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02 :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2021
노동건강연대는 2021년 봄 기획강좌로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 엉킨 실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2021년 3월 4일부터 4월 15일까지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일곱 개의 강좌를 꾸려 한 주에 한 번씩, 총 7주간 온라인으로 여러분들과 만났습니다. 코로나19는 노동건강연대 활동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온라인 기획강좌 역시 그중 하나입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워진 팬데믹 시대 속에서, 회원들과 나누는 시간을 그리워하며 마련한 강좌에 많은 분이 뜨겁게 호응해주셨습니다. 우리 사실 다 비슷한 마음이었던 걸까요? 쏟아지는 좋은 반응에 힘입어 기꺼이 강사로 나서주신 일곱 분의 선생님 중 네 분에게 강의 내용을 원고로 옮겨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강의 내용을 복기하고 싶었던 회원님들부터 미처 참석하지 못하셨던 회원님들까지 모두 모시고, 다시 한번, 노동자건강의 정치경제학 강의를 시작합니다! |
코로나19와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의 건강
이주연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 코로나19는 그 사실을 가혹하게 보여주고 있다. 재난 상황 속에서 이주노동자들 역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1년 2월 말 기준 한국 내 이주민은 201만여 명이며 이 중 최소 70% 이상의 사람이 노동을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소득 감소는 물론, 장 보기와 대중교통 이용 등 일상생활의 불편, 의료기관 이용의 어려움과 두려움, 코로나19 관련 정보 부족 등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잠재적 전파자로 취급될 뿐 각종 지원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공적 마스크 구매에 있어서 한국 국적자는 신분증만을 요구받았지만 이주노동자는 건강보험카드 제시를 추가로 요구받았다. 공적 마스크 제도는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수요의 급격한 증가 때문에 2020년 3월 정부가 공정한 배분을 목표로 도입한 내용이었다. 2019년 7월 16일 건강보험법 개정으로 이주민들도 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었기에 마스크 구매 시 건강보험카드 제시 요구는 명백한 차별이었다. 미등록 이주민은 물론 체류 기간 6개월 미만인 이주민과 유학생 등은 공적 마스크를 구매할 수도 없었다. 여러 시민단체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건강보험카드 제시 조건은 철회되었다. 호흡기를 통해 전파되는 코로나19의 특성상 국적에 따른 차이를 두는 것은 방역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방역에서의 차별 문제는 의료기관에서 간병을 하는 돌봄 노동자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재 간병인은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그 수는 2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요양병원에서 간병인은 필수적인 인력임에도 불구하고 병원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나 병원으로부터 각종 방역 물품 지원, 기초 방역 교육을 받지 못했고 진단 검사 비용도 지원받지 못했다. 필수 구성원에 대한 방역 지원 미비는 간병인은 물론 병원과 환자 모두에게 부정적 영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코로나19 관련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코로나19 기본 수칙 정도만 다누리 홈페이지를 통해 다국어로 전달되었을 뿐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정보 접근성의 한계는 이주노동자들의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으며 변화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숙지하지 못해 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자녀를 언제 등교시켜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원격수업에 대한 공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으며, 생활치료센터 입주 전 주의사항을 다국어로 안내받지 못해 당황했다. 치료 현장에서는 이주노동자와 의료진 간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곤란한 상황이 빈번했다. 반면 미국은 질병통제예방센터 홈페이지에서 코로나19에 따른 대상별 예방 및 대처 전략을 다국어로 제공하고 있고, 일본은 정부 재난지원금(특별정액급부금) 지원 정보를 12개 언어로 안내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일 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데도 감염 예방을 위한 개인 수칙 외에 변화된 사항에 대한 간단한 다국어 안내문조차 마련하지 않은 점은 건강권을 침해하는 일이며 제한적 정보 접근성의 문제는 이주노동자 뿐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방역에 있어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사회 구성원에서 선택적으로 배제되었다. 방역 당국은 공적 마스크 지원 및 구매 상황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불법체류 외국인’으로 명명하며 배제하였지만 코로나19 진단 검사에서는 체류 단속을 유예하고 무료로 검사받을 수 있다며 권유하는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2021년 3월 8일 경기도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에서 잇따라 미등록을 포함한 이주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진단 검사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진단 검사 행정명령은 같은 직장 및 가족 구성원 내에서도 한국 국적이 아닌 사람만을 대상으로 한다. 국적에 따른 감염병의 감염 및 전파의 차이에 관한 과학적 근거 없이 각 지자체의 행정명령은 서울을 제외하고는 강행되었다. 또한 소위 ‘외국인 밀집 지역’에 대한 특별방역 계획을 언급한 것은 인종차별이라는 각 기관의 성명서에 대하여 의도를 곡해하였다고 변명하거나 답변하지 않았다. 감염병의 전파, 치료, 대응에 있어서 이주노동자들이 특별 방역조치가 필요한 대상이라고 주장한다면 재난지원금과 방역물품 지원에서는 배제한 채 진단 검사 행정명령만을 내릴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우선순위로 고려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필수 인력으로 분류하여 1순위로 백신 접종을 진행한 바 있다.
