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내 곁에 산재] 졸면서 1천km 달리는 삶으로 돌아가야 할까
전수경 활동가
전남 순천으로 가는 케이티엑스(KTX)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알록달록한 옷들, 다정한 대화. 열차 안의 분위기는 조금 들떠 있었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 회복) 정책을 시행하고 나서 처음 맞은 주말인 2021년 11월7일이었다. 순천역에 내려, 다시 택시를 타고 광양항 남쪽 끝으로 가서 화물기사 박성필씨를 만났다.
“이미 (화물 대란이) 닥쳤어요. 요소수 공급이 안 되면 화물차가 설 수밖에 없어요. 평소 거래하던 주유소 아니면 요소수를 안 넣어주거든요. 중간에 급하게 넣으려고 하면 못 넣어요. 요소수 10ℓ에 1만2천원 하던 걸, 정보가 빠른 사람들이 매점매석해서 지금은 4만~5만원에 내놓고 있어요. 운송회사 사장이 구매해놨다가 화물기사들한테 비싸게 팔기도 해요. 화물기사들 등에 전봇대를 꽂고 빨아먹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운송회사가 요소수 비싸게 팔기도
박성필씨를 만나 처음 인사하면서 ‘요소수 부족’ 사태에 대해 물으니, 그가 빠른 속도로 설명해준다. 화물차가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 안에 무엇이 들어 있냐는 질문에는 바로 침착한 말투로 설명이 이어진다. “소가 먹는 풀 있잖아요. 건초를 수입하면 우리가 항구에서 컨테이너에 싣고 전국의 농협, 농가에 배송해줘요. 컨테이너 안에는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플라스틱수지도 있고, 화학제품 원료도 들어 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유럽에 간 배들이 보름씩 하역을 못하고 잡혀 있기도 해요. 우리나라로 오는 배도 그렇고. 이렇게 막히지 않고 화물이 돌아야 유지되는데, 지금처럼 끊기면 전반적으로 힘들어지죠.”
박성필씨는 2002년 화물기사 일을 시작했다. “젊어서 자영업을 시작해 아이엠에프(IMF)도 견뎠지만 힘들었어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자영업을 하면 힘들잖아요. 운전하면 비는 안 맞겠구나, 했어요. 현금 지급이 되니까. 자영업처럼 돈 떼이는 일은 더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나 화물차 구입에 들어간 할부비,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를 벌기에도 빠듯했다. 잠잘 시간이 없었다. “차값 할부는 6년 동안 매달 260만~270만원을 내요. 한 달에 들어갈 돈이 300만원이라고 치면, 300만원 버는 사람과 310만원 버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310만원을 벌어야 미래가 있잖아요. 그 10만원을 벌려고 잠을 안 자고 달리죠.”
박씨가 바로 ‘눈 뜨고 졸면서 운전한다는 사람’이었다. “하루 22시간씩 1천㎞를 달려서, 타이어 만드는 데 필요한 카본 분말을 여수산단에서 상차해 광주 ○○타이어로 가요. 광주에서 다시 빈 컨테이너를 싣고 포항으로 가요. 다시 카본 분말을 3시간 걸려서 싣고 광주로 가서 내려놓고 여수 집으로 와요. 이렇게 해서 아이들을 키웠죠.”
‘상차’란 빈 컨테이너에 물건 싣는 일을 말한다. 상차에 들어가는 시간은 노동시간에도, 임금 계산에도 들어가지 않는 ‘무료 노동’이다. 박씨에게 물류를 의뢰하는 화주사도, 화물기사에게 일을 배분하는 운송회사도 화물기사가 상차하는 노동을 공짜로 썼다.
뇌혈관 터진 동료, 뺑뺑 도는 차
화물차를 운전하면서 같이 일하던 선배 화물기사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모습도 많이 봤다. “지리산에서 남원으로 내려오는 길이 계속 내리막길인데 미끄러졌어요. 천운으로 차가 섰는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고 나서도 다음날 일하러 갔지만요.”
