생, 아르바이트) 2007
〈일하는 청소년의 노동건강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 자료집 2007
‘일하는 사람의 인권’을 생각하는 의사를 위한 열 개의 진료실 가이드 213
청년노동자 건강생활 가이드 – 알아두면 쓸모 있는 노동과 건강 2017
청년 노동 서바이벌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2019
첫노동 공략집 ‘알아야 지킨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