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02 :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2021

 

노동건강연대는 2021년 봄 기획강좌로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 엉킨 실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2021년 3월 4일부터 4월 15일까지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일곱 개의 강좌를 꾸려 한 주에 한 번씩, 총 7주간 온라인으로 여러분들과 만났습니다. 코로나19는 노동건강연대 활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온라인 기획강좌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워진 팬데믹 시대 속에서, 회원들과 나누는 시간을 그리워하며 마련한 강좌에 많은 분이 뜨겁게 호응해주셨습니다. 우리 사실 다 비슷한 마음이었던 걸까요? 쏟아지는 좋은 반응에 힘입어 기꺼이 강사로 나서주신 일곱 분의 선생님 중 네 분에게 강의 내용을 원고로 옮겨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강의 내용을 복기하고 싶었던 회원님들부터 미처 참석하지 못하셨던 회원님들까지 모두 모시고, 다시 한번,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강의를 시작합니다!

 

문제는 플랫폼 노동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권리

남재욱 ∥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플랫폼 노동 문제는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는 노동이슈 중 하나다. 한 편으로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기술혁신이 노동에 미친 변화 중 가장 먼저 눈에 띈 현상이라는 점 때문에, 다른 한 편으로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종전의 전형적 고용관계에서 벗어나 있어 노동자로서의 권리나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비록 현재의 노동인구에서 플랫폼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지만, 향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 역시 플랫폼 노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인이다.

플랫폼 노동이란 무엇인가?

플랫폼 노동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플랫폼 노동이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중계되는 노동”을 뜻한다. 정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플랫폼 노동이라는 말은 그 일의 내용이 아닌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표현한다. 바꿔 말하면 이는 매우 다양한 성격, 내용, 숙련수준의 일이 플랫폼 노동의 범위 안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의 플랫폼 노동 논의들은 배달, 대리운전, 퀵서비스 등 지역기반 운송 노동에 집중되어 있지만, 통·번역, IT, 디자인, 법률상담 등 이들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업종에서도 플랫폼 노동은 증가하고 있다.

‘플랫폼 노동’이라는 동일 범주 안에 포함된 노동의 성격이나 상황이 다양하기 때문에 사실 플랫폼 노동이라는 범주화는 그리 유용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범주화가 사용되는 것은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등장과 확대라는 “새로움”과 함께 이들이 공유하는 또 다른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들이 고용관계의 밖에 있으면서도, 전형적인 자영업자와 달리 타인의 사업을 위해 노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플랫폼 노동의 이 같은 특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일 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 대부분이 사용자와 피용자의 지속적 관계, 즉 고용관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종속성은 있지만 법적인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점은 노동법이나 사회보장법에 규정된 권리로부터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플랫폼 노동자가 플랫폼 기업에 종속되는 정도 역시 그 유형에 따라 다양하다. 주요 선진국에서 잇따라 우버 운전자나 음식배달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에 나오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운송 등 지역기반 플랫폼 노동의 종속성은 상당히 높다. 반면 주로 웹기반으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플랫폼에 대한 종속성보다는 수수료를 수취하는 플랫폼이 수수료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지가 더 문제인 경우도 많다. 후자의 경우 프리랜서로서의 계약적 권리문제가 더 부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매우 불안정한 지위에서 노동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플랫폼 노동이 정말로 새로운 문제인가?

그런데 플랫폼 노동의 문제를 이렇게 보면, 과연 플랫폼 노동 문제라는 것이 얼마나 새로운 것인지를 질문하게 된다. 배달·운송 부문을 비롯한 지역기반 플랫폼 노동의 경우는 종전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 혹은 위장 자영업자 문제에 가깝다. 이들 중 상당수는 실제로 근로자에 가깝지만 법적으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노동법과 사회보장법에서 배제된다.

