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내 곁에 산재] 애들 밥해주는데 왜 폐암 걸렸나고요?
전수경 활동가
2020년에만 노동자 10만8천여 명이 업무상 사고를 당하거나 업무상 질병에 걸렸다. 산업재해(산재)는 멀리 있지 않다. 일터에서 다치고 아픈 이들은 우리 곁에 항상 있다. 이철 작가와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가 산재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들은 ‘내 곁에 산재’ 이야기를 전한다. 노회찬재단과 〈한겨레21〉이 공동기획했다. 앞으로 격주로 이들의 기록을 연재한다. _편집자 |
2021년 3월, 근로복지공단이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가 폐암에 걸려 숨진 노동자에 대해 ‘업무상 질병(산업재해)’이라고 판정했다.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이 처음 직업병으로 인정된 것이다. 2021년 총 5명의 급식실 노동자 폐암이 산재로 인정됐고, ‘직업성·환경성 암환자 찾기 119’와 학교비정규직노조 등이 주도해 9월28일 암에 걸린 급식실 노동자 19명이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인 박아무개씨를 10월7일 ○○역 근처에 있는 요양원에서 만났다. 박씨는 2019년 폐암 3기 진단을 받은 뒤 항암치료를 했으나 암이 재발해 폐암 4기가 됐다. 현재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와 나눈 이야기를 스스로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미안하단 말 지우지 마세요
폐암에 걸린 걸 언제 알았냐고요?
폐암 진단은 2019년 1월에 받았어요. 조리실에서 일할 때예요. 여기 요양원으로 온 이유는요, 2019년 2월3일 큰 병원에서 수술했어요. 그런데 3일 입원한 뒤에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항암을 위해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해서, 서울에 있는 요양병원에서 한 달 반 치료하고 집이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왔어요.
학교 급식조리사로 일한 기간이요?
1990년대 학교 급식이 막 시작됐어요. 한번 해보자 싶어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 지원서를 넣었어요. 급식실도 가건물로 막 지은 데였죠. 1995년 10월6일 첫 출근 했어요. 뿌듯했죠, 학교니까. 월급은 적지만 오래 일할 수 있잖아요. 첫 학교에서 17년 동안 일하고, 그 뒤엔 5년마다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났어요.
2018년 세 번째 초등학교에서 일하는데, 몸이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고 아침에 일어나면 신음 소리가 나요. 새 학교 가면 적응하느라 엄청 바쁘거든요. 동료들한테 미안해서 자리를 못 비워요. 아파도 참고 일해요. 방학을 기다렸어요. 여름방학이 돼서 서울의 큰 병원에 갔는데 석 달을 기다려야 한대요. 다시 겨울방학을 기다렸어요. 2019년 1월 병원에 가니 폐암 3기라고 해요. 항암치료를 했는데 재발해서 지금은 말기가 됐네요. 4기. 12월이면 정년퇴직인데 사표를 냈어요. 다른 사람을 구해야 급식실 사람들이 편하니까. 내가 버티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아파서 쉬는 게 왜 그렇게 미안한 일이 되냐고요?
음식을 하는 일은 위험해요. 우리 하는 일이 위험해요. 팔팔 끓는 물에서 나물을 데쳐야 하고 볶아야 하고. 숙달된 사람이 해야 하는데 하루 와서 일하는 사람은 안 시켜요.
학생 200명당 조리사가 한 사람이었거든요. 그 책임을 져야 해요. 일하면서 동료들한테 미안하니까 자리를 못 비워요.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고 싶어도 내가 빠지면 다른 사람을 채워넣는 건데 미안한 거예요. 손발이 맞아야 하거든요. 새로운 사람은 하루를 와도 맞춰본 적이 없으니까 뒤처리만 하게 해요. 동료들이 내 몫을 다 하게 돼요. 미안하죠. 그러니까 미안해서 자리를 못 뜨죠. 미안하다고 많이 해도 이 말 지우지 말아주세요.
퇴근할 때마다 다들 개인 돈으로 물리치료하고 허리, 손목에 ‘뼈주사’ 맞으면서 버텼어요. 급식실에서 일한 기간만 24년. 이제 폐암이 왔네요.
음식 재료가 다듬어져 오지 않냐고요?
