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정책]노동자 생명담보 이윤 확대…산안 담당자만의 일 아니다
구조조정 규제완화 그리고 노동자의 건강
신자유주의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둘만 들라면 아마도 구조조정과 규제완화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조조정과 규제완화로 나타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노동자의 건강 문제다.
정리해고로 상징되는 우리나라의 구조조정은 실직한 노동자뿐만 아니라 현장에 남아 있는 노동자에게도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 우리는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들이 소음성 난청, 진폐, 유기용제, 중금속 등의 각종 중독질환, 안전시설 미비로 인한 사고가 대부분인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요통, 목 디스크 등으로 대표되는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이 직업병 순위의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이란 반복작업의 증가와 나쁜 자세, 무리한 힘 등으로 인해 목, 어깨, 팔, 손, 허리, 무릎 등의 근육과 관절 등에 질병이 생기는 것으로 노동강도 강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산물인 것이다.
이미 거의 대부분 사업장의 노동자중 약 15%가 이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미 직업성 근골격계질환을 조사한 사업장에서 50∼1백명씩의 집단적인 직업병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노동강도 강화로 인해 나타나는 또 다른 질병으로는 과로사라 명명되는 뇌심혈관계질환을 들 수 있다. 노동강도 강화와 직무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이 질병으로 인해 2000년에만 무려 1천7백여명의 노동자가 죽거나 불구가 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오히려 사업장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부분의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부분의 각종 규제는 행정상의 규제라기보다는 노동자 생명을 보호하고 사회적인 노동력을 보존한다는 사회적인 규제이기 때문에 행정편의의 시각으로만 볼 수 없다.
정부의 규제완화는 한 마디로 말해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희생해서라도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미로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희망은 없는가? 필자가 만난 한 노동자의 말을 인용해보고자 한다.
“옛날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요. 불필요한 이 작업시간, 저 작업시간을 줄이면 컨베이어 속도를 이만큼 높일 수 있다며 관련서류를 잔뜩 디밀었을 때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책상만 치고 나왔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회사와의 협상에서 컨베이어 속도를 높여서 이만큼의 노동자가 아프다며 조합원들의 진료 서류를 주었을 때는 비록 서류의 양이 사측 서류의 반도 안 됐지만 통쾌했어요.”
노동강도 강화로 생긴 건강문제는 노동강도를 줄임으로 풀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아무런 반박도 못한 채 책상만 치고 나올 것으로 판단된다.
노동강도 강화로 인한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제기하려면 적어도 다음의 몇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이 사업은 조합의 산업안전 담당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노조간부가 관심을 가지며 노조 전체의 사업으로 시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는 과거의 사례처럼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복지의 문제, 또는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는 기술적 문제로 취급돼 노동조건의 악화, 노동강도의 강화라는 본질적 접근을 하지 못하게 된다.
과학성을 가진 조합전체의 사업으로 이루어져야만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이 사업은 모든 조합원의 참여 속에 시행돼야 한다. 노조의 간부가 노동자를 만나 건강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험 요인이 무엇인지, 개선책이 무엇인지 토론하다보면 의외로 쉬운 해결책과 더불어 현장 노동자와의 뜨거운 소속감을 얻을 것이다.
(임상혁/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