코로나19 진단 검사 행정명령은 인종차별적인 인권 침해와 더불어 대상자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주 5일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점, 평일 근무시간에 진료 등을 위한 외출을 허락받기 어렵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들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의 부족은 이주민 통합 정책 지수 (Migrant Integration Policy Index, MIPEX) 8개의 항목 중 이주노동자 정책 분야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부분이다.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위원회, 인종차별 철폐 위원회, 아동 권리위원회 등의 여러 유엔 인권조약 기구는 지속적으로 실질적 의료 서비스 접근성 부족 문제를 시정 권고하고 있지만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이해없이 행정명령을 내린 결과 주말 새벽부터 임시 선별검사소 한곳에 검사대상자가 모두 몰리는 바람에 거리 두기가 불가능해져 오히려 전파 위험도가 상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또한 행정명령 후 총 검사자 수는 예상보다 많아 각 지자체가 이주노동자의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새로운 어려움과 더불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문제들도 가시화되고 있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속헹씨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후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거주실태가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다. 다수의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인이 제공한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같은 비주택에서 생활하면서도 주거환경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거주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고용인이 제공한 숙소에서 지냄으로써 파생될 수 있는 문제들을 지적하며 이것이 노동자에게 바람직하지 않음을 선언한 바 있다. 이주노동자의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열악한 주거환경 외에도 의료 서비스 접근성 부족, 열악한 노동환경과 높은 산업재해율 등이 있다. 특히 고용허가제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을 금지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고용인에 종속시키고 후발 문제들을 개선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에 지속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산업 연수생 제도 이후 이주노동자를 정부 주도하에 모집하는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2004년부터 2021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에 참담함을 느낀다. 고용노동부가 밝히고 있는 고용허가제의 의의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인력난 완화와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도입’되는 인력자원으로 간주된다.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상당함은 인정하면서도 한 사람의 노동자,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코로나19 상황으로 더욱 선명히 드러났다. 코로나19상황이 시작된 후 각국에서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포르투갈은 2020년 3월 18일 국가비상사태가 발표되기 전에 거주신고를 한 모든 이주민과 난민 신청자에게 임시 거주권을 부여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를 포괄하는 코로나19 방역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2020년 4월 이주노동자 기숙사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자 전면적인 환경개선을 실시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은 선상호텔을 임시 숙소로 제공받았고, 총리는 싱가포르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의미를 강조하며 그 노고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반면 한국은 코로나19 정부 재난지원금 대상에서 이주노동자를 배제했고, 일부 지자체는 이주노동자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으나 금액에 차등을 두었다. 재난 상황 속에서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은 다시 한번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게 되었다. 재난은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가시화시켰다. 이주노동자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인종에 따른 차이를 두면서 인종차별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태도는 한국 사회에서 건강 형평성 논의를 훼손하는 일이며 이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저해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