고등학교는 점심, 저녁을 조리하니까 대량으로 오는 건 조금 다듬어서 온대요. 초등학교는 밭에서 재료가 그냥 와요. 재료가 들어오면 검수하고 1차 작업을 해요. 다듬고 씻고 자르고 요리를 시작하죠. 배식을 다 할 때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엄청난 시간 싸움이죠. 김치도 배추 다듬고 간하고 담그고 하는 거예요. 닭고기, 돈가스, 튀김. 나물 데치고 국 끓이고, 솥 쳐다보면서 볶고. 배식 시간까지 모든 음식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 같은 가을 날씨에도 더워서 옷을 몇 개씩 갈아입어요. 여름엔 어떻겠어요.
조리만 하는 게 아니라 조리실 청소를 그렇게 많이 하는 거 맞냐고요?
아휴, 청소는 엄청 해요. 당연히 하는 거예요. 배려해주는 영양사 선생님이 업체 불러서 1년에 한 번 후드 청소를 해줬어요. 안 그런 선생님이 많지만. 그릇이 다 스텐이잖아요? 빛나야 해요. 약품을 써서 박박 닦아요, 의미도 없는데. 아침에 다니면서 점검해요. 바닥 물때도 없애려면 약품 쓰고, 청소는 우리가 다 해요. 당연해요. 식당, 식당 유리창까지 다 해야 해요.
연기 때문에 폐암 걸린 거라고
이번에 폐암으로 산재 신청을 한 얘기요?
올해 급식조리사 두 분의 폐암이 직업병이라고 인정받았어요. 14년, 15년간 학교 급식실에서 일한 분들인데 ‘조리 흄(fume·연기)’ 때문에 폐암이 걸린 거라고요. 조리 흄이 단백질을 튀길 때 더 많이 나온대요. 180도, 200도 기름이 끓는 걸 들여다보면서 튀겨내요. 1시간30분 동안. 학생 수가 많던 옛날에는 2시간씩 튀겼어요. 조리 흄이라는 게 얼마나 많이 나왔겠어요? 처음 일한 학교에선 환풍기가 고장 나서 잘 안 돌아갔어요. 후드가 두 대 돌아가는데 창문을 닫고 일하니 무슨 연기가 빠져나가겠어요? 창문을 열면 안 됐어요. 이물질이 날려 들어오니까, 꽃가루가 들어올 수도 있고. 파리 한 마리 보이면 벌금이 수십만원이거든요.
2019년 폐암 3기 진단받았을 때 노무사한테 문의했어요. 항암치료하느라 서 있을 힘도 없는데 산재가 아닐까 싶어서. 노무사는 ‘요즘에 산재 인정받기 어렵다, 근로복지공단이 안 해준다’ ‘1년 넘게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 듣고 포기했어요. 이번에 폐암 걸린 급식조리사들이 모여서 산재 신청을 한다고 해서 저도 이제야 같이 하게 됐어요. 그때 직업병을 인정받았으면 지금 한 번에 25만원 하는 주사비도 산재로 처리되지 않았을까요?
애들 밥해주는 일이 무슨 직업병 걸릴 일이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요?
하루라도 와서 일해보면 알 건데. 아침 8시30분에 나와 가스 앞에서 낮 12시까지 튀기고 데치고 부치고 배식하고 너무 힘들어요. 돈 벌러 나왔다지만 우리 너무 힘들게 일하니까. 선생님들도 학생 20명에 1명인데 우리는 200명에 1명. 아프면 마음 놓고 치료받게끔 교육부가 인원 보충 좀 해주면 좋겠어요. 인원이 필요해도 참았어요. 직장이잖아요. 학교에 아이들 있으니까 우리도 있겠죠? 아이들이 예뻐요. 먹는 애들 보면 보람 있고.
난 낙천적인 사람이었는데
말하면서 점점 눈이 빨개진다고요? 우는 거냐고요?
얼른 정년퇴직해서 허리 아프고 손목 아픈 것도 쉬고 싶었는데. 난 낙천적인 사람이었는데. 항암치료는 얼마나 걸릴까요? 치료하면 나을까요? 학생들 건강 생각해서 1년에 두 번씩 건강진단 받고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암은 왜 몰랐을까요? 왜 말을 안 해줬을까요? 너무 슬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