동료를 응급실에 실어보내기도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뇌졸중이 왔어요. 동료는 아침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했어요. 한 달에 하루 쉬면 잘 쉬는 거였죠. 그 친구가 운전하던 차가 한쪽으로만 뺑뺑 돌고 있었대요. 뇌혈관이 터져서.” 동료를 차에 태워 응급실에 보낸 박씨의 가슴도 답답해졌다. “차 안에서 대기하다가 그 자리에서 숨진 분도 있어요. 길이 미끄러운데도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야 하니까 달려야 하고, 멍한 상태로 가는 거죠. 그렇게 운행량이 많아지면 자기 몸에 대한 대응도 늦어집니다.”
화물기사들은 운송업체와 산업재해보상보험료를 반반씩 부담하지만 과로사에 대해 산재 인정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고 박씨는 말한다. “입증할 수 있어야 산재로 하는데 어렵죠.” 현재의 산재보험제도에서 주 52시간 이상 일하면서 야간노동을 했다면 ‘과로사’를 산재로 신청해볼 수도 있지만, 노동강도나 휴게시간 등을 개인이 입증해야 하기에 전문가 도움 없이 산재를 신청하기란 쉽지 않다.
화물기사들이 겪는 교통사고 가운데 과로로 일어나는 사고는 얼마나 될까? 경찰청도, 고용노동부도, 국토교통부도 알지 못한다. “경찰이 화물노동자 사고를 집계할 때, 원인이 과로인지 노동조건이 나빠서인지 휴식이 부족한지 이런 건 없으니까요.”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화물차 사고 통계를 내거나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경우도 없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컨테이너는 돌고 도는 거라서 그 안에 독극물을 실었는지, 발암물질이 실렸는지 모르거든요. 발암물질을 실었던 컨테이너에 들어가서 청소하면, 액체가 분말로 굳어서 날리기도 해요.”
박씨는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잠을 줄여가며 ‘안전운임제’를 공부했다. 안전운임제는 물류를 의뢰하는 화주사가 필요인력을 고용하게 하고, 화주사가 운송회사에 내는 화물기사의 인건비를 중간에 착복하지 못하도록 기본 단가를 정해놓은 제도다. 장시간 운행해야 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화물기사들에게 안전운임제는 운행시간을 좀 줄여도 생활이 가능하게 해주는, 졸음운전과 과로운전을 멈출 수 있게 해주고 사고를 줄여주는 안전판이 된다. 반면 인력을 고용하고 장비도 있어야 하니까 기존에는 운송운임료만 내던 화주사 처지에선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2020년 정부, 엘지(LG)화학 같은 대기업 화주, 화물기사들이 ‘안전운임제를 3년간 시행해보자’고 합의했다. 박씨는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가 소개한 안전운임제도 자료를 보고, 여수산단 화물기사 동료를 만날 때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자’고 설득했다. 일을 절반으로 줄이고 쫓아다녔다. 조합원 수백 명이 가입했다.
대선 후보가 노동자 편을 들면…
박성필씨는 지금 화물연대 전남지역본부 여천산단의 컨테이너지부장을 맡고 있다. “안전운임제 시행 이전에는 세 사람이 할 일을 화물기사 한 명에게 떠넘기면서 화주가 돈을 절감했어요. 한 평도 안 되는 차에서 자느라 힘들었죠. 언제 물량이 줄어들지 모르니까 불안하고. 그런데 ‘안전운임제’라는 말을 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안전운임제가 시행되면, 화주사가 비용을 조금 더 내는 대신 화물기사가 운행하는 시간이 단축된다. 한국안전운임연구단은 2020년과 2021년 조사를 통해 안전운임제를 시행한 뒤 화물기사의 졸음운전이 줄고 휴식시간과 수면시간이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기업 쪽은 2022년부터는 안전운임제를 시행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박씨처럼 안전운임제를 안착시키고 싶은 화물기사들은 애가 탄다. 화주인 대기업들은 대화 자리에도 나오지 않는다.
“화주들은 안전운임제를 막으려 하고, 정부는 내용을 잘 모르고. 앞으로 안전운임제라는 말은 없어지겠죠. 운행시간이 단축되면 아이들 데리고 단풍 구경도 갈 수 있고 삶의 질이 달라질 텐데.” 박씨는 “대선 후보자들이 노동자 편을 들면 표가 나오겠냐”고, “대선을 앞두고 (안전운임제 안착을 위해) 할 일이 없겠냐”고 물었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