반면에 웹기반 플랫폼 노동 문제는 프리랜서 문제에 가깝다. 이 경우 종속성 문제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들의 거래조건이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보호를 규정한 법적 장치 자체가 부족하다. 게다가 이들 역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감을 구하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상당 부분 일방적으로 결정된 거래조건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매겨진 평점에 의해 계속 일감을 구할 수 있을지가 영향받는다. 이를 고용관계에 준하는 종속성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온전히 대등한 지위에서 이루어지는 거래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이렇게 보면 플랫폼 노동 문제라는 것이 사실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 고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데이비드 와일(David Weil)이 『균열일터』에서 지적한 것처럼 기술발전과 경영전략 변화에 따라 기업이 고용을 외부화하고, 그 결과 고용관계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이 불안정에 처하는 문제는 이미 지난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경향이다. 플랫폼 노동은 이 경향의 최신형일 뿐이며, 그 문제의 본질은 유형에 따라 특고의 문제이거나 프리랜서 문제에 가깝다. 물론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함으로 인해 종전에는 작업 단위로 시장에서 교환되기 어려웠던 미세업무(microtask)의 거래가 확대되는 것이나, 온라인을 통해 외주 업무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 이와 같은 현상이 플랫폼 노동 문제를 종전의 특고, 프리랜서 문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만한 근거가 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플랫폼 노동자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플랫폼 노동 문제가 생각보다 새롭지 않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 문제의 해법 역시 종전의 특고나 프리랜서 문제의 해법과 겹쳐진다. 종속성이 높은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사실상 사용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이른바 오분류(misclassification)의 교정이다. 근로자를 자영업자로 오분류할 경우 기업은 마땅히 자신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사회로 전가하는 것이며, 이는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혁신 기술”로 치장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좀 더 프리랜서에 가까운 플랫폼 노동의 경우 이들이 일 하는 사람으로서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의 구축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의 경우 고용관계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기술발전과 기업의 경영전략 변화에 따라 고용관계 안에 있지 않지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 등장의 배경이 노동력을 판매함으로써 생활하는 이들이 노동력을 판매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고려할 때, 변화하는 노동시장 환경에서 고용상 지위와 무관하게 모든 취업자의 사회보장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시대적 요구다. 최근 ‘전국민고용보험’ 논의는 이와 같은 맥락위에 있으며,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추친하여 사회보험의 보편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시대적 요구는 “누가 노동자이고, 누가 사용자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법에 있다. 인적종속성과 경제적종속성을 엄격하게 따져 노동자와 사용자를 정의하는 종전의 방식은 고용형태가 점점 더 다양해지는 현실과의 정합성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기술발전이 기업이 기업 밖 노동을 통제하는데 드는 거래비용을 점점 더 낮추고 있어 더욱 그렇다. 미국의 AB5가 고용관계의 표지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입증책임을 사용자에게 부여한 것처럼, 우리도 사용자와 노동자의 표지를 적극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일 하는 사람의 권리 보장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오분류 문제든 보편적 권리의 구축 문제든 ‘플랫폼 노동’이라는 범주에 묶여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기업이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오분류할 경우 그 오분류된 노동이 플랫폼을 통해 거래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일 하는 사람의 보편적 권리를 확립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사회보장을 확대함에 있어서 ‘플랫폼 노동자’를 겨냥하는 것 보다는, 고용형태나 종사상 지위에 무관하게 모든 일 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이는 사회보장권이 ‘근로자성’을 둘러싼 분쟁과 무관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뿐 아니라 안전보건, 차별금지, 적정 노동시간 등 고용관계와 무관하게 일 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보편적 노동권의 목록들을 제도화하는 것, 누구든 숙련개발을 위해 교육훈련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플랫폼 노동이라는 범주는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하나의 표상(表象)일 뿐이지 변화 전체가 아니다. 따라서 변화에 대한 대응 역 플랫폼 노동이 아닌 일 하는 사람의 보편적 권리를 겨냥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과 관련하여 초점을 맞추어야 할 하나의 영역이 있다면 플랫폼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이다. 플랫폼 기업은 종전의 기업과 달리 자산을 소유하지 않고, 고용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플랫폼 기업이 사회로부터 자원과 노동력을 수취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기업 외부에 대한 의존도는 더 크다. 따라서 플랫폼 기업은 ―설사 노동자 오분류에 해당하는 경우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자신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노무제공자에 대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 만약 플랫폼 노동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업 네트워크에 속한 기업이 하나가 아니라면 그 사업 네트워크 전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때 ‘책임’은 단지 막연한 의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보장과 숙련개발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기여나,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적어도 부분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지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그것이 플랫폼 기업의 “혁신”이 우리 사회전체의 “혁신”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