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의 편지

우리들의 연대, 함께 오래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대표

 

2021년 6월 30일은 노동건강연대가 창립한 지 20년 되는 날입니다. 노동건강연대는 기존에 존재하던 ‘산재추방운동’과 ‘노동안전보건운동’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새로운 운동의 장을 열고자 하는 포부를 가졌던 20대, 30대 활동가 10여 명이 모여 만든 단체였습니다. 기존 운동의 전통과 열정은 존중하되 새로운 감각으로 새로운 전략과 방향으로 운동을 벌여가고자 했던 패기 넘치는 활동가들과 젊은 전문가·연구자들이 의기투합하여 만든 단체였습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 중심의 활동과 그 노동조합의 현장 활동을 지원하는 전문가라는 다소 도식적인 틀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조직된 노동자 중심의 기존 운동이 포괄하지 못하는 주체, 이슈를 중심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운동을 벌여나가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년간 비정규직, 소규모사업장, 여성, 이주노동자 등 노동조합이 포괄하지 못하거나 활동을 벌여나가기 힘든 노동자 건강과 안전 문제에 대한 활동을 벌여 왔습니다. 당시로서는 크나큰 도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재정 지원과 도움을 기대하기 힘든 조건 속에서 노동운동 단체를 꾸려간다는 것은 모험에 가까웠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노동조합은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들을 위한 활동에 재정 지원을 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지금은 여러 가지 기금이 생겨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미조직 노동자 이슈를 중심에 두고 활동을 한다는 것은 노동조합의 지원을 포기한다는 것과 다름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동건강연대는 지난 20년간 정규직 노동조합의 재정 지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이러한 원칙과 방향을 지켜 활동해왔습니다. 조합원이 아닌 이들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노동건강연대를 계속 후원하고 지지해 준 정규직 노동조합도 존재했기에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 건강과 안전 문제를 한국의 경제산업구조, 노동시장, 사회보장 제도와 관련지어 큰 틀에서 파악하고 총체적으로 대응하고자 했습니다. 현장의 전투성과 투쟁성은 극대화할 수 있었지만, 해당 이슈를 사회화하고 정치화하여 전체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동력은 부족했던 기존 산재추방운동과 노동안전보건운동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그러한 우리의 노력은 때때로 개량주의, 실용주의, 대중 추수주의 등의 오해를 받았지만, 우리는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더 많은 힘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그러한 비판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러한 운동방식을 고수해 왔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을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그 긍정성을 극대화하는 데에도 앞장섰습니다. 노동운동과 인권운동은 고유의 역사, 경험, 운동방식이 있습니다. 상호 잘 섞일 것도 같지만 상호 잘 섞이지 못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노동자 생명과 건강이라는 특수한 공공의 가치는 노동운동 방식과 더불어 인권운동 방식도 그것을 지키고 쟁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판단하였습니다. 인권운동의 방식을 차용하여 노동운동을 활성화하고 대중과의 접점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지금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노동자 건강권’ 혹은 ‘노동자 건강권 운동’이라는 표현도 노동건강연대 활동 초기에는 매우 어색한 말의 조합이었으나,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구체적 사업으로는 기업살인 대응 운동, 비정규직,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건강권 보장 운동, 대기업 생산 공급사슬 내 노동자 인권 보장 운동, 사회보장 제도로서 산재보험 개혁운동 등을 진행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상상조차 가지 않으시겠지만, 노동건강연대가 창립하여 위와 같은 활동을 노동건강연대만의 방식으로 하려 할 때 우려와 비판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려와 비판은 새겨듣고, 중심이 되는 문제의식과 가치를 놓지 않으며 활동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운동 사회에서 노동건강연대는 작은 단체입니다. 작은 단체이기에 한계가 있지만, 기존의 사고와 관행으로부터 자유롭게 새로운 도전과 실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창립 초기에는 100여 명이 안 되었으나 현재는 320명 가까이 늘어난 노동건강연대 회원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셨습니다. 처음처럼 실천하되 20년이라는 시간에 걸맞는 모습을 가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길에 처음처럼 함께 해 주십시오. 우리들의 연대, 함께